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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물ID : love_4839
    작성자 : 글팔이파리
    추천 : 0
    조회수 : 295
    IP : 59.14.***.44
    댓글 : 0개
    등록시간 : 2016/06/16 04:53:40
    http://todayhumor.com/?love_4839 모바일
    그해 겨울 1
    실업계 고교를 다녀 3학년 2학기 때는 거의 학교를 나가지 않았다.

    시월부턴 취직한 친구들 자취방에 모여 술 먹고 노는 게 일이었다.

    어차피 집에선 내놓은 자식이고 아버지와는 사이가  안 좋았기에 돌아갈 곳도 없었다.

    내년 3월에 졸업을 하면 다시 집에 가려나?

    학교에서도 나오지 말라고 선언한 겨울, 인천에 있는 친구 집을 찾았다. 
    짐이라곤 스포츠백에 든 팬티 서너장과 반바지, 긴바지에 잠바 하나...

    당시엔 완행 열차가 있어 돈이 없는 나 같은 학생에겐 정말 딱 맞았다.
    저녁에 타면 새벽에 도착하고, 북적이다 텅비어가는 열차 안에서 이리저리 휘적고 다니는 맛도 상당했다.

    핸드폰도 없던 시절, 주소 하나 달랑 들고 입김 하하 나오는 서울역에 내려 인천에 있는 그 친구 집까지 어떻게 찾아 갔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친했던 친구 둘이 인천의 어느 공장에 다니고 있었다. 한 친구는 그저 착했고 한 친구는 그저 잘 생겼다. 지금 만나면 그때 배우라도 했어야 했다고 말해주고 싶을 만큼 잘 생겼었다.
    얼굴도 하앴고 이목구비가 선명했던 친구 이름은 '지천'이었다.
    얼굴과 이름이 매치되지 않던 친구....

    자취방은 제법 컸다. 방이 두 개였고 거실도 넓다랬다. 나는 기생충 처럼 그 집에 얹혀 살았다.
    3년을 기숙사에서 같이 생활했던 친구들이라 크게 불편해하지 않았다.
    설거지를 했고, 방을 청소했고, 담배를 피웠고 재떨이를 비우면 친구들이 술을 사들고 퇴근했다.

    어느날 친구 둘이 주말에 같이 놀러 가자고 했다. 여자도 있다고 했다. 너무도 신나서 매일매일 샤워를 했다. 원래 겨울엔 씻지 않지만 정성을 들이면 누군가는 알아주리라 생각했다. 

    금요일 오후에 착한 친구가 말했다. 잘생긴 친구의 여자친구도 오고 자신이 점 찍은 친구도 온다고 했다. 다 같이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잘생긴 친구의 여자 친구는 동갑이고 자기가 점 찍은 여자는 두 살이 많다고 했다.

    내 짝은? 하고 물었고,
    여자는 두 명 뿐인데? 하는 대답을 듣고 그 친구에게 쌍욕을 했으며 그날은 씻지 않고 잤다.

    같이 놀러갈 마음이 눈곱만큼도 없었지만 이 공간을 잠시만이라도 벗어나고 싶었다. 한 달 내내 재떨이만 비운 것 같아 온몸에 냄새가 밴 것 같았다.

    버스를 탔다.
    잘 생긴 친구의 여자친구는 '미숙'이라고 했다. 착한 친구의 연상 여자는 '은지'라고 했다.
    버스에 자리가 없어 서서 갔는데 미숙이가 급커브에서 휘청거렸다. 엉겁결에 팔을 잡아 주었고, 잠시 후 우리 다섯은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착한 친구가 내게 다가와서 귓속말을 했다. 
    지천이 미숙이랑 결혼할 거래. 너 그러지 마.

    내가 뭘 그랬는데? 난 넘어질까봐 팔을 잡아줬을 뿐이라고! 
    착한 친구는 그저 어깨를 으쓱했다. 이렇게까지 말했으면 알아들었겠거니, 싶었던 모양이다.

    바닷가는 엄청나게 추웠다. 잘생긴 친구는 미숙이도 은지도 둘 다 챙겼다. 착한 친구는 나처럼 깍두기가 되었다.

    저녁엔 술을 마셨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난 두 커플의 건승을 기원했다. 어차피 내 짝도 아니고, 둘이 잘 되면 내게 콩고물이라도 떨어질 거라는, 최소한 두 수 앞은 내다본 전략이었으나, 효과는 없었고 배만 아팠다. 

    집에 도착했을 때 잘생긴 지천과 미숙은 큰 방으로 들어갔고 착한 친구는 쩔쩔매며 은지를 집에 데려다 주려고 나섰다. 마치 엄마를 모시는 것처럼 준엄했다. 
    나는 어설픈 기타를 튕기며 행여 큰 방에서 무슨 소리가 들릴까 두려웠다.

    들렸다.

    곧 미숙이를 바래다 주러 지천이까지 나가고 나는 혼자 기타를 튕기다 줄을 끊어먹었다.
    나는 내가 나쁜 사람 같았다.

    한 달을 더 지내며 기타를 튕겼고, 겨울 막바지엔 유흥가가 밀집한 동네에서 웨이터를 했다. 무슨 풍차 같은 이름의 레스토랑이었다. 돌아갈 차비를 벌어야 했다.

    디제이를 하던 노랑머리 여자애도 내게 관심이 없었다. 상관 없었다. 내겐 여자 복이 없나보다 했다.

    지천이 미숙과 우리 가게를 찾았다. 그 전날 지배인 형한테 엉덩이를 얻어터져 절뚝 거리며 둘에게 서빙을 했다. 2월도 상당히 추웠고 둘은 손을 꼭 잡은 채 술을 마셨다.

    친구들은 공장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가기 위해 자취방을 정리했다. 그 바람에 나도 그곳을 정리할 수 밖에 없었다.
    기생충은 숙주가 떠나면 함께 떠나야 한다.
    지천이 데이트를 하러 나가고 박스가 어수선하게 널려 있는 거실에서 착한 친구와 소주를 마셨다.

    난 그저 신났다. 차비도 충분했고 노랑머리는 전화번호를 주지 않았고 엄마는 내가 보고 싶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꼭 아버지 몰래 오라고 말했다.
    내일 오후에 떠나는 완행열차를 타면 밤중에 도착할 것이다.

    소주는 달았고 끝에 착한 친구가 울었다. 너무 슬퍼하지 말라고 했다. 우린 다시 만날 거니까... 공장은 또 들어가면 되지 않느냐고 위로했다.
    착한 친구가 말했다. 지천이 은지를 좋아한다고. 
    너무도 어이가 없어 나는 기타를 튕겼다.
    그 당시 유행했던 노래 중에 '은지'가 들어가는 노래가 있었다. 친구는 더 서럽게 울었다. 

    근데 지천이 미숙이랑 결혼한다며?
    헤어진대...
    은주는 니 여자 친구잖아.
    은주는 애초에 지천이를 좋아했대.
    근데 세 명이 같이 여행을 갔어? 다들 제정신이야?

    그해 겨울엔 제정신인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은지 누나는 지천이를 좋아했고, 지천이는 미숙이와 잤고, 은지는 착한 친구를 싫어했고, 지천이도 착한 친구를 싫어했고 

    나는 그제야 미숙이가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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