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야식 일기.</div> <div><br /></div> <div>아까는 늦잠을 자는 바람에 저녁을 놓히고, 결국 과자 한 통으로 배고픔을 달랬다.</div> <div><br /></div> <div>그 탓인지 밤이 깊어갈 수록 배가 고파와 견딜 수 가 없어 찬장이나 냉장고를 뒤져 보았지만, 야심한 새벽에 간단하게 먹을 만한 것을 찾을 수 없었다.</div> <div><br /></div> <div>라면은 몇 개 있었지만, 최근 며칠간 야식으로 주구장창 먹어온 탓에 차라리 굶으면 굶었지 라면을 끓이기는 싫었다.</div> <div><br /></div> <div>결국 편의점에 가기로 하고 떡진 머리를 감추기 위해 모자를 눌러 쓰고 깃이 높은 패딩을 입었다.</div> <div><br /></div> <div>집 근처에는 새벽 영업을 하지 않는 슈퍼나 할인마트를 제외하고 편의점이 두 개가 있는데, 한군데는 편의점이면서 열시면 문을 닫고 나머지 한군데는 야간 알바가 구해지지 않아 종종 새벽장사를 하지 않았다.</div> <div><br /></div> <div>이외에는 우리집을 중심으로 서로 대칭이 되고 각각 왕복 1km가 조금 안되는 위치에, 그러니까 서로 1km 떨어진, 편의점이 하나 씩 있었다.</div> <div><br /></div> <div>배가 고파 편의점을 가는 것이지만 추운 새벽에 그 거리를 걷는 것은 도저히 내키지가 않아서 야간알바가 잘 구해지지 않는 그 편의점에 확률을 걸어보기로 하고 문을 나섰다.</div> <div><br /></div> <div>계단을 걸어 내려가던 중, 문득 집근처에 24시간 영업을 하는 음식집이 있던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div> <div><br /></div> <div>어차피 야식이라면 편의점에서 도시락 같은 걸 사먹느니 24시간 분식집에서 김밥 몇 줄 사 먹는 것이 나을 것이다.</div> <div><br /></div> <div>차가운 바람이 뺨을 때리자 퍼뜩 떠오르는 것이 뜨끈한 돼지국밥이었다. </div> <div><br /></div> <div>돼지 육수는 하루 내내 끓이기 때문인지 유달리도 돼지국밥 집은 24시간 영업을 하는 곳이 잦았다.</div> <div><br /></div> <div>이 동네에 돼지 국밥 집은 두 곳으로, 두군데 모두 확실히 24시간 영업을 했다.</div> <div><br /></div> <div>돼지국밥을 취급하는 가게는 네군데 정도 되었지만 두군데는 기사식당으로 백반을 주 메뉴로 하는 터라 기대가 되지 않았다.</div> <div><br /></div> <div>결국 가 볼 만한 돼지국밥집은 두군 데로, 한 곳은 최근 몇년 들어 부산 곳곳에 생기기 시작한 프랜차이즈이고 나머지 한 곳은 프랜차이즈가 아닌 일반 식당이었다.</div> <div><br /></div> <div>도보 한가운데서 잠깐 어디로 갈까 고민을 해 보았지만, 발걸음은 어느새 프랜차이즈가 아닌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div> <div><br /></div> <div>집에서 더 가까운 것도 있었지만 이전에 친구와 함께 밤새 놀다가 헤어지기 전에 잠깐 끼니를 하러 갔던 기억이 있어서이다.</div> <div><br /></div> <div>당시에는 꽤나 취한 상태라 정확히 어땠는지는 기억나지 않았지만, 흐릿한 기억으로는 이곳의 돼지국밥 맛이 썩 나쁘지는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div> <div><br /></div> <div>멀지 않은 거리었기에 금세 가게 앞에 당도했다.</div> <div><br /></div> <div>영세 식당 치고는 규모가 꽤 되어 아마 200석 가까이 되지 않을까 싶은 공간에 드문드문 앉아있는 사람들이 보였다.