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저는 병역을 마친 대한민국 국적의 남자입니다.
시험기간에 잠깐 페이스북에 들어갔다가 저희 학교 대나무숲에 병역의 의무와 관련된 글이 있어서 열 올리고 오는 길입니다.
논지는 이거였습니다.
'대한민국이 내게 해 준 게 뭐가 있길래 나에게 강제적으로 병역의 의무를 요구하느냐'
'나는 외국이 더 편하고 외국에서 지낸 시간이 한국에서 지낸 시간보다 많고 외국어가 한국어보다 편한데'
'앞으로도 대한민국이 내게 주는 권리 받을 생각 없는데 내가 군대에 가야 하느냐'
이런 논지를 가진 사람이 꽤나 많은 걸로 압니다.
하지만, 실제로 '한국이 나를 위해 무엇을 해주었길래'라는 말만큼 이기적인 말이 없습니다.
국적은 개인에 대해 제공하는 국가의 최소한의 보호입니다.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사람은 20여년 간 '대한민국'이라는 '국적'이 제공하는 각종 편의와 권리를 가지고 살아갑니다. 무국적자는 생각보다 대단히 비참한 지위입니다. 쉽게 생각해서, '당신의 신원을 보증할 국가가 없다'고 보시면 됩니다. 우리가 외국으로 여행, 더 나아가 입국할 수 있는 이유도 '대한민국'이 그 신분을 보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대한민국은 '국가'가 제공하는 보호와 편의, 권리, 서비스-이는 한국어 취득과 의사소통, 대한민국에 거주, 국방/치안 및 사회보장보험, '국적' 제공 등을 포함합니다-에 대한 대가/반대급부로 4대의무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또한, 대한민국 국적법은 만 18세가 되기 3개월 전까지 국적의 포기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만 18세는 대한민국의 고등학교 교육이 끝나는 시기와 비슷합니다.) 대한민국이 제공하는 권리와 이 4대의무의 교환비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하면 18세 전에 타국 국적 취득하고 대한민국 국적 포기한 뒤 외국인으로 살아가면 됩니다.
타국 국적을 취득하지 않고 대한민국 국민으로써 병역 의무 수행을 요구받았다면 외국 국적을 취득하지 않았거나, 아니면 못했거나, 둘 중 하나일 것입니다. 취득하지 않았다면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아가는 일이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고, 못했다면 '몰랐거나', '여건이 충족되지 못했거나'일 것입니다. 왜 충족되지 못했을까요? 살 만한 선진국 국적을 취득하자니, 본인의 능력이나 상황이 부족하거든요.
결국 처음 말한 저 논지는 지극히 이기적인 주장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병역을 피하기 위해 쉽게 얻을 수 있는 국적은 많습니다. 하지만 그 나라에 가서 그 나라의 국민으로 살아가는 일이 두렵고 위험이 크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가지 않는 것뿐이죠. 한국에서 살고는 싶은데 군대는 가기 싫고, 그런 생각에서 나오는 변명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4대의무는 국가가 스스로의 존속을 위해 강제적으로 부과하는 것입니다. 그 의무가 유지되고 있다는 것은 국가와 국민 사이에 이 4대의무가 국가가 제공하는 권리에 대한 적절한 교환비라는 사회적 합의가 존재한다는 뜻이고요. 이 합의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국가를 포기하시면 됩니다. 앞서 얘기했듯이 대한민국은 포기할 기회를 제공하고 있고요. 이미 포기하기에 너무 늦어버렸다면 국가를 원망할 게 아니라 좀 더 일찍 깨닫지 못했던 자신이나, 가능성을 제시해 주지 않았던 주변 가족/친구들이나, 자신이 외국에서 태어나지 못했다는 사실을 원망하는 게 옳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글은 징병제 하에서의 군인의 급여나 폭행, 생활 문제 등 처우에 대해서 논하고 있는 글이 아닙니다.
'병역의 의무'의 '당위성'에 대해서 얘기하고 싶습니다.
'대한민국 남자로 태어났으면 당연히 가야지!' 가 아니라,
병역의 의무에 대한 대가가 20여년 간 국가가 제공하는 서비스를 통해 제공되었다는 얘기입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