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세요"
"어 영철아 오랜만이다"
"어... 웬일이야"
"아니, 다름이 아니라.. 애들이 연락이 안오네?"
"그래..? 그새끼들 돈이 아직 안떨어졌나보지"
"아니.. 그래도 이렇게 동시에 연락이 안된적은..."
"됐어, 그 양아치 새끼들.. 요샌 변변히 기지배들도 못물어 오고.. 다같이 어디 여행이라도 갔나보지.. 상관없어"
"그래.. 알았어"
형식은 전화를 끊자마자 인상을 찌뿌렸다.
영철이는 옛날부터 늘 그래왔다. 마치 세상은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보였다.
누가 들으면 코웃음 칠만한 일이지만, 그가 타고난 배경은 그것을 가능하게 만들어 주었다.
형식 자신도 남들에 비하면 꽤 풍족한 편이었지만, 문제는 자신의 아버지가 영철의 아버지의 오른팔 격이라는 것이다.
솔직히 내키진 않았지만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영철이 다니는 학교에 입학을 했고, 영철과 함께 다니게 되었다.
더 좋은 고급 학교를 들어갈 수도 있었지만, 영철 자신의 포악한 성격과 낮은 성적때문에 어쩔수 없이 일반 고등학교를 들어왔다고 했다.
영철은 입학하자마자 학교 전체를 장악하기 시작하였고, 형식은 내키진 않았지만 마치 자신의 아버지 처럼 영철의 뒤치다 거리를 하면서
지내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그 친구들을 만났다. 다소 단순 무식한 점은 어쩔수 없었지만, 자신의 주위 사람과는 다르게 항상 솔직하고 자신이 원하는대로
행동한다는 것이 맘에 들었었다. 사실 '그 일'만 아니었더라면.. 더 자주 만나서 놀 수도 있었겠지만...
'그 일'조차도 영철이 문제였다. 영철의 성격을 제대로 모르는 철없는 여학생 하나가 멋대로 영철에게 다가와서, 금새 사귀고 말았다.
이내 그 본성을 알고선 그 여학생은 영철에게서 벗어나려 했다. 하지만 문제는 그냥 갔으면 될일을, 영철이 했던 자질구레한 범죄 행각들을
경찰에 신고 하려 했다는 것이다. 자신은 영철이 알면 어떤 상황이 될지 뻔히 알기 때문에 어떻게든 막아보려 했지만, 이미 때는 늦어버렸다.
동네 경찰서에 신고하는것 따위로는 영철을 구속할 수 없었고, 도리어 여학생 본인이 영철에게 구속되었다.
일행들은 그 여학생을 괴롭히기 시작했고, 나중엔 심하다 싶을 정도로 점점 과격해져 갔다.
'다들 너무 분위기에 취했었어...'
그러다 사고가 일어나는 바람에 - 어짜피 제대로 수습하기도 어려운 지경이었다 - '그 일'이 벌어진것이다.
모처럼 친해졌던 친구들과 떨어져 지내는게 탐탁지 않았지만, 영철이 지시했으므로 어쩔수 없이 따를수 밖에 없었다.
"에휴..."
형식은 비어버린 담배곽을 구겨 쥐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급 주택단지라 그런지 한참 낮시간인데도 불구하고 길에 사람은 별로 없었다.
길을 따라서 가면 멀리 돌아서 가야하지만, 샛길을 따라 들어가면 금방 편의점 까지 갈 수 있었다.
형식은 평소처럼, 샛길을 따라 들어갔다. 그순간 무언가 자신의 얼굴로 덮쳐 들어왔다.
무의식 중에 들이킨 숨은 금새 형식의 의식을 점차 빼앗아 가기 시작했다.
"이..이런..."
.
.
.
달리는 차안, 운전석에는 지훈이 있었고 뒷자석에는 형식이 의식을 잃고 누워있었다.
"너 자신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어.. 단순히 방관자였을지도 모르고, 아니면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변태였는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걸로 너만은 깨끗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면 오산이지."
지훈은 형식이 이 말이 들릴리 없다는걸 알고 있었지만 마치 혼자 중얼거리듯이, 말을 천천히 내뱉었다.
.
.
.
"으..으윽..."
형식이 정신을 차리고 나서 제일 먼저 느낀건 격통이었다.
머리는 깨질듯이 아프고, 속은 당장이라도 뒤집어질듯 울렁대었다.
"끄..끄윽..."
필사적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두운 밤길 사람들이 바삐 오가고 있었다.
형식은 필사적으로 도움을 청하고 싶었지만, 왜인지 몰라도 목소리가 나오질 않았다.
"큭... 쿨럭, 쿨럭..."
기침을 통해 핏덩이가 조금씩 튀어나왔다.
.
.
"오빠, 저거 봐.. 저사람 아파서 쓰러진거 아냐?"
"아니야, 딱 봐도 술 먹고 저러고 있는거잖아, 신경쓰지말고 그냥 가자"
.
.
"아빠 저기 아픈사람 있어요"
"이런, 저런 사람한테 가까이 가면 안되요. 이리와"
.
.
"쯧쯧.. 젊은 나이에 술이나 처먹고 말이야..."
.
.
형식은 점차 온몸에 힘이 빠지는걸 느꼈다.
격통이 점차 멎고 편안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마음은 점차 절망감으로 가득 하기 시작했다.
이 모든 상황이 혼란스러워 정리가 되질 않았다.
