쾌락과 행복의 공통점은 무언가의 만족으로 부터 온다는 점이있다.
쾌락은 무엇이 있을까.
식욕, 성욕, 수면욕, 물욕, 권력욕, 배변욕 등.....
물체, 신체등의 만족, 해소등으로 오는 것 들이 있다.
행복에는 무엇이 있을까.
어떠한 상황, 정신적 만족
굳이 구분을 안해도 쾌락을 행복이라 부르는 사람은 적을 것이다.
쾌락은 순간적이며, 쾌락을 넘어서면 고통이 찾아온다.
행복도 순간적 일 수는 있지만, 기억된다.
넘어선다고 고통이 찾아오진 않는다.
이렇게 단어로서 구분한다면, 그 둘의 구분은 명확한 것이지만,
우리가 실제로 느끼는 것에는 둘의 구분이 모호해 진다.
예를들어 며칠 굶은 사람이 고생끝에 밥을 먹는다.
그 사람은 밥을 먹음으로서 행복해 질 것이다.
욕구의 해결로도 행복해 질 수가 있다.
이제 이 사람은 아무리 많은 양이라도 밥을 절대 남기지 않을 것이며,
밥을 굶지 않도록 노력할 것이다.
그리고 이 사람이 더 이상 밥을 굶지 않게 되면
며칠 사이에 밥을 먹으며 행복하다고 말 하지 않게 될 것이다.
이제 밥을 먹는 행위에는 식욕의 해소, 만족 만이 있을 것이다.
과식으로 체하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이 사람이 행복을 느낀것은 굶주림의 상황과 밥을 먹는 상황의 맞물림에 있다.
개별적인 상황에서는 더 이상의 행복을 느낄 수는 없다.
의식적으로 행복하다고 말 할 수는 있겠다. 하지만 행복이 아니라 쾌락을 느끼는 것이다.
우리가 행복을 느끼는 것은 행복한 상황이 있어서이지,
물질이 있어서 느끼는 것은 아니다.
연인이 행복할 수 있는 것은, 사랑이 있음을 느끼는 상황이 있어서이다.
그 사람의 눈동자가 나를 보고 있음을, 그 사람의 손이 나를 어루 만져줌을,
자신의 발이 그 사람에게 감을, 자신의 입술이 그 사람을 말하고 있음을
그 것들을 못 느끼면 연인일 지라도 행복하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쾌락에 의한 행복은 부족함이라는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그 외에는 욕구만족을 위한 행위일 뿐이다.
하지만 가장 느끼기 쉬운 행복도 이 것이다.
우리는 가진 것 없이 태어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착각하기도 쉽다.
욕구의 해결에서 오는 쾌락을 행복이라고 생각해 버리는 것이다.
그렇지만 욕구라는 것이 만족 뒤에는 으레 더 큰 것을 요구 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행복해지기 위해 욕심을 키운다.
그렇게 물질을 얻어도 행복해 지지는 않는다.
또 큰 것을 위하게 되니까.
용돈으로 오백원을 받아든 아이가 행복할까,
금고에 오백만원을 쌓아둔 어른이 행복할까.
다시한번 말하자면 행복은 상황에서 오는 것이다.
물질이 있어서 행복한 것이 아니다.
쾌락을 행복이라 생각하지 말자.
불행하다고 생각 되면 주위를 둘러보아라.
자신보다 모자란 사람을 보고 위안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행복해 지나?
하늘의 구름을 보던지, 땅에 솟은 잡초를 보던지, 연인을 보던지 하라.
그리고 세세히 보아보자.
구름은 어쩜 저렇게 희고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는지, 이름도 모르는 잡초는 어떤 녹빛을 하고 있는지,
연인의 손끝이며 눈동자며 솜털 하나하나까지 보자.
그리고 나서 자신이 행복해질 상황을 상상해 보자.
로또맞는 상상을 하는 당신, 당장 그만두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라.
구름 아래 그늘에서 바람을 맞거나, 잡초를 화분에 옮겨 집으로 가져가 키우거나,
연인에게 줄 꽃을 사거나 하는 상상을 하자.
그리고 당신을 불행하다고 생각하게 만든 상황이 끝나면, 상상을 실행에 옮기자.
그리고 그 상황을 즐기자.
당신이 행복해 질 수 있는 상황은 당신이 만들어 낼 수 있다.
많이 부족한 글을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모두가 이미 알고 있는 얘기 일수도 있습니다.
이 것만으로는 영원토록 행복해 질 수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물질에 의한 불행이 아닌 이별 등과 같은 슬픔은 행복해 지기 쉬운것은 아니니까요.
다만 행복의 범주에서 물질을 빼버리는 것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우리가 느끼는 불행이란 거진 물질에 의해서 생겨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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