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br></div> <div><br></div> 중학교 2학년 때 일이다. <div><br></div> <div> 가을 무렵으로 기억한다. </div> <div>길가에 늘어서 있는 은행나무는 연두와 노랑이 섞이기 시작하고, 반팔을 입기에는 춥고 외투를 걸치기에는 어색했던 시기였다.</div> <div><br></div> <div> 사실 더위나 추위가 그렇게 중요했던 것은 아니었다. </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실제로 날씨가 어떠하던 나는 하루 종일 교복만 입고 다녔었으니까.</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br></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 그야말로 하루 종일이었다.</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아침 여섯 시에 일어나서, 학교를 마치면 바로 학원, </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학원을 끝내면 근처 독서실에서 대충 시간을 때우다 집으로 가는 식이었다.</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얼마 안 되는 용돈을 아끼려 집으로 터덜터덜 걸어서 도착하면 언제나 시간은 대충 열 시 반을 넘기는 정도.</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br></span></div> <div>즉, 나의 인생이란 것은 언제나 실내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었다. </div> <div><br></div> <div> 그래서 날씨가 어떠하던 간에, 전혀 신경 밖의 일이다.</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 그 날 아침, 어머니께서는 밤늦게 비가 올거라고 하셨다.</div> <div><br></div> <div> 우산을 챙겨가는 것이 너무 귀찮았다.</div> <div>고작해야 겨우 몇 십분 밖에 있을 텐데, 그 정도 때문에 올때갈때 신경을 쓰게 되는 것이 싫었다. </div> <div>절로 퉁명스런 말이 나왔다.</div> <div><br></div> <div>"날씨 좋기만 하구만, 뭘."</div> <div><br></div> <div> 어머니가 그래도 가져가라고 말씀하시며 내민 우산은, 하필 살 두어 개가 망가진 찌그러진 우산이었다.</div> <div>당시 집에 있던 우산이라는 게 다들 그런 것 밖에 없었다.</div> <div>나는 대답하지 않고 대문을 닫았다.</div> <div><br></div> <div><br></div> <div> 그리고 밤에는,</div> <div>비가 내리고 있었다.</div> <div><br></div> <div> 학원에 들어가기 전까지만 해도 그림자까지 선명한 맑은 하늘이었는데,</div> <div>밤이 되어서 나오니 그사이 어두워진 주변이 온통 축축하다.</div> <div>나트륨 등의 불빛이 물바닥에 반사되어 주황빛 거리를 만들고 있었다.</div> <div><br></div> <div>많이 오는 것은 아니었다. 인상을 잔뜩 찡그리고 실눈으로 봐야 비가 오고 있구나, 하고 느낄 정도의 잔비였다.</div> <div>그렇다고 하더라도 독서실까지 걸어서 간다고 한다면, 왠지 교복이 눅눅해져서 공부할 맛도 나지 않을 것 같았다.</div> <div>궁색한 핑계라고 스스로도 생각은 했지만, 아무튼 오늘은 바로 집으로 발길을 돌리기로 결정했다.</div> <div>가는 길에 교복이 젖겠지만, 어차피 내일 아침 쯤이면 말라 있겠지.</div> <div><br></div> <div>집은 그리 멀지도, 그렇다고 아주 가까운 거리도 아니었다.</div> <div>버스로 친다면 네 정거장 정도? 걸어서 삼십분 정도 걸리는,중간에 큰 도로도 지나가지 않는 조용한 동네 길이었다.</div> <div><br></div> <div><br></div> <div>가랑비가 내리는 밤길은, 우산 없이 걷는 나의 발소리 말고는 조용했다.</div> <div>화단을 끼고 멀리 떨어진 도로에서 가끔, 물길을 짓밟는 자동차의 타이어 소리, </div> <div>빗방울에 나뭇잎에 들러붙는 소리, 상가에서 들려오는 말소리와 음악 소리,<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골목 구석에서 들려오는 고양이 울음소리.</span></div> <div>비가 오는 밤의 일상적인 소리들이 나와는 아주 동떨어진 소리마냥 아스라히 들려왔다.</div> <div><br></div> <div>주황빛 가로등, 주변에서 귓가를 간지럽히는 도시의 소리, 그리고 터벅 터벅, 나의 발소리.</div> <div>우산이 있었다면 이런 기분을 느끼지는 못했을 것이다. <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세상에 나밖에 없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span><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 </span></div> <div>터벅터벅.</div> <div><br></div> <div>또각.</div> <div><br></div> <div>나위 귓가에 다른 누군가의 발소리가 들리기 전까지는.</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나는 앞을 바라보았다.</div> <div><br></div> <div>그제서야 내가 땅을 보고 걷고 있었다는 것을 알아챘다. 아마 가랑비 때문이리라.</div> <div><br></div> <div>발소리의 주인은 내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div> <div><br></div> <div><br></div> <div>약간 경계심이 들었다.</div> <div><br></div> <div>고요하고 평화로웠던 나의 세계에 대한 침입자같이 느껴졌다.</div> <div>그래서 그에 대한 소심한 복수라고 생각하면서, 그사람을 대놓고 쏘아보았다.