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원래 꿈을 자주 꿉니다. 일주일에 반 정도는 무조건 꿈을 꾸는 것 같아요 (옛날에는 더 많았지만 요즘은 뜸해져서 이정도네요)

기억력이 안 좋기도 하고 꿈은 원체 빨리 잊혀지니 꿈을 많이 꿔도 꿨다는 인식만 있을 뿐 꿈 에피소드는 별로 없는 편인데요,
그런 와중에도 꿈이 시리즈로 되는 게 많아요. 똑같은 상황을 겪는다거나, 꿈이 1편 2편 이런식으로 나눠지는 경험을 많이 해요.
(1일에 ㅇㅇ꿈을 꿨는데, 며칠 뒤 5일 쯤 ㅇㅇ꿈과 똑같은 상황을 겪는다거나 내용이 이어지는 식입니다.)

중학교에서 배틀로얄 같은 서바이벌 게임 하는 꿈, 엄청나게 큰 성당 같은 곳을 거니는 꿈 등 저는 주로 현실과 허구를 반반씩 섞은 듯한 꿈을 많이 꿔요. 장소는 현실적이지만 행동이 비현실적이라거나요.

애니웨이, 제가 몇년 전 고등학교 1학년 때? 꾼 꿈을 얘기해드릴려고요.



꿈이 시작됐을 때 저는, 고급 아파트단지 한가운데에 서있었습니다.
산책로가 잘 돼있는 곳이었는데, 문득 어딘지 정확히 모르지만 어디를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뛰기 시작했습니다.

산책로를 뛰어, 아파트 로비를 통과해, 지하주차장을 지나 아파트 단지를 가로질러 바깥 도로로 나왔습니다.

분명 아파트단지는 어슴푸레한 초저녁이라 가로등이 켜져있었는데, 나오고 나니 낮 네다섯시 정도 되는 날이더군요.

왕복 4차선 정도의 작은 도로가 있고, 맞은편엔 버스정류장이 있고 그 뒤는 약간 낮은 언덕? 숲? 같은게 있었습니다. 어두워서 안이 잘 안보이는 그런 곳이었고, 버스정류장 양옆은 인도라 사람들이 지나다니고 있었습니다.

길을 건너 정류장으로 가니 정류장 옆에 작은 팻말로 <결혼식장 가는 길> 이라고 적혀있었습니다. 그래서 아, 내가 지금 여길 가야하는 거였구나. 하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봤는데, 모두 검은 옷을 입고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워져 제대로 보이지 않았는데, 다들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한 방향을 향해 가고 있었습니다.

약간 장례식이 연상되는 분위기였는데, 꿈이라 아무 생각도 안 들고 그 곳으로 가야한다는 생각에 발걸음을 옮겼는데 갑자기 누가 뒤에서 제 어깨를 툭툭 쳤습니다.

뒤를 돌아보니 마치 서양드라마 장례식 장면에서 그대로 나온듯한 여성분이 서있었습니다. 망사가 드리워진 검은 챙모자, 검은 레이스 장식이 달린 드레스, 검은 공단장갑, 검은 양산.
얼굴도 제대로 보이지 않고 검붉은 립스틱을 바르고 있는 입만 보였는데, 입 옆엔 점이 있었습니다. 엄청 예쁘다고 생각했었는데, 그 여성분이 저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결혼식장 가나봐요?"

그래서 저는 네, 하고 대답했는데 그 순간 잠에서 깼습니다.

그땐 그냥 늘상 꾸는 시덥잖은 꿈이었나보네, 하고 넘겼는데 그러고 3주 쯤 뒤였나, 다시 꿈을 꾸게 됐습니다.

그때도 처음처럼 아파트 단지 안에 서있었습니다. 또 문득 어딜 가야한다는 생각에 뛰었는데, 초행길은 아니군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앞에서 꾼대로 결혼식장 가는길 팻말이 있는 정류장에 도착했고, 또 지나가는 검은 옷 입은 사람들을 보며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걸음을 딛는 순간 누군가가 제 어깨를 톡톡 쳤습니다.

저번 꿈에서 본 그 여자더군요. 그 순간 머릿속에선 아, 그때 그 여자? 라고 생각했는데 그 여자가 말을 하려고 입을 여는 순간 만화처럼 입 모양이 클로즈업되며


"1년이나 지났는데. 또 왔네요?"


그 말을 듣자마자 꿈에서 깼습니다.
소름이 쭉 돋아서 아, 이거 다음에 또 이어서 꾸면 어떻게 되는건가 싶어 조마조마했는데 그 이후로 그 꿈과 비슷한 꿈조차 꾼 적이 없습니다.

약 5년 정도 됐네요. 워낙 꿈을 잘 잊어 재밌었던 것도 기억이 흐린데, 이 꿈은 아직도 그 장소의 느낌, 사람들 마저 생생합니다. 

대체 뭐였을까요. 장례식이나 누가 죽는걸 암시한다기엔, 그 당시 제 주위엔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