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펜하겐 공항에서 TAX FREE 환불 받기 위해 줄을 서있었다.
사실 이미 30분 동안 긴 줄을 서 있었는데, 덴마크엔 텍스프리를 해 주는 기관이 두 군데가 있다는 사실을 몰라서 바로 옆 데스크로 옮겨와 새로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내 앞에는 대략 5명 정도의 여행객이 있었다. 바로 앞의 커플은 나와 같은 실수를 범해서 옆 데스크에서 옮겨온 케이스였고 그 앞에는 중국인 관광객 두 명과 스페인계로 보이는 남자가 한 명 서 있었다. 데스크엔 상냥한 미소의 여직원이 중국인 커플에게 똑같은 얘기를 천천히 영어로 되풀이 해주고 있었다. 아마 그 커플은 내가 왔던 데스크로 가야 하는 모양이었다.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해 실랑이를 벌이던 중국인 커플이 포기하고 떠나자, 이번엔 스페인 남자. 그제야 느릿느릿 배낭을 벗더니, 안에서 두꺼운 서류철 하나를 꺼낸다. 일단 여직원과 친절하게 인사를 나누고는 서류철을 뒤적이더니 철저하게 따로 따로 분리된 택스프리 관련 서류 및 봉투를 하나씩 하나씩 찾기 시작했다. 물론 데스크 직원에겐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윙크를 날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직원은 친절하게 아 괜찮다고 천천히 하시라고 함박 미소를 머금은 채 남자를 기다린다. 남자는 뭐라고 뭐라고 농담을 건네고, 무슨 쇼핑을 그리 많이 했는지 끝도 없이 봉투가 나온다. 보다 못한 직원이 남자를 돕는다. 그렇게 택스프리 서류들이 모두 구비되자 여직원이 말한다. 물건을 구입할 때 받았던 매장 영수증들이 필요하다고. 그러자 남자는 아 그러냐고, 배낭 안에 넣었던 서류철을 다시 꺼내서 영수증을 찾기 시작한다. 어딨을까 어딨을까 하면서 천천히 하나하나. 물론 직원에게 미안하단 말은 잊지 않는다. 윙크 역시 잊지 않는다. 직원은 아 괜찮다며 천천히 하시라고 씽긋 웃는다. 저기 여권도 필요한데... 아 여권요, 바지 뒷주머니와 자켓 안쪽 주머니를 다 뒤져서야 여권을 찾아낸다. 그리고 크레딧 카드도... 아 크레딧... 카드... 어딨더라...
그 만행을 뒤에서 지켜보며 난 속으로 외친다.
미안해야 할 대상은 여직원이 아니라, 뒤에 줄 서 있는 우리가 아닌가!!!!!
내 손에는 이미 모든 서류들과 영수증 패스포트, 그리고 환불 받을 크레딧 카드까지 쥐어져 있는데!!! 내 순서는 아마도 30초도 안 걸릴 텐데! 줄 서서 기다릴 때 조금만 미리 준비하면 됐잖아!!!! 앞에 사람이 하는 거 좀 안보고 뭐한 거야!!!
서양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오면 모든 게 너무 빠르고 급하다고들 얘기한다.
반대로 우리나라 사람들이 유럽에 가면 모든 게 느려서 속 터진다.
식당에 가서 앉으면 주문 받으러 오는 데 20분. 주문을 하고나면 음식이 나오는데 사십분. 계산하려고 영수증 달라고 부르면 웨이터랑 눈을 맞추는데 20분. 웨이터가 와서 체크를 달라고 하면 알았다고 그릇을 치워 가놓고 다시 영수증을 가지고 오는데 20분. 잔돈이 없어서 거스름돈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까지 오면 기다리다가 소화가 다 돼 버린다.
그래서 난 궁금해진다.
어디까지가 습관과 문화의 차이에서 굳어진 그 사회에서 말하는 적정 속도이고 어디까지가 성격에 따라 다른 개별의 적정 속도인 것인지. 내가 보다 낙천적인 사람이었다면 한 손에 책을 든 채 무심하게 언젠간 이 줄은 줄겠지 라는 맘으로 태연했을지, 아무리 한국의 낙천적인 사람이래 봐야 유럽의 성질 급한 사람의 속도와 비슷한 건지. 그 스페인 남자는 어디 가서 한 번도 이런 문제로 타박 받은 적 없이 행복하게 여태껏 잘 살아왔는지.
그렇게 분노를 삭이며 마침내 내 차례가 왔다.
준비 된 나의 서류들을 보란 듯 모범 답안처럼 한 번에 내밀고 나서 새초롬하게 서있던 나는 여직원의 한 마디에 결국 폭발하고 말았다.
“다음 행선지가 헬싱키시네요. 그럼 택스프리는 헬싱키에서 받으셔야 해요. 호호호”
출처 : FaceBook - 김동률의 Monologue
우리나라였다면 한바탕 피바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