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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물ID : humorbest_1206005
    작성자 : 정의당
    추천 : 17
    조회수 : 2061
    IP : 210.127.***.1
    댓글 : 3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16/02/18 01:25:29
    원글작성시간 : 2016/02/16 19:28:09
    http://todayhumor.com/?humorbest_1206005 모바일
    [고전읽기][고민상담소]Ep1.새벽에 찾아 온 손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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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펌글
     
    기억하시는 분들 많을 거 같습니다.
    시리즈물이구요.
    제법 재밌습니다.
    슬프게도 글쓰신 분이 휴재를 하신 이후, 웃대에선 더이상 등장하시지는 않아요.(무신 일이신지... ㅠㅠ)
    그래도 에피별로 나눠져서 읽는데에는 무리 없어요.
     
    ------------------------------------------------------------------
    얼마나 잠을 잔걸까. 알 수 없는 아득함에 저절로 눈꺼풀이 들어진다.
    책을 보다 또 잠이 든 모양이다. 도대체 몇 시까지 읽다 잠이 든 건지.
    어둠속에서 알람시계를 손으로 더듬는다.
    야광버튼을 눌러 시간을 확인한다.
    새벽 두시 반이라.. 축시다.

    눈이 뻑뻑하다.
    눈알을 이러저리 굴리며 블라인드 틈으로 새어드는 빛을 따라 시선을 쫓는다.
    침대 머리맡에 만화책들이 뒹굴고 주전부리하던 과자부스러기들과 빈 봉지들이 어지러이 널려있다.

    항상 내일은 청소를 해야지 하고 다짐을 하지만 막상 다음날에는 또다시 내일로 미루고 그러다 보니
    내 침실은 쓰레기 처리장을 방불케 한다.
    우선 잠을 자는데 불편함이 없도록 대충 과자 부스러기들을 손으로 털어낸다.
    손이 과자에서 배어나온 기름기 때문에 끈적거린다.
    끈적거림을 제거하기 위해 세면대까지 간다는 것은 시간낭비다.
    시트에 손을 비비적 거리며 하얀 침대시트에 얼룩을 또 하나 만든다.

    다시 자야한다. 요사이 돈도 안 되는 일에 치여 밤잠을 설치기 일쑤였다.
    눈을 감아도 뻑뻑함이 가시질 않는다.

    가슴이 답답하다.
    갑작스런 흉통에 숨을 깊게 몰아쉰다.
    등줄기가 서늘하다. 귓전을 맴도는 나지막한 흐느낌 소리.
    갑자기 밀려드는 한기에 눈을 뜬다.
    검은 그림자가 나를 향해 다가오다 사라진다.
    설마.. 아닐거야.

    검은 물체가 보인다.
    어둠에 익숙해진 나의 동공은 그 물체를 놓치지 않고 응시한다.
    기다란 손톱으로 바닥을 긁으며 천천히 나에게 다가오는 그것..

    검은 폭포 같은 머리칼사이로 보이는 새빨간 눈동자와 나의 눈동자가 마주친다.
    밀려오는 한기가 온몸에 소름을 돋게한다.
    식은땀이 내 머릿속을 흥건히 적신다.
    그것의 얼굴은 하얗다 못해 푸르게 창백하다.

    피를 머금은 듯 한 눈동자에서는 금방이라도 피눈물이 줄줄 흘러내릴 듯 하다.
    그 놈이 나를 향해 기분 나쁜 미소를 짓는다.
    그리곤 상어이빨을 연상케 하는 날카로운 이를 드러내며 내 심장을 쥐어 뜯을 것 처럼 달려든다.

    난 몸을 옆으로 살짝 굴리며 그것을 걷어 찼다.
    그것은 '캑'하는 짐승의 소리를 내며 침대 밑으로 굴러 떨어졌고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스탠드 불을 켠 후 그 놈을 향해 소리쳤다.

    "참 가지가지 한다. 나 잘때는 건드리지 말라고 했어. 안했어.
    또 한 번 장난치면 밧줄에 목매달아 창밖에 걸어 놓는다 했지?
    마른 오징어 놀이 한 번 더 할까?
    어.. 아직도 노려본다 이거지. 눈알을 확 뽑아 버려?
    어쭈. 그 눈초리 재수 없다고 했지. 확~ 눈 안 깔아?"

    기분나쁜 미소가 순식간에 비굴한 미소로 바뀐 그놈의 얼굴.
    익숙해 질만도 한데 아직도 순간순간 정신을 아득하게 만든다.
    저놈이 이 시간에 욕먹을 것을 각오하고 내 방에 들어와 이런 시답잖은 장난을 친다는 것은
    손님이 왔기 때문일 것이다.

