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기쁨과 시련

비록 레닌과의 만남이 그를 카프카스 지역의 중요한 볼세비키로 만들기는 했지만 아직 스탈린은 러시아 변방의 신인 공산당원이었다. (당시엔 '이바노비치'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아직 스탈린이라는 명칭은 사용하지 않았지만 혼란을 피하기 위해 앞으로는 모두 스탈린이라고 호칭한다)

 지금 생각하면 다소 이상할 순 있지만 스탈린은 아직은 미약한 카프카스 지역의 볼세비키 운동의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갖은 수단을 다 동원했다. 이중에는 당시 혼란한 러시아에서 가장 쉬운 돈벌이 중 하나인 강도질도 들어있었다. 사실 이 쉬운 돈벌이는 볼세비키뿐 아니라 러시아 사회민주 노동당 전체의 중요 수입원 가운데 하나였다. 

 1907년에는 볼세비키 무장 강도 조직이 25만불에 달하는 거금이든 현금 수송 마차를 강탈해 당시 핀란드의 쿠오칼라에 있던 레닌까지 기쁘게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자금모집'에 성공한 것 말고도 스탈린에게는 기뻐할 일이 하나 더 있었다. 이일이 있기전 그가 득남을 했던 것이다. 장남 야코프가 태어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1907년 런던에서 열린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의 5차 당 대회를 다녀온 후 11월 22일에 아내인 케테반(러시아어로 예카테리나, 스탈린의 어머니와 이름이 같다)이 사망한 것이다. 사인은 아마 결핵이나 혹은 티푸스로 생각된다

아무리 스탈린이 훗날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 잔인성을 보여준 인물이긴 하지만 아들을 출산한지 몇달 안되는 아내를 잃었을때 받은 비통함과 충격은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다. 일부에서는 이일이 그를 그토록 잔인하게 만든 이유중에 하나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스탈린의 학교 친구로 아내의 장례식에 참가한 이오시프 아레마시빌리에 의하면 스탈린은 그의 팔을 잡은 채 "아내가 돌 같은 내 마음을 부드럽게 해주었는데, 가버렸어. 사람들에게 느끼는 내 마지막 온정도 그녀와 함께 사라졌어!" 라고 말했다고 한다. 비록 스탈린에 대한 많은 기록들이 조작의 의혹을 받고 있긴 하지만 이러한 스탈린의 비통함은 충분히 있을 수 있다고 생각된다. 

 이제 스탈린에게는 노모와 어린 아들만이 남았다. 혁명가의 아내로써 케테반은 짧은 시기 동안이나마 충실히 그를 내조했다. 그러나 그녀가 죽고 젓먹이에 불과한 아들만 남자 스탈린은 혁명가 다운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스탈린은 어린 야코프를 외가인 스바니제 가문에 부탁한다. 경찰에 쫓기는 그가 아이까지 데리고 있을 순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5. 탈옥수 스탈린

 1910년 이후 러시아 당국의 탄압이 심해지면서, 당시 러시아사회민주노동당은 큰 어려움에 빠져있었다. 1907년, 한때 15만 명에 달하던 당원은 러시아 경찰의 탄압과 더불어 수천명으로 줄어들고 있었고, 짜르가 일부지만 자유주의 개혁을 허용함에 따라 10월당 같은 온건파가 득세하고 있었다. 

 유전지대로 유명한 바쿠로 무대를 옮겨 활동하고 있던 스탈린 역시 오흐라나 (러시아 제국 비밀 경찰) 의 손길을 피할 순 없었다. 사실 1906년 이후 바쿠에서 스탈린은 아제르바이잔인과 페르시아 인 무슬림들로 구성된 파르티잔 (Partisan 혹은 빨치산으로 발음) 을 이끌로 친 짜르 조직을 공격하고 있었다. 

  이 친 짜르 조직은 대표적인 반 혁명 단체인 Black Hundreds ( Чёрная сотня, черносотенцы / Chornaya sotnya, chernosotentsy ) 라는 단체로 스탈린은 이들에 대해 강도, 테러, 납치등 혁명 겸 테러 활동을 감행하고 있었다. 이는 물론 당국의 주의를 끌 만한 행동이었다.

1908년 가이오즈 니제라제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던 스탈린은 체포되었다. 이후 스탈린은 여러차례 투옥과 탈옥을 반복하는 생활을 하게 된다. 

 1909년, 스탈린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600킬로미터 떨어진 볼로그다로 이송된 후 다시 동쪽으로 같은 거리를 이동해 솔비체고드스크로 유배된다. 가장 가까운 철도는 240 km 떨어진 오지였다. 그러나 이전에 솜씨를 다시 발휘해 스탈린은 해를 넘기지 않고 다시 탈옥해 카프카스로 돌아간다. 

 1910년, 해가 바뀌자 이번에도 여지없이 스탈린은 다시 붙잡혀 같은 경로를 통해 본래의 유형지로 이송된다. 1911년 다시 볼로그다로 호송된 스탈린은 또다시 특기를 발휘해 탈출한다. 그러나 이번엔 3일만에 다시 잡혀 볼로그다로 다시 호송된다. 해가 바뀌자 탈옥 한길만을 걸어온 탈옥의 달인 스탈린은 이번에도 탈출에 성공한다. 

 이쯤되면 영화에 나오는 빠삐용이나 마이클 스코필드 (미드 '프리즌 브레이크'의 주인공), 앤디 두프레인 (영화 '쇼생크 탈출'의 주인공)이 몇번 탈옥도 못해보고 영화를 찍은게 우수울 정도다. 사실 스탈린은 10월 혁명 전까지 체포 7회, 유형 6회, 탈옥 5회라는 놀라운 전과를 달성했다. 

