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봉지

궁동사거리, 버스가 교차지점을 정교하게 지날 때
한없이 납작해지고 있는 검은봉지 하나
알뱅이는 온데 간데 없고 
온몸에 구멍만 숭숭 뚫려
제 몸 하나 추스릴 힘 없는 검은봉지가
이제 막 힘겨운 부상을 시작하려 하고 있다

구멍이 숭숭
산짐승이었는지 검은봉지였는지 아니 어쩌면
일탈을 꿈꾸며 자리를 박차고 나온 
유기견이었을 지도
가끔은 
나도 유기견처럼 울부짖을 수 있을 거라는 착각과
구멍이 숭숭 뚫려버린 의지 사이에서
마치 비수기 인공폭포처럼 그렇게
고요해지고 싶었었다

회전하는 모든 것들은 일탈을 꿈꾸고,
커브길을 도는 버스의 원심력
나는 한 쪽으로 쏠리는 인생을 살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회전하는 것들의 일탈에 대해
유기견인지 산짐승인지 혹은 검은봉지
납닥해지고 있는 것들의 고요를

버스가 속력을 내기 시작했고 몸에 구멍들이 소리를 갖는다 붕붕 하고 회전하는 것들 쏟아내지 못한 통증들이 웅웅 하고 울부짖는다

버스가 지나가고 나서야 검은 봉지가 날아오른다
나는 열려있는 창을 힘겹게 닫는다
버스의 뒷문이 열리자 재빠르게 사라지는 무리들
숲 속으로 숨은 검은봉지 혹은 산짐승 혹은 유기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