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 align="justify" class="바탕글"><span style="font-size:12pt;font-weight:bold;">감자</span></div> <div align="justify"> </div> <div align="justify" class="바탕글"></div> <div align="justify"> </div> <div align="justify" class="바탕글"></div> <div align="justify"> </div> <div align="justify" class="바탕글">햇살이 따갑다. 불에 달군 바늘이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는 것 같다. </div> <div align="justify" class="바탕글">이 염천하에 그냥 서있는 것만으로도 수명이 줄어들 것이다. 하지만 04321번은 천천히 호미질을 하고 감자밭의 잡초를 뽑았다. </div> <div align="justify" class="바탕글">04321번의 머리카락 끝은 노랗게 변색되어 있다. 특별히 멋을 부리려는 것이 아니다. 비바람과 햇볕에 오랫동안 방치되어 탈색된 것이다. </div> <div align="justify" class="바탕글">04321번은 여전한 속도로 검은 흙 속에 호미를 박았다. 15년 전 처음 밭일을 시작한 이후 그 속도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div> <div align="justify" class="바탕글">15년 동안 먹지도 잠들지도 않고, 찰나의 순간도 쉴 틈 없이 호미질을 했지만 04321번의 호미질 속도는 여전히 투박했다. </div> <div align="justify" class="바탕글">그러나 일반인들에 비해 아주 조금 속도는 느릴지언정, 04321번은 땅속의 감자가 다치지 않도록, 정확하게 필요한 부분에 땅을 파헤치고 잡초를 뽑았다.</div> <div align="justify"> </div> <div align="justify"> </div> <div align="justify" class="바탕글">04321번이 파헤친 흙속에서 땅강아지 한 마리가 딸려 나왔다. 뜨거운 햇볕에 노출된 땅강아지의 껍질은 순식간에 습기와 윤기를 잃고 말라가기 시작했다. 익숙지 않은 열기에 몸을 뒤트는 땅강아지의 생명도 함께 말라갔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04321번의 시선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삶과 죽음은 04321번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 04321번은 이미 죽었기 때문이다.</div> <div align="justify" class="바탕글"> </div> <div align="justify"> </div> <div align="justify" class="바탕글"></div> <div align="justify"> </div> <div align="justify" class="바탕글" style="text-align:center;">※</div> <div align="justify"> </div> <div align="justify" class="바탕글"> </div> <div align="justify" class="바탕글"> </div> <div align="justify"> </div> <div align="justify" class="바탕글">“자, 신참 받아라.”</div> <div align="justify"> </div> <div align="justify" class="바탕글"> </div> <div align="justify" class="바탕글"> </div> <div align="justify"> </div> <div align="justify" class="바탕글">운송업자의 트럭 컨테이너에서 새로운 일꾼들이 느릿느릿 걸어 나왔다. 농장 감독관들은 눈을 빛내며 새 일꾼들을 살폈다.</div> <div align="justify" class="바탕글"> 이번에는 젊은 여자 일꾼이 섞여있기를 바라는 것이다.</div> <div align="justify"> </div> <div align="justify"> </div> <div align="justify" class="바탕글">04321번처럼 오래전에 일꾼으로 만들어지고, 긴 시간동안 야외에서 일하고 있던 일꾼들의 몰골은 처참하기 그지없다. </div> <div align="justify" class="바탕글">주름투성이 피부에서는 벗겨진 각질이 먼지처럼 떨어진다. 얼굴에서 가장 먼저 깎여 나가는 부분은 귀와 코와 입술이다. </div> <div align="justify" class="바탕글">04321번의 얼굴은 이미 해골과 별다른 차이가 없다. </div> <div align="justify" class="바탕글">하지만 제작(?)된지 얼만 안 된 새로운 일꾼들의 파리한 얼굴에는, 희미하기는 하지만 아직 미약한 혈색이 남아있다.