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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물ID : humorbest_322005
    작성자 : 계피가좋아
    추천 : 17
    조회수 : 5038
    IP : 121.170.***.80
    댓글 : 3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11/01/05 05:52:07
    원글작성시간 : 2011/01/03 21:04:18
    http://todayhumor.com/?humorbest_322005 모바일
    고전펌,브금주의]춤 추는 모자(母子)





    안에는 분명 사람이 있는 것 같았다. 이 시간에 녀석이 어딜 돌아다닐 처지도 아닐 것이다. 게다가 안에서 들려오는 작은 소리를 감지했었다.

    하지만 초인종이 두 번 울리고도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나는 다시 한 번 초인종을 눌렀다. 그래도 아무 반응이 없자, 짜증이 나려 했다.




    "야!주식아,뭐하냐? 나야, 문열어!"




    주먹으로 현관문을 두드렸다. 그렇게 세게 칠 생각은 없었는데 소리는 생각보다 컸다.

    그제야 현관 안 쪽에서 쿵쿵쿵 급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발소리가 가까워지는가 싶더니 이윽고 덜컹 문이열린다.




    "어,왠일이야?"




    초췌한 모습의 주식이 현관으로 들어서는 나를 보곤 눈이 휘둥그래진다.요며칠 사이 더 야위어 있고 얼굴엔 여전히 짙은 그늘이 져 있다. 식은땀까지 흘리며...




    "왠일은 임마. 뭐한다고 문여는데 뜸을 들이냐?"




    "어... 미안해, 난 또, 빚쟁인 줄 알고..."




    야윈 그를 바라보자 좀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거실 안으로 들어서자 주식이 멀쭘하게 뒤따랐다.

    거실은 어두웠다. 공기도 웬지 답답했고...

    게다가 집 안은 지저분하기 이를데 없었다.




    '이자식... 집안꼴이 뭐 이모양이야... 재수씨는 어디갔나?'




    말은 않았지만 주식을 다시 바라보는 내 시선이 측은함에서 한심함으로 바뀌어지고 있었다.




    '아무리 망했어도 그렇지...'




    내 표정의 변화를 눈치챘는지 주식이 살며시 내 시선을 외면했다.

    쯧쯧...







    거실 소파에 앉자마자 나는 안주머니에서 준비해 온 봉투을 꺼냈다.




    "얼마 안된다. 넣어둬. 더 도와주곤 싶다만 우리회사도 요즘 사정이 넉넉치 못해서말야"




    주식은 잠시 넋나간듯 봉투와 내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주식은 최근 운영하던 회사가 부도를 맞아 엄청난 빚더미에 올라앉아 있었다. 팔방으로 돈을 구하려 뛰어다녔지만 모두 허사였다. 나에게도 이미 몇 주전에 도와달라는 전화가 왔었다. 사정이 딱한 줄 알면서도 그 땐 메몰차다 싶을 정도로 딱 잘라 거절을 했었다. 물론 정말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었지만, 한 마디 위로라도 해 주었을 법 한데, 그러지 못했던게 좀 마음에 걸렸었다.


    주식은 내가 내민 봉투를 한동안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더니 천천히 고개를 떨구었다. 그러더니 별안간 빙긋 웃었다.




    웃어?... 순간 약간 화가 났다.

    나는 그 웃음의 의미를 주식의 본의와는 다르게 해석해 버렸던 것이다.




    "왜 웃냐? 너무 얇아서 그러냐? 아니면 이제야 생각해 주는 척 하는 게 같잖아서 그러냐?"




    주식은 내 심정을 파악했는지 얼른 얼굴에서 웃음을 거두었다. 어쩌면 이렇게 돈 몇 푼 쥐어 주는 게 녀석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일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녀석이 지금 그런 자존심을 내세울 처지인가...




    "더러워도 받어 임마! 그래도 이정도면 급한불은 끌수 있을거야."




    "그게 아니구...사실은 말야... 다 해결 됐어."




    "뭐?"




    해결되었다니...

    녀석의 빚이 얼마였는데 그게 다 해결되었단 말인가.

    내가 놀라는 표정을 짓자 주식이 사정 얘기를 했다.




    "미국에 사는 외삼촌 친구분이 내 사정을 듣곤 자기 회사에서 일년간만 일해준다면 빚은 자기가 청산시켜 준다고 했어."




    "뭐?..그래서,하기로 했어? "




    "물론이지"




    "그럼 이제 미국으로 가는거야?"




