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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국회를 다녀갔습니다. 그는 국회에서 단호하고 강한 어조로 개성공단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던 배경과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남북관계의 재편을 위해 대북정책을 전면적으로 수정하겠다는 뜻을 피력했습니다. 그는 "기존의 방식과 선의로는 북한의 핵개발 의지를 꺾을 수 없다"며 북한을 향해 전의를 불태웠습니다.
대통령이 국회에서 대북 강경책을 천명함으로써 박근혜 정부의 대북 정책은 이제 명확해졌습니다. 출구가 없는 외길입니다. 대선 공약이었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는 휴지조각이 됐고, 허울 뿐인 '통일 대박론'은 말그대로 쪽박이 됐습니다. 뿐만 아니라 한반도가 열강들의 이전투구의 장으로 변질되면서 군사적 긴장을 피할 수가 없게 됐습니다.
ⓒ 국민일보
대통령의 국회연설 내용을 들여다 보니 장탄식이 저절로 흘러 나옵니다. 대통령의 연설에는 남북관계와 통일 외교의 내용도 전략도, 구체적인 계획도 보이질 않습니다. 이성이 결여된 비논리적 객기가 국정 최고통수권자의 입을 통해 이날 전세계에 생중계됐습니다. 대통령은 아마도 자신이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조차 모르는 것 같습니다. 오호 통재가 아닐 수 없습니다.
대통령의 공약파기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닙니다. 따라서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중단이 새삼스러울 것은 없습니다. 박근혜 정부의 통일 외교 정책의 핵심 기조였던 이 공약은 사실상 정부 출범후 제대로 가동된 적이 없었습니다. 북한에는 신뢰할 수 있는 행동을 요구하면서 대북전단 살포는 용인하던 정부가 아니던가요. 대통령이 기존의 방식과 선의를 운운하는 것부터가 민망한 일입니다.
가장 우려스러운 점은 대통령이 대북 강경책으로 북한의 핵개발 의지를 꺾을 수 있다고 신봉하는 장면입니다. 북한이 이미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인데, 핵무기를 가지고 있는 국가의 핵개발 의지를 꺾겠다고 합니다. 대통령의 주장은 그 가정부터가 잘못됐습니다. 전시작전권도 없는 우리의 현실에서는 이는 차라리 만용에 가깝습니다. 하룻강아지가 호랑이에게 으름장을 놓은 것과 무엇이 다른지 모르겠습니다.
만에 하나 대통령의 말처럼 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 방법 역시 잘못됐습니다. 개성공단 중단, 사드 배치 같은 대북 강경책으로는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 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북한의 핵개발은 김영삼 정부 시절에 표면화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동안 미국을 중심으로 다양한 경제 제재와 외교적 제재 등이 있었지만 실효를 거두지는 못했습니다. 대북 제재가 효과를 거두었다면 북한이 해무기를 보유하고 있을 리가 없었겠죠. 이는 대북 강경책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는 의미입니다.
ⓒ SBS 뉴스
개성공단 중단은 사실상 우리 정부가 취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경제적 제재 수단이었습니다. 그러나 이해득실을 냉정하게 계산해 보면 우리가 받는 피해가 훨씬 크다는 것이 중론입니다. 당장 북한은 눈 하나 꿈쩍하지 않고 있습니다. 북한의 반응은 개성공단에 진출했던 우리 기업들이 벼랑 끝에 내몰린 것과는 극명하게 대비됩니다. 개성공단 중단으로 인해 정작 우리 기업들의 숨통만 끊어지게 생겼습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우리 정부가 동북아시아를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에 불을 붙였다는 점입니다. 북한의 로켓발사에 사드 배치를 공론화함으로써 한반도를 미국과 중국의 대결의 장으로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중국이 사드 배치를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는 가운데 우리 정부는 당사국임에도 미중 간의 양자회담을 지켜봐야 하는 초라한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경제 봉쇄를 위해 꺼내든 개성공단 중단도 사드 배치와 마찬가지로 미국과 중국의 입장만 쳐다봐야 하는 처지입니다. 대북 경제제재 조치가 실제적인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미 의회의 대북제재법이 강력하게 시행되어야만 합니다. 그러나 이 역시 중국의 적극적인 동조가 없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대통령의 호기와는 달리 우리 정부의 대북 강경책이 자의적인 효과를 발휘할 방법이 없는 것입니다.
현 상황을 타개할 마땅한 전략이 없다는 것은 정부 여당이 더 잘 알고 있는 듯 합니다. 여권 내부에서 핵무장론이 대두되고 있다는 것이 그 방증입니다. 그러나 핵무장론은 정부의 곤궁한 처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에 지나지 않습니다. 북한의 핵보유를 강력하게 비판하면서 핵무장을 주장하는 것 자체가 자기모순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NPT 탈퇴를 전제로 해야 하는 핵개발은 우리나라가 외교 경제적으로 국제적 고립을 감수해야 한다는 의미로 현실성이 전혀 없습니다.
결국 마땅한 대응책이 없이 미국과 중국의 눈치만 봐야 하는 정부와 새누리당으로서는 대북 강경책,
핵무장 같은 자극적인 수사로 대중을 선동하면서 국면을 이념 논쟁으로 끌고 갈 수밖에 없는 입장입니다. 국민의 불안을 고조시키는 한반도의 안보위기상황은 언제나 수구보수세력의 체제를 안정시키는 상수이기 때문입니다.
ⓒ 세계일보
북한의 로켓 발사에 대한 박근혜 정부의 강경대응으로 한반도가 또 다시 대결과 대립의 전장으로 돌변했습니다. 그러나 대통령와 정부 여당의 호기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지극히 제한적이며 수동적입니다. 살펴본 것처럼 미국과 중국 등 열강의 눈치보기에 급급할 수밖에 없는 처지이기 때문입니다.
굳이 평행이론을 거론하지 않아도 한반도의 현 상황은 서구 열강들의 각축장이었던 구한말이나 해방 이후와 비교해 크게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우리는 이 끔찍한 현실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직시해야만 합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란 없는 법입니다. 시민들이 각성하지 않는다면 불행한 역사는 또 다시 되풀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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