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 </p> <p> </p> <p> </p> <p> </p> <p>'미스터 고' 라는 영화가 있다.</p> <p>대충 고릴라가 나와서 뭐 애기랑 같이 야구하고</p> <p>그런 영화인데... 사실 잘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p> <p>이 영화 이야기를 왜 하냐면, 나는 죽을때까지 이 영화를</p> <p>자세히 볼 마음이 단 한개도 없기 때문이고, 별스럽게도</p> <p>그 이유를 이야기하려 함이기 때문이다.</p> <p> </p> <p>나는 '미스터 고' 표지만 봐도 불쾌감을 느낀다.</p> <p>시작은 201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4년이였던가?</p> <p>어쩌면 15년이였을 수도 있다. 글쎄다. 하여튼 나는 당시에</p> <p>소기업쯤 되는 철강공장에서 일했는데 다만 입사 한달이</p> <p>채 안됐었고, 회사는 일을 배우라는 명목아래 나를 명절출근까지</p> <p>시켰다. 그 때 일당이 오만원인가 그랬다. 수습이라고.</p> <p> </p> <p>명절 당일날인가 하여튼 밥을 먹으면서 봤던 영화가 '미스터 고'</p> <p>였고 밥수저를 다 뜨기도 전에 선배들이 밥을 다 먹었다는 이유로</p> <p>티비는 꺼지고 나는 또 일을 하러 나가야 했다.</p> <p> </p> <p>다음날 점심때 쯤 젊은애가 열의가 없다는 선배의 호통에</p> <p>나는 화장실 가는 척을 하며 퇴근했고 그길로 돌아가지 않았다.</p> <p> </p> <p> </p> <p>그 뒤로 희한하게 그 영화 표지만 보면 온몸에 기분나쁨이</p> <p>진흙처럼 묻어난다. 다른 많은 불쾌함도 겪었는데 왜 하필</p> <p>그 영화만 그럴까.</p> <p> </p> <p>아니 별건 아니고...</p> <p>그냥 티빙 들어가서 뭘 좀 볼까 하다가 그 영화가 눈에 띄어서</p> <p>한번 써 봤다. 생각이 나서.</p> <p> </p> <p> </p> <p> </p> <p> </p> <p>#2.</p> <p> </p> <p>현재까지 17키로를 감량했다.</p> <p>문제는 시도때도 없이 찾아오는 식욕이다.</p> <p>나는 내가 여자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요새 식욕을</p> <p>엄청나게 느끼고 산다. 심할때는 자다 일어나서 냉장고를</p> <p>뒤지다가 닭가슴살과 고구마밖에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p> <p>머리를 쥐어 뜯은 적도 있다.</p> <p> </p> <p>그럼에도 불구하고 계획은 차근차근 진행중이다.</p> <p>이번이 아니면 정말로 나에게 남은건 돼지같은 먹성과</p> <p>돼지같은 삶 뿐이라는 것을 매일 떠올리며 밤마다 혹은 때도없이</p> <p>찾아오는 식욕과 나태함과 싸운다. 그래 내가 뭔가와 이렇게</p> <p>싸운게 내 인생에 단 한번이라도 있던가.</p> <p>그렇게 생각하면, 아무것도 먹지 않고 온전히 맞이한 아침에는</p> <p>내 자신이 자랑스러워 '그래 너는 닭가슴살을 먹을 자격이 있어'</p> <p>라고 중얼거리며 아침부터 닭가슴살을 씹어 밀어넣고 출근한다.</p> <p> </p> <p>근데,</p> <p> </p> <p> </p> <p>월요일날 그게 한번 무너졌다.</p> <p>그날은 뭔가에 홀렸던 것 같다.</p> <p>퇴근하고 나서 나도모르게 치킨을 시켰다. 맥주도 시켰다.</p> <p>호텔델루나를 틀고 치킨을 깠다.</p> <p> </p> <p>냉장고 깊숙히 당분간은 꺼낼 일 없을 것 같던 소주도 꺼냈다.</p> <p>먹었다. 계속 먹었다. 