</div> <div><br /></div> <div>따뜻한 것을 좋아하는 나는 석유 난로 옆 탁자에 앉으며 '내장 하나 주세요.'를 외쳤다.</div> <div><br /></div> <div>석유 난로를 사이에 두고 건너편에는 아저씨 한분이서 옆에 소주 한병을 두고 새벽부터 반주를 드시고 계셨다.</div> <div><br /></div> <div>돼지국밥에 소주라‥‥, 확실히 속을 뜨뜻하게 데우기에도 좋고 새벽 해장술로도 좋겠지.</div> <div><br /></div> <div>그 생각에 나도 소주 한병을 시킬까 했지만 야식을 먹고 돌아가서 할 일이 있다는 것이 생각나 그만두었다.</div> <div><br /></div> <div>세 무리 정도가 더 들어오고 나서야 내가 시킨 내장 국밥이 나왔다.</div> <div><br /></div> <div>일반적인 돼지 국밥이 돼지 수육을 고명으로 넣는 데 반해 내장 국밥은 순대를 시키면 으레 함께 주는 돼지 내장들을 고명으로 넣어 주는데, 이 내장의 쫄깃한 맛이 좋아 돼지 국밥집에 가면 종종 내장 국밥을 시키게 된다.</div> <div><br /></div> <div>하지만 조금 이상한 것이 숟가락이 국밥 그릇에 넣어진 채로 나왔다.</div> <div><br /></div> <div>궁금증에 숟가락을 들어보니 다대기가 있었다.</div> <div><br /></div> <div>탁자에 올려진 수저통에 젓가락만 가득한 것을 보니 이 가게는 다데기를 푼 수저를 통채로 국밥 그릇에 담아 주는 모양이다.</div> <div><br /></div> <div>수저에 묻어 올라온 다대기를 보니 붉은 색이 연하고 누르스름한 빛깔이 도는 것이 이 된장을 주 재료로 쓰고 거기에 곱게 간 고춧가루로 매운 맛을 더한 것 같았다.</div> <div><br /></div> <div>또 깨도 많이 들어간 것이 일반적인 다대기와 달라 아무래도 이 다대기가 이 가게의 비법 중 하나일 것이라고 생각 되었다.</div> <div><br /></div> <div>곧이어 나는 다대기를 국물에 풀고 정구지¹ 무침을 듬뿍 넣은 뒤 멸치젓갈로 입맛에 맞게 간을 보았다.</div> <div><br /></div> <div>간을 보며 맛본 국물은 기대대로 다대기의 특성이 잘 묻어나와 상당히 구수했다.</div> <div><br /></div> <div>돼지 사골은 누린내가 심한 편이라 대다수의 돼지 국밥집들이 매운 향이 강한 다대기를 사용해 누린내를 잡는데 반해 된장과 깨를 많이 쓴 덕에 다른 집에서 느끼기 힘든 독창적인 맛이 났다.</div> <div><br /></div> <div>국물 또한 적당히 불투명하고 감칠맛이 도는 것이 새 사골을 사용하여 기름을 수차례 건져내어 맑게 우려낸 국물을 2차로 오래된 사골을 사용하여 다시 우려낸 것으로 보였다.</div> <div><br /></div> <div>돼지 육수란 새 사골로 우려낼 경우 국물이 연하기 때문에 돼지로 끓인 설렁탕 처럼 되기 쉽상이라 새 사골에서 우려낸 육수에 여러번 육수를 우린 사골을 넣어 재차 육수를 우려내야만 제대로된 진한 돼지 육수를 만들 수 있다.</div> <div><br /></div> <div>대개 돼지 육수를 사용하는 많은 음식집들이 맛집이 되냐 되지 못하냐가 이 돼지 육수를 우려내는 것에서 차이가 날 때가 많다.</div> <div><br /></div> <div>개인적으로는 더 진한 것을 좋아하지만, 더 진한 것은 돼지 비린내 또한 진해지기에 된장과 깨를 사용해 잡내를 잡기에는 이 정도가 적당해 보였다.</div> <div><br /></div> <div>간단히 야식을 먹으러 나왔는데 뜻하지 않게 좋은 맛을 보게 되었다.</div> <div><br /></div> <div>횡재다.</div> <div><br /></div> <div>이전에는 술에 취해 제대로 느끼지 못했던 맛을 지금 다시 느껴보니 횡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div> <div><br /></div> <div>지금까지 먹어왔던 돼지국밥들과 비교하면, 지금은 없어진 집들을 제외하고, 다섯 손가락 안에 들 것 같았다.