</div> <div>왜냐하면, 밤이었으니까. 가로등은 그 사람과 나 사이에 하나가 놓여있었을 뿐이고, 그만큼 거리도 멀다.</div> <div>내 얼굴 같은 건 보이지도 않겠지.</div> <div><br></div> <div>그런데 발소리는 어떻게 들렸지?</div> <div><br></div> <div><br></div> <div> 그 때부터 내 주변의 모든 소리들이 사라졌다.</div> <div>느끼지 못하게 되었다고 봐야 맞을 것이다. 나의 온 신경이 그 사람을 집중하기 시작했다.</div> <div><br></div> <div>우선, 그 사람은 여자였다. </div> <div>몸에 딱 붙는 가죽 자켓과 바지를 입어, 몸의 굴곡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div> <div>하지만 걸음걸이나 전체적으로 왠지 중년은 되어보이는 아주머니 정도로 느껴졌다.</div> <div>그리고 무엇보다, 나와 같이 우산을 쓰고 있지 않았다.</div> <div>검은색 얇은 곱슬머리가 비를 맞아 거칠게 엉켜 있다.</div> <div>얼굴은 머리카락과 그림자에 가려서 잘 보이지 않았다.</div> <div><br></div> <div> 그 사람을 보면 볼수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div> <div>뭔가 당연한 것이 빠져있는 느낌이 들었다. 그 사람이 내는 분위기는 독특했다. 왠지 모를 긴장감...</div> <div>생각을 거듭할 수록, 그 사람과 나와의 거리는 점점 줄어들었다.</div> <div>길은 어떤 갈림길도 없는 외길이었다. 아마 저 가운에의 가로등이 비추고 있는 바로 아래쪽 쯤에서는 마주쳐 지나가리라.</div> <div><br></div> <div>터벅, 터벅,</div> <div>내 발소리만큼 이제는 내 심장 뛰는 소리도 귀에 들릴 듯 하다.</div> <div><br></div> <div>그리고 한 가지 깨달았다.</div> <div>저 사람에게서는 발소리가 나지 않는다. </div> <div>거리가 가까워 질 수록 명확해졌다. 처음에는 멀리 있어서 들리지 않을 뿐이라고 생각했지만,</div> <div> 분명히 굽 높은 힐을 신고 있는데도 이 정도 가까이 온거리에서까지 전혀 들리지 않는 것은 이상하다.</div> <div>마치 걷고 있지 않기라도 한 것 처럼 조용하다.</div> <div>터벅, 터벅.</div> <div><br></div> <div>하지만 분명히 다가오고 있다.</div> <div><br></div> <div>어느새 가로등 불빛 아래까지 가까워졌다.</div> <div>두근, 두근, 심장 뛰는 소리가 목을 뚫고 나올 것만 같다.</div> <div>그쪽에서는 딱히 나를 신경 쓰고 있는 것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div> <div>그렇다면 그냥, 지나 가기만 하면 되는 일이다.</div> <div>터벅, 터벅, 두근, 두근...</div> <div>우산이 있었더라면 그저 얼굴을 가리고 지나갔을 텐데.</div> <div>너무 후회가 된다.</div> <div><br></div> <div><br></div> <div>거의 다 왔다.</div> <div>가로등 바로 아래에서 나와 그 사람이 교차하는 지점.</div> <div>가슴 뛰는 소리가 귓가에 천둥처럼 울려온다. </div> <div>저쪽에게도 이 소리가 들리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도 든다.</div> <div>빗물인지 식은땀인지 싸한 느낌이 온 등을 훑는다.</div> <div>두근, 두근, 두근, 두근</div> <div><br></div> <div>여전히 상대의 발소리는 들리지 않는다.</div> <div>그래, 설마하니 귀신도 아니고서야 갑자기 나를 덮치기야 하겠어? </div> <div>마음을 다잡으며 무심코 불빛에 비친 그 사람의 얼굴을 보았다.</div> <div><br></div> <div>순간, 나는 하마터면 그 자리에 멈춰 설 뻔 했다.</div> <div><br></div> <div><br></div> <div>아직까지도 그 순간이 잊혀지지를 않는다.</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그 사람, 얼굴이 없었다.</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헝겊으로 만든 인형마냥 </div> <div>눈도, 코도,입도 없었다.</div> <div>다만, 머리카락에서 썽어지는 빗물만이 </div> <div>얼굴 속에 묘한 얼룩을 만들어내고 있었다.</div> <div><br></div> <div>두근, 두근, 두근, 두근, 두근!</div> <div><br></div> <div>잘못 본 것일까? </div> <div>잘못 본 게 틀림없어.</div> <div>하지만 가로등이 바로 위에 있었다. </div> <div>잘못 봤을 리가 없어.</div> <div><br></div> <div>다시 한 번 확인하고 싶었다.</div> <div><br></div> <div>그 사람이 나를 지나쳐 갔다는 느낌이 들자 마자,</div> <div>스스로 목을 부러뜨릴 것처럼 </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격렬하게 고개를 휙 돌려, 뒤를 찾아보았다.</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br></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br></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br></span></div> <div>내 뒤에는 아무도 없었다.</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다만,</div> <div><br></div> <div><br></div> <div>또각.</div> <div><br></div> <div><br></div> <div>아스라히 앞에서 누군가의 발소리가 들려 왔다.</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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