    가끔 이렇게 영업시간외에 막무가내로 찾아오는 손님이 있긴하다.
    하긴, 이런 장난이나 해대는 쓸모없는 놈이 무슨수로 막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내 수면을 방해한 놈에게 다시 한 번 훈계를 할 필요는 있다.

    "내가 영업시간 외에는 손님 받지 말라고 했지? 도대체 네가 할 줄 아는 게 뭐야.
    장난이나 치라고 내가 널 데리고 있는 줄 알아?
    정신 없으니까 그 머리 묶던지 어떻게 좀 해봐"

    몸을 묶은 후 창밖에 매달아 놓는 일명 '마른 오징어 놀이'가 무섭긴 무서웠나 보다.
    금세 시선을 내리깔고는 변명이라도 하려는 듯 입을 뻐끔거리다가 곧 입을 다문다.

    "나 늦게 자서 너무 피곤하거든. 그러니까 손님한테 아침에 오라 해"

    그 놈은 다시금 내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말을 꺼낸다.

    "너 돈 없잖아. 관리비도 밀렸고 핸드폰 요금도 밀렸잖아.
    그리고 난 머리 묶는거 싫어. 찰랑찰랑하게 풀어 놓는게 좋아"

    젠장. 그놈의 돈이 웬수다.
    밀린 세금들만 아니라면 이 시간에 온 손님을 쫓아 보내 버릴텐데.
    난 투덜거리며 반바지와 티셔츠를 입으며 다시 한 번 그 놈이 있는 곳을 노려본다.

    없다. 이럴 땐 동작이 빠르다. 벼락 맞을 놈.
    긴 머리를 고무줄로 대충 묶고는 안경을 찾는다. 어디에 뒀더라.
    오늘은 기필코 청소를 하고야 말겠다고 다짐은 하지만 정말 청소를 하게 될지는 미지수다.

    문을 열고 나가자 소파에 스물대여섯쯤 되어 보이는 여자가 앉아있다.
    흠.. 하얀 얼굴에 긴 생머리. 갈색 눈동자.
    코가 약간 옆으로 휜 것을 제외하고는 별다른 특색이 없는 미인형이다.

    내가 관찰하는 것을 느꼈는지 슬그머니 일어나 인사를 꾸벅한다.
    예의가 바른 여자인것 같다.
    첫 인상은 이정도면 나쁘지 않다.
    나는 주눅들어 보이는 그녀 맞은편 소파에 걸터앉아 담배를 문다.
    재떨이에는 담배꽁초들이 쌓이다 못해 테이블 위를 굴러다니고 있다.
    라이터는 또 어디에 있는 거야.

    "야! 다중이. 라이터 좀 찾아봐"

    내가 담배를 입에 물었으면 눈치껏 라이터를 찾아봐야 할 것 아닌가.
    그 놈은 잔뜩 불만 섞인 목소리로 날 노려보며 말한다.

    "나 다중이 아니라니까. 내 이름은.."

    "이 새끼가. 내가 다중이라면 다중인거야. 너 다중인격 맞잖아. 아니야?"

    다중이는 구시렁거리며 라이터를 찾는다.

    "여기 있네. 테이블 밑에"

    "네가 쓸모 있을 때는 물건 찾을 때 뿐이지.
    청소를 할 줄 아나. 손님 접대를 잘 하길 하나. 쯧쯧"

    다중이 저 놈은 길거리에서 헤매고 다니는 걸 내가 주워 온 놈이다.
    테이블 밑에 있다는 라이터가 보이기는 하는데 너무 깊속이 들어갔는지 손이 잘 닿질 않는다.

    "저.. 제 얘기 안 들어 주시나요?"

    "잠깐 있어봐. 이놈에 라이터 어디 가서 한 박스 훔쳐 오던지 해야지 원"

    테이블 밑으로 손을 길게 뻗어 라이터를 손에 잡는 순간 그녀의 희미한 다리를 스친다. 얼음장 같다.
    담배에 불을 붙이며 다시 소파에 앉는다.

    "누구한테 내 얘기를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녁 일곱시 이후로는 상담 안 받는다는 소리 못 들었어?
    급한 일 아니면 아침 아홉시 이후에 와"

    이렇게 배짱을 부려야 협상이라는 것을 할테고 그래야 수고비를 더 받을 수 있다. 물론 그것도 돈이라는 걸 받을 수 있는 경우의 얘기지만 말이다.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두 손을 꽉 잡고 있다.
    얼마나 힘 있게 잡았는지 가늘고 긴 하얀 손가락이 더욱 하얗게 질려있다.
    어지간히 다급한 문제인가 보군.

    "그렇다면 수고비도 상당히 비쌀 수 밖에 없어.
    왜 택시를 타도 할증 시간이 있잖아. 내 얘기 이해했지?"

    고개를 힘 없이 끄덕이는 모습이 어째 불안하다.