</div> <div align="justify" class="바탕글"> 두어 달 땡볕아래에서 밭일을 하다보면 점차 해골같은 얼굴과 주름투성이의 몸뚱이로 변해 갈 것이다. </div> <div align="justify" class="바탕글">그리고 그 몸뚱이는 최소 20년을 쉬지 않고 움직이며 일한다.</div> <div align="justify"> </div> <div align="justify" class="바탕글"> </div> <div align="justify" class="바탕글"> </div> <div align="justify"> </div> <div align="justify" class="바탕글">“얏호!”</div> <div align="justify"> </div> <div align="justify" class="바탕글"></div> <div align="justify"> </div> <div align="justify"> </div> <div align="justify" class="바탕글">감독관 중 막내 녀석이 작은 환호를 지른다. 16개의 새 일꾼 중 젊은 여자가 섞여있는 것이다.</div> <div align="justify" class="바탕글"> 다른 고참 감독관들도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음흉한 눈빛을 교환했다.</div> <div align="justify"> </div> <div align="justify"> </div> <div align="justify" class="바탕글">새빨간 원피스를 입고 있는 여성일꾼은 흑인이었다. 덕분에 그 일꾼의 얼굴에는 일꾼 특유의 창백함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div> <div align="justify" class="바탕글">노랗게 번들거리는 눈이 아니라면 평범한 사람이라고 착각할 지경이다.</div> <div align="justify"> </div> <div align="justify" class="바탕글"></div> <div align="justify"> </div> <div align="justify"> </div> <div align="justify" class="바탕글" style="text-align:center;">※</div> <div align="justify"> </div> <div align="justify" class="바탕글"> </div> <div align="justify" class="바탕글"> </div> <div align="justify"> </div> <div align="justify" class="바탕글">화석연료가 바닥났다. 상당수의 사람들이 지하자원의 고갈을 이전부터 예상하고 있었다.</div> <div align="justify" class="바탕글"> 하지만 그 끝에 낭떠러지가 입을 벌린 내리막길을 향해, 있는 힘을 다해 달려가는 문명의 질주는 막을 수 없었다.</div> <div align="justify" class="바탕글"> 물질문명의 안락함을 버릴 수 없던 인류는 내리막길의 가속도에 브레이크를 걸지 못했다. 그리고 눈을 빤히 뜬 채 낭떠러지로 떨어졌다.</div> <div align="justify" class="바탕글"> </div> <div align="justify"> </div> <div align="justify" class="바탕글">번성하던 때에 비하면 한줌조차 되지 않는 남은 에너지를 위해 전쟁이 벌어졌다. </div> <div align="justify" class="바탕글">그동안 쌓아올린 문명의 총아는 낭떠러지로 떨어진 인류의 머리통을 다시 후려 갈겼다. </div> <div align="justify" class="바탕글">수십억을 구가하던 인류의 수가 천만 단위로 떨어지는 데 고작 5년도 걸리지 않았다. </div> <div align="justify" class="바탕글">그리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보다 냉정하고, 잔인하고, 이기적이고, 잔혹한 이성으로 인류가 더 오래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었다.</div> <div align="justify"> </div> <div align="justify" class="바탕글"></div> <div align="justify"> </div> <div align="justify"> </div> <div align="justify" class="바탕글" style="text-align:center;">※</div> <div align="justify"> </div> <div align="justify" class="바탕글"> </div> <div align="justify" class="바탕글"> </div> <div align="justify"> </div> <div align="justify" class="바탕글">일꾼 운송업자의 트럭이 먼지를 날리며 돌아갔다. 