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지를 배부하는 시간 2분, 오탈자 수정 1분, 그리고 수능 수리영역 마지막 문제를 -1, 0, 1 중에 하나로 골라서 찍는 것처럼 어딘가 찍을 문제가 있는지 살펴보는데 걸린 시간이 5분. 야속하게도 통계학의 문턱은 게으른 자에게는 너무 높았고 시험 시간은 아직 한 시간 하고도 52분이 남아 있는 상태었다. 무언가 할 수 있는 것이 있을까 싶어 한동안 시험지를 더 뒤적거렸지만 몇 번을 뒤집어 봐도 시험지에 적혀 있는 문제는 바뀌지 않았다.
퇴실 가능 시간을 얘기해주진 않았지만 2시간 시험이먼 암묵적으로 50분은 더 있어야 하나둘씩 사람들이 나가게 되리라. 그 때까지 뭘 할까. 교수님에게 편지를 쓸까.셀프 오목을 둘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찰나. 옆에 앉아 있던 내 후배가 나를 쳐다보며 씨익 웃었다. 그의 웃음과 함께 역시나 백지로 남아있는 녀석의 시험지를 보며느꼈다.
아, 이 새1끼도 어제 밤새 롤을 했구나.
그 때, 그 녀석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예상치 못한 움직임에 당황한 듯한 조교의 얼굴과 시험을 치던 80여 명의 시선을 받으며, 녀석은 당당히 중앙 통로로 걸어가 자신의 이름 외에는 순백으로 남아있는 시험지를 제출하고 뒤돌아 나왔다.
이심전심, 불립문자라고 했던가. 나를 보며 희미하게 웃는 그의 미소에서 나는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 수 있었다.
'날 기억해줘!!'
매드 맥스를 보진 않았으나, 찰나의 순간에 나는 느꼈다. 이 상황에서 어떤 대답이 나와야 하는지는 말해 무엇하겠는가.
나 역시도 마주 웃으며 '기억할게!!' 를 외치고는 당당히 자리에서 일어나 백지를 제출하고 나왔다.
시험장을 나와 녀석에게 물었다. '왜 그랬냐?'
그 녀석의 대답은 '형도 못쓰고 있길래 용기가 필요할 것 같아서' 였다.
역시 그 놈은 뼛속까지 정글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