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이해찬이 대선 전략가로 김대중, 노무현의 당선에 크게 기여했고 대선 경험이 가장 많은 사람입니다.</span></div> <div>근데 지난 대선 때 당대표로 대선 진행 중이던 이해찬을 갑자기 안철수가 단일화 조건으로 퇴진 시키라고 요구해서 물러났죠. </div> <div>문재인의 회고록 (1219 끝이 시작이다) 에 보면 안철수 요구를 거부 못하고 이해찬과 손발맞는 친노 측근들을 선거캠프에서 뺐다가 공백사태가 오고 연설문까지 직접 준비해야 해서 한계가 있었고 이게 큰 패인중의 하나이다 라고 합니다. (이래놓고 안철수는 "투표일에 배낭메고 비행기 타고" 미국감)</div> <div>그 당시 이해찬의 공백을 정세균이 전대표가 메워줬는데 지금 국회의장이라 도울수가 없죠. </div> <div><br></div> <div>------<span style="color:#333333;font-family:gulim, Dotum, Helvetica, AppleGothic, sans-serif;line-height:21.6px;font-size:9pt;">1219 끝이 시작이다 - 문재인 저 </span><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span></div> <div>"이해찬 당대표가 물러나면서, 당장 리더십의 공백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민주캠프-시민캠프-미래캠프를 조율하고 조정해 줄 사람이 없었습니다. 선거를 코앞에 두고 신속하게 의사결정을 해야 할 사안이 많았는데, 그런 업무를 매사 선대위원장단 회의를 통해 결정하다 보니 한계가 있었습니다.</div> <div><br></div> <div> 선대위가 담당하기 어려운 외부 인사 영입 문제, 특히 비중 있는 중도나 보수 인사 영입에서도 후보를 대신해서 결정하고 만나서 담판을 지어 줄 비중 있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사령탑이 없는 합의제 선대위 구도에 공백이 생겼습니다.</div> <div><br></div> <div> 당시 지도부의 공백을 훌륭하게 메워 준 분이 선대위 상임고문이었던 정세균 전 대표였습니다. 지도부 공백 상태가 오자, 자청하다시피 상근을 하면서 선대위의 좌장 역할을 기꺼이 감당해 줬습니다. 외부 인사들의 영입 등 선대위가 논의해 결정하기가 어려운 일들을 저 대신 감당해 줬습니다. 선거운동을 위해 전국으로 떠돌아다니는 저를 대신해서 회의를 관장하고, 책임감 있게 중요한 업무를 추진해 줬습니다.</div> <div><br></div> <div> 정 전 대표는 당내 후보 경선 때도 언제나 선공후사의 원칙을 지키며, 모바일투표 논란 속에서도 경선이 파탄나지 않도록 지켜줬습니다.</div> <div><br></div> <div> 사실 정 전 대표는 정치적 경륜은 물론 분수경제론 등의 정책에서 가장 준비가 잘된 후보였습니다. 하지만 저와 지지 기반이 겹치는 바람에 경선에서 피해를 많이 봤다는 미안함을 제가 갖고 있었습니다. 경선에서도 본선에서도 제가 신세를 많이 진 셈입니다."</div> <div>...</div> <div>...</div> <div><br></div> <div> "결국 이 전 총리는 국회의원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대선에 도움이 되기 위해 총선 출마 결심을 하게 됐습니다. 또 대선 승리와 정권 교체에 앞장설 마음으로 당대표 출마까지 한 것이었습니다.</div> <div><br></div> <div> 그런데 오히려 대선 승리의 걸림돌처럼 돼 정치적 치욕 속에 불명예 퇴진할 수밖에 없도록 했으니, 저로서는 여간 미안한 노릇이 아닐 수 없습니다.</div> <div><br></div> <div> 이른바 ‘친노 측근 그룹 9인’의 사퇴도 그 일이 얼마나 큰 전력 손실로 이어질지 미처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특히 방송연설이나 토론 준비에 공백이 매우 컸습니다.</div> <div><br></div> <div> 당에서 뒷받침해 준 분들이 손색없는 역량으로 혼신의 힘을 다해 줬지만, 아무래도 평소 저의 생각이나 스타일을 꿰고 있지 못하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부득이 제가 직접 손보고 준비해야 할 몫이 많아져서, 시간상으로나 체력적으로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div> <div><br></div> <div> 선거 홍보나 캠페인의 면에서도 충분한 사전 준비가 없었던 데서 비롯된 부족함이 많았습니다. 경선 때부터 저와 호흡을 맞춰 왔던 홍보팀과, 후보가 된 후 확대된 당의 홍보 역량 사이에 화학적 결합을 이뤄 내지 못했습니다. SNS를 이용한 홍보나 캠페인도 출마 선언을 준비하거나 경선 때만큼 활발하지 못했습니다. SNS 분야에서 가지고 있는 우리의 우위를 충분히 살리지 못했습니다.</div> <div><br></div> <div> 그에 비하면, 새누리당은 일찍부터 준비한 홍보 전략에 따라 당명을 바꾸고, 당의 상징색까지 대담하게 바꾸면서 달라진 이미지로 훨씬 산뜻한 홍보를 했습니다. 충분한 준비 기간이 만든 성과였습니다."</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