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11월 1일자 오피니언
김용익 교수의 세상읽기

[부자가 해서는 안 될 일]

'노블레스 오블리주' 부르짖지 말라
당신들은 의무를 질 필요가 없다
해서는 안 될 일만 안 하면 된다




'80 대 20의 사회'가 마음을 울리더니 어느새 '1%에 대한 99%'의 분노가 하늘을 찌르고 있다.
세상이 왜 이리 각박해지나 안타까우면서도 실상을 보면 너무한다는 생각을 어쩔 수가 없다.
미국 잡지 <포브스>에 따르면 한국 최고 부자의 재산은 86억달러(약 9조 6000억원)이다.
그분이 1942년생이니 탯줄 자른 순간부터 돈을 벌었다 쳐도 한 달에 118억원, 하루에 3억9000만원씩 번 셈이다.

이런 걸 계산하고 있는 내가 한심하지만 남들이 돈 버는 것을 탓할 생각은 없다.
그래도 부자들이 이랬으면 하는 소망이 있어 적어 본다. 물론 특정인의 이야기는 아니다.

탈세는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기부는 안 해도 좋다. 탈세하면서 기부를 하면 그게 무슨 선행인가?
상속할 때 편법 쓰지 말아야 한다. 마술 같지만 재미는 없다. 부동산 투기 하지 말고, 다운계약서 쓰지말라.
그런 짓 안 해도 당신들은 부자다.

혹시라도 청와대에 있거나 국회의원이라면 집 사는 데 예산을 쓰거나 도로 만드는 데 힘 부리지는 말아달라
그건 당신들의 돈이 아니다. 시장의 부자들이 세금을 안 내고 정부의 부자들이 재정을 축내면 나라에는 뭐가 남겠나?

귀찮아도 군대는 가라. 왜 20살만 넘으면 병든 부잣집 아들이 그렇게 많은가?
나이 서른의 재벌 아들들은 여느 아들들보다 2.3배나 군면제를 많이 받았다,
나중에 사장 되고, 회장 되고, 높은 벼슬 할 때 흔적도 없이 건강해지면 창피스럽다.
피부 관리에 1억씩 쓰지 말라. 안 그래도 당신은 미인이다.

별 잘못도 없는 사람을 산속으로 불러다가 두들겨 패고 맷값을 주지 말라.
매품 파는 흥부가 아니다. 혹시라도 법을 어겨 감옥에 가거든 아프지 말아 달라.
왜 가옥에만 가면 죽을 병에 걸리나? 병보석으로 나와서는 얼마 안 가 사면받고, 그 다음에는 일도 잘해 돈도 잘 벌어... 영문을 모르겠다.

공무원 검찰 언론을 매수하지 말고 '장학금'도 주지 말아 달라.
국민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을 다 하수인으로 만들면 우리는 누굴 믿나? 안 그래도 당신들은 말발이 세다

불쌍한 경비원 아저씨, 청소부 아줌마 무단히 자르지 말고 월급 좀 올려 달라.
그거 줘봐야 외제차 기름값도 안 된다. 노조를 탄압하지말고 무노조 경영 자랑하지 말라.
노조의 결성은 헌법에 규정된 구긴의 권리다. 노조가 있어도 당신들은 힘이 세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부르짖지 말라.
"귀족은 의무를 진다"는 뜻인데 당신들은 의무를 질 필요가 없다. 해서는 안 될 일만 안 하면 된다.
대신 "자본주의 사회에서..."라고 말을 시작하지는 말아 달라. 그런 자본주의는 없다.
혹시 있다면 천민자본주의읜데 여기서 천민이란 노예가 아니라 '나쁜 부자'라는 뜻이다.

당신들이 조금만 베풀어주면 입시지옥도, 청년실업도, 중년 과로사도, 노인 자살도, 비정규직 차별도 없어질 것 같다,
삶이 오죽 팍팍하면 젊은것들이 새끼를 못 낳겠다고 하겠나?
살 날 며칠 안 남은 노인네들이 제 손으로 목을 매겠나?

옛날 순조 임금 때 큰 부자 임상옥이라는 분은 '재상평여수(財上平如水)요 인중직사형(人中直似衡)이라' 고 했단다. '재물의 높이는 물처럼 고르고 사람의 사이는 저울처럼 반듯해야 한다'는 뜻인데,
요즘말로 하자면 '소득분배는 공정하고 인간관계는 평등해야 한다'쯤 될 것이다.
당신들은 이런 부자를 존경하지 않으시나?
우리는 무척 존경하는데, '임사모'라도 만들면 영어 이름은 '오큐파이 월스트리트(Occupy Wall Street)가 될 것이다. 월가를 점령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