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톡홀름 증후군 7
by 슈헤르트
애플블룸이 벌인 한바탕 소동이 지나가고 , 어느덧 시간은 흘러
셀레스티아가 아닌 루나의 시간이 되었고 , 간단히 저녁을 먹은뒤
애플블룸은 설거지를 하는 엔퍼서를 뒤로하고는 다시 거실로가 텔레비전을
켰다 . 하지만 역시나 밤에 하는 TV엔 재밌는게 하나도 없어 차라리 자신의
소식이 나오는 뉴스가 더 재밌다고 생각이 들게끔 했다 .
애플블룸은 문득 , 다른곳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 조용히 소파에서
일어나선 , 엔퍼서가 있는 부엌으로 살금살금 다가가 엔퍼서의 동태를
살폈다 . 다행히도 그는 묵묵히 설거지만 하고있었고 애플블룸은 부엌에서
빠져나온뒤 2층으로 가는 계단을 바라보았다 .
' 다신 이방에 올라오지마 '
순간 예전 엔퍼서의 화난 목소리가 귓가에 멤돌았지만 , 애플블룸은 궁금했다 .
2층은 엔퍼서의 공간이였기에 , 그가 숨기는것도 , 그의 추억도 , 그의
모든것을 알수있는 공간이였기에 더더욱 올라가보고 싶었다 . 저번에 한번
올라가봤다지만 , 그땐 그에게 남모를 호기심이 없었고 그저 정체만 궁금했을 뿐이였다 .
애플블룸은 다시한번 부엌쪽을 힐끔 쳐다보곤 마치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도둑마냥 발굽끝을 세워 조심 , 조심히 올라갔다 . 숨소리 마저 줄여가며 .
' 삐그덕 '
몰래 올라가고 있을쯤 , 계단에서 낡은 나무 판자소리가 울렸다 .
그에 놀란 애플블룸은 그 칸을 밟은 그자세 그대로 멈춰섰다 . 심장이
두근두근 거렸다 , 이번에 걸리면 엔퍼서 아저씨가 정말로 자신에게
무슨소릴 할지 모른다 . 애플블룸은 그자세로 가만히 주변 소리를 듣다 ,
이내 다시 계단을 올라갔다 .
계단을 올라서자 저번에 봤었던 2층방문이 다시한번 보였다 .
애플블룸은 침을 꿀꺽 삼키곤 문소리가 나지않게 조용히 방으로 들어가곤
문을 닫았다 . 다를것 없는 단조로운 방이였지만 , 아저씨의 본모습을
깨달은 애플블룸에게는 저번과는 달리 색다르게 느껴졌다 .
가구도 몆개없고 하나달린 창문마저 커텐에 쳐져있었으며
침대 주변엔 술병이 굴러다니는 그 방은 , 어쩌면 엔퍼서에겐
고통과 안식이 공존하는 동굴같았을 것이다 . 어두컴컴한 방안에서 ,
레인보우 대쉬의 사진을 보며 죽은 레인보우 대쉬를 떠올리곤
이내 그 고통을 잊으려 , 모든걸 잊으려 술을 마셨을 엔퍼서 .
잠시 그런 생각이 들자 애플블룸은 심히 우울해졌다 .
그에겐 시간이 없었다 . 그녀와 대화를 나눌만한 시간이 없었다 .
그에겐 기회가 없었다 . 그녀에게 고백할 기회가 없었다 .
그에겐 선택지가 없었다 . 그녀를 죽일 운명밖엔 없었다 .
그에겐 사랑이 없었다 . 사랑을 가지기 전에 사랑이 사라져버렸다 .
그에겐 아무것도 없었다 .
그저 그녀를 사랑하고 동경하는 짝사랑의 마음밖에 없었다 .
애플블룸은 잠시 느꼈던 슬픔과 쓸쓸함을 뒤로하고 본격적으로
방을 뒤지기 시작했다 . 책상에 올려져있던 잡동사니를 살펴보니
캔틀롯 페가수스 경주 대회 관련 신문들과 , 레인보우 대쉬의 옛자료들이
있었다 . 하지만 페가수스 경주 대회 관련 신문은 레인보우 대쉬가
죽은 이후에 발간된 신문이였다 . 그녀가 출전하지 못할 경주 대회의
신문을 왜 가지고 있는지 궁금해 하고있을쯤 , 애플블룸이 듣기 원치않을 소리가 들려왔다 .
2층 방문이 열리는 소리 .
애플블룸은 황급히 뒤돌아봤지만 , 이미 그자리엔 엔퍼서가
자신을 무표정한 모습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 순간 애플블룸은
공포가 밀려왔다 . 그녀는 잊고있었다 . 아직 그와 자신의 사이는
친척도 , 친구도 아닌 납치범과 인질의 사이였던걸 .
" 저 . . 저기 그러니까 . . . "
엔퍼서가 자신을 어떻게 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패닉에 빠진
애플블룸은 말을 더듬으려 어떻게든 변명하려 했으나 이미 자신의
생각회로는 동작을 정지한듯 회색빛 도화지처럼 하얗게 변해버렸다 .
그와중에 엔퍼서는 무표정한 모습 그 상태 그대로로 애플블룸을 향해 걸어왔다 .