    "그래,사실은 오늘이 출국일이라 짐정리를 하던 중이었어"




    "아..."




    그랬구나...




    주식이 쥬스를 가지러 주방으로 가자 나는 머쓱해져 봉투를 다시 집어 넣으며 주위를 빙둘러 보았다.




    순간 안방문이 눈에 들어왔다.

    그 문은 반투명 유리의 여닫이 문이었는데 그 너머로 뭔가가 어른거리고 있었다.




    자세히보니 주식의 아내가 두 팔을 덩실덩실 흔들며 마치 춤이라도 추듯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만일 정말 춤추고 있는 것이라면 상당히 어색한 솜씨였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그녀는 아기까지 그 두팔로 번쩍 들고서는 그렇게 빙글빙글 대고있었다.심지어는 아기도 재미있다는듯 두 팔을 빙빙 돌리고 있었다.

    참 묘한 광경이었다.




    미국 가는게 그렇게 신나는가...




    그러는 찰나에 쥬스잔이 왔고, 내 시선은 급히 주식에게로 옮겨졌다.




    "야, 재수씨가 아주 좋은가 보다. 미국가는게...'




    "뭐?"




    주식이 의아해하자 나는 쥬스를 마시며 저것 보란듯이 시선을 안방문으로 향했다.

    그런데 이게 왠일인가!

    안방문엔 아까와는 달리 검은 커튼이 가려져 있어 그 너머를 전혀 볼 수 없었다.




    "어,이상하네.. 내가보고 있으니까 쑥스러워 커튼을 쳤나?"




    "싱그운 소리... 참, 미안한데 비행기시간이 얼마 안남았거든..."




    "그래?... 사실 나도 아들녀석데리러 유치원에 가야해. 그만 일어서야겠군. 그리고, 아무튼 잘 됐구나. 미국 가더라도 자주 연락하고 살자"




    "그래 고마워."




    주식의 집을 나오자 나는 바로 유치원으로 향했다.













    그리고 다음날!

    느닷없이 들이닥친 형사들에 의해 나는 영문도 모른채 경찰서로 연행되었다. 그리고 믿을 수 없는 끔찍한 소식을 접했다.




    주식의 일가족 모두가 그의 집에서 목매달아 죽은 시체로 발견 되었다는 것이다! 주식, 그의 아내, 그리고 이제 막 돌을 넘긴 아기까지...




    더 놀라운 것은 그것이 주식의 짓이었다는 것이다.

    미국얘기는 말짱 거짓이었다. 도저히 빚을 갚을 자신이 없게 되자 그는 죽음을 택한 것이다.

    주식은 아내와 아기를 먼저 죽이고 자신도 뒤따라 목을 맨 것이었다.




    그런데 내가 정말로 기절할 듯 놀란 것은 그 다음이었다.

    아내가 죽은 시간은 오후 3시50분, 아기가 죽은 시간은 오후 4시, 바로내가 주식의 집에 머물고 있던 시간인 것이다!

    그렇다.

    그때 내가보았던 그 이상한 광경, 그것은 두 모자(母子)가 춤을 추고 있었던게 아니었다!

    그것은 고통에 몸부림치며, 허공을 허우적대면서, 비참히 죽어가던 두 여린 목숨의 최후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 검은커튼이 잠시 열렸던것은...

    나는 심한 충격에 휩싸였다.

    그것은 내가 그 광경을 볼 수 있도록 먼저 죽은 그녀가 귀신이 되어 그 커튼을 열었던 것이 아니겠는가! 아직 죽지않고 허공에서 버둥거리는 아기만이라도 구해 주길 간절히 바라며...

    난 무신경하게 지나쳐 버렸던 것이다. 적어도 아이만은 구해 낼 수 있었던 시간과 장소에서 말이다.







    그 후 한동안 나는 죽은 모자의 환상에 시달렸다. 목을 맨 채, 허공을 부유하듯 둥실둥실 떠 다니는 엄마와 어린 아기의 환상은 끔찍하기 이를 데 없는 공포였다.




    주식의 일가족이 죽은 지 벌써 일 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처참히 죽어간 두 모자의 모습을 종종 본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방 한 구석에도 분명 그들이 있을 것이다. 방 안에 없다면 조금 열린 저 방 문 틈 사이로 얼굴만 나와 있을 지도 모른다. 허공에 둥실 뜬 채, 눈에서 검붉은 피를 흘리며 원망하듯 나를 노려보고 있는 모자의 기운이 느껴진다.

    느낌을 확인하기 위해 돌아보려니 소름이 돋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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