흡사 아무생각없이 먹던 그 시절처럼</p> <p>그냥 계속 먹었다. 먹다가 라면에 눈이 갔다.</p> <p>라면도 끓여먹고 밥도 말아먹었다. 남은 술을 모두 마셨다.</p> <p>취한데다가 너무 많이 먹어서 속에서 올라오는데 꾸역꾸역</p> <p>술을 마셔댔다. 중간에 술이 너무 써서 초콜렛도 세개를</p> <p>까먹고 빵과자도 먹었다.</p> <p>그사이에 호텔델루나 2회분을 봐버렸다.</p> <p> </p> <p>그제서야 정신이 들었다.</p> <p> </p> <p>나는 내 앞에 놓인 술병과 과자, 치킨과 라면이 있었던</p> <p>그릇을 바라보며 정신없이 웃다가 담배를 피웠다.</p> <p> </p> <p>컴퓨터화면에서는 여전히 호텔델루나가 재생되고 있었다.</p> <p> </p> <p>문득 그 전날 밤 런지 200개를 채웠던 기억이 떠올랐다.</p> <p>새벽같이 헬스장에 나가 뛰고 웨이트하던 기억들이 떠올랐다.</p> <p>기어코 올게 왔다며 나를 비웃는 내면의 자신이 눈앞에 보였다.</p> <p> </p> <p>모든걸 포기하려는 생각이 빠르게 들었다가 빠르게 사라졌다.</p> <p>고작 이딴걸로 포기할 정도로 무르지 않다. 그렇게 생각하니</p> <p>정신이 맑아졌다.</p> <p> </p> <p>나는 정신을 잃지 않기 위해 휴대폰을 켰다.</p> <p>술이 빠르게 깼다. 미친인간처럼 칼로리 기입장에 쳐먹은 그것들을</p> <p>또박또박 써내려갔다. 휴대폰을 끄자마자 바로 자고 세시간뒤인</p> <p>새벽 다섯시 반에 일어나 또 헬스장으로 향했다. 이어폰에 음악을</p> <p>최대 음량까지 올린 채 네시간을 웨이트와 유산소만 반복했다.</p> <p> </p> <p>'죽을것 같으면 죽으라지. 근데 이딴 개같은 모습을 죽을 수는 없어'</p> <p> </p> <p>그런 생각으로 나는 네시간의 지옥같은 고통을 온몸으로</p> <p>받아들였다.</p> <p> </p> <p> </p> <p>돼지같이 쳐먹은 그 다음날 나는 모든 용기를 짜내 체중계 위에</p> <p>올라갔고 1키로가 불어나 있는 것을 확인한 뒤에 그것을 잊어버렸다.</p> <p> </p> <p>쳐먹은 것은 과거의 내가 사죄하면 될 일이다. 그렇게 생각하고</p> <p>미래의 나만 보기로 했다. 다행히 몸무게가 더 불어나는 일은 없이</p> <p>마의 90대 초반에 입성했다. 조금 굴곡은 있었지만 다행이였다.</p> <p> </p> <p>그래도 이번 일로 인해 느낀것이 있었다.</p> <p>무조건적인 채찍은 독이된다. 나는 2주에 한번은 좋아하는 것과</p> <p>술을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누군가 내 글에 댓글로 '니 안에 있는 그</p> <p>나태한 너도 너 자신인데 걔도 보듬어 안아줘라' 라고 써주셨는데</p> <p>그 말의 의미를 이제야 좀 이해할 것 같다.</p> <p> </p> <p>아 근데 피자랑 햄버거는 안됨. 그건 진짜 안됨.</p> <p> </p> <p> </p> <p> </p> <p> </p> <p>#3.</p> <p> </p> <p>살빠지고 몸 만들고 진짜 하고싶은게 하나 있다.</p> <p>시카고에 나왔던 케서린제타존스처럼 화장하고</p> <p>(참고로 난 남자다.) 입에는 담배를 물고,</p> <p>누가봐도 여장남자 티가 나는데 그상태로 화보처럼 </p> <p>스튜디오에서 사진한장 찍어보고 싶다.</p> <p> </p> <p>왜하냐고 묻는다면, 유니크 하잖아. 내 생에 그런 사진</p> <p>하나 남긴다는게.</p> <p> </p> <p>오버워치라는 게임에 나오는 케릭터 코스프레도 하고싶고,</p> <p>요새도 부산 벡스코 가야 하나...</p> <p>상의탈의하고 수영장 한번 가보고 싶다.</p> <p>욕심도 많지 나란 놈은.