" 히익 ! "
애플블룸은 엔퍼서가 자신에게 다가오자 눈을 꼭 감으며 그자리에
주저 앉아버렸지만 , 엔퍼서는 그런 애플블룸 옆에서서 애플블룸이
보고있던 신문기사를 집어 들곤 , 애플블룸을 지나쳐 자신의 침대에
걸터앉았다 .
" 에 . . ? "
애플블룸은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자 조심스레 눈을 떠 엔퍼서를 보았다 .
침대에 걸터앉아 켄틀롯 페가수스 경주 대회의 내용이 담긴 신문기사를
왠지 허망한듯이 보는 엔퍼서의 옆에 , 애플블룸은 슬금슬금 다가와
옆에 걸터앉았다 .
" 저기 . . 그거 . . "
" 가고싶었어 . "
" 에 ? "
" 한번쯤 가고싶었어 , 켄틀롯에서 열리는 페가수스 경주 대회 . "
" 왜요 ? . . 레인보우 대쉬 언니는 . . "
" 그래 , 그녀를 볼순 없지 . 이제와선 내가 원하는걸 보긴 늦었어 . "
" 그런데 . . ? "
" 그녀를 보고 싶지만 , 여기선 그녀를 보고싶은게 아니라 다른걸 보고싶어 . "
" 그게 뭔데요 ? "
" 생기 . "
" 생기 ? "
엔퍼서는 애플블룸을 바라보며 말하다 , 이내 다시 시선을 신문기사에
옮겼다 . 신문기사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엔 그가 원하는게 담겨있는듯 .
쓸쓸한 회색빛 시선의 그속엔 애절함이 서려있었다 .
" 내가 레인보우 대쉬를 사랑했던건 , 그녀의 외모도 , 성격도 한몫했지만
내 시선을 뺏겼던건 바로 그녀의 생기야 , 하루종일 죽어가는 망자들속에서
발랄하게 , 활기차게 높은 창공을 날아다녔던 그녀의 살아있는 모습이
다른 사형수들과 다름없이 죽어있던 나를 깨웠지 . "
" 근데 이 경주는 왜 ? "
" 거기에 가서 재빠르게 , 현란하게 , 멋지게 날아다니는 페가수스들의
모습을 보면 . . 아마 레인보우 대쉬에게서 느꼈던 살아있음을
거기서 느껴볼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 그렇지만 . . 정말로 확실히
느끼고 싶었고 , 그러기에 난 VIP 좌석을 원했지 . 탁트여서 모든걸 볼수있는공간 . "
" 아 . . ! 그래서 이런 인질극을 벌인건가요 ? . . VIP 좌석은 비싸니까 . "
" 경주를 보러가기로 마음 먹었을땐 , 이미 일은 때려친 상태에
그녀를 잊기위해 타락속에다 내가 벌어놓았던 재산들을 탕진했었지 .
도박 , 술 , 여자 . . . 그런건 결코 날 그녀에 대한 집착을 없앨수 없었더군 . "
" 그럼 다시 돈을 벌생각을 하지 그랬어요 ? "
" 저번에 짧게 말했지 않았었나 ?
욕망이 이성보다 앞질러져있었어 , 제정신을 차렸을땐
네가 우리집에 묶여있었지 . 지금도 후회하고 있지만 . . 내일이면 . . "
" 내일 ? "
" 어제 내가 나갔을때 , 협박 편지를 두고왔거든 .
이틀뒤 오후 두시에 천비트를 가지고 포니빌 뒷산 인근 폐창고로 오라고 . "
" . . . "
" 내일이면 너도 이 집에 없겠지 . "
" . . . "
" 너에게 아무런 상처도 주고싶진 않단다 . 내일이면 . .
네가 좋아하는 네 언니의 사과도 먹을수 있겠지 . 그 두가지에 대해선
무슨 수가 있더라도 아저씨는 약속을 지키고 싶다 . "
" 사실 . . 많이 아쉬워요 .
이제 아저씨를 볼수없다는게 . "
" 넌 나를 유일하게 이해해준 아이란다 . "
엔퍼서는 말을 마치고 , 잠시 애플블룸을 바라보다 , 이내
조용히 , 그리고 조심히 그녀를 안아주었다 . 애플블룸도
반항하는 기색없이 되려 엔퍼서를 안았다 .
" 그래서 나도 니가 보고싶을꺼고 . "
" 아저씨 . . "
" 고마워 . "
정말 짧은 시간동안 같이있었지만 애플블룸은 볼수있었다 .
그의 이유를 , 그의 과거를 , 그의 수많은 비수가 박혀있는 마음을 ,
그리고 그의 안에 담겨져있는 수많은 슬픔들을 .
그러기에 그를 이해할수 있었다 .
애플블룸은 엔퍼서의 마지막 인삿말에서 왠지모를 슬픔을 느꼈다 .
아저씨의 외로움을 보잘것 없는 자신이 이해할수 있고 달래줄수
있었다면 아저씨의 곁에 남아서 그 슬픔을 치유해주고 싶었다 .
그의 고통을 덜어주고 싶었다 .
하지만 이제 그럴수 없다 .
" 아저씨이 . . "
다시끔 애플블룸의 눈엔 , 눈물이 차올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