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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물ID : humorbest_321560
    작성자 : 계피가좋아
    추천 : 28
    조회수 : 6810
    IP : 121.140.***.70
    댓글 : 9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11/01/03 04:06:23
    원글작성시간 : 2010/12/29 17:40:44
    http://todayhumor.com/?humorbest_321560 모바일
    브금주의] 곽재식作 - 흡혈귀의 여러 측면

    "여자 친구분 가슴 둘레랑 컵 싸이즈가 어떻게 되시죠?"
    "80C 정도 입는 거 같던데요."
    "국산 브랜드 사이즈로 그러신가요? 아니면 다른 브랜드 사이즈로 그러신가요?"
    "아... 다릅니까?"
    "외국 브랜드 사이즈랑 국산 브랜드 사이즈랑 숫자가 같으셔도 실제로 크기가 조금씩 다르게 나오시거든요."
    "모르겠네. 일단, 국산 쪽으로 시도해 보겠습니다."

    송진혁 교수는 백화점 직원의 물음에 대답하면서, 왜 치수나 크기라는 말 대신에 항상 "사이즈"라는 말을 사용하는지 되묻고 싶었다. 특히나, 왜 이 직원은 사이즈의 "즈"에 z발음을 과장하고, 브랜드에 "랜"에서 r발음을 과장하는지 추가적으로 묻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동시에, 그는 어째서 숫자가 "같으시고", 다르게 "나오신다"는 식의 주어 불명 높임말 구사를 남발하면서도, 빠르고 똑똑한 발음으로 웃음을 잃지 않고 말할 수 있는지도 묻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송진혁은 직원이 보여 주는 다양한 제품들의 모습에 눈이 어지러워져 이내 그런 생각은 잊었다. 어차피 좋은 것을 선물하자고 나선 일이라 가격 대 성능비를 따지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직원이 말하는 잡다한 Brrrrrand들의 급수라든가 "가격이 좀 있으시구요~ 이건 그보다는 좀 빠지시구요~"하는 설명은 잊고, 그냥 모양만 유심히 관찰했다.

    "요즘에 도심 쪽 쇼핑몰 전문 매장 쪽에 가시면, 보기 예쁘시고 좋아보이시는 라인업들이 있긴 한데요. 고객님, 사실, 속옷 감이 질이 굉장히 중요하시거든요. 그게 질이 나쁘시면, 고객님, 여자 친구분 피부 이쪽 부분이 굉장히 연약하시잖아요. 그럼 두드러기 같은 게 잘 생기시기도 하고 그래서 굉장히 안 좋으시거든요."

    그녀의 가슴 살결 연약한 정도를 당신이 어찌 아는가? 내가 지나 더 워리어 프린세스의 숨겨 둔 애인일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그리고, "두드러기가 생기시다"라니. 그리고 고갱니임~ 고갱니임~ 하는데, 내가 무슨 19세기 프랑스 인상파 화가도 아니고, 고갱님 거릴 게 아니라, 손님이라든가, 하는 말을 쓸 수도 있을 거고. 그리고, 꼭 고갱님 고갱님 하는 돈호법을 문장마다 끼워 넣어야 당신의 직업적 전문성이 더 어투에 많이 끼어들거라고 믿고 있는 건가?

    송진혁은 좀 거부감을 느꼈다. 그는 정가를 지불하고 물건을 산다면 천 몇 백 달러쯤은 충분히 쓸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이 직원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자니, 왠지 별것도 아닌 물건을 덤터기 씌운 가격에 사는 듯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이자들이 그 사기 친 노획물을 나눠 먹을 듯한 인상을 안겨 주는 것이었다.

    "저희들이 이번에 막스 앤 스펜서 브랜드 라인업을 새로 하나 들여온게 있으시거든요. 이게 적당히 레이스들이 이쁘게 화려하면서, 그러면서도, 그렇게 노골적이지 않고 심플한 디자인으로 은근하게 미니멀하신 디자인이시거든요. 여기 이 자수 놓아진 부분 한번 만져 보시겠어요? 그래서 아마 여자친구분 연령대가 20대시면..."

    백화점 직원이 더욱 아름다운 미소를 얼굴에 올려놓았을 때였다. 송진혁의 전화가 울렸다.

    "잠깐만요."

    송진혁은 백화점 직원으로부터 고개를 돌려 전화를 들었다.

    "교수님, 저 현명입니다. 토요일 저녁인데 전화가 늦어서 방해되신 거 아닙니까?"

    송진혁을 지도 교수로 삼고 연구실에서 일하고 있는 대학원생의 전화였다.

    "약간 그렇긴 한데. 뭐지?"
    "예, 교수님 말씀하신대로, 오늘 새벽부터 지금까지 계속 봉수랑 같이 영수증 작업이랑 정산서류 숫자 고치는 거 다 다시해서 마무리 지었거든요."
    "그럼 이제 감사에 아무 문제 없는 건가?"
    "예, 그렇습니다."
    "내가 시킨 대로 다 잘 마친거지?"
    "아직, 재작년 연구 과제 검토 서류들이 조금 남았긴 했는데요. 그건 봉수랑 같이 오늘 밤까지 계속하면 충분히 끝낼 수 있을 거 같고요. 그건 뭐, 급한 것도 아니니까요."
    "다 끝냈으면, 이제 내 서랍에서 도장 꺼내서 찍고 그냥 보건복지부로 발송만 하면 되는거 아닌가? 전화는 왜 했지? 내가 일 다 끝내 놓고 보고하라고 하지 않았나?"
    "예, 그래서 저도 전화할까... 아, 전화 드릴까 말까 고민 했는데요. 교수님께 좀 보고 드려야 될 일이 있는거 같아서요."
    "뭔가?"
    "왜, 블루나이트21 회사 쪽에 폐기 요청했던, 연구 재료 있지 않습니까?"
    "폐기 연구 재료가 무슨 문제가 되지?"
    "그거하고 직접 연관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제 친구들하고 선배들한테 듣기로 국제 적십자사랑 유네스코 쪽에서 조사하러다닌다고 하거든요. 그래서, 혹시나 이게 문제가 될 수도 있지 않겠나 싶어서요."
    "그런가.... 내가 좀 생각해 보지. 그럼 오늘 밤에 수고하고. 일요일까지는 꼭 다 끝내 놓으라고."
    "예, 교수님.

    송진혁은 약간 짜증이 치밀었다. 머리에 미약한 두통이 느껴지는 듯도 했다. 멍청한 대학원생 놈들한테 일을 맡겨 놓았더니, 제대로 되는 일이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사실 그들의 탓이 아님은 송진혁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다.

    냉정하게 따지면 문제 될 것은 없겠지만, 그래도 적십자사에서 감사나 실사가 나와서 조사하고 다닌다는 것은 불안한 문제였다. 혹시나 재수 없는 공무원 놈들에게 비리 교수나 연구비 착복 같은 식으로 몰리기라도 한다면 잘못하면 재판정 들락거리며 고생깨나 해야 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송진혁 교수의 표정은 좋지 않았지만, 백화점 직원은 전화를 끊은 그가 돌아서자, 다시 한 번 커다란 미소를 지으며 말하기 시작했다.

    "고객님, 이 라인업 제품들은 패드가 젤 패드로 달려 있으시거든요. 사실... 고객님, 이 패딩이 잘못 들어가시면, 너무 옷 밖으로 튀어 나왔을 때 부담스러워 보일 수 있으세요, 고객님. 그런데, 이 제품 같은 경우에는 패딩 디자인이 이쪽으로 이렇게 이 방향으로 이어지면서 굉장히 몸 선에 어울리게 자연스럽게도 돼 있어서 옷맵시도 정말 예쁘시거든요 고객님."

