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이글은 실제 일어난 살인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div> <div>잔인한 내용을 싫어하시는 분들께서는 읽지 말기를 부탁드립니다...</div> <div>.</div> <div>.</div> <div>.</div> <div>.</div> <div>.</div> <div>.</div> <div>.</div> <div>.</div> <div>.</div> <div>.</div> <div>.</div> <div>.</div> <div>.</div> <div>.</div> <div>.</div> <div>.</div> <div>.</div> <div>시작합니다..</div> <div> </div> <div>오늘 소개해드릴 사건은 고재봉 사건입니다.</div> <div>당시 피해자들은 새벽에 영문도 모른채 도끼로 도륙되어 일가족 6명이 사망한 사건입니다.</div> <div> </div> <div>고재봉은 가난한 집의 아들로 태어나 평범한 생활을 하다 군에 입대합니다.</div> <div>사건이 발생(1963년 10월 19일) 하기 8개월 전 고재봉은 국군 3군단의 야전포병단에서 </div> <div>부대장이었던 박모 중령의 당번병으로 복무중이었습니다.</div> <div>당시 박 중령과 그의 가족에 관련된 잡다한 일을 부대와 관사를 오가며 처리하는 것이 그의 일과였습니다.</div> <div>그러던 어느 날 자신의 서재를 정리하라는 지시를 받고 서재를 정리하고 나오다 </div> <div>고재봉은 박 중령의 집에서 고기 한덩이를 훔치게 됩니다.</div> <div>훔친 고기를 신문지에 싸서 나오던 중 박 중령의 집에서 집안일을 해주던 식모와 마주치게 되는데</div> <div>물건을 훔쳐가는 것을 눈치챈 식모가 고재봉에게 소리를 지릅니다.</div> <div>우연히도 그때 고재봉의 옆에 도끼가 놓여있었는데 그는 그 도끼로 소리를 지르던 식모를 식모를 </div> <div>조용히하지 않으면 죽이겠다는 위협하고 관사를 빠져나갑니다.</div> <div>당시 박 중령이 머무르던 관사에서 도난사건이 자주 일어났는데</div> <div>이 사건으로 고재봉은 자신이 저지르지 않은 죄까지 뒤집어 쓰게되고 </div> <div>절도와 살인미수로 육군교도소에서 7개월을 복역하게 됩니다...</div> <div>(부대장의 괘씸죄가 추가 되어 더 큰 처벌을 내리지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해봅니다..)</div> <div> </div> <div>고재봉은 육군교도소에서 복역중 결혼하려던 여인마져 떠나가 버리는 불운을 겪습니다.</div> <div>그는 자신이 불행하게된 모든 원인이 박 중령에게 있다고 생각하고 </div> <div>석방되면 자신을 이렇게 만든 박중령을 꼭 찾아가 그를 죽이겠다고 마음먹습니다.</div> <div> </div> <div>그의 복수심은 석방 후에도 사그라들지 않았습니다.매일 드나들던 관사는 그리 멀지않으니까요</div> <div>복수를 하리라 마음먹은 고재봉은 인근 민가에서 식칼과 도끼를 훔칩니다.</div> <div>1963년 10월 19일 새벽 2시경 허리춤에 식칼을 차고 한손에는 도끼를 한손에는 손전등을 들고 </div> <div>새벽 2시경 박 중령이 살고있는 관사로 향합니다.</div> <div>그리고 그는 박중령의 집으로 들어가 관사에서 잠들어 있던 부부를 포함 일가족 6명을 </div> <div>도끼와 식칼로 무자비하게 도륙하는데... </div> <div>어이없게도 무자비한 도륙의 결과는 자신의 복수와는 전혀 무관한 사람들이었습니다.</div> <div> </div> <div>고재봉이 그토록 죽이려했던 박 중령과 그의 가족들은 몇달뒤 다른 부대로 전출을 가게되어</div> <div>이사를 가버버린 뒤였고 박 중령이 살던 그 집에는 고재봉과는 일면식도 없는</div> <div>이득주 중령과 그의 부인인 김재옥씨 와 그의 가족들이 살고 있었습니다.</div> <div>때마침 큰아들은 큰집에 있어 화를 피하게 되는데 큰아들을 제외한 가족 모두가 사망합니다.</div> <div> </div> <div>고재봉은 피해자의 집에서 시계와 다이아반지 등의 귀금속을 훔쳐서 달아나고</div> <div>고재봉은 군인의 신분인지라 군 경 합동 수사본부가 설치되는데 </div> <div>사건발생 일주일 후 </div> <div>수사본부는 이사건의 진범으로 고재봉으로 지목하고 긴급 지명수배합니다.</div> <div> </div> <div>그는 이곳 저곳을 떠돌며 지냈는데 이때 추운 겨울이었던 지라 잘곳이 마땅치않았던 그는 </div> <div>땅굴을 파 잠을 자고 근처 인가에서 밥을 훔쳐먹는 생활을 17일 동안 생활했다고 합니다.</div> <div> </div> <div>사건 발생 후 25일 11월 12일 그는 서울 청계천에서 발견되는데 </div> <div>그를 알아본 두 상인 추적과 신고로 저녁 6시경 체포 됩니다.</div> <div> </div> <div>검거된 고재봉은 11월 19일 육군 보통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선고 합니다.</div> <div>이때 고재봉은 항소도 포기한채 교도소에서 기독교에 귀의해 전도에 힘을 쏟았는데 </div> <div>누구보다도 열정적으로 동료 재소자들을 전도하는데 앞장섰다고 합니다.</div> <div>후일담으로 그가 수감되어 있던 교도소의 재소자 2천명 중 그가 전도한 수감자들의 숫자가 무려 1800명 이라고합니다.</div> <div> </div> <div>사형판결 4개월 뒤 그는 총살형을 당하는데 사형당일 자신이 미쳐 전도하지 못한 나머지 200명의 전도를 </div> <div>동료재소자에게 부탁한다고 말한 유명한 일화도 있습니다.</div> <div> </div> <div>사형장에서도 고재봉은 자신에게 총을 쏘러 온 9명의 군인들에게는 축복의 기도를 </div> <div>사형대에서는 찬송가 부르던 중 사망합니다.</div> <div> </div> <div>그리고 그가 그토록 죽이고 싶어했던 박 중령은 어떻게 되었을까요??</div> <div>이 사건 이후 마음고생을 많이했고 얼마지나지 않아 군을 예편했다고 합니다.</div> <div> </div> <div>자신이 미처 하지 못한 나머지 200명의 전도를 부탁하고 </div> <div>총구가 눈앞까지 닥친 죽음 앞에서도 찬송가를 부르며 의연히 죽음을 받아들이고</div> <div>사형당일 동료 수감자들에게 하나님을 만나러가니 행복하다고 말하는 것들이</div> <div>신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참 은혜가 되는 감동적인 장면일수 있지만</div> <div>어떻게? </div> <div>왜? </div> <div>누가 그를 용서 했을까요?</div> <div>묘하게도 영화 "밀양" 의 장면이 겹치는건 저만의 생각일까요?</div> <div>자신의 아들을 죽인 사람을 용서하려고 찾아가는 장면</div> <div>이미 하나님에게 용서를 받았으니 너님의 용서 따위는....</div> <div>자신의 죄를 셀프용서했다는 장면과 묘하게 겹치는지 모르겠습니다.</div> <div>그의 열성적인 전도와 종교활동이 자기합리화와 궤변이라는 생각은 저만의 생각일까요??</div> <div><br>끗</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