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교과서가 바뀔 때마다 반복돼온 ‘역사 전쟁’이 또다시 되풀이되고 있다. 이승만을 건국의 아버지로 인정해야 한다는 뉴라이트의 주장부터 군인을 나쁘게 묘사한 부분을 축소해야 한다는 국방부의 요구까지, 보수 각계에서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역사가 수정돼야 한다며 앞다퉈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우파에서 지적하는 현행 역사교과서의 문제점은 크게 두 가지로 압축된다. 현대사를 북한을 포함하는 ‘한민족’의 시각이 아닌 ‘대한민국 국민’의 시각에서 서술해야 한다는 점과, 과거의 잘못을 지나치게 부각하는 자학적인 역사관을 버려야 한다는 주장이다. 


■ 대한민국 ‘정부수립’은 ‘건국’으로, 이승만은 건국의 아버지로

뉴라이트 인사들이 주축이 돼 꾸려진 ‘한국현대사학회’ 교과서위원장인 이명희 공주대 교수는 “역사를 누구의 시점에서 서술해야 하는가 생각할 때 통일을 염두에 두고 ‘한민족’의 시각에서 역사를 서술한 지금의 교과서는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남북분단 이전인 근대사 이전까지는 한민족의 역사가 맞지만,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의 역사는 어디까지나 ‘대한민국 국민’의 시각에서 서술돼야 한다는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의 시각에서 바라보면 대한민국 ‘정부수립’은 대한민국 ‘건국’이 돼야 맞고, 이승만 대통령은 건국의 아버지로 재평가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에 따라, 이승만의 단독정부 구성이 통일 정부를 구성하는 데 걸림돌이 되었다는 내용이나 이승만을 독재자로 묘사하는 식의 시각은 편향됐다는 것이다. 이 같은 논리는 남한과 북한을 동등한 자격을 가진 국가로 다루어선 안된다고 못박는다. 남한의 체제와 북한의 체제를 병렬적으로 소개하는 구성은 북한을 정당화할 수 있다고 이들은 주장한다. 

우파는 건국이념에 대한 설명을 한층 강화해야 한다면서 각종 용어 역시 자신들이 지지하는 단어들을 선택적으로 반영시키기 위해 압력을 가하고 있다. 최근 교육과학기술부가 역사교육과정을 고시하는 과정에서 ‘민주주의’가 ‘자유민주주의’로 바뀐 것이 대표적 사례다.

■국방부·전경련, “군인과 기업에 대한 비판적 서술 줄이라”

교과부가 현대사학회의 요구를 받아들여 ‘민주주의’를 ‘자유민주주의’로 수정해주자, 이번엔 정부 부처가 자신들에 대한 부정적인 서술을 빼달라며 공개적으로 요구하는 사태까지 빚어졌다. 국방부는 지난 12일 ‘한국사 교과서 집필기준 개정에 대한 제안서’를 교과부에 보냈다. 국방부는 “ ‘5·18 민주화운동’ 중 군대가 학생·젊은이에게 무차별 살상을 자행했다며 잔학성만 부각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전경련 역시 자학적인 역사관을 바로잡아야 한다면서, 대한민국의 경제적 성취를 제대로 가르치기 위해 이병철·정주영·박태준 회장을 교과서에 실어 기업인의 도전정신을 널리 알려야 한다는 요청서를 보냈다. 

■우파의 역사관은 모순적

역사학자들은 우파의 역사관이 모순적이라고 지적한다. 한민족의 관점에서 바라본 ‘민족주의적 서술’을 극복해야 한다면서도 민족주의의 가장 극단적 형태인 ‘국가주의’를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한종 한국교원대 교수는 “우파는 자랑스러운 국가 역사를 위해서는 부정적인 서술이나 이미지를 지적하지 말고 감춰야 한다고 말하는데 이는 가장 민족적인 형태의 국가주의적 주장”이라면서 “그들이 말하는 ‘대한민국 국민’의 시각이란 것도 자세히 보면 이승만과 박정희의 성과를 부각하자는 통치자적 시각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그는 “진짜 자학사관에서 벗어나 자랑스러운 우리 역사를 드러내고 싶다면 아시아 어느 나라에서도 성취하지 못했던 민주화운동을 강조하자고 해야 맞다”고 덧붙였다. 

보수진영의 전략가로 꼽히는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은 “이제 보수와 진보의 이분법으로 가르는 시대는 지나갔다”면서 “민주주의란 다양성을 전제로 하는 것인데, 자유민주주의를 주장하는 사람이 다른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비민주적이자 자기모순”이라고 지적했다. 윤 전 장관은 “헌법에는 자유민주주의와 함께 사민주의적인 요소도 있다. 이를 배제하기 위해 자유민주주의를 주장한다면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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