    직원은 그런 내용을 설명하면서, 옆으로 돌아 오른손으로 자신의 겨드랑이 아래를 받치며 이야기 했다. 송진혁은 이 직원 스스로가 이 속옷을 입고 모델이 되어 그 앞에서 보여 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썹 화장을 어떻게 한 것인지, 눈썹을 완전히 밀어 버린 듯한 느낌이 자꾸 먼저 들어오긴 했지만, 작달막한 이 아가씨는 그 종달새 같은 목소리가, 아주 어려 뵈는 얼굴 표정과 민첩하게 어울리고 있었다.

    송진혁은 결국 뭔지 모르지만 그걸 사기로 했다. 송진혁은 "보건복지부 연구비 카드"라고 인쇄된 신용 카드를 자기 지갑에서 꺼냈다.

    "포장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
    "그럼요. 고객님. 저희들이 러브 하트 패키징 서비스 프로그램이 있거든요."

    그 직원은 인터폰을 들더니, "언니, 난데, 패키징 LH거든. 빨리 좀 해 줘" 했다. 송진혁은 신용카드를 건내고 나서는, 문득 아까 대학원생들에게 받은 전화가 기억이 났다. 애인 선물 사는 것을 연구비에서 쓴다는 사실이 혹시 문제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났다.

    "이거 카드 결제하면, 결제하는 쪽에 이쪽 매장까지 찍힙니까?"
    "고객님 그렇게 해 드릴 수도 있고요. 필요하시면, 그냥 백화점 이름만 찍히게도 할 수 있으신데요. 고객님."
    "백화점 이름만 찍히게 결제해 주십시오."
    "예, 알겠습니다."

    송진혁은 안도했다. 사소한 일이지만, 애인에게 하는 선물을 연구비에서 사용한 것이 빌미가 되어 비리 교수로 전락하는 것은 두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백화점 이름만 찍혀 나온다면, 백화점 식당에서 연구 회의를 하고 식사를 한 것으로 처리하면 된다. 그렇게 하면 이 백화점에 쓴 돈을 회의비를 사용한 것으로 처리할 수 있다. 그렇게 하면 그녀에게 하는 선물값을 모두 연구비에서 빼내서 쓸 수 있는 것이다. 안그래도 적십자에서 조사가 돌고 있다는데 쓸데없이 또 다른 꼬투리 잡힐 일을 만들어서는 안 되니까 조심해야 했다.

    송진혁은 백화점에서 나오면서, 자신의 대학원생들에게 전화했다. 그리고 토요일 저녁 막바지 정산 작업에 매달리고 있는 그들에게 백화점에서 회의비 집행한 것을 서류에 하나 추가하라고 지시했다. 적외선 처리에 관한 회의라고 이야기하고는, 자세한 회의록 내용은 봉수라는 학생이 잘 생각해서 채워 넣으라고 지시했다.

    "회의록을 저에게 쓰게 해 주시는 겁니까? 감사합니다. 교수님."

    처음으로 서술형 공문서를 작성하게 된 그 학생은 매우 기뻐했다. 이 불쌍하리만큼 멍청한 학생은, 사문서 위조의 기회가 주어진 것을 두고, 지도 교수 송진혁이 자신의 실력과 창의력, 경험을 인정하고 있다고 받아들인 것이다.

    백화점을 나서려는데, 송진혁은 자신의 차가 어디에 세워져 있는지 생각이 나질 않았다. 백화점 주차 요원에게 주차를 맡기고, 그 녀석이 어디에 세워 놓았다고 이야기 해 줬는데 생각이 나질 않는 것이었다. 그는 다시 좀 짜증스러운 두통을 느꼈다. 송진혁은 매장 직원에게 가서, 은색 벤츠 E350이 주차된 위치를 알아봐 달라고 했다. 이 차는 그동안 모은 연구비로 연구 기자재 운반 차량으로 구입한 것이라서 그에게는 더욱 큰 횡재처럼 느껴졌고, 그래서 꽤 좋아하던 차였다.

    "알겠습니다. 주차장 쪽으로 가시면요, 고객님, 저희 측 주차요원이 안내해 드릴 겁니다."

    직원은 말하면서 다시 한 번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나가는데, 송진혁은 언뜻, 이 직원의 웃는 송곳니가 지나치게 크게 뾰족한 듯한 인상을 받았다. 사람이 아닌 괴물 같아 보일 정도였다.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송진혁은 그의 애인을 만나러 갈 생각에 그냥 바삐 발걸음을 옮겼다.

    차를 몰고 나가면서 송진혁은 동료 교수인 이규도에게 전화를 걸었다. 혹시나 유네스코나 적십자 쪽의 감사에 대해서 입수할 만한 정보가 있는지 알고자 했던 것이었다. 이규도 교수는 연구비를 처리하는 데 뛰어난 수완을 가진 사람이어서 많은 교수들의 제갈공명 노릇을 하는 사람이었다. 사실 벤츠 E350을 사들이게 해 준 것도 이규도 교수였다.

    "이봐. 송 교수. 자네 언제까지 그 고물차 타고 다닐 건가."
    "예, 뭐... 형편 아시지 않습니까."
    "뭘, 연구비로 한 대 사지 그래."
    "연구비로 교수 차도 살 수 있습니까?"
    "교수 차가 아니라 연구용 차량을 사면 되지."
    "연구용 차량이요?"
    "정밀 기계 운반용으로 필요하니까 굉장히 진동이 적은 차를 사야 된다고 신청하라고. 신청서에 차량 승차감 보고서 첨부해서, 승차감 좋은 벤츠 같은 거 한 대 뽑으면 돼."
    "야... 그러면 되겠네요."
    "연구비 승인 심사하는 친구랑 어떻게 되나?"
    "제 옛날 지도 교수님 친구십니다."
    "그러면 신청서 올라가기 전에 전화 한 통 해 주는 거 잊지 말고."

    송진혁은 자동차 핸즈프리 장치에 있는 버튼을 눌러서 이규도 교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규도 교수라면 분명히 감사나 실사에 대한 정보도 가장 발빠를 것임에 틀림없었다. 이번 감사가 얼마나 골치 아픈 것이 될 지 사전 지식을 알아 두고 대비하는 것은 중대한 문제였다.

    "감사? 자네 쪽도 건드리나?"
    "예. 아시는 바 있습니까?"
    "어...... 이번에 두 놈이 돌아다니는데, 적십자에서 한 놈, 유네스코에서 한 놈이거든. 적십자 놈은 그냥 별거 아니고. 술 한 잔 사 주고 주머니에다 좀 집어 넣어 주면 아무것도 아니야. 진짜 사람 열 받게 하는 자식이 유네스코에서 나온 놈인데, 이놈이 악명 높은 놈이야. 연구실 몇 개 거덜 낸 놈이거든. 이놈은 조심해야 될 거야."
    "그래요?"
    "이 놈이 어떻게 생긴 놈이냐하면, 덩치가 좀 크고, 항상 물통에다 맥주를 담아가지고 다니면서 틈날 때마다 한 모금씩 마시거든."
    "맥주를 마신다고요?"
    "이상한 놈이야. 조심해야 돼."

    송진혁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이규도의 경고가 꽤 진지하게 느껴졌다. 송진혁은 이규도의 말이나 경고를 깊이 신용하는 편이었다. 송진혁이 궁상맞은 책벌레에서 지금의 그로 거듭나게 된 것 역시 이규도의 가르침에 힘입은 바가 컸다.

    이규도는 지도하는 대학원생들의 인건비를 세 배 정도 부풀려서 연구비를 타 낸 다음, 대학원생들에게 그 1/3의 연구비만 주고 나머지는 연구실 공금으로 자기가 관리하는 방법을 알려 줬다. 연구비로 집행하기 곤란한 책상, 의자 같은 사무용 가구나 택시비, 운반비 같은 소액 화물 비용을 처리한다는 명목으로 일종의 비상금을 걷는 것이다. 사실 아무에게도 보고할 필요도 없이 자기 마음대로 돈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이면서도, 이런 비상금의 명목을 걸어 놓으면 주변 교수들에게나 학생들에게는 정당하게 쓰는 돈인 듯한 느낌을 줄 수도 있다.

