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생각해보면 초등학생때 왜 그런 할머니이야기를 들어야했는지는 모르지만
진짜 뭐 죽이는 일 도살 이런건 하지말라 들음
그 이유가 뭐냐면 업이란 것보다도 걍 누군가를 죽인다는 건 그 생명체의 원래 삶을 깍는거라고 들음 이게 먹는거랑 다른게
자기가 죽인다음 먹는다 -> 그생명체의 일부분이 자신에게 결합되어 자연이란 인과율에 맞게 돌아감 [즉 이녀석은 나와 합쳐지기 위한 요소로서 태어난거]
근데 죽이고 아무 짓도 안함 -> 그 생명체의 삶은 거기가 아닌 다른 곳에서 마쳐야 정상 근데 죽음 [그에 부여된 생명체의 시간을 존속할 수 없어 인과율의 변화가 일어나고 그 인과율은 큰 변화로 변하게 됨]
근데 그게 의외로 쉽게 그 본인한테도 이전이 된다함 [그걸 업이라한다하더라구요]
즉
ex ) 나와 내 동생은 서로 마주보고 살았지만 어느날부터 내 동생은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졌고 나중에 토막살인이라는 피해자로 남게됨 그로 인해 나는 내 동생의 죽음이라는 영향을 받게 되고 그걸 토대로 나라는 존재의 삶에 인과율이 생김 그 인과율은 한개체만 움직이는게 아니라 상호작용이라서
나에게는 동생이 살인 당했다 -> 살인마를 찾아내야한다는 시간이 소요됨 [즉 원래는 다른 시간] - 그리고 내 동생이 죽음으로서 장례식이 생겨 그 주위 사람또한 그 장례식에 시간을 소요하게됨 ->또한 그 영향이 다른사람에게도 이전됨
이 이야기를 그것도 운명이고 다 순리라고 하지만 한 개체의 죽음이 연속적으로 미래가 변질 된다는 걸 알려줌 //
결과론적으로 도달치는 같아도 중간의 기억들이 달라진다는 소리임
데자뷰 현상도 인생은 무한대수로 이어진 똑같은 삶이라 시작점과 도착점은 똑같지만 항상 전 삶보다 더나은 삶을 살려고 최선책을 쓰려고 알려주는 기억 [즉 같은 미래는 존재하면 안됨 ]
즉 우리는 이 몸으로 최선책을 써서 연장시키며 좋은 기억으로 만드려고함 [사실 선택의 잘못으로 다시 내려가는 경우도 존재.]
근데 죽이는 걸 일상화하면 그 죽인 개체들은 다음 생에서 그 상황에 맞는 상황책을 쓴다는 소리임
- 왠지 내가 오늘 불안한 일이 생길꺼같아 [이전의 사건으로 자신이 크게 대인것.] 그에 따른 경각심으로 행동의 반경이 달라진다는것.
지금 먹음의 감사함에서 죽이는 자연의 순리에는 인과율이 적지만 무차별적 살인을 하게 될경우 당신에게 죽는 개체들이 다음 생에서 어떤 반응을 보일지 모른다는 것이라고 그 할머니가 이야기하더라구요 그걸 노트에 적어둔 저도 웃기지만
그 할머니는 무한의 생을 산다하더라구요.. 뭐 그거야.. 내 알바아니지만..
결론 - 살생은 하지맙시다. [먹는거 아니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