    "설마 너 돈 없어? 돈이 될만한 보석이나 반지, 목걸이 같은 거라도 환영이야"

    다시금 힘 없이 고개를 흔드는 그녀를 보고 있자니 안쓰러운 생각보다는 돈도 없이 나의 단잠을
    깨운 죄를 물어 목을 비틀어 버리고 싶은 마음 뿐이다.

    "그럼 대신 지불해 줄 부모님이나 형제는?"

    고개를 든 그녀는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고 있다.

    "전 고아에요. 형제도 없고요"

    이런.. 안 돼.
    그런 불상한 눈으로 날 바라봐도 안 돼.
    안 돼는 건 안 돼는 거야.

    '고민상담소'간판을 내건지 어언 여섯 달.
    그동안 일거리는 많았지만 돈이 안됐다.
    돈 안되는 일은 절대 안하겠다고 다짐했지만 사람일 이라는 게 어디 다 내 뜻대로 되던가.

    돈은 확실히 챙겨주겠다던 의뢰가 의뢰인의 실수로 십 원 한 장 받지 못했던 일이 허다했고
    돈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열심히 일을 했건만 꼭 막판에서야 헛수고 했다는 감이 오니
    그것 또한 문제다.

    25평 오피스텔. 이곳이 나의 사무실이자 안식처다.
    내가 가진 전 재산을 탈탈 털어서 약간의 융자를 끼고 구입했다.
    약간 낡기는 했지만 가격도 싸게 나왔고 서울에서 이런 노른자를 구하기는 쉽지 않다.
    나름 조망도 괜찮고 방도 두개다.
    하나는 침실로 쓰고 하나는 거실과 터서 제법 사무실 분위기가 난다.
    아.. 얘기가 다른 곳으로 새는 군.

    "미안. 우리 고민 상담소 철칙. 돈 나올 곳이 없으면 상담은 시작도 하지 않는다.
    시간도 오래 걸리고 개고생해가며 사건을 풀어야 하는 일도 절대 안 된다. 오케이?"

    그녀는 다시금 절박한 눈으로 나에게 애원하며 말한다.

    "제발 부탁드려요. 아마도 제 애인이라면 돈을 내 줄지도 몰라요.
    그사람 부자고, 절 사랑해요"

    "아마? 안 돼. 그렇게 불확실한 거래는 안 해"

    "확실해요. 돈을 줄게 확실해요"

    그러면 그렇지. 흥정은 이렇게 하는거다.

    "그래? 좋아. 맘에 드는 대답이군. 지금 새벽이니까 할증요금 확실히 챙겨 받을 거야.
    오케이? 잠깐 기다려봐. 상담을 기록해야하니까 노트북을 켜는 게 좋겠네"

    그제야 그녀도 진정된 듯 보인다. 사실 거창하게 노트북을 켤 필요도 없다.
    이건 그냥 쇼맨십이라 해야 하나.
    내가 노트북을 부팅하는 사이 할 일 없는 다중이가 계속 그녀 앞을 어슬렁거린다.

    "다중아. 눈깔에 자꾸 뻘건 칠하고 손님들 겁주면 어떻게 한다고 했지?"

    "알았어. 얌전히 구석에서 듣고만 있을게. 쳐다보지도 않고 고개도 숙이고 있을게"

    다중이가 구석으로 간다.

    "쟤는 신경 안 써도 돼. 장난이 심해서 그렇지 착한 애니까.
    자 이제 얘기를 들어볼까? 말해봐. 문제가 뭔지"

    갑자기 잔뜩 긴장했던 어깨에 힘이 빠지는 듯 고개를 떨어뜨린다.
    이런 부류의 손님들은 정작 이야기를 꺼내기까지는 많은 눈물과 시간이 걸린다.
    난 그녀의 얘기가 시작되길 기다리면서 소파에 몸을 깊숙이 파묻으며 담배연기를 연실 뿜어댄다.
    드디어 그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연다.

    "전 살해 당했어요"


    [몇년전에 daum 카페서 연재중이었던 뼈다귀 글에 살을 붙여 모 사이트에 연재했던 글이에요.
    일본에서 만화책으로 출간하자는 제의를 받아 저작권 등록후 연재를 중단했었죠.
    번역작업 끝나고 어느정도 진도가 나가던중.. 어찌저찌해서 엎어졌어요.. ㅎㅎ
    다시 글도 쓰고 싶어졌고.. 완결도 내보고 싶고..
    웃대에서 눈팅만 하다가 처음 글 올려봐요..
    많이 부족하겠지만 잘 부탁드려요.. 꾸벅~ ]
    출처 http://web.humoruniv.com/board/humor/read.html?table=fear&st=name&sk=iceflower&searchday=all&pg=2&number=68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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