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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자녀는 물론 양자녀도 아니다.
오늘까지 합하여 단 두 번 본 아이다. 거기다 평생 함께할 것도 아닌 단 1년의, 시한부 인연이다.
그러나 그 희고 통통한 볼을, 활시위처럼 둥글게 휘어지는 두 눈을 보면,
나는 아이에게 언제고 감탄하게 된다.
아이의 이름을 되뇌어 보노라면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무언가 솟아오른다.
좋지 않은 환경을 천진하게 감내해내는 그 어린 것을 보노라면 삶에 감탄을 금치 못하게 된다.
조잘거리는 그 목소리도, 미지근한 그 체온도 눈물겹도록 애틋하다.
아이를 양육하는 세상 모든 부모들은 다 이런 심정이었을까. 내 부모도 이런 심정이었을까.
그러나 나는 세상이 얼마나 냉혹하고 삼엄한 지 알고 있다.
전체 중 아주 조그만 파편이었지만, 그것에 크게 베여보았으니까.
자라날 수록 더욱 그렇게 여겼었다.
뒤쳐질까봐 초조하고, 해내지 못할까봐 두렵고, 세상 모든 짐이 다 내게만 들린 것처럼 갑갑했다.
이미 조금씩 감내하고 있는 아이지만 자라서도 그리 할 수 있을까, 걱정하기도 했다.
아이를 만나고 온 오늘 문득 생각했다. 그것마저도 나의 비겁함이 아닌가, 하고.
자라나면서 아이가 겪을 세상은 그 누구도 아닌 내가 만들어나가는 것이었다.
나는 더 이상 친했던 친구에게 절교당했던 열 두살도, 삶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도피했던 열 아홉도 아니었다.
지금의 나 역시 알아갈 사람과 장소가 더 많은 나이이지만 알아온 만큼을 가르쳐 줄 수도 있다.
나는 돋아난 새싹을 나무로 키워나갈 비료였다.
비겁의 껍질을 벗어던지며 목청껏 울어대는 혁명가는 되지 못하지만, 나는 그런 이를 키워낼 그늘은 될 수 있었다.
침침하고 흐릿한 날씨에 거리를 함께 걸으며 내게 웃어주던 아이가 그 무엇보다 존귀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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