</div> <div><br /></div> <div>토렴²을 해 주지 않는 것이 상당히 아쉬웠지만, 그것을 제외하더라도 꽤나 만족스러웠다.</div> <div><br /></div> <div>그 맛을 보자 아무래도 빈 속인데다 더 배가 고파져 급하게 두덩이나 나온 소면과 밥을 국밥에 넣었다.</div> <div><br /></div> <div>그렇게 몇 숟갈을 퍼 먹고 나서야 밑반찬에 눈이 갔다.</div> <div><br /></div> <div>국밥에 넣을 정구지 무침과 굵게 썬 무로 담근 깍두기와 새로 무친 김치, 마늘과 양파와 풋고추와 이를 찍어 먹을 양념된장으로 으레 돼지 국밥집들에서 내놓는 것들이었다.</div> <div><br /></div> <div>여기서 중요한 것은 깍두기와 김치로 이 또한 집집 마다 다 특색이 다른데, 깍두기 대신 시원 달달한 석박지와 적당히 익어 매콤 새콤한 김치를 내놓는 집이 있는가 하면 신 맛이 날 정도로 푹 익힌 깍두기와 매번 새로 담근 김치를 내놓는 집도 있다.</div> <div><br /></div> <div>내가 아는 한 국밥집은 아주 진한 육수를 쓰는 대신 새콤한 김치와 시원한 석박지로 느끼한 맛을 반감시키는 식으로, 김치 두가지 만으로 국밥의 맛을 보완했다.</div> <div><br /></div> <div>이 집의 깍두기는 엄지 한마디 정도 크기로 깍두기 치고는 큼직하게 썬 무를 사용했고 달달한 편이면서도 적당히 익어 새콤한 맛이 났다.</div> <div><br /></div> <div>김치는 요즘 식당에서는 보기 힘든 경남식 김치로, 젖갈과 마늘을 많이 넣은 양념에다가 매일 새로 김치를 담그는 듯 입에 넣자 마자 퍼지는 내음과 아삭아삭 씹히는 맛이 좋았다.</div> <div><br /></div> <div>구수한 것을 주로 삼다보니 돼지 육수가 사뭇 더 느끼하게 느껴질 질 수 있는 국물에 새콤한 깍두기가 나온것은 만족스러웠지만, 김치는 수육과 더 궁합이 좋을 것 같아 아쉬웠다.</div> <div><br /></div> <div>정신 없이 먹다보니 정신을 차렸을 때는 반 이상을 먹은 뒤였다.</div> <div><br /></div> <div>역시 소주를 한병 시킬 걸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늦었다고 생각되어 풋고추를 씹으며 마음을 달랬다.</div> <div><br /></div> <div>석유난로 건너편에 계신 아저씨는 기분이 좋으신지 종업원 아주머니에게 자꾸만 이뻐지는 것 같다며 농을 걸었다.</div> <div><br /></div> <div>나는 물을 마시며 잠시 그 모습을 보다가 다시 국밥으로 주목을 돌렸다.</div> <div><br /></div> <div>하지만 이미 상당히 많이 먹었던 터라 금세 내용물이 사라져 갔고, 다음엔 조금만 더 여유 있게 와서 반주를 하자는 말로 스스로를 달랬다.</div> <div><br /></div> <div>이윽고 마지막 한 수저를 푼 뒤 물을 마셔 입가심을 한뒤 일어날 때가 왔다.</div> <div><br /></div> <div>우연찮게도 석유난로 맞은편 아저씨도 자리에서 일어났다.</div> <div><br /></div> <div>난 물을 한전 더 마시며 그 아저씨가 계산을 하고 나가는 것을 본 뒤에 자리에서 일어났다.</div> <div><br /></div> <div>계산을 하고 나오자 주차장의 세단 한대에 시동이 걸려 놀라 바라보자 운적석에 그 아저씨가 앉아있었다.</div> <div><br /></div> <div></div> <div> <hr /></div> <div>1. 정구지: 부추의 사투리</div> <div>2. 토렴: 밥을 끓는 국물에 넣었다 건지기를 반복하여 밥알 마다 국물이 잘 배어들게하고 국물과 밥의 온도를 같게 만들어 국물과 밥의 일체감을 늘려주는 것. 국물에 밥이 말려진 상태로 나온다.</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