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이면 머털도사 108요괴와 함께 TV채널에 반드시 편성되어 있던 것이 둘이였다. <div>호이호이 둘리는 초능력 내 친구.</div> <div><br></div> <div>어릴 때는 분명 둘리의 장난이 통쾌하고, 고지식한 고길동이 당할 때마나 그렇게 신이 날수가 없었다.</div> <div>부모를 대변하는 고길동이 호이호이 마법에 휘둘릴 때마다 부모의 명령하에 통제되어야 했던 어린 마음이 카타르시스를 느꼈는지도 모른다.</div> <div><br></div> <div>갈 곳 없는 친구들을 데려와 먹여주고, 친구를 위해 고길동을 골탕 먹이고, 친구와 함께 어디든 가는 둘리.</div> <div>천상천하 유아독존이 따로 없는, 그야말로 멋진 친구였다. </div> <div>그옆에 항상 성을 내는 고길동은 멍청한 톰과 같은 존재였고, 당해야만하는 얄미운 악에 해당했다.</div> <div><br></div> <div>그리고 시간이 지났다.</div> <div><br></div> <div>내 마음 속 둘리는 철부지 꼬마애로 변했고, 고길동은 현세에 다시 없을 성군, 성인, 군자로 변했다.</div> <div>집을 부수고, 집안을 엉망으로 만들고, 얼음별 대탐험에서는 젖먹이 아기를 우주로 데려가는 끔찍한 일을 벌이는 녹색 괴물. </div> <div>친구를 위한다는 명목하에 온갖 사악한 짓을 일삼는 천하의 못 된 악당.</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반면 고길동은 버려진 초능력 공룡을 데려와 먹여주고 재워주며, 신고도 하지 않고, 어떤 패악을 저질러도 보살펴 주었다.</span></div> <div>집이 반파 되어도, 둘리 때문에 직장일이 엉망이 되어도, 맛있는 라면을 둘리 때문에 쏟아야 했을 때도 그는 소리만 치고 집에서 쫓아낼 뿐이었다. 그 쫓아내는 것도 반나절이면 끝. 다시 집으로 데려와 보살펴 준다. </div> <div><br></div> <div>둘리는 변하지 않았다.</div> <div>하지만 인식하는 내가 변했다.</div> <div>그러자 둘리가 변했다.</div> <div><br></div> <div>동굴 속에서 벽면에 비친 그림자는 항상 그대로였는데, 내가 변하자 그대로가 아닌 것이 되어버렸다.</div> <div>둘리의 그림자는 오늘도 휘청휘청 변해간다. </div> <div>나에 의해서.</div> <div><br></div> <div>- 나에게 하는 말.</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