    "송 교수. 조심하라고. 이번에 산업 자원부 과제 감사에서 인건비 뒤진다거든."
    "예? 정말요?"
    "없던 일처럼 보이도록 싹 정리하고. 학생들 입단속도 좀 시키라고."

    어느 날, 이규도는 송진혁에게 긴히 그런 정보를 건넸다. 확실한 정보일 가능성이 높았다. 행정자치부의 이공계 우대 정책에 따른 이공계 연구원 고위 공무원 특채가 있었을 때, 이규도는 자신의 제자 세 명을 산업자원부와 과학기술부에 들어가도록 손을 써 주었다. 꿈도 못 꿀 5급 공무원의 자리에 지도 교수가 손을 쓴 덕에 들어간 이 학생들은 큰 일이 있을 때마다, 이규도에게 정부측 계획을 은밀히 전해 왔고, 덕분에 이런 큰 난리를 미리 알고 대비할 수 있었던 것이다.

    과연 이규도의 정보는 맞아 들었다. "학생 인건비 갈취"라는 파렴치한 신문 기사 제목과 함께 세 명의 동료 교수가 기소당한 것을 송진혁은 보았다. 그리고, 사문서 위조죄로, 인건비를 갈취당한 학생들은 구속되어 구치소에 갇혔다. 이 학생들은 밤새도록 공부하고 일만 하고, 자기 인건비도 떼어다 지도 교수에게 갖다 바쳤는데, 왜 자기들을 사문서 위조죄로 가두냐고 울먹이며 징징거렸다. 무슨 소용이랴. 말 그대로, 법의 준엄한 심판 앞에 범법자의 우는 소리에 지나지 않았다. 간신히 수사를 피한 송진혁과 그의 학생들은 그 모습을 보며 두려움과 안도감을 동시에 느꼈다.

    그 사건 이후, 송진혁은 감사니, 연구비 관리니 하는 것에 바짝 겁을 먹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숨통을 트이게 해 준 것도 이규도의 새로운 생각이었다.

    "교수님, 인건비 사용을 못하니까 이거 너무 빡빡한데요. 무슨 다른 방법 없습니까?"
    "있지."
    "뭡니까. 혼자만 아시지 마시고 저도 좀 가르쳐 주십시오. 요즘 부동산 경기 좋다고 남들 다 아파트 하나 더 장만한다는데, 저만 헤매고 있자니 속 터집니다. 돈줄을 만들 가닥이 안 잡히니 얼마나 분통 터지는지 모릅니다."
    "좋은 데서 술 한 잔 살건가?"
    "아이... 그거는 안 가르쳐 주셔도 그냥 예의상 당연한 거죠. 지금까지 교수님께 제가 배운 게 얼마만큼인데..."
    "내 친구 중에 신소재학과 교수가 있는데 말이야. 이 친구가 신소재 개발한다고 하고는 연구용으로 금이랑 은을 사들이거든. 금이나 은이 안정성 높고 전도도 높은 금속이라서 금속재료 연구할 때는 여러 가지로 들어가는 데가 많아."
    "그렇겠죠."
    "그러면, 사들인 금을 연구하고 실험하다가 실패했다고 하고는 그냥 버리는거야."
    "연구 재료를 그냥 버린다고요?"
    "이 답답한 사람아. 보고서에는 실험하다가 실패해서 버렸다고 하고, 사실은 모아 놓았다가 종로 금은방 가서 파는 거지. 판 돈은 이제 쓸 돈으로 챙길 수 있는 거고. 그렇게 연구재료로 금 산 다음에 실패했다고 팔면, 어디 불법적인 서류도 안 남고 쉽게 목돈 만들 수 있어."
    "야, 그거 괜찮네요."

    광선공학이 전공분야인 송진혁 교수는 그 날로 이규도가 가르쳐 준 방법을 응용하기 시작했다. X선이나 감마선 같은 주파수가 높은 광선을 쏘면 금속은 광전효과니 컴튼효과니 하면서 여러 가지 전자기 반응을 일으킨다. 송진혁 교수는 그런 식으로 다양한 방사선을 금속에 쪼여 보는 실험이 우리나라 반도체 기술 발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제안해서 연구비를 타 냈던 것이다.

    송진혁은 실험용 금속으로 금, 은을 대량 구입했다. 그리고 예의상 아무 빛이나 좀 쪼여 준 다음에, 제일 똘똘한 박사 과정 학생에게 적당히 연구 결과를 쓰라고 시켰다. 그리고 남은 금은은 학생 수만큼 나눠서 매일 조금씩 금은방에 가서 현금으로 바꿔 오도록 했다. 한꺼번에 지나치게 많은 금을 거래하면, 국세청 쪽에서 움직이기 시작하기 때문에 문제가 복잡해질 위험성이 있었던 것이다.

    곧, 송진혁은 금을 파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모을 수 있으면서도 훨씬 더 걸릴 가능성이 적은 새로운 방법을 창안해 냈다. 송진혁은 자신의 생각을 너무나 자랑하고 싶어서 이규도에게 찾아가 술을 샀다.

    "교수님. 제가 이번에 보건복지부 연구과제를 하나 맡았거든요."
    "자네 전공 광학 아닌가? 물리학 분야잖아. 그게 보건복지부랑 어떻게 연결되나?"
    "정확하게 광선공학인데요. 왜, 원적외선이 몸에 좋으니 어쩌니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적외선이 몸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연구하겠다고 해서 과제를 하나 따 냈습니다."
    "그거 아이디어 괜찮네. 얼마짜리 과제지?"
    "일 년에 3억씩 3년짜리 과제예요."
    "10억 돈이네. 어떻게 그렇게 연구비가 큰가?"
    "적외선을 사람 피, 혈액에 쪼이는 실험을 하고 있거든요. 그런데 이 피를 많이 사들이려면, 이게 돈이 만만치가 않거든요."
    "그러면....... 자네......."
    "맞습니다. 바로 그겁니다."

    송진혁 교수는 연구용으로 피를 대량 구매했다. 그리고 대충 실험을 한 다음에, 그 피를 폐기 처리라는 명목으로 외국 회사로 팔아 치우고 그 돈을 모았던 것이다. 송진혁 교수는 단백질 구조의 입체 화학과 광학적 성질 차이에 대한 아무도 알아 볼 수 없는 복잡한 말을 만들어 보건복지부의 심사관에게 도장을 찍게 했다. 그리고 거기에 따라서, RH- AB형과 cis AB 형 같은 특이 혈액형을 실험 재료로 구매했다. 이런 피들은 많지 않은 양이라도 가격이 대단히 비싸서 조금만 팔아 치워도 많은 돈을 남길 수 있었다.

    꽉 막힌 길 한가운데에서, 송진혁은 그동안 피를 팔아서 번 돈이 얼마나 되는지 어림하고 있었다. 그리고 만에 하나 일이 잘못된 경우에 그 중에 얼마나 발각될지도 한 번 고심해 보았다. 그런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자꾸 드는 생각이, 도대체 어떻게 냄새를 맡고, 갑자기 적십자랑 유네스코가 감사를 뛰고 있는지, 어디서부터 이야기가 새어 나가고 있는지 그게 궁금해졌다. 길이 막혀 차가 옴쭉달싹 못하게 되니, 고민하는 시간은 더 깊어져 갔다.

    생각에 빠져 있는 그의 눈앞에 교차로 저편에 있는 버스 한 대가 눈에 들어왔다. 버스 맨 뒤 구석 자리에 앉아 있는 한 쌍의 남녀를 송진혁은 보았다. 그 중 여자를 보자, 송진혁은 아까 백화점 속옷 매장의 직원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녀가, 속옷을 추천하면서 착용감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그녀 자신의 등 쪽을 쓰다듬던 모습이 생각났다. 사실 버스의 여자와 그녀는 별로 닮지는 않았다. 어려 보이던 직원에 비하면, 이 버스의 여자는 좀 날카로운 데가 있어 보였다.

