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고딩때부터의 불알친구인 나의 절친은 강한 남자다.</p> <p>생긴것도 우락부락하고, 코도 우락부락하며, 키는 쪼끄만데 덩치랑 힘은 어찌나 좋은지...</p> <p>조선시대에 태어났으면 황소처럼 일 잘한다고 대감마님으로부터 꽤나 이쁨 받았을 터였다.</p> <p>40이 넘은 지금은 본인의 신체적 특성을 살려서 나쁜놈들 때려잡는 경찰이 되어 국가에 헌신하고 있다.</p> <p> </p> <p>하지만 이 녀석은 생긴것과 정반대로 마음은 엄청 여리고 착한 면이 있었다.</p> <p>나의 실수는, 그냥 이녀석이 여린 면이 있구나...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p> <p> </p> <p>때는 2004년 11월. 2년여의 군복무를 마치고 갓 제대한 나와 녀석은 나의 핸드폰을 사기 위해서 같이 시내를 나갔다.</p> <p>그 당시 아직까지 먹어주던 '잇츠 디퍼런트~ 스카아이~ im-7100'이라는 내 경제상황에서 상당히 무리가 되는 신형 핸드폰을 </p> <p>계약했더니 판매처의 이쁜 아가씨가 경품추첨으로 룰렛을 돌리라고 한다.</p> <p>'다 필요없고 불쌍한 중생들을 위해 데이트나 한번...?' 이라고 하고 싶었으나 제대하자마자 불상사를 일으키면 안된다는 생각에 정신차리고</p> <p>룰렛을 힘차게 돌렸더니 '영화관람권 2매'가 당첨되었다.</p> <p> <br></p> <p>제대만 하면 여자친구따위야 한트럭쯤을 사귈 수 있지 않을까 자신만만했지만(남자들은 다들 제대쯤엔 뭐든지 이룰 수 있을거란 환상에 빠지곤 한다) 현실은 입대전이나 제대후나 언제나 솔로나라인 점은 변함이 없었고, 당연히 영화관람권이 생겨봤자 같이 보러갈 여자친구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p> <p> </p> <p>술을 먹기도 이른 평일 오후 대낮...</p> <p> </p> <p>할일도 없고, 겜방가기도 지겨웠던 우리는 과감하게 남자 둘이서 영화를 보러가게 된다.</p> <p> </p> <p>그리고 하필 그때 메인에 걸려있던 영화는 바로 엊그제 결혼하신 손예진과 정우성 주연의 '내 머리속의 지우개'...</p> <p> </p> <p>'남자 둘이서 이런 영화를 봐도 괜찮을까?'하는 걱정이 살짝 들었지만 마땅히 다른 볼만한 영화도 없고 해서 우리는 당당히 영화표를 끊고 극장에 들어갔다. 나는 통로쪽, 친구녀석은 내 옆쪽에...</p> <p> </p> <p>우리는 돈이 없는 백수였기에 당연히 콜라 팝콘 같은 사치품따윈 들고가지 않고 몸만 쏙 들어가서 앉아서 영화를 관람했다.</p> <p> </p> <p>문제는... 영화속의 손예진이 치매에 걸리는 장면이 나오면서부터 친구녀석(이제부터 이 울보새퀴라고 하겠다)이 훌쩍거리기 시작했다.</p> <p> </p> <p>"야 이 새퀴야... 쪽팔린다... 울지마라... 휴지도 없다..."</p> <p> </p> <p>나지막히 얘기했더니 울음을 안으로 삼키기 시작한다. 하....</p> <p> </p> <p>손예진의 치매가 심해져 오줌을 싸고 정우성을 못알아보는 지경에 이르자, 이 새퀴 눈물이 줄줄줄 흐르고 있다.</p> <p> </p> <p>"야 이 개**야... 쪽팔린다고... 고마 처 울으라고..."</p> <p> </p> <p>이미 나의 말은 들리지 않는듯 하다.</p> <p> </p> <p>대망의 마지막 장면, 정우성의 빅 이벤트로 손예진이 잠시 기억을 찾고 행복의 나라로 떠나고...</p> <p> </p> <p>이 울보새퀴는 대성통곡을 하기에 이르렀다.</p> <p> </p> <p>"엉엉엉... 흑.... 흐끅.... 으으윽...."</p> <p> </p> <p>대성통곡 하다가 지도 쪽팔린 걸 알았는지 중간중간 억지로 참는데, 그게 또 아주 가관이다.</p> <p> </p> <p>너무너무너무 쪽팔려서 빨리 일어나자고 재촉하는데 이 울보새퀴 감동에 쩔어서 일어나지를 몬한다. 하...</p> <p> </p> <p>극장에 불이 켜지고, '도대체 어떤 남자가 이렇게 우는 거야?'라는 눈빛으로 다들 주위를 두리번 거리다 우리를 발견한다.</p> <p> </p> <p>하필 자리는 또 통로자리가 나여가지고.... ㅠㅠㅠ</p> <p> </p> <p>이 울보새퀴는 나를 방패삼아 내 어깨 옆에 숨어 계속 울고 있고, 통로쪽으로 내려가는 모든 사람들이 우리를 힐끗힐끗 쳐다보며 키득거리며 내려간다. 얼핏 보았지만 우리를 제외한 모든 사람이 커플이었다.</p> <p> </p> <p>23년 살면서 여태껏 느껴보지 못한 어마어마한 쪽팔림이 온몸을 훑고 가는 그 기분이란...</p> <p> </p> <p>결국 극장에 모든 사람이 나갈때까지(그나마 평일 대낮 시간이어서 만석은 아니었다. 휴...) 처울던 울보새퀴는 그제서야 눈물을 닦고 조심히 일어나선...</p> <p> </p> <p>극장을 나오는 내내 감동에 겨워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붉게 상기된 표정으로...</p> <p> </p> <p>지도 날 쪽팔리게 해서 미안했는지, 그날 저녁 술은 사주더라... </p> <p> </p> <p>이날 사건으로 난 21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 울보새퀴를 놀리고 있다. </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