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 </div> <div>오늘은 영어 과외가 있는 날이었다.</div> <div> </div> <div>매일 그렇듯이 힘겹게 숙제를 하고 힘겹게 과외를 하고 집에 돌아왔다.</div> <div> </div> <div>그래도 집에 일찍 들어와서 기뻤다.</div> <div> </div> <div>과외가 끝나고 집에 들어와서 볼 것도 없는 티비를 이리저리 돌리는데, '너 고삼이잖아, 지금 뭐하는 거야.' 라는 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div> <div> </div> <div>가슴으로부터 나를 지배하는 죄책감이 밀려온다.</div> <div> </div> <div> </div> <div>초등학생 때, 나는 내가 빨리 고삼이 되고 대학생이 되어, 맘껏 자유를 만끽하고 싶었다.</div> <div> </div> <div>그건 중학생 때도 마찬가지였다.</div> <div> </div> <div>말 잘 듣는 착한 딸이었던 나는 항상 공부를 잘 하고, 모범적인 딸이 되도록 노력했다.</div> <div> </div> <div>그리고 그런 나를 엄마는 항상 믿으며 지켜봐 주었다.</div> <div> </div> <div>하지만 중3 때, 교육열이 대단한 지역으로 이사를 오면서 내 성적은 추락했다.</div> <div> </div> <div>난생 처음 받아본 성적이었다.</div> <div> </div> <div>가장 많이 하락한 영어... 시험은 정말 어려웠다. 아이들 수준이 높으니까. 어쩔 수 없지 뭐.</div> <div> </div> <div>하고 난 고등학교에 진학했다.</div> <div> </div> <div>이젠 정말 내 실력을 보여줘야지. 하고 도전한 1학년 1학기 첫 중간고사.</div> <div> </div> <div>학교에 틀어박혀 7시부터 11시 반까지 공부했다.</div> <div> </div> <div>결과는 처참했다.</div> <div> </div> <div>이 성적으로 어딜 가나... 한참을 울었다.</div> <div> </div> <div>그 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밀려왔다.</div> <div> </div> <div>대단한 사람들은 실패를 겪고 난 후에도 끊임없는 도전을 하고, 나도 그런 사람이 되기를 지향했지만. 난 그렇게 무너졌다.</div> <div> </div> <div>난 미래에 대단한 사람이 되고 싶고, 큰 일을 해낼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은 그 때 무너졌던 것 같다.</div> <div> </div> <div>난 그렇게 중상위의 무난한 성적의 평범한 학생이 되었고, 하늘로 갈 수 있다는 별 같은 아이들을 부러워했다.</div> <div> </div> <div>그 아이들의 재능이, 노력이, 반짝임이... </div> <div> </div> <div> </div> <div>그리고 난 그렇게 되고 싶어했던 고삼이 되었다.</div> <div> </div> <div>물론 내가 바라왔던 빛나는 고삼은 아니었다.</div> <div> </div> <div>난 그 무엇도 특출난 것이 없는 인문계 문과생 중에 하나였다...</div> <div> </div> <div> </div> <div>'성적이 전부는 아니더라'</div> <div> </div> <div>라고 생각했지만, 고삼에게 성적은 전부다.</div> <div> </div> <div>중간고사 기말고사를 비롯하여 모의고사까지 포함하면 거의 한 달에 한 번 꼴로 치르는 시험과 내가 지원할 수 있는 대학을 높여야 한다는 부담감</div> <div> </div> <div>그리고 부모님의 기대와 선생님들의 압박은 고삼에게 가장 큰 스트레스를 주는 원인인데</div> <div> </div> <div>이 모든 것의 종착역은 성적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div> <div> </div> <div>조금 더, 조금 더, 조금 더, 더! 더! 더!</div> <div> </div> <div>너의 성적을 높여 대학에 가라는 담임 선생님의 말씀.</div> <div> </div> <div>실제로 나의 성적은 점점 오르고 있지만 정신은 점점 피폐해졌다.</div> <div> </div> <div>고삼에게 휴식은 죄다.</div> <div> </div> <div>고삼을 경험해 본 분들은 모두 알 것이다.</div> <div> </div> <div>공부를 하던지, 안 하던지 밀려오는 그 '공부해야 하는데'하는 마음.</div> <div> </div> <div> </div> <div>14시간, 16시간을 공부하여 서울대를 합격했다는 선배들의 성공 스토리와 공부 시간 측정을 하여 최대한 늘리라는 많은 조언은</div> <div> </div> <div>날 미치게 만들었다.</div> <div> </div> <div>노는데도 노는 것 같지가 않은 불안감.</div> <div> </div> <div>독서실에서 견디지 못하고 집에 일찍 와서 논 날은 내가 나를 마음속으로 죽이는 날이었다.</div> <div> </div> <div>뭐 잘 하는 것 하나도 없는 애가 공부 마저도 못해서 원하지 않는 대학에 원하지 않는 과를 가면 어떡하려고 그래?</div> <div> </div> <div>그렇게 해서 대학 가겠어?</div> <div> </div> <div>하면서 나를 할퀴었다.</div> <div> </div> <div>사실 여기는 못 쓰지만 갖은 욕을 다 했다... 쓰레기라고.</div> <div> </div> <div>내가 너무 미웠다. 아니 나의 성적이... 아니 나의 성적을 가진 내가.. 원하지 않은 대학을 가서 원하지 않은 진로를 택할까봐.</div> <div> </div> <div>성적이 전부가 아니라는 말은... 반만 사실이라는 것을 알기에.</div> <div> </div> <div>또한 대학에 관한 의구심이 들어도 고삼은 대학 고민 같은 거 하면 안된다고... 그냥 잊으려고 노력했다.</div> <div> </div> <div>난 고삼이니까..</div> <div> </div> <div>고민은 대학에 붙은 뒤에 해도 늦지 않으니까...</div> <div> </div> <div> </div> <div>늦게 독서실에서 집에 오면 집에 엄마가 널부러져 있다.</div> <div> </div> <div>엄만 반찬가게를 2년 전에 열었는데 9시에 열어서 9시에 끝나기 때문에... 12시간을 서있고, </div> <div> </div> <div>돈을 벌기 위해 그렇게 일을 하는 엄마가 안쓰럽고 애잔하고 안타까웠다</div> <div> </div> <div>미안했다.</div> <div> </div> <div>엄마가 그렇게 어렵게 번 돈을 학원 간다고 인강 듣는다고 문제집 산다고 과외한다고 난 몇십 몇백 날려먹는다</div> <div> </div> <div>참 쉽게 난 산다</div> <div> </div> <div>나도 힘들지만 엄마도 힘들텐데 딸 오면 딸 왔어? 힘들었지? 고생 많았어</div> <div> </div> <div>하고 아빠 동생 밥 차려주고 너무 힘들어서 쇼파에서 자고 깨우면 너무 피곤하다고 1분만 있다가 다시 깨우라고 하고</div> <div> </div> <div>그리고 다시 눈 감고 다시 힘들어하고 아침에 또 빨래하고 설거지하고...</div> <div> </div> <div>쉬는 날은 한달에 두번인데... 아 눈물나...</div> <div> </div> <div> </div> <div>아빠도 직장 상사에게 엄청 깨지고 그랬는데도 밤에 엄마 가게 가고 다른 건 몰라도 공부 관한 거는 다 해주려고 노력한다.</div> <div> </div> <div> </div> <div>그래서 무너지고 싶지만 여기서 무너지지 말아야지 하고 생각한다.</div> <div> </div> <div>목표를 이루고 싶다... 꼭.</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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