    사람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버스 구석 자리에서 남자는 그 여자를 두 팔로 휘감은 채 앉아 있었다. 여자는 눈을 지그시 감고 웃음을 짓기 시작했다. 남자는 그녀의 어깨쯤에 얼굴을 묻었다. 여자가 잠시 몸을 뒤척이자, 남자는 고개를 들고 그녀의 옆 얼굴을 보았다. 여전히 눈을 감고 있는 그녀를 본 남자는, 혀로 그녀의 목을 핥았다. 남자는 혀로 무슨 글자를 한 글자 쓰는 것 같았다. 여자는 간지러운지 다시 웃었다. 남자는 여자의 목에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남자는 여자의 목을 물어뜯는 것 같았다. 그리고 피가 흘러내릴 듯했다.

    남자가 여자의 목을 이빨로 물어뜯어 죽이려 하는 듯한 그 모습을 송진혁은 믿을 수 없었다. 그러나, 버스는 곧 신호가 바뀌어 지나갔다. 송진혁도 자신의 차를 몰고 나가야 해서 계속 그들을 볼 기회는 없었다. 송진혁은 자신이 방금 버스에서 일어난 황당한 폭력 사건 내지는 살인 사건의 목격자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말도 안 되는 그 광경을 따져 보자니, 그는 자신이 무엇인가를 잘못 본 것이겠거니 생각했다.

    송진혁은 그의 애인이 자신이 준 선물을 풀어 보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나서야 그 남녀를 잊을 수 있게 되었다. 그녀는 오늘따라 더욱 아름다워 보였다. 정교한 유리 조각에 어지러이 반사되는 레스토랑의 고딕식 조명은 결코 밝지 않았지만, 그 빛 안에서 그녀의 얼굴은 더욱 선명하고 신비스럽게 보였다. 그녀는 자수가 놓인 모양을 이리저리 들여다보며 호기심 어린 즐거움을 마음껏 발산했고, 송진혁은 그 모습에 온갖 다른 걱정을 잊은 채 마음껏 그 즐거움을 받아들였다.

    "나 지금 이걸로 갈아입어야 겠다."
    "여기서?"
    "변태냐?"

    그녀는 웨이터를 불러 화장실이 어디 있는지 물어 보고는, 송진혁의 선물과 함께 사라졌다.

    그녀가 없을 때, 송진혁은 다시 자신의 연구실에 전화를 걸었다. 오현명 학생이 받았다.

    "일은 다 끝나가?"
    "일 순서를 좀 바꿔서요. 꼭 바꿔치기 해야 되는 건 지금 다 끝냈고요. 중요한 처리는 오늘 다 끝낼 수 있을 거 같고요. 일요일까지 일하면, 뭐 충분히 끝낼 수 있을 거 같습니다."
    "그래, 똑바로 하라고."
    "예. 그런데, 교수님. 저기요."
    "뭐지?"
    "아까, 교수님 찾는 분이 한 분 왔다 가셨는데요."
    "누구?"
    "누군지 말씀은 안 하시고요. 그냥 교수님 있냐고 하시고, 없다고 하시니까, 고맙다고 하고는 가시던데요."
    "작은 사람이야 큰 사람이야?"
    "큰 편이던데요."
    "혹시 물통이나 술병 같은 거 들고 있던가?"
    "예. 작은 물통 하나 들고 있던데요."

    유네스코 녀석이었다. 이규도 교수가 조심해야 한다고 말하던 하필이면 그 재수 없는 자식이었다. 그 녀석이 벌써 내 목을 노리고 우리 연구실까지 왔다간 것이었다. 송진혁 교수는 다시 한 번 짜증이 치미는 느낌이 들었다. 머리가 아파 왔다. 전화를 끊을 즈음, 그녀가 다시 자리에 돌아 왔다.

    그녀는 자리에 앉기 전에 송진혁 앞에 섰다.

    "옷에 자수 놓인 거 비치는 거 같지 않어?"
    "난 잘 모르겠는데."
    "어때, 선이 좀 더 살아나는 거 같은가?"
    "이렇게 뭔가 잘 받을 때 보면, 여러 모로 인상파 화가 작품을 연상케 하는 데가 있단 말이야."

    그녀는 앉으면서 물었다.

    "오오. 어떤 점이?"
    "그, 투박한 붓 터치."
    "땡. 여러분, 오늘 이 작품은 작품의 가치를 모르는 주인의 멍청함 때문에 다른 손님께 낙찰되었습니다."

    바보스러운 농담 다툼을 마칠 때쯤, 웨이터가 요리를 갖고 왔다. 송진혁은 그녀의 손에 자기 손을 포개었다.

    "밥 먹기 전에 잠깐만."
    "잠깐만 뭐."
    "눈 좀 감아 봐."
    "뭐 하려고."

    그녀는 눈을 감았다. 송진혁은 아무 말 없이 차분히 눈을 감은 그녀의 얼굴을 다시 한 번 바라 보았다. 하얀 그녀의 얼굴에는 장난스러운 웃음가 아주 옅은 농도로 감돌고 있었다. 그녀의 입술에는 아까 마신 레모네이드가 작은 한 방울로 남아 묻어 있었다.

    송진혁은 그녀의 하얀 목덜미를 바라보았다. 새하얀 살결을 가만 보고 있으면 솜털이 보였다. 그녀의 목은 차가워 보이는 흰 색이었지만, 보기만 해도, 따뜻한 체온이 들어 차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송진혁은 한 손에 포크를 들고 가만 그녀 앞으로 다가갔다. 그녀가 숨을 쉴 때 그녀의 가슴이 움직이는 것과, 입김에서 뿜어져 나오는 온기를 느낄 수 있었다. 송진혁은 가만히, 포크로 그녀의 목덜미를 살살 간질였다.

    그녀는 간지러움에 까르르 웃었다.

    "뭐야?"

    웃으면서 그녀는 다가온 그의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레모네이드 맛이 났다. 입 안에 작은 상처가 있는 그에게 그 신 음료는 약간 따끔한 고통을 주기도 했다. 그 맛과 느낌은 그녀의 입술을 느끼는 데 더욱 도움이 되었다.

    "사람들 보지 않냐?"
    "뭐, 어때."

    그녀는 다시 한 번 입을 맞추며 혀를 밀어 넣었다.

    음식을 먹기 시작하려는데, 다시 전화가 울렸다. 이번에는 이규도 교수였다.

    "송 교수인가? 자네 이번에는 직접 조심해서 잘 처리해야 할 거 같어."
    "왜, 무슨 일 있습니까?"
    "의대에 후지와라 교수 있잖어. 왜, 일본에서 교환 교수로 온 사람."
    "예. 있죠."
    "원래, 감사 같은 거 해도, 외국인 교환 교수는 별로 안 잡거든. 그런데, 이번에는 적십자 놈들이 후지와라 교수도 단단히 조사하고 있어. 지금 고생 좀 하는 거 같아 보이던데."
    "정말요?"
    "그래. 그렇다니까."

    송진혁은 당장에 그녀의 입술을 잊게 되었다. 후지와라 교수는 송진혁에게 희귀 혈액을 취급하는 외국계 의료 회사를 소개해 준 사람이었다. 송진혁이 굉장히 비싸고 귀한 피를 사들이고, 되팔기 위해서 여기저기 묻고 다녔는데, 후지와라 교수가 마침 블루나이트21의 주주였던 것이다.

    동유럽의 한 국영 혈액원에서 출발한 회사인 블루나이트21은 다양한 희귀 혈액 표본을 확보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런 혈액에 대한 유럽 지역 공급을 책임지고 있는 위치로 성장한 꽤 큰 회사였다. 송진혁의 피를 사고파는 돈이 충분히 어울릴 규모가 되었다. 후지와라 교수는 아무것도 모르고 블루나이트21의 수출입 담당을 송진혁에게 소개해 주었고, 송진혁은 그때부터 줄곧 블루나이트21을 통해 연구용 피를 사고팔아서 돈을 모아 왔던 것이다.

