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학기에 졸업했는데

요즘 베오베에 자주 올라오는 조별 과제의 폐해와 그 해결 방법에 대한 글을 보고

저도 개인적으로 지난 학기에 지옥같은 조별과제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경험을 공유하고 싶어서 글씁니당 ㅋㅋ

편하게 음슴체를 쓸게요 !! ㅋㅋ

지난학기에 시간표가 완전 꼬여서 조별 과제와 개인 과제 엄청 빡시다는 과전공과목을 어쩔 수 없이 듣게됨.

정원은 50명 정도였는데 같은 과 고학번 에이스들도 많고, 그저 졸업 학점 채우려는 나이많은 복학생들도 많았음.

첫 시간 오리엔테이션부터 젊은 강사는 우리가 한 학기동안 읽어야 할 십수권의 책 소개와 한주에 하나씩 있는 소논문 비슷한 개별과제와

중간고사는 우리가 직접 그 십수권의 책을 읽고 스스로 문제를 만들어 답을 적게 하겠으며, 시험은 오후 5시부터 자정까지 칠 수 있으며

작년 최장시간 시험친 학우는 3시간동안 치고 나갔다는 후덜덜한 얘기를 하며 패기를 보여줌.

게다가 기말고사는 조별 과제로 대체하는데 대략 그 주제를 보아하니 입이 떡 벌어졌음.

암튼 시간표 잘못 짠 죄로 이번 학기 죽었구나 싶었음

뭐 이 과목에 대한 얘기는 여기까지 하고, 조별 과제에 대한 얘기를 하자면

큰 주제를 대략 6개 정도 줌. 각자 하고 싶은 주제를 선택하는데, 희한하게 인원수는 대충 비슷하게 나뉘어졌음

주제별로 조원이 만들어짐. 우리조는 남녀 성비도 비슷하고 타과 학생도 많았음. 인원은 7명.

근데 과제 준비와 발표 방식이 좀 달랐음.

큰 주제를 어떤 식으로 풀어갈지 정하고 목차를 정하고, 각자 분담을 해서 나중에 합치고 ppt만드는 것이 보통의 조별 과제임.

우리도 큰 틀은 벗어나지 않았음. 목차 정하고 각자 할 일을 맡는 것까진 똑같았는데

각자 맡은 부분에 대해서 각자 발표를 시킴. 한 사람당 7-10분 분량 정도.

조장쯤 되는 사람이 앞에 소개하고 끝에 마무리하긴 하지만, 모두 자기가 맡은건 자기가 ppt를 만들고 발표하게함.

이 ppt는 자기가 발표할 ppt기 때문에 깔끔하게 작성하든 내용을 줄줄 길게 써놨든 그건 본인 책임이었음.

대신 조별 과제이기 때문에 디자인이나 통일성 등등은 조원이 알아서 정해서 하게 했음.

이럴 거면 왜 조별과제를 시키지? 개인과제를 내지 그냥. 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자기가 맡은 부분만 하는게 아니라 나중에 각자 과제를 한 후 그 주제에 대한 심도있는 고찰과 토론을 해야했는데

이 부분이 가장 비중이 컸음.

요약하자면 우리 조별 과제는 머리를 최대한 맞대고 이 주제에 대해 이런식으로 가닥을 잡고, 이런 목차를 구성해서

누가 어떤 내용을 발표할 건지 나누어 각자 조사, 발표를 준비했고, 그 과제에 대한 토론은 이런 식으로 진행되었으며

누가 어떤 내용의 의견을 냈고, 우리 조는 이 주제에 대해 이런 결론과 해결책을 내놓았다. 를 발표하는 날에 보여줘야 했음.

실제로 중간고사가 끝나고 조별로 발표를 했는데, 그게 끝이 아니었음.

발표가 끝난 후 교수님이 개개 조원들에게 다른 사람의 발표 내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까지 묻고

이런 부분의 내용은 조금 잘못된 것 같다. 이 부분은 참신한데, 좀 더 보충하라.