저 트럭의 엔진은 대농장에서 재배된 감자로 움직인다. </div> <div align="justify" class="바탕글">감자나 고구마, 옥수수를 발효시켜 뽑아낸 에탄올의 사용효율이 석유의 60%에 다다를 정도로 발전했을 때 수많은 대농장들이 생겼고, 농장주들은 이전의 석유재벌들과 비슷한 부를 축적했다.</div> <div align="justify" class="바탕글"> </div> <div align="justify"> </div> <div align="justify" class="바탕글">60억의 인구가 지구 위를 바글거리고 있을 때라면 달 표면 전부를 감자밭으로 만들었다 해도 에너지 부족을 해결하지는 못했을 것이다.</div> <div align="justify" class="바탕글"> 하지만 격감한 숫자의 인류에게 철저하게 통제되는 전깃불과 대중교통을 제공하는 정도라면 지금의 것으로도 그럭저럭 해결이 가능했다.</div> <div align="justify"> </div> <div align="justify" class="바탕글"> </div> <div align="justify" class="바탕글"> </div> <div align="justify"> </div> <div align="justify" class="바탕글">인간은 적응한다. 풍요로웠던 시절을 생생히 기억하는 노인들이 상당수 남아있는 시기이지만, 그 풍요는 꼰대들의 향수로 치부 될 뿐 대다수의 사람들은 현실에 적응하고 불편함에 자신을 낮추며 살아간다.</div> <div align="justify"> </div> <div align="justify"> </div> <div align="justify" class="바탕글">하지만 기득권자들은 적응하지 못한다. 그들은 불편함에 몸을 낮추기 보다는 그 불편함을 죽여 버린다. </div> <div align="justify" class="바탕글">거대 장원의 농장주들을 중심으로 새롭게 재편된 세계에는 아직 공포가 가득했다. 부와 권력을 가진 자들은 그 공포가 싫었다. </div> <div align="justify" class="바탕글">그래서 생존과 이득을 위해 너무나도 쉽게 인간성과 인권이 무시되는 이 시대와 어울리도록, 그들은 가장 몰지각한 방법으로 자신들의 공포를 죽여 나갔다.</div> <div align="justify"> </div> <div align="justify"> </div> <div align="justify" class="바탕글"></div> <div align="justify"> </div> <div align="justify" class="바탕글">인간사냥.</div> <div align="justify" class="바탕글"> </div> <div align="justify"> </div> <div align="justify" class="바탕글">특정한 거주구역에 편입되지 못하고 문명의 외각에서 자급자족하며 살아가던 인류의 부스러기들을 사냥하기 시작했다. </div> <div align="justify" class="바탕글">고용된 사냥꾼들에게는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을 것이다. 사지만 온전히 달려 있다면 생사불문이었으니까.</div> <div align="justify" class="바탕글"> </div> <div align="justify"> </div> <div align="justify" class="바탕글">그렇게 잡아 모은 사람의 시체(혹은 아직 살아있는 사람에게) 특정한 약물이 주입되면 그 사람은 일꾼으로 변한다. </div> <div align="justify" class="바탕글">그리고 20여 년 동안 먹지도, 마시지도, 잠시 쉬지도 않고, 끝없이 펼쳐진 밭에서 지평선을 넘나들며 일한다. </div> <div align="justify" class="바탕글">전세계에서 움직이고 있는 일꾼의 숫자는 물경 100만개에 육박한다. 그들은 100만 ‘명’이 아니다. 그들은 100만 ‘개’다.</div> <div align="justify"> </div> <div align="justify"> </div> <div align="justify" class="바탕글"></div> <div align="justify"> </div> <div align="justify" class="바탕글" style="text-align:center;">※</div> <div align="justify"> </div> <div align="justify"> </div> <div align="justify" class="바탕글"></div> <div align="justify"> </div> <div align="justify" class="바탕글">“자, 너는 24321번.”</div> <div align="justify"> </div> <div align="justify"> </div> <div align="justify" class="바탕글"></div> <div align="justify"> </div> <div align="justify" class="바탕글">흑인여자 일꾼의 이마 번호가 새겨졌다. 