    만약, 적십자나 유네스코가 감사를 통해 후지와라 교수를 조사한다면? 그러면 송진혁이 한 일을 모르는 그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마구 털어놓을 가능성이 컸다. 그렇게 되면 블루나이트21이라는 회사와 송진혁과의 관계가 그들의 귀에 들어갈 것이다. 만약, 이들이 송진혁을 감옥에 넣으려고 지금 감사를 벌이고 있는 것이라면, 그 정도 연결 고리면 어떻게든 위험한 증거를 파 낼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속이 타는 일이었다. 좀 잘살아 보겠다고 한 짓이었는데. 적십자 나부랭이들, 그 한량이나 다름 없이 거저먹는 월급이나 챙기고 사는 놈들 때문에, 여기서 내가 감옥으로 주저앉는다고 생각하면 미칠 지경이었다.

    만약 이규도 교수 정도 되는 위치로, 그 정도 인맥만 갖추고 자리 잡으면, 웬만한 일로는 꿈쩍도 하지 않는 진정한 철밥그릇의 위치를 잡을 수 있을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이깟 조무라기 감사 따위 아무리 설쳐대도 부하 연구원, 수하 교수, 학생 몇명 구속되면 끝이지, 자기는 아무도 건드리지 못하게 할 수 있다. 그런데, 한 내년까지만 지금처럼 나가면 충분히 그 불멸의 위치에 도달할 수 있을 거 같은데, 허무하게 피 팔아 먹은 돈 몇 푼에 지금 악질 비리 교수로 몰리게 생긴 것이다.

    송진혁은 치미는 마음을 억누르며, 내온 음식에 칼을 대었다. 래어로 익힌 고기에는 피와 육즙이 뒤섞여 흥건하게 흘러내리고 있었다. 음식의 소스와 그 피가 뒤섞여 접시 아래에 층을 이루며 깔려 있었다. 송진혁은 거기에 칼을 대고 고기를 잘랐다. 그리고 입에 가져가는데, 갑자기 역한 마늘 냄새가 그의 코를 찔렀다. 속이 울렁거려 토할 것 같았다.

    "여보세요. 손님이 하는 말을 안 듣습니까? 제가 분명히, 전 마늘 앨러쥐 있다고 마늘은 빼고 가져 오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송진혁은 웨이터를 불러 떠들어 대며 화를 냈다. 레스토랑의 실수였다. 검은색 옷에 나비넥타이를 한 웨이터는 쏟아지는 비난에도 얼굴색 하나 바뀌지 않고, 조금의 표정 변화도 없었다. 그는 다만, 지극히 침착한 태도로 계속 사과하고, 음식을 다시 내오겠다는 말만 했다.

    송진혁은 지금 왜 이렇게 신경이 날카로워져서 웨이터에게 분노를 내뿜었는지, 그 이유를 스스로 확실히 알고 있었다. 그랬기에, 그렇게 마구잡이로 격노해 화를 냈다는 사실이 더 짜증스럽고 부끄러웠다. 그리고 초조하게 느껴졌다.

    어떻게 이렇게 갑자기 감사가 시작되는가? 그리고 나태하고 방만하기로 악명 높은 적십자와 유네스코가 어떻게 이렇게 급하게, 이토록 많은 인원이 이처럼 치밀하고 넓은 규모로 조사를 진행할 수 있는가. 그는 정신을 차릴 수 없는 의문에 휩싸였다.

    어떤 더러운 자식이 투서를 했음이 틀림없다. 그놈이 내가 비열한 방법으로 돈을 털어 먹기 위해 피 빼돌리기를 한다는 식으로 악의적으로 일러바친 것이다. 공부하다 보면 조금 힘든 거. 그걸 못 참고 괜히 나에게 화풀이하는 식으로 대학원생 놈들 중에 하나가 e메일을 쓴 것일 수 있었다.

    송진혁은 현명과 봉수를 떠올렸다. 현명이 놈이 그런 짓을 할 만하다. 그놈은 분명히 지금도 자기가 왜 토요일 밤과 일요일에도 서류 맞추는 일을 해야 하는지 불만이 가득할 것이다. 놈은 독실한 기독교도로 일요일에는 교회에 가고 일을 하면 안 된다고 여기고 있으니 더 불만이 심할 것이다. 아니다. 아직 나랑 지낸 시간이 짧은 봉수 놈의 짓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봉수 놈의 선동으로 현명이랑 같이 한 일일 수도 있고, 현명이 놈의 선동으로 봉수랑 같이 한 일일 수도 있다.

    그러나, 대학원생의 불만 사항 몇 마디 정도로 적십자와 유네스코가 동시에 움직일 정도로 큰 영향이 있을까? 그렇게 생각해 보면 의심스럽다. 후지와라 교수. 이 작자는 어떤가. 금세 감사원들이 후지와라 교수에게까지 간 것을 보면 더 의심스럽다. 블루나이트21에 신경을 쓰고 있었다면, 그 사이에 내가 블루나이트21을 이용해서 혈액 거래를 하고 있는 모양에 대해서 충분히 눈치챌 만했다. 그러면, 이 멋모르는 병신 같은 자식이, 한국 실정이라고는 전혀 모르면서, 나를 횡령범이나 사기꾼으로 신고한 것일 수 있다. 외국 교수가 한국 교수의 비리를 파헤친다는 모양은 기사거리도 될 만하니까, 더 빨리 움직일 것이다.

    하지만, 그 늙은 영감탱이가 그 정도의 의욕이 있을까? 당장 내년이면 자기 나라로 돌아가는데, 다 늙어서 왜 그런 엄청난 파란을 일으키겠는가 말이다. 그렇다면, 이규도 교수. 이 자식은 어떤가. 속을 알 수 없는 음흉한 자로 온갖 협잡과 속임수에 능한 놈 아닌가. 이놈이야말로, 내 수법이나 약점을 가장 환하게 꿰고 있는 놈이었다. 요즘 갑자기 돈도 많이 모으고 실적도 좋고, 여기저기 공무원들도 잘 사귀고 있는 나에게 놈이 경계심을 느꼈을 지도 모른다. 사실 내가 조금만 더 성장하면, 한 3년만 지나면 놈의 자리를 내가 차지할 기세 아닌가 말이다. 그게 내 목표기도 했으니, 이 눈치 빠른 놈이 그걸 알아채지 못했을리가 없다. 놈의 영향력이면 충분히 적십자 사람들을 움직일 수 있을 만도 하다.

    도무지 어디서 새고 있는 것인지, 누가 진짜 적인지 알지도 못하고 있는 상황이 더 사람을 당황하게 만들고 있었다. 송진혁은 근무 시간 외에는 결코 연구실에 머물지 않는 사람이었지만, 오늘은 밤이 늦는다 해도 다시 대학 연구실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 일을 넘길 계획을 세우고, 방법을 찾아야겠다고 여겼다.

    송진혁은 길을 나서면서 갑자기 그의 애인을 끌어 안았다. 그녀의 몸이 그에게 밀착되도록, 어느 정도 통증이 느껴질 정도로 강하게 힘을 주어 꽉 끌어 안았다.

    "아... 아퍼...."
    "나, 정말 생각하면 할 수록 믿을 수 있는 게 너밖에 없다."

    송진혁은 다시 그녀와 입을 맞추었다. 송진혁은 그 감촉에서 어떤 평안을 찾으려 했다.

    그러나, 그는 이상하게도 그녀의 송곳니가 몹시 날카롭다는 사실만을 느꼈다. 그 송곳니는 송진혁의 혀를 꿰뚫고 두 사람의 입 안 가득 피가 넘쳐흐르게 할 것 같았다. 더 깊게 더듬어 가는 그녀의 움직임을 느끼면서, 송진혁은 몸이 뜨겁게 타서 재가 되어 버리는 느낌을 생각했다. 감사, 조사, 비리, 부정, 부패, 사기, 소송, 구속, 징역.... 온갖 생각에 미칠듯이 불안한 마음이었다. 그는 묘한 어지럼증을 경험했다.