</p> <p> </p> <p> </p> <p> </p> <p> </p> <p>#4.</p> <p> </p> <p>오래간만에 집청소를 좀 했다.</p> <p>아령밑에 양말 택배봉지가 깔려있어서 그냥 치우려다가,</p> <p>묠니르를 힘겹게 드는 캡틴아메리카를 흉내냈는데 손을</p> <p>삐끗하는 바람에 엄지발가락에 10키로짜리 아령을 찍어버리고</p> <p>말았다. 나도모르게 헔컰 하며 주저앉아서 엄지발가락을 붙잡고</p> <p> </p> <p>"전하. 소신은 아무 죄가 없나이다." 하면서 부들거렸다.</p> <p> </p> <p>아프긴 진짜 아팠다. 죽을뻔했다. 누가 그러던데?</p> <p>아픈만큼 성숙해진다고. 근데 이 상황에 써야 하는 말인가.</p> <p>하도 아파서 스타 한 두판하고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p> <p> </p> <p>결론 진짜 이상해. 제정신 아닌 것 같아.</p> <p> </p> <p> </p> <p> </p> <p> </p> <p>#5.</p> <p> </p> <p> </p> <p>같이 다이어트를 시작한 사장은 간헐적 단식이라며</p> <p>10시간을 굶고 한번 식사를 하는데, 카스테라에 냉면을 한끼에 먹는다.</p> <p>식사 대용이라며 단백질 쉐이크를 마시고... 그만 이야기하고싶다.</p> <p> </p> <p>한번은 웨딩촬영한다고 턱시도 사이즈를 맞추러 갔다온 사장이랑</p> <p>대화를 좀 했는데,</p> <p> </p> <p>"야. 오늘 턱시도 사이즈 재러 갔다왔는데..."</p> <p> </p> <p> </p> <p>"잘 다녀오셨나요."</p> <p> </p> <p> </p> <p>"어 근데 허벅지를 맞추면 배가 안맞고 배를 맞추면 허벅지가</p> <p>헐렁하고 아 이새끼들 사기꾼 아니냐."</p> <p> </p> <p> </p> <p>"...그건... 형이 그만큼 배가 나왔다는 거에요..."</p> <p> </p> <p> </p> <p>"그러면 샵에서 그런걸 맞춰줘야지. 안그러냐?"</p> <p> </p> <p> </p> <p>"...세상엔 수학으로 안되는 일들도 많아요... 맞춤정장...</p> <p>뭐 그런걸로 하세요..."</p> <p> </p> <p> </p> <p>별 도움 안되는 말이란거, 잘 알고 있었지만 글쎄다.</p> <p>내가봤을때 사기꾼이라고 그사람들을 몰아가기 보다는...</p> <p>그렇게 굶고 한번에 먹고 그러는게 더 사기같다는 생각을</p> <p>하는 편이 본인에게도 좀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p> <p>그렇게 생각해본다.</p> <p> </p> <p> </p> <p>그래도 어찌저찌 맞췄는지, 내일 웨딩촬영 하러 간단다.</p> <p>좋겠네 결혼 시발거 행복해라 이새끼야.</p> <p> </p> <p> </p> <p> </p> <p> </p> <p> </p> <p> </p> <p> </p> <p>#마치며.</p> <p> </p> <p> </p> <p>일단 잠을 좀 자야겠다.</p> <p>내일 아침엔 헬스장도 가야 하고, 오전 열시 반에 미용실<br>예약도 좀 해놨고, 이번에야 말로 부분염색 끝내고 머리좀</p> <p>다듬어야지. 혹시라도 머리 기를 생각하는 남자분들 계시다면</p> <p>저를 반면교사 삼으세요. 기르지마세요. 힘들어요 이거.</p> <p> </p> <p>오후에는 동네형도 좀 만나야 하고 고구마도 좀 깎아놔야 하고</p> <p>서점가서 책도 좀 봐야 하고 하여튼 주제에 할일많은 척은 아주</p> <p>누가보면 일론머스크만큼 바쁜줄 알겠어.</p> <p> </p> <p>그래도 기분은 좋으니 봐준다 나새끼야.</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