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년 9월에 간첩 침투사건 터지고

일주일이면 끝나겠지 이주일이면 끝나겠지 하던게

점점 길어지더니 결국 페바 부대들 까지 전부 전방으로 투입되고

급기야 사단 신교대에서 갖 퇴소한 신병들까지 줄줄이 전방으로 올라갔지

나도 당시에는 잠밥 찌끄레기 이기는 했지만

그때 온 애들 얼굴에 스민 공포감은 지금도 잊을수가 없음

불과 6주전만 해도 민간인이었던 애들이 훈련소 마치자 마자

가뜩이나 긴장할수 밖에 없는 자대 생활인데 그거조차 시작도 못하고

대침투작전에 투입됐으니 그때 기분이야 오죽했을까

누가 누구인지 얼굴도 이름도 기억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투입되고

가뜩이나 고참이고 간부들이고 신경이 날카로워 질때로 날카로워져서 분위기는 그야말로 살풍경하고

제대로 씻지도 먹지도 못하면서 독이 오를대로 오른데다가

하루 이틀 지나면서 상황은 악화되고 어디서 누가 죽었다더라 부상 당했다더라 하는 소식이 점점 들리고

급기야 우리 경계지역으로 점점 포위망이 좁혀 들어오면서 조명탄 터지는게 보이고 총소리 터지는 소리 들려오고

지척거리의 매복지에서 까지 교전 소식 들려오고............씨바 그때는 간부고 고참이고 후임이고 누구나 머리속으로

우리가 내일이면 산사람이 아닐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 안해본 사람이 없었지

상대가 겨우 30명도 안되는 집단이건 말건 그건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건 그놈들이랑 총질하다가 죽는 재수없는 인간이

누가될지 아무도 모른다는거니까

나중에 그때 온 신병 군번들이랑 이야기해 보니 그냥 매일매일이 패닉 상태 그 자체였다더라

심지어 어떤 놈은 작업용으로 굴러다니는 본드 보고 그거라도 불어볼까 하는 충동까지 들었다고 하고........

내 군생활중 가장 X같은 경험이면서도 동시에 귀한 경험이었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그 난리를 겪고나니 정말 농담으로 라도 전쟁 까짓거 하면 되지 하는 소리는 못하겠더라.

지금 전쟁 터지면 현역이건 동원이건 얄짤없이 전쟁터로 끌려가야 될 운명인 사람들은 명심하는게 좋을거야

라이언일병 구하기 초반에 오마하비치 상륙하기 직전에 수송선 탄 병사들 얼굴 기억하지?

매일 매시간을 그런 얼굴로 살아야 되는게 전쟁터라는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