그리고, 이내 형식은 건전지가 삐진 인형처럼 축 늘어지고 말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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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아아아~!!! 이새끼야!! 이거 풀어!! 내가 누군줄 알아?? 이새끼야!!!"
영철은 마치 짐승처럼 울부짖었다.
"......."
지훈은 조용히 주머니에서 수첩 하나를 꺼내 옆으로 툭 던져버렸다.
"이젠 이건 필요없겠군"
"야!! 이거 안풀어?? 야!!! 크아아악!!!"
이 모습을 보니 지훈은 감회가 새로웠다.
정형식이 죽은뒤 생각보다 일찍 발견되는 바람에 김영철을 확보하기가 굉장히 힘들어졌었기 때문이다.
다행인것은 이번에 마지막이었기에, 다소 무리를 해서라도 강행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이 모습을 보자니 그동안 했던 고생을 한번에 보답을 받는 느낌이었다.
"아아.. 그전에 보여주고 싶은게 있어.."
지훈은 리모콘을 집어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
화면에선 그동안 지훈이 행했던 것들이 재생되어져 나왔다. 아무리 강심장인 김영철이라도, 말없이 부들부들 떨 뿐이었다.
"뭐...뭐야!! 니놈이.. 다 죽여버린거냐??"
"으음.. 그동안은 말이지.. 사실 좀 화려하게 했다고나 할까.. 그런데 너는 좀 달라.. '죽음' .. 그리고 확실한 '고통'을 너에게 줄게.."
지훈은 옆에 잇던 도구상자를 들고 천천히 영철에게로 걸어갔다.
.
.
.
"......"
갑자기 벌어진 상황에 지훈은 당황했다.
보이는건.. 천정.... 우리집 천정.....
'벌떡!!'
지훈은 튕겨나듯이 상체를 일으켰다.
"뭐.... 뭐야 이건!!"
일어나려 하자 조그마한 체격의 청년이 자신을 잡았다.
"후후.. 자, 진정하시지요"
지훈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분명히 5년전쯤에 보았던, 실눈을 가진 사내였다.
"자, 복수는 잘 하셨습니까?"
지훈은 이 상황이 정리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말은 그의 의지와 상관없이 튀어나왔다.
"아..아니.. 마지막...이었는데..."
"하하, 이거 아쉽게 됬군요"
지훈은 필사적으로 머리속의 혼란을 추스리며 생각했다.
아마도 이건.. 5년전의 상황과 너무도 흡사하다.. 그렇다면 그동안 내가 한 것들은.. 모두 꿈이었단 말인가?
".. 흐음 이제 좀 진정이 되신것 같으니, 나머지 설명을 드리죠"
실눈의 사내는 앰플 하나를 지훈쪽으로 내밀었다.
"이것은.. 저희 회사가 개발한 약품입니다. 쉽게 설명해 드리자면.. '자각몽'을 만들어주는 약품이라고 할까요?"
"이...이... 나를.. 속이다니!!!"
"하하하.. 그래도 마치 현실과 같지 않으셨습니까? 모든 오감이 생생하게 느껴지셨을텐데요"
"......"
"이상은 이상일뿐.. 현실은 언제나 시궁창이죠. 여전히 지훈씨는.. 그들의 털끝하나 건드지 못해요"
지훈은 혼란에 빠졌다.
어디부터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자! 이제 마지막 '선택의 시간'입니다."
"어떤..."
"저희는 방금 지훈씨가 드신 물에 약을 이 앰플의 10% 만 넣어서 드린겁니다. 아마도, 지훈씨께서는 4~5년 정도의 시간을 보내셨을겁니다."
"....."
"실제로 여기서 시간상으론 10분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죠. 만약, 동의 하신다면 저희는 지훈씨에게 이 앰플 하나를 전부 드릴겁니다."
"그렇다면..."
"지훈씨는 적어도 40년 이상을 '겪게' 되는거죠."
"....."
"그리고 저희는 앞서 말씀드렸던 것을 기반으로.. 한시간 반 후에, 지훈씨의 몸을.. 갖겠습니다."
"... 제 몸을 판다는 소리군요."
"뭐.. 대충 무슨 말인지는 알아들으셨을거라 생각하고.. 고통은 티끌만큼도 없이 보내드릴겁니다."
"....."
"지훈씨가 주인인 세상에서 40년의 삶을 보장해 드린다는 의미이죠. 뭐.. 특전이랄까요. 지금 기억을 그대로 가지고 가실수 있으니,
무슨짓을 하셔도, 40년은 할 수 있을거란 말이죠"
실눈의 사내는 씨익 웃었다.
지훈은 고민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내, 답은 정해졌다. 결코 자신에게 해가된다고는 생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직도 그 감촉들이 자신안에 생생히 남아있었고, 결국 자신이 행하는 모든것을 느낄 수 있다면 현실과 다를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알겠습니다."
"자.. 그럼 간단합니다. 이걸.. 쭉 들이키시기만 하면 되니까요."
지훈은 앰플을 집어들고 입속에 털어넣었다.
그리고 잠시후 천천히 정신을 잃었다.
어떤 생각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약간 일그러진 미소를 지으며...
"후후, 이번에도 한건 성공했군. 자네는 '닥터'를 부르게 난 나머지 뒷정리를 할테니"
청년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전화기를 꺼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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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는 매 해마다 2만명이 실종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이 어떻게 사라지는지는 정확히 밝혀내지는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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