    도대체 알 수 없는 혼란스러운 느낌으로, 송진혁은 허겁지겁 차를 몰고 대학의 광학연구동 건물로 내달렸다. 한시라도 빨리 무엇이든 대책을 세워야 했다.

    밤이 깊은 학교에는 연구에 몰린 대학원생들만 유령처럼 연구실에 틀어박혀 있을 뿐, 지극히 고요했다. 몇몇 대학원생들 외에는 아무도 없는 불이 꺼진 어두운 건물 복도는, 송진혁이 구둣발을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내딛을 때마다, 울리는 소리로 메아리를 들려 주었다.

    송진혁은 철저히 증거를 없애고, 직접 꼬투리가 될 만한 서류를 살피기 위해 대학원생들이 일하다간 연구실로 향했다. 연구실에는 불이 꺼져 있었고, 켜 둔 장비들과 컴퓨터 돌아가는 소음만 크게 들려오고 있었다. 오늘 밤을 새워서라도 직접 서류를 만져야만 송진혁은 조금이라도 안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누가, 왜, 자신을 잡으려 하는지, 어떻게 악착같이 쫓아온 유네스코의 재수 없는 감사원 녀석을 따돌릴지 하는 것도 궁리하리라고 계획을 세웠다.

    아무도 없는 어두운 복도를 걸어갔다. 자신의 그림자가 꼭 남의 인기척처럼 느껴졌다. 문 앞으로 다가서자니 그는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되었다. 그리고 괜히 백화점 직원의 마지막 모습과, 스쳐 지나가며 언뜻 본 목을 물어뜯고 있는 연인의 모습이 다시 떠올랐다. 미식거리는 냄새가 났던 피 묻은 고기 요리와 지극히 차분했던 검은 옷의 웨이터도 생각이 났다. 송진혁은 다시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아무도 없음을 확인했다.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연구실의 문이 열렸다. 송진혁은 눈 앞에 커다란 검은 그림자가 있는 것을 보았다. 아무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나타난 어둠 속의 그림자를 보고 송진혁은 흠칫 놀랐다. 그러나, 송진혁은 이내 마음을 가다듬고 말을 꺼냈다.

    "뭐하시는 겁니까?"
    "아, 예. 아... 어떻게... 되시죠? 여기 연구실 불을 어떻게 켜는 겁니까?"
    "여기는 광학 연구실이기 때문에 함부로 불을 켤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햇빛이라도 잘못 들어오면 실험을 망치고 모든 게 끝나니까 말입니다. 그런데, 도대체 뭐 하시고 계신 겁니까? 함부로, 들어오시면 안 됩니다. 나가십시오."
    "저는...... 그러니까, 송진혁 교수님을 찾고 있었는데요."
    "제가 송진혁입니다."
    "아-! 송 교수님. 선생님이 송진혁 교수님이셨습니까?"

    그림자의 주인공인 낯선 사람은 의외로 순진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그는 주섬주섬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고, 지갑 속에 잡다하게 꽂힌 수많은 카드와 영수증, 돈 사이에서 자기 명함을 찾아 다시 뽑아 건넸다.

    "저는 유네스코에서 혈액 유통과 관련한 조사를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지금은 조사원 신분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러십니까?"

    송진혁은 바로 이 작자가 지금 자기가 처리해야 할 상대임을 알았다. 그는 첫눈에 보기에도 한심하고 헐렁해 보이는 전형적인 비영리 기관의 멍청한 연구원쯤으로 보였다. 송진혁은 지금 조금만 잘 몰아붙이면 이 바보 같은 작자 따위 금세 떨어뜨려 낼 수 있을 것이라는 약간의 자신감을 얻기까지 했다.

    "그런데, 유네스코 감사원 분이, 왜 저를 찾으신 겁니까?"
    "예, 그게 뭐냐면... 교수님. 제가 꼭 지금 알아야 하는 일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뭡니까? 이렇게 깊은 밤에 왔다 갔다 하시는 걸 보면 꽤 중요한 일인가 봅니다."
    "예. 중요한 일입니다."

    송진혁은 그렇게 말하면서, 스위치를 조작해 연구실 불을 켜고, 연구실 안으로 들어섰다. 송진혁은 연구 자료를 이리저리 점검하는 척하면서, 연구실 안쪽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혹시나 이 감사원의 눈에 띄면 안 될 자료가 뭐가 있나 해서 빠르게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책상 위에 가득 쌓여 있는 영수증들이 송진혁의 눈에 들어왔다. 대학원생들이 방금 전까지 정신없이 숫자를 고치느라 짜 맞추고 있던 영수들이었다. 머저리 같은 놈들. 이걸 제대로 안 치우고 이렇게 책상 위에 다 보이게 벌려 놓으면 어떡하나. 서류들을 짜 맞춘 것을 증명할 수 있는 결정적인 증거물이었다. 송진혁은 아직 감사원 놈이 연구실 문 앞에서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를 틈타, 그 영수증들을 바지 주머니와 양복 주머니 안에 다 쓸어 담아 넣었다.

    "이 연구실에서 혈액 실험도 합니까?"
    "그렇죠."

    그가 묻는 소리에 송진혁은 대답했다. 그런데 그의 눈에 테이블 위에 놓인 검붉은 물체가 보였다. 그것은 cis AB형 혈액 팩이었다. 다음 주 금요일에 블루나이트21에 팔아먹기로 하고 빼돌려 놓은 피였다. 비닐팩에 담긴 그 검붉은 액체를 보자, 송진혁은 갑자기 심장이 빨리 뛰는 느낌이 되었다. 이 피의 고유 번호를 보고 서류에서 오차가 나지 않도록 맞춰 보느라 대학원생 놈들이 꺼내 놓은 모양이었다.

    송진혁은 혈액 팩을 집어 들었다. 양복 안주머니에 들어가지 않았다. 연구실 이쪽 방은 넓은 테이블 하나와 적외선 자외선 실험용 연구장비 하나밖에 없는 실험실이었기 때문에 혈액팩을 숨길 장소도 보이지 않았다.

    "연구실이 방 두 개로 이렇게 나뉘어져 있는 거군요."

    감사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그가 다가오는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송진혁은 피를 집어 들고, 피를 숨겨 놓을 곳을 이리저리 살폈다. 감사원이 연구실 이쪽 편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송진혁은 몸을 돌리며 혈액 팩을 든 손을 등 뒤로 숨겼다.

    "그렇죠. 그쪽이 책이랑 책상이 있는 곳이고. 이쪽이 실험실이죠."

    송진혁은 최대한 침착한 목소리를 흉내내서 말했다. 그러면서, 등 뒤로 손을 뻗어 더듬었다. 손에 적외선 실험 장비에서 튀어나온 파이프가 만져졌다. 원래 이 장비로 열심히 실험을 해야 했지만, 실험은 가짜로 하고 실험 재료인 피를 팔아먹느라 이 실험 장비는 사실 거의 사용하지 않은 전시품이나 다름없었다.

    송진혁은 손으로 더듬어서 장비의 파이프 관 속에 혈액 팩을 집어 넣어 숨겼다. 송진혁은 실험한다고 해 놓고 한 번도 제대로 안 써먹던 장비가 마침 이럴 때 이런 용도로 송진혁을 도와주는 쓸모가 있다고 기뻐했다.

    송진혁은 안도하며 겨우 한숨을 돌렸다. 그런 일을 모르는 감사원은 연구실 바깥과 안쪽을 번갈아 살피다가 그에게 물었다.

