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는 많은 종말의 위험을 안고 살아갑니다.
소행성 충돌, 대규모 화산폭발, 혹독한 빙하기, 해수면 상승, 블랙홀의 접근, 거대한 태양풍, 치명적 바이러스에 의한 전염병......
우리는 평화와 안정을 원하지만 전 지구적인 역사는 결코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미 지구는 5번의 거대한 멸종이 있었고, 특히 고생대 말 멸종은 거대 화산 폭발로 인해 생물종의 96%가 전멸해 버렸지요.
4%의 작은 생명의 씨앗이 다시 이 지구를 일으켰고, 6500만년 전 중생대 말 유카탄 반도에 떨어진 지름 10km의 운석 충돌에 의한
마지막 멸종을 끝으로 우리는 지금까지 살아왔습니다.
지금까지의 다섯번의 멸종은 생명체 스스로가 만든 요인이 아닌 외부적인 요인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우리 스스로에 의한 멸종..아니 멸망을 우려해야 될 상황에 다다른 것입니다.
가이아 이론을 아십니까?
지구는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행동한다는 이론입니다.
지구는 상처가 나면 스스로 회복하고, 끊임없이 열을 순환시켜 너무 춥지도 너무 덥지도 않게 체온을 유지하였습니다.
식물들은 끊임없는 광합성으로 양분과 산소를 공급해 주었고, 동물들은 오로지 약육강식에 의한 먹이사슬을 만들어 에너지 공급이 끊어지지 않도록 하였습니다.
지구는 그것을 주기 위해 우리에게 돈을 요구한 적도 없고, 다른 댓가를 요구한 적도 없습니다.
그냥 묵묵히 우리를 지켜 왔습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우리는 이 지구상에서 가장 먼저 사라져야 할 치명적 바이러스같은 존재가 되어 버렸습니다.
밀림을 없애 상처를 만들었고, 무차별적인 동물의 남획으로 생태계를 교란시켜 왔습니다.
이익에 눈이 먼 자본가들은 셀 수도 없이 많은 굴뚝을 세워왔고, 수천만동안 만들어진 화석연료를 태우면서도
단 한번도 그것에 대한 댓가를 지불한 적도 없습니다.
지구 입장에서는 우리가 없어져야 할 존재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선택할 수 있습니다.
공존이냐 공멸이냐의 문제의 답은 우리 손에 쥐어져 있는 것입니다.
종말에 관한 외부적인 요인이 없음에도 왜 우리 스스로 자멸하는 길을 택해야 합니까?
어쩌면 인류는 유전적으로 살인 본능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인류는 이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수십만년동안 다른 종을 무차별적으로 죽여왔고, 심지어 같은 인간까지도 수도 없이 살해해 왔습니다.
네안데르탈인이 멸종한 이유도 극악의 살인본능 유전자를 지닌 호모 사피엔스의 폭력성, 잔인성, 포식성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현대에 와서도 그 잔인한 유전자는 더욱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돈이 모든 것을 지배해 버리는 세상에서 이제 우리는 가진 자의 손가락 하나에 자신의 목숨을 맡겨야 하는 상황이 되어 버렸습니다.
도덕과 양심은 사라져버렸고, 생명의 가치는 자본의 논리로 해석이 되고 있습니다.
특히 극도로 잔인한 유전자를 가진 자가 무고불위의 권력까지 쥐고 있다면 이 세상은 어디로 가겠습니까?
대통령 각하.
마지막으로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살인 유전자'가 아닌 우리에게서 사라졌던 '친절 유전자'를 발현시켜 주십시오.
수십억년 동안의 진화속에서 이 지구가 우리에게 준 마지막 선물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스스로 결과를 선택할 수 있는 권한, 즉 지적 능력을 주었다는 겁니다."
대통령은 잠시 나의 표정을 살피더니 긴 한숨을 내뱉으며 자리에 앉았다.
"각하,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국방장관의 독촉에 손을 한 번 가로저으며, 대통령은 깊은 상념에 빠졌다.
나는 다시 한번 힘을 주어 강조했다.
"각하. 핵전쟁만큼은 피해야 합니다."
내 말에 대통령은 두 손으로 얼굴을 한 번 감쌌다.
그리고 벌어진 손가락 사이로 나를 무섭게 노려보며 말을 내뱉았다.
"흐흐흐....다음 세상의 지구는 누가 지배하고 있을까?"
나도 모르게 신음 섞인 말이 튀어나왔다.
"....당신 미쳤어.."
출처
웃대 - 하드론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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