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우한 가정에서 자란 여자친구를 사귀기 2년차
폭력적인 새아빠 밑에서 하루하루 살아가던 그사람을
애정 반 동정 반으로 만나기 시작했고
당시 입영날짜를 잡아놓았던 어린 나에게
나보다 더 어렸던 그사람은 울면서 부탁했었지
지금 이렇게 의지할사람 오빠밖에없는데, 떠나버리면 자기는 정말 죽어버릴거같다고..
제발 다른방법을 찾아봐주면 안되겠냐면서.
대한민국 남성의 인생에 병역의 의무란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하는 문제였지만
사람하나 살린다 셈 치고 입영을 미루고 장교의 길을 택했다.
아직도 그당시 그녀가 했던말이 기억난다.
지금 자신의 곁에만 있어주면, 나중에 장교생활이든 뭐든 오빠가 힘들때 자기가 잘하겠노라 했던 그 말.
주변 사람들은 아무도 모른다. 명예니 특별한 군생활이니 되지도않는 변명을 갖다붙였지만
사실 한 사람 옆에서 있어줘야겠다는 이유 하나 뿐이었다는걸.
그해 말, 다행스럽게도 그사람의 가정사는 원만하게 잘 해결이 되었고
다행과 기쁨에 먼저 겪은 어려움을 발판삼아 예쁜 미래를 꿈꾸었지.
허나, 그때부터였던거 같다. 내가 그녀의 이기심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
모든 어려움이 해결되고 내가 고향집에 내려가 있던 두어달 동안, 아르바이트에 뛰어든 그사람.
매주 힘들다고 어필하는게 안쓰러워 하루는 끝나는시간에 맞춰 서울까지 올라와 그녈 보러 갔었다.
그러나 포옹이나 악수같은 제스쳐는 커녕, 어서 그 장소를 벗어나고싶어 안달이 났던 그 모습.
어이가 없어 대체 왜 그러냐는 나의 물음에 대답조차 않던 그녀와 영문도 이유도 모르는 상태로 싸우고 나서
다시 고향으로 내려온 나, 그리고 이어진 문자 이별통보.
답답함, 그리고 잠시간 느꼈던 불안함은 현실로 이어졌고
결국 며칠 되지않아 알바하던 장소의 한 남성과 사귄다는 사실을 알았을때 느꼈던 분노.
함께 한 일년이 넘는 시간을 차마 며칠새 버릴수가 없었던 나는 자존심도 없이 울면서 매달렸고,
억지스럽게 우리는 다시 만나게 되었다.
그 후 이어진 그사람과 나의 해외생활.
하루가멀다하고 친구가 없다며 우는 그녀를 달래러 나는 주말마다 네시간 거리의 그곳까지 왕복했고
여러 아름다운곳을 같이 전전하면서도 친구들에게 같이 생활한다는걸 들키기 싫어했던 그녀로 인해 사진한장 마음대로 자랑할수가 없었지.
하루는 나와 같이 생활하던 룸메이트가, 같이 있는 모습이 귀엽다고 자신의 카메라로 찍어서 페이스북에 태그했었는데
그날밤 난 그녀의 자살소동을 두눈으로 똑똑히 볼수있었다. 당장안지우면 호텔방에서 뛰어내리겠다고 악에받쳐 소리치던 그모습..
좋았지만 한편으로 두려웠던 그 여행이 끝나고, 난 장교 훈련일정으로 일찍 귀국했고 그사람은 남았다.
그후로는 악몽이었다.
내 귀국과 동시에 우리 할머니께선 위독해지셨고,
나와 가족들의 병수발에도 이기지못하시고
중환자실에서 몇달 버티시다 돌아가시고,
폐암에 투병하시다 쾌차되셨던 고모부님께서도
재발 진단과 동시에 시한부인생을 선고받으셨다.
두 분 모두 내 인생에, 어느한분 뺄수없는 사람들이었기에
집안 전체가 우울함에 찌들어있던 그때..
악몽과도 같았지만 꿈이라고 치부하면서 하루하루 견뎌내던 그 시기를
정말로 지옥으로 만들어준 것은 또한번 찾아온 그사람의 이별 선언.
지금은 생각나지도 않는 별 같잖은 이유, 그리고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는 등의 말들.
지구 반바퀴가 되는 거리를 버스 잡아타듯 오갈 수 없었던 나에게 선택권은 없었다.
악몽과도 같은 몇달, 평소에 자살하는 사람들의 입장은 전혀 이해할수없다고 입버릇처럼 이야기하던 나는
그 언행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내 실천으로 말미암아 깨닫게되었고
이 사실을 모르는 주변 친구들에게 그저 상처받은 착한 여자의 이미지를 만들어가던 그사람과는 달리
나에겐 두번의 자살시도 경력과 지인들을 만날때마다 듣던 얼굴빛이 왜 그러냐는 말들만 남았다.
체중은 10kg 가까이 줄어 핼쑥해졌다는 말 또한 수없이 들었었고..
그후로는 손에 잡히는대로 뭔갈 해온 기억밖에 없다.
미친듯이 이악물고 버티지않으면 정말로 내 자신을 잃어버릴것같아서.
지금 생각해보면 그와중에 스쳐갔던 인연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에게 관심을 기울일 여유가 없었기에 결실이 있을리 만무했다.
인간관계에 대해 생겨버린 회의와 두려움도 한몫했었겠지.
모든것이 지나고, 아직도 그때를 떠올리면 끔찍하지만
도리질로 쓸어내릴 만큼이 되었을 무렵 다가온 한사람.
착하고, 사랑받으면서 자랐고, 학업도 성실하며 외적으로도 예쁜 지금의 너.
아무렇지 않은듯 같이 대화하고 웃으면서도 많이 두렵고 때론 미안하기까지 하다.
내가 겪었던 암울한 과거가 혹시라도 너에게 안 좋은 행동으로 드러나지 않을지,
그가운데 생겨난 피해의식이 널 힘들게 하지는 않을지..
또 한편으로 숨길수 없는것은
이런 모습의 네가 마치 다른 사람처럼 변해가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때 스며드는 미칠듯한 공포,
내 아픔을 나눴던 친구는, 이제 맘고생 그만하고 행복하면 되는것 아니냐 이야기했지만
고맙고도 두렵고, 좋으면서도 미안하다.
죽은듯 쓰러졌다가
이제 겨우 두 다리로 일어섰지만
앞으로 내딛는 한 걸음에 억만금의 두려움이 실려있다.
이런 조촐하고 암울한 감정은 한치라도 나눠주고 싶지 않은데
내가 행복하기위해, 사실은 불행하지 않기 위해 너에게 손을 내밀어도 되는 것일까.
밤늦게까지 지속된 멎었다 솟아오른 샘물과 같은 연락에
잠한숨 못이룬채 누구에게도 전하기 어려웠던 이야기를 적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