    "혈액 실험은 보고서를 보니까 다 완료하셨다고 되어 있던데요."
    "맞습니다. 실험은 다 끝냈고, 실험 끝낸 재료들은 다 폐기처분해서 없앴습니다."
    "그럼 지금 혈액을 갖고 계신 게 하나도 없는 겁니까?"
    "예. 다 실험에 써 버렸으니까요."

    송진혁은 실험 장비의 관 속에 숨겨 놓은 피가 의식되어, 실험 장비를 한 번 흘겨다 보았다. 감사원은 그런 그의 눈빛을 눈치챘는지 말았는지, 계속 질문해 나갔다.

    "아까 보니까 학생들이 여기 나와 있던데 학생들이 뭘 한 겁니까?"
    "뭐, 숙제를 하거나, 자기들끼리 같이 토론하며 과학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있었던 거 아니겠습니까?"
    "아니오.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저보다 저희 학생들을 잘 아십니까? 학생들이 게으르다고 지금 무안 주시는 겁니까?"

    송진혁은 자신의 말을 농담으로 만들려고 말미에 살짝 웃음을 보탰다. 그것은 방금 전까지 영수증과 피 주머니를 숨기느라 초조하고 쫓기는 기분에 일부러 여유를 좀 갖기 위해서 지어 본 웃음이기도 했다.

    "아니오. 그런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학생들은 게으른 게 아니라 정말 부지런한 것 같았습니다."
    "그건 또 왜 그렇습니까?"
    "이 연구실을 보니까, 연구실 출입구 쪽 방에는 컴퓨터랑 책상이랑 책들이 있는데, 연구실 안쪽 편에는 연구 장비 외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아까 보니까 연구실 안쪽 방에 불이 켜져 있었고, 출입구 쪽에는 불이 꺼져 있었습니다. 학생들이 연구실 안쪽, 연구 장비 있는 쪽에 있었다는 이야기 입니다.

    숙제나 토론이라면 컴퓨터랑 책상이 있는 출입구 쪽 방에서 했을 겁니다. 이쪽 연구실에는 보시다시피 제대로 앉을 의자 하나 없지 않습니까. 다만 여기 테이블이 큼지막하니까, 무슨 서류나 종이 같은 것을 주욱 펼쳐 놓고 일하기는 편리할 겁니다."

    송진혁은 아무 말 없이 잠시 감사원을 살피고 있었다. 감사원이 계속 이야기했다.

    "아, 실례가 될 수 있으니 죄송하게 여깁니다. 그런데, 저는 적십자-유네스코 공동으로 조사하는 일을 맡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 쪽에서 연구비와 허가를 받은 혈액 연구팀에 대해서는 연구시설을 조사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곳 연구실에 제가 와서 둘러본 것은 이해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예, 이해합니다. 그건 감사원이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죠. 뭐."

    송진혁은 다시 한 번 웃음을 억지로 지어 보였다. 송진혁은 뭔가 자꾸 몰리는 느낌이 들어서 그에게서 한 발자국 물러섰다.

    "그럼, 말씀대로, 저희 학생들이 굉장히 실험에 열심인가 보죠."
    "그런데, 그것도 좀 이상합니다."
    "참, 제 학생들에 대해서 저보다 더 많이 말씀해 주시니 재밌군요."
    "아까 교수님께서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여기 연구실은 빛에 대해 민감한 연구를 하기 때문에 불을 항상 끄고 실험을 하기 마련이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그때는 분명히 이쪽에 불이 켜져 있었습니다. 그 말은, 실험을 하지 않고 있다는 말 아니겠습니까?"
    "그럴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지요. 실험을 하고 나서 결과를 관찰한다거나, 실험을 하기 전에 장비를 조절한다거나 하는 작업을 하려면 불을 켜 놓고 하지 않겠습니까? 하다못해 장비가 고장나 고치고 있을 수도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아닙니다. 그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어떻게 단정하십니까?"
    "교수님 때문입니다."
    "저 때문이라고요?"

    송진혁은 감사원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송진혁은 웃으면서 넘어가려고 했지만, 그의 표정은 자뭇 심각해 보였다.

    "교수님께서는 1년에 3억 원짜리 연구과제를 진행하시고, 과제 계획서에 따르면 굉장히 정교하고 중요한 실험장비로 혈액과 적외선과의 관계를 연구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아주 신기하고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갑자기 칭찬을 해 주시는군요. 어쨌건 감사합니다."
    "연구비 규모나, 계획서에 쓰인 멋진 글들은 칭찬할 만하니까 말입니다. 그런데, 실례지만 교수님 방금 전까지 어디서 뭘 하고 계셨습니까?"
    "글쎄요. 그건 제 사생활 아닙니까?"
    "예. 맞습니다. 그건 교수님 사생활입니다."

    송진혁은 침착하고 가벼운 어조였지만, 선명하게 선을 그으며 감사원의 지나친 호기심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다. 감사원은 다시 시선을 돌려 연구실 이곳저곳을 둘러보면서 말을 이어나갔다.

    "그런데 말입니다. 왜, 이렇게 정밀하고 중요한 연구의 실험을 진행하는데, 지도교수가 사생활을 즐기고 있는 동안, 대학원생들끼리 토요일 밤에 나와서 무슨 일을 했던 겁니까? 왜 지도교수가 놀고 있는 시간에 대학원생들이 무엇인가 실험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는데, 그걸 지도 교수님께서는 뭘 어떻게 하고 있는지 전혀 모르고 계신 겁니까? 이상하지 않습니까?"

    송진혁은 답하지 못해 잠시 더듬거렸다.

    "교수님. 아까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도대체 뭘 집어넣으셨기에, 교수님 주머니가 이렇게 두둑하신 겁니까?"

    송진혁이 영수증들을 주워 담아 불룩해진 그의 옷 주머니를 감사원은 가리켰다. 송진혁은 식은 땀이 났다. 그는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화를 냈다.

    "아무리 감사원으로서 조사하신다고 해도, 제 주머니를 뒤질 권리는 없으시지 않습니까? 대학원생들이야, 여기 실험실에 모여서 자기들끼리 소주랑 안주랑 사다 테이블 위에 깔아 놓고 술판이라도 벌렸을 수도 있을 겁니다. 어쨌거나 지금 제가 여기서 알 바는 아닙니다. 실험을 하고 정리를 해야 하니 이만 나가 주십시오."

    감사원은 잠시 송진혁을 말없이 쳐다보았다. 감사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가겠습니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제가 실험장비 하나만 확인하도록 하겠습니다."
    "무슨 실험 장비요?"
    "저기 저 눈 앞에 보이는 기계 있지 않습니까. 거기 튀어나온 파이프 관. 저 관 안을 살펴보게 해 주십시오."
    "저 관을요? 관 안은 왜요?"

    송진혁은 당황했다. 그는 실험 장비를 가로 막아 섰다. 좀 전에 그곳에 빼돌려 팔아먹기로 한 혈액을 숨겨 놓지 않았는가. 방금 피를 실험에 다 사용하고 폐기 처분했다고 했는데. 만약 관 안에서 감사관이 혈액 팩을 찾아낸다면 난감해진다.

    "교수님께서 실험을 열심히 다 하셨다고 하셨는데, 어쩐지 이 기계에는 먼지가 가득 앉아 있지 않습니까. 그거야 제가 잘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보시다시피 쌓인 먼지에 저 관에만 손자국이 있습니다. 꼭 관을 가지고 뭔가를 했거나 관 안에 무엇인가를 넣어 둔 듯합니다."

    감사원의 말이 심장을 망치로 내리쳐 꿰뚫는 것 같았다. 그는 기계를 이리저리 두리번거렸다. 계속 막고 서 있을 수 없었다. 송진혁은 어쩔줄 몰라 자꾸만 손바닥을 문질렀다. 그는 말을 머뭇머뭇하다가 겨우 겨우 생각을 떠올리고 답할 수 있었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잠깐만요. 여기에 빛이 들어가면 장비가 크게 상하거든요. 그래서 잠깐만 불을 끄고 저쪽 방으로 나가 계시면 제가 장비를 조절해서 빛이 들어가도 상하지 않도록 조치한다음에 장비를 자세히 살펴보도록 해 드리겠습니다."
    "예, 뭐. 그렇다면."