이 부분에 대한 내용은 발표자 개인의 생각인가? 조원들은 이 부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다음 주 까지 토론하고

그 결과를 제출하라. 는 식의 교수님 피드백을 들었음.

성적을 포기하려는 사람 아니고서야 도저히 무임승차할 수 없을 정도로 철저하게 묻고 따졌음.

그냥 조별로 발표시키고 형식적인 질문을 하는 차원이 아니었음.

게다가 조끼리 경쟁을 붙여서, 한 조가 발표를 하면 그 조가 아닌 다른 사람들 또한 그 주제에 대해서 생각하고 나름 조사를 해야 했으며

그래서 그 조의 발표가 끝난 후 심도 있는 질문과 토론을 이어가게 하고,

질문자에게 가산점을 부여했고, 발표하는 조는 질문자에게 다음 시간까지 결과물을 내야 했음.

가산점 때문에 발표 끝나고 다른 조원들의 질문 쇄도가 엄청났음.

근데 그 질문은 정말 똑부러지게 발표하고 내용이 알찬 사람에게는 잘 하지 않고

내용이 엉성하고 발표가 부실한 경우 더 공격(?)하기 쉬워서 비판적인 내용과 질문을 많이 했음.

그래서 대충 준비해서는 그런 질문 공세에 답변도 못하고, 부실한 답변율과 비판으로 점수가 상당히 낮게 나감.

흔한 조별 과제에서는 어떤 조원은 지식인 답변을 복붙하거나, 어디 출처도 없는데서 짜깁기하거나

심한 경우는 복붙조차 안하고, 그냥 자기가 찾은 사이트나 블로그, 카페 등의 링크 목록만 쫙 보내는 등의 일이 수두룩하지만

우리가 하는 조별 과제는 그 안에서 각자 맡은 부분을 자기가 발표를 해야했기 때문에 그런 폐해가 없었음

우리 조는 정말 성적을 포기한 30살 복학생조차 중간에 수강취소하고 나갈지언정 다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 하나 못 얹었음.

교수님과 다른 조원의 철저한 피드백에서 누가 열심히 했고, 누가 대충했고가 명확히 갈렸기 때문에

많이 공부할수록 유리해서 어마어마한 양의 논문과 책을 읽고, 학교 도서관에서는 도저히 구할 수 없는 책은

국회 도서관에 가서 찾을 정도의 열의를 보였음.

우리 조에 나와 동기인 애 한명은 정말 숟가락 잘 얹기로 유명하고 뺀질뺀질한 애였는데

자기 부분도 그렇게 대충하고 남한테 떠넘기다가 쏟아지는 질문에 말 한마디 못했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교수들이 진짜 조별과제를 낼 것 같으면, 자기들 편하자고 대충 주제 던져놓고 애들 성격 망치는 짓 하지 말고

개인 과제로 할 수 없는, 여러명이 함께 머리 맞대고 토론하고 생각하고 그 속에서 배울 수 있는 조별 과제를 냈으면 좋겠다는 거임.

요즘은 학생도 날로 먹는 애들 많지만, 교수들도 만만찮은 것 같음.

여담으로 중간고사칠때 우리 클래스 시험 시간 기록은 최장 6시간이었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도 4시간 치고 나왔음.

아, 시험 문제는 백지임 ㅋㅋㅋㅋㅋㅋㅋ 자기가 문제내고 자기가 답해야 하는 시험 ㅋㅋㅋㅋㅋ

기본적으로 나눠주는 답안지가 A4용지 5장 ㅋㅋㅋㅋ 근데 모자랄 거라고 빈 A4용지 산처럼 쌓아놓고 가져가라고 함.

거의 3,4과목만한 이 한과목 때문에, 한 학기가 힘들었지만 대학 4년 다니는 동안 이 수업 만큼 많인 배우고 책을 많이 읽고

내 교양과 상식 수준이 높이 올라간 과목이 없었던 것 같음. A+을 맞았을 때 이렇게 희열을 느끼는 과목은 처음이었음.

근데 어떻게 마무리 해야 하지?

음..

여러분, 모기 조심하세요

저 벌써 두방 물림. 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