이제 ‘퀴니’였던 그녀의 본명은 영원히 사라졌다. </div> <div align="justify" class="바탕글">24321번의 노란 눈은 아무 의미 없이 주변 감독관 들을 응시했고, 푸석해지기 시작한 뇌세포들은 감동 없는 추억을 희미하게 되살리고 있었다.</div> <div align="justify" class="바탕글"> 27년분의 기억은 당연히 남아있지 않다. 최근 몇 주간의 기억만이 끊어진 필름처럼 펄럭거릴 뿐이다.</div> <div align="justify"> </div> <div align="justify" class="바탕글"> </div> <div align="justify" class="바탕글"> </div> <div align="justify"> </div> <div align="justify" class="바탕글">“벗겨놓고 보니까 훨씬 쌔끈한데요. 나 흑마는 처음인데, 오늘은 내가 제일 먼저 하게 해줘요.”</div> <div align="justify"> </div> <div align="justify"> </div> <div align="justify" class="바탕글"></div> <div align="justify"> </div> <div align="justify" class="바탕글">그래도 사냥꾼에게 뒷덜미를 잡혔을 때의 기억은 상당히 뚜렷하게 남아있는 편이다. 나름 희귀한 경험이었으니까.</div> <div align="justify"> </div> <div align="justify"> </div> <div align="justify" class="바탕글"></div> <div align="justify"> </div> <div align="justify" class="바탕글">“이 새끼야 바셀린 가져가. 일꾼 거기는 바짝 말라있어서 그냥 박았다가는 부러진다.”</div> <div align="justify"> </div> <div align="justify" class="바탕글"></div> <div align="justify"> </div> <div align="justify"> </div> <div align="justify" class="바탕글">아마도 생전의 24321번과 같은 또래로 여겨지는 감독관 하나가 24321번의 몸 위에서 씨근덕거리고 있을 때 24321번은 또 다른 희미한 기억하나가 떠올랐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사냥꾼에게 붙잡히고 난 다음, 지금과 비슷한 일을 이미 겪었던 모양이다.</div> <div align="justify" class="바탕글"> 왜 그랬을까? 그 당시에는 같은 일을 당하면서 소리도 지르고 눈물도 흘렸던 모양이다. 24321번은 그 당시의 기억과 지금의 상황을 번갈아 살펴보았다. 특별한 변화는 없다. 지금 24321번은 객관적일 뿐이다.</div> <div align="justify" class="바탕글"> </div> <div align="justify"> </div> <div align="justify" class="바탕글"></div> <div align="justify"> </div> <div align="justify" class="바탕글">“어이! 김 씨! 자네는 안하나? 지금이 가장 맛있을 때야. 한 달만 지나도 쭈글쭈글하고 뻣뻣해져서 할 맛이 안 나잖아. 할 수 있을 때 해둬.”</div> <div align="justify"> </div> <div align="justify"> </div> <div align="justify" class="바탕글"></div> <div align="justify"> </div> <div align="justify" class="바탕글">13명의 사냥꾼을 상대해야 했던 그날에 추억에 비해, 5명의 감독관을 상대하는 일은 훨씬 일찍 끝났다.</div> <div align="justify" class="바탕글"> 이 농장의 일꾼은 24,321개 이다. 24,321개의 일꾼을 감시하는 일을 5명의 감독관이 수행하고 있다. </div> <div align="justify" class="바탕글">고작 5명이라면 24,321마리의 병아리를 관리하는 일도 불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이 일꾼들에게는 특별한 관리가 필요 없다.</div> <div align="justify" class="바탕글"> 해야 할 일을 지시하고 농장에 풀어놓으면, 일꾼은 묵묵히 일한다. 달아나지도 않는다. 먹지도 않는다. 잠을 자지도 않고, 불평하지도 않는다. </div> <div align="justify" class="바탕글">그저 수명이 다할 때까지 지시받은 일을 수행할 뿐이다.</div> <div align="justify"> </div> <div align="justify" class="바탕글"></div> <div align="justify"> </div> <div align="justify"> </div> <div align="justify" class="바탕글">“아이고, 이제 얘도 슬슬 맛이 가네. 야, 24321번. 너도 다음 주 부터는 쟤들처럼 밭에 나가야겠다.”