    다행이었다. 멍청한 감사원은 송진혁의 거짓말을 그대로 믿었다. 송진혁은 이제 시간과 기회를 벌었다. 옆방으로 감사원을 밀어낸 송진혁은 이쪽 방이 보이지 않도록 불을 끄고, 자신은 장비 옆에 걸린 야시경을 썼다. 어두운 곳에서도 앞을 볼 수 있게 해 주는 장비였다.

    송진혁은 관에서 혈액 팩을 꺼냈다. 이 피를 그냥 바닥에 쏟아 버린다면. 하수구가 없는 이 방에 피를 쏟아 놓으면, 없앨 방법이 없다. 그렇다고, 창 밖으로 이 혈액팩을 던지자니 열고 닫을 수 없는 창문 없이 장막과 강화 유리로만 되어 있는 벽면에다 무엇인가로 구멍을 내야 할 판이었다. 그렇게 되면 그 황당한 기물파손만으로도 크게 의심을 사고, 더 심한 조사를 받아야 할지도 모른다.

    송진혁은 허둥대며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는 피를 손에 들고 안절부절했다. 이걸 어떻게 없앤단 말인가. 그의 머릿속에 그의 애인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 하얀 목 선과 레모네이드 방울이 묻은 입술이 생각났다. 지금 이 피가 저쪽 방의 감사원에게 들킨다면, 이 아무것도 아닌 실수 때문에 놈은 나를 감옥에 넣을 것이다. 누구보다 성실하고 열심히 살아온 내게서 저 감사원 놈은 사랑스런 그녀를 내 삶에서 앗아갈지 모른다. 놈은 저주처럼 내 교수자리를 빼앗아 가고, 내 재산과 내 은색 벤츠와 내 부동산과 주식을 빼앗아 갈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나를 부패한 쓰레기라고 손가락질 받게 할 것이다. 그것은 앞으로 남은 인생 영원히 나를 괴롭힐 지옥과 같은 일일 것이다.

    송진혁은 자신이 선물한 속옷을 입은 그녀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 폭신한 안감에 닿는 연약한 살결과 그녀의 흰 피부에 어울릴 자수를 떠올렸다.

    그리고 오늘 저녁에 고르던 여러 다른 속옷들의 모양과 거기에 대해 쉴새 없이 재잘거리던 백화점 직원도 떠올렸다. 백화점 직원의 공허한 목소리와 그 무의미한 서클렌즈 눈동자를 생각했다. 그리고 내 신용카드를 가져갈 때 엿보이던 그 날카로운 송곳니를 생각했다. 내 앞에서 서로 끌어안고 스쳐 지나간 버스의 남녀가 생각났다. 여자의 목을 물어뜯던 모습이 생각난다. 까만 옷을 입고 내가 화를 내는 것을 묵묵히 듣고 있던 차가운 레스토랑의 웨이터도 생각났다. 이규도 교수. 현명. 봉수와 같은 대학원생 학생들의 모습도 스쳐 지나갔다. 그 모두가 미치도록 조용한 악마들의 모습이 되어 이 칠흙 같은 어둠 속에 숨어 있는 내 옆을 어지럽게 빙빙 돌며 웃어 대고 있는 듯했다.

    그 순간 송진혁은 자신이 들고 있는 피를 흔적도 없이 없애 버릴 유일한 묘안이 떠올랐다. 그는 혈액 비닐팩의 한쪽 끝을 이로 물고 뜯어 찢어발겼다. 그리고 그는 비닐팩을 입에 문 채 양손으로 허겁지겁 비닐팩을 주물러 짰다. 그의 입 안에 비릿한 이름모를 사람의 cis AB형 피가 가득 쏟아져 들어왔다.

    역겨웠다. 그러나 그는 게걸스럽게 쭉쭉 피를 빨아 먹었다. 먹어치워 없애는 것이다. 굉장히 많은 양으로 느껴졌다. 헛구역질이 올라왔지만 올라오는 것까지 삼키면서 계속 그는 피를 빨았다. 고소하고 끈끈하면서 느끼한 맛 사이에 꼭 칼이나 바늘을 핥는 듯한 철의 맛도 느껴졌다. 송진혁은 역겨움을 견디기 위해서 그 피가 그가 사랑하는 그녀의 피라고 생각했다. 그녀의 뽀얀 살결, 그 사이에 갈라진 동맥에서 쏟아져 나오는 빨갛고 선명한 피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그는 그 피를 마시는 일을 최대한 즐기려 했다.

    피를 모두 마셔 없앤 송진혁은 손등으로 입을 닦았다. 손등에 피가 묻자, 송진혁은 손수건을 꺼내어 피를 닦았다. 그리고 그는 빈 비닐팩을 접어서 양복 안주머니에 넣었다. 증거물을 완전히 없앤 것이었다. 이제, 그 누구도 송진혁이 세금으로 구입한 피를 팔아먹은 것을 알아낼 수 없을 것이다.

    "됐습니다. 들어와서 보십시오."

    송진혁은 감사원에게 들어오라고 말하며 불을 켰다. 피를 다 마셔 없앤 송진혁은, 자신의 용감하고도 기발한 발상 덕택에 위기를 넘겼다는 사실이 스스로 자랑스러웠다. 그는 너무도 의기양양한 나머지, 감사원에게 당당한 미소를 짓고 있기까지 했다.

    감사원은 적외선 실험 장비를 구석구석 들여다봐도 아무것도 없는 것을 보고, 순순히 물러섰다. 그는 오히려 밝은 표정이 되었다.

    "예, 다 됐습니다. 늦은 시간에 귀찮게 해서 죄송합니다."

    그는 돌아서 나갔다. 그 돌아 나가는 감사원의 뒤통수에 대고, 송진혁은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고자, 가짜로 화를 내며 투덜거렸다.

    "아니, 도대체, 무슨 대단한 일이 있다고. 이 깊은 밤에 사방에 사람을 풀어서 이렇게 연구하는 사람을 방해하고 괴롭힙니까. 그것도 토요일에. 제가 무슨 큰 음모라도 꾸미고 있다고 누가 그럽디까? 하여간, 감사니 조사니 하면서 설치느라 도무지 우리 과학자들이 아무것도 할 수가 없잖습니까."

    송진혁의 말을 들은 감사원은 일단 멈춰 섰다. 그리고 그는 들고 있던 물병을 들어서 뚜껑을 열고 안에 있던 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맥주를 마시고, 감사원은 나가면서 말했다.

    "그러게 말입니다. 사실 저도 갑자기 비상이 걸려서 깜짝 놀랐습니다. 블루나이트21이라는 동유럽 회사에서 우리나라에 판매한 혈액 중에 에이즈 감염자의 혈액이 있다는 게 밝혀졌거든요. 그래서 적십자가 난리가 나서 수거에 나섰습니다. 국제 협력으로 유네스코 조사팀도 다 동원됐고요. 사람이란 사람 다 풀려서 정말 어제 오늘 미친 듯이 전국 방방곡곡 쫓아다녔습니다.

    오늘 밤까지 병원이니 연구소니 닥치는 대로 뒤져서는, 에이즈 감염 혈액이 후지와라 교수 쪽 통해서 유통된 cis AB형 혈액이라는 걸 알아냈습니다. 그게 교수님 연구실 쪽으로 넘어간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미 다 실험하고 폐기 처분했으면 뭐, 이제 뭐 다 없어진 거니까, 아무리 에이즈니 뭐니라도 별 큰 일은 없겠죠. 누구 몸 속으로 잘못 들어간 것도 아니고. 아무튼 다행입니다."


    - 2006년, SBS 등촌동 공개홀에서


    출처
    http://mirror.pe.kr/zboard/zboard.php?id=kwak&no=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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