 스탈린이 이렇게 탈옥을 잘한 것은 모든 감옥의 지도를 문신으로 새겼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사실 광활한 러시아의 시베리아 유형지를 문신으로 새길 수도 없긴 하지만. 

 사실 이전 포스트에서 설명했듯이 러시아 시절의 감옥이나 유형지는 소비에트 시절 처럼 잔인하거나 철저하지 않아서 많은 이들이 탈옥에 성공하긴 했었다.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감옥인데 이렇게 자주 탈출을 하다보니 지금까지도 풀리지 않은 의문점이 제기 될 수 밖에 없었다. 

 그것은 스탈린이 사실은 오흐라나의 이중 첩자라는 것이다. 매번 탈출하는 데도 오흐라나는 스탈린을 같은 허술한 수용지에 가두었다. 심지어 유형지에서도 여자를 사귀는등 비교적 널널한 유형생활을 한 스탈린은 매번 어렵지 않게 탈출할 수 있었지만 같이 잡혀간 다른 동지들 가운데는 스탈린 만큼 운이 좋지 않은 이들도 있었다. 여기에 계속 탈옥해도 스탈린을 빠져나오기 힘든 감옥에 가두거나 처형하지 않았다는 것도 뭔가 이상했다. 동일하게 비교할 순 없어도 소비에트 시절 수용소에서 누군가 한번이라도 탈옥했다 잡히면 중형이나 사형을 피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사실 오흐라나는 소비에트 시절에 KGB 나 NKVD에 비하면 작은 조직으로 수적 열세를 극복하기 위해 주로 조직내 이중 첩차를 잘 활용하는 것으로도 유명했다. 그러니 이러한 탈옥의 명인 스탈린이 의심을 받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스탈린이 이중 첩자라는 분명한 근거는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았다. 사실 이건 관련자들이 모두 죽은 지금에 와서는 오흐라나의 미공개 비밀자료가 발견되지 않는 이상 확실히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이마 필자가 생각하기에 사실 관계를 잘 알 수 없는 역사의 추측은 하지 않는게 아마 바람직 할 것이다. 즉 스탈린이 이중 첩자라는 섣부른 단정은 분명한 증거 없이는 할 수 없다는 것이다. 

6. '스탈린'의 탄생

 앞서 말했듯이 스탈린은 이름과는 달리 소수파인 볼세비키를 맹렬히 신봉하므로써 레닌의 신임을 얻었고, 일부에서는 카프카스의 레닌이란 소리까지 듣고 있었다. 그러나 1912년까지 그는 지방 혁명가였다. 

 1912년, 그에게도 기회가 찾아온다. 당시 새로 구성된 볼세비키 중앙위원회의 로만 말리노프스키라는 인물이 국가 두마에서 볼세비키 후보로 나와 당당히 당선된다. 그런데 중앙위원회의 영향력 있는 이 인물이 사실 오흐라나의 첩자였던 것이다. 결국 러시아로 돌아간 볼세비키 중앙위원회 위원들은 모두 구속된다. 

 이 일이 기회가 된 것은 영향력있는 혁명가들을 많이 잃은 레닌이 새로운 인물들을 대거 기용하기 때문이다. 여기엔 자신의 추종자인 스탈린도 들어있었다. 이렇게 보면 스탈린이 오흐라나의 이중 첩자는 아니라도 오흐라나의 덕분으로 중앙으로 진출하게 되었으니 어쨌든 그들에게 감사해야 할 것이다. 

 중앙으로 진출한 스탈린은 우선 집필가로써의 면모를 과시했다. 사실 워낙 스탈린 하면 독재자의 이미지가 강해 간과하기 쉽지만 스탈린은 문필가였고, 많은 논문과 글들을 쓴 지식인이었다. 

 스탈린이  우선 중앙에서 맏은 일도 이와 관련된 것이었다. 그는 볼세비키 신문인 즈베즈다('별'이라는 뜻)에 글을 기고하며 편집을 도왔는데 여기서 뛰어난 필력으로 호평을 받았다. 

 여기서 실력을 인정받은  스탈린은 더 나아가 새로운 볼세비키 신문을 창간하라는 권유도 받았다. 이렇게 나온 신문이 바로 프라우다 ('진실'이라는 뜻) 였다. 지금도 프라우다는 러시아의 대표적인 신문 중 하나다. 

이 시기가 우리가 아는 스탈린이 두각을 나타내던 시기였다. 그는 여기서 <민족 문제와 사회민주주의>라는 소책자를 발간하여 혁명가로써의 이론적 기반을 다지면서 그의 명성을 크게 높이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변화는 바로 필명이었다. 

 스탈 (stal) 은 분명 러시아로 철을 나타내는 단어였다. 그가 여러가지 필명대신 스탈린이란 이름만 쓰게 된 것은 이 시기였다. 이후 이시오프 주가시빌리라는 이름보다 그는 스탈린이란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지게 된다. 당시 이것은 아마 강철같은 혁명의지를 상징하는 명칭 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훗날 강철 권력을 휘두른 그에게 아주 잘 맞는 명칭임에 틀림없다. 

1.젊은시절의 스탈린
2.스탈린의 아내 케테반
3.스탈린에 대한 경찰의 정보 카드
4.프라우다를 읽고 있는 레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