</div> <div align="justify"> </div> <div align="justify"> </div> <div align="justify" class="바탕글"></div> <div align="justify"> </div> <div align="justify" class="바탕글">2주가 지났다. 24321번과 같이 농장에 들어온 일꾼들은 바로 그날부터 커다란 바구니를 등에 매고 감자를 수확하고 있다. </div> <div align="justify" class="바탕글">하지만 24321번은 그동안 감독관들의 감시탑을 전전하고 다니는 것이 일과의 전부였다.</div> <div align="justify" class="바탕글"> </div> <div align="justify"> </div> <div align="justify" class="바탕글">24321번은 감독관이 가리키는 방향을 무의식적으로 바라보았다. </div> <div align="justify" class="바탕글">한 낮 감자밭에서 뿜어 나오는 열기는 누가 밭에 불을 지른 것은 아닌가, 착각할 지경이다. </div> <div align="justify" class="바탕글">그러한 밭 여기저기를 점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꼬물거리는 새카만 점들. 1차원의 선조차 될 수 없는 그 점들은 스스로를 위한 그 어떤 의미도 지니지 못하며 꼬물거렸다.</div> <div align="justify" class="바탕글"> </div> <div align="justify"> </div> <div align="justify" class="바탕글">농장에 도착하고 2주가 지난 지금 24321번의 피부는 수분을 잃으며 눈에 띄게 말라가고 있었다. </div> <div align="justify" class="바탕글">저 점들과 같이 걸어 다니는 해골이 되어 꼬물거릴 날이 멀지 않았다. </div> <div align="justify" class="바탕글">사실 상관없다. 감시탑 한 구석에서 바셀린 냄새를 맡으면 꼬물거리는 점과 밭에서 꼬물거리는 점의 차이점을 24321번은 알지 못한다.</div> <div align="justify"> </div> <div align="justify" class="바탕글"></div> <div align="justify"> </div> <div align="justify"> </div> <div align="justify" class="바탕글">“거참, 24321번 요게 참 좋았는데. 다음에 이런 거 또 안 들어오나.”</div> <div align="justify"> </div> <div align="justify" class="바탕글"> </div> <div align="justify" class="바탕글"> </div> <div align="justify"> </div> <div align="justify" class="바탕글">밭으로 나온 지 한 달. 24321번은 감자를 캐고 있다. 김매기 작업을 하는 일꾼과는 달리 수확하는 일꾼에게는 호미가 지급되지 않는다. </div> <div align="justify" class="바탕글">수확할 감자를 다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수확하는 일꾼은 맨손으로 감자를 캔다. </div> <div align="justify" class="바탕글">비록 조금씩 비틀어져 가는 손가락이지만, 움직이는 열 개의 손가락은 그 어떤 기계보다 훌륭한 작업이 가능하다.</div> <div align="justify"> </div> <div align="justify"> </div> <div align="justify" class="바탕글">이제 24321번의 머릿속에는 사냥꾼과의 추억도, 바셀린이 끈적거린 기억도 모두 사라졌다. </div> <div align="justify" class="바탕글">24321번은 묵묵히 수확한 감자를 바구니에 넣는 일을 반복할 뿐이다.</div> <div align="justify"> </div> <div align="justify" class="바탕글"> </div> <div align="justify" class="바탕글"> </div> <div align="justify"> </div> <div align="justify" class="바탕글">“이봐, 마이클! 오늘 들어온 일꾼 중에도 쌔끈이가 있나봐. 한동안 즐겁겠어.”</div> <div align="justify"> </div> <div align="justify" class="바탕글"> </div> <div align="justify" class="바탕글"> </div> <div align="justify"> </div> <div align="justify" class="바탕글">24321번이 일꾼이 된지 4년이 흘렀다. 일꾼들에게 작업복 따위는 주어지지 않는다. </div> <div align="justify" class="바탕글">24321번은 바싹 마른 알몸을 드러내고 있었지만 그 몸을 모고 욕정을 느낄 짐승은 최소한 지구상에는 없다.</div> <div align="justify" class="바탕글"> 24321번의 머리카락은 거의 빠져 있다. 