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문과임에도 불구하고 논산 훈련소에서 4111 특기를 받아 의무병으로 복무하게 되었습니다...
나름 특수보직 중에서 꿀좀 빤다고 들어서 매우 좋아했음..
벗뜨 후반기 교육 마지막 날에 ARS로 자대 확인하니..
"귀하의 자대는 강.원.도. 고.성 소재의 2.3.XX 부대..."
아 어쩐지 눈물이 조금 나더군요..
아무튼 전방 부대 연대 의무대로 배치가 되어서 생활하게 되었음.
초기에 웬지 모르게 다른 중대 아저씨들이 날 명문대 의대생 or 약대생으로 착각해서
잘 부탁한다고 했을 때만해도 참 좋았는데
일병 중기에 국문과라는 것이 밝혀지고 이상하게도 아저씨들한테 개갈굼 당하며 나머지 군생활 한건 안자랑..
본부중대 아저씨 중에 뺑끼(하기싫은 일 피하려고 안간힘 쓰는 부류를 지칭)류 최고봉이 있었어요..
병원에서 환자마다 차트 쓰듯이 병사 하나하나 마다 의료 차트가 있었는데
다른 사람들은 전역할때까지 반페이지, 많으면 한장 정도 쓰는 것이 대부분..
그 아저씨는 장장 6장이나 되는 차트를 훈장처럼 주렁주렁 가지고 있었죠..
요즘 군대 의무대에서 세심한 진료 해주지 않아 문제가 되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이사람에게는 해당이 안되는 말인듯...
기침 가래가 심하다고 고집부려서 훈련열외하고 진료받고 약타먹은 다음날 취사장 옆에서 나랑
줄담배 핀건 뭐였을까요... 관절와(?)가 아프다고 딱 찝어서 죽겠다고 근육약 종합세트 처방받고
그 다음주 대대 축구 리그에서 관우가 낡은 창 쓰듯이 뛰어다니는 것을 보고 스포츠는 위대하다는 걸 꺠달음..
아무튼 그 사람이 계속 말도 안되는 병으로 찾아오니 군의느님도 짜증이 났음...
그동안은 설렁설렁 진료하다가 귀찮아서 더 이상 안되겠다 싶었는지
꼼꼼하게 아픈 곳을 모두 물어봄. 환자많이 밀렸는데도 약 30분간 상담 및 진료를 해줍디다.
군의느님이 오래 대기하느라 긴장한 저를 30분이 지나자 부르셨죠
"권상병"
"예"
"플라세~보 처방해줘~"
"예?"
"아 플라세~보 있자나~(경상도 말씨)"
직감적으로 저는 그 말이 어떤 것을 뜻하는 것인지 알아들었어요...
약제실로 가서 소화제와 타이레놀을 꺼내서 막자사발에 슥슥 갈았습니다......
그리고 그 야리꾸리한 색의 가루약을 잘 분배해서 3일치 아홉봉을 만들어서 담아주었어요...
군의느님왈 "앞으로 비슷한 증세가 보이면 권상병한테 이렇게 처방해 달라고 하면 된다 알긋제"
뺑끼아저씨, 간만에 관심받으니 화색이 돌아서 약 받고 돌아감...
그 뒤로 마주칠때마다 약이 잘듣는다고 신나함....
한 세 번 더 타먹었음... 역시 위약효과의 효능은 대단한 것 같았어요....
그 뺑끼아저씨는 항상 어디가 아프다고 할 때 정확한 부위만을 얘기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어쩐지
짬 안되는 후임들은 긴장했던 것 같음..
앞에서도 말했지만 예를 들어 팔이 아파요 라던가 팔꿈치가 아파요 이게 아니라
"관절와"에 통증이 있습니다. 라던가
"위 뒷면"이 아픕니다 라던가...
아무튼 진상이었음... 유리가 깨져 손끝이 살짝 진짜 0.2센치 정도 찢어졌을때에도
하루에 3번넘게 와서 드레싱 받고 메디폼을 둘러달라하고 붕대 칭칭칭해달라고 함...
나중에 알고보니 그걸 과장해서 자기 중대에서 파상풍 위험때문에 이렇게 했다며
각종 작업 열외했다고 들었어요... 좀 너무했음 ㅋ;
자기전에 끄적이고 갑니다.. 재미있는 얘기가 많은데 반응이 그럭저럭 좋으면 또 올릴게요...
저희 군의느님이 항문외과 전공이라 전 연대의 항문질환자들이 외진왔던 얘기들이 많은데 공개해도 될런지...
개념인의 언론장악
꿈이 아님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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