귀와 코도 거의 사라졌다. </div> <div align="justify" class="바탕글">팽팽하게 솟아있던 유방도 대부분 사라져서 육안으로는, 24321번이 원래 남성이었는지 여성이었는지 조자 구분할 수 없다. </div> <div align="justify" class="바탕글">말려 올라간 입술사이로 유난히 가지런하고, 여전히 새하얀 치아가 빛나고 있다. 24321번은 그 치아를 살며시 벌리며 감시탑을 바라보았다.</div> <div align="justify"> </div> <div align="justify"> </div> <div align="justify" class="바탕글">바셀린을 든 고참 감독관이 여자 일꾼 한 개를 가지고 자신의 감시탑으로 들어가는 중이었다. </div> <div align="justify" class="바탕글">금발에 하얀 피부를 가진 저 새 일꾼은 어떻게 살펴봐도 15살은 넘지 않은 듯 했다. 원래 하얀 피부가 일꾼으로 변하면서 더욱 핏기를 잃어 푸르스름하게 보이는 새 일꾼은 4년 전 24321번과 마찬가지로 무기력하게 감시탑으로 끌려 들어갔다. </div> <div align="justify" class="바탕글">그 광경을 바라보는 24321번은 여느 때와 똑같이 객관적이었다. 눈은 감시탑을 바라보고 있지만 강철 같은 손가락은 여전한 동작으로 흙속의 감자를 캐내고 있었다.</div> <div align="justify"> </div> <div align="justify"> </div> <div align="justify" class="바탕글"></div> <div align="justify"> </div> <div align="justify" class="바탕글">바셀린의 냄새가 느껴졌다. 그럴 리가 없다. 24321번과 감시탑과의 거리는 개가 아닌 이상 냄새를 맡을 수 있는 거리가 아니었다. </div> <div align="justify" class="바탕글">그 이전에 24321번이 감각을 느낄 능력은 이미 사라졌을 터이다. 언제나 객관적이던 24321번은 잠시 어리둥절했다. </div> <div align="justify" class="바탕글">다시 한 번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바셀린이 아닌 다른 냄새. 그 냄새에서 24321번은 뜻밖의 충동을 느끼고 몸을 일으켰다.</div> <div align="justify"> </div> <div align="justify" class="바탕글"> </div> <div align="justify" class="바탕글"> </div> <div align="justify"> </div> <div align="justify" class="바탕글">“백마에 영계라니, 이런 횡재가. 부디 너는 빨리 썩지 말고 오래오래 사용하게 해줘라. 응? 누구야? 문 닫고 꺼져!”</div> <div align="justify"> </div> <div align="justify" class="바탕글"> </div> <div align="justify" class="바탕글"> </div> <div align="justify"> </div> <div align="justify" class="바탕글">소리 없이 감시탑으로 걸어 들어온 24321번은, 일꾼의 다리사이에서 철벅거리는, 감독관의 허연 엉덩이를 보며 자신이 느낀 충동이 착각이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24321번은 원했다.</div> <div align="justify"> </div> <div align="justify"> </div> <div align="justify" class="바탕글"></div> <div align="justify"> </div> <div align="justify" class="바탕글">“이런 썅. 문 닫고 꺼지라고! 내 말 안 들려!”</div> <div align="justify"> </div> <div align="justify"> </div> <div align="justify" class="바탕글"></div> <div align="justify"> </div> <div align="justify" class="바탕글">24321번은 자신의 충동을 마음껏 표현했다.</div> <div align="justify"> </div> <div align="justify" class="바탕글"></div> <div align="justify"> </div> <div align="justify"> </div> <div align="justify" class="바탕글">“쿠에에에에엑!!!”</div> <div align="justify"> </div> <div align="justify" class="바탕글"></div> <div align="justify"> </div> <div align="justify"> </div> <div align="justify" class="바탕글">그리고 충동이 시키는 대로 감독관의 엉덩이에 있는 힘껏 이빨을 밖아 넣고 고기를 물어뜯었다.</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