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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차단 상태
    버럭오바마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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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입 : 08-08-21
    방문 : 191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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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물ID : humorbest_290552
    작성자 : 버럭오바마
    추천 : 15
    조회수 : 1879
    IP : 211.52.***.236
    댓글 : 3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10/08/05 17:09:22
    원글작성시간 : 2010/08/03 10:44:27
    http://todayhumor.com/?humorbest_290552 모바일
    [펌][존나김][매우 오래됨][그래도조낸재밌음] 흉가이야기-4
    8. 테잎속의 비밀(2)

    사내 하나가 몸을 뒤로 돌리려 하자 목소리는 더욱 강경하게 나왔다.

    "등짝에 구멍나기 싫으면 고개 돌리지 않는게 좋을거야. 얌전히 총을 내
    려놓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두 손을 머리에 얹으라구....."

    사내들이 어쩔 수 없이 시키는대로 하자 목소리가 이번에는 해일과 혜경
    쪽을 향해 소리쳤다.

    "앞에 두 사람 천천히 뒤로 돌아!"

    잔뜩 긴장한채 뒤로 돌던 혜경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난데없이 나타
    난 사내는 바로 박호철 순경이었던 것이다. 혜경이 뭐라고 말하려 하자 
    박호철이 눈을 찡긋하며 조용하라며 손가락을 입에 갖다 댔다. 그리곤 땅
    에 있던 끈을 집어 던지며 말했다.

    "거기 앉아 있는 두 사람 묶어!"

    혜경과 해일이 빙긋 한번 웃곤 주저앉은 장과장과 박수사관을 끈으로 단
    단히 묶었다. 혜경이 소리쳤다.

    "자, 이젠 뭘 하면 되죠?"

    그러자 박호철이 특유의 앳띤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뭘하긴요, 바닦에 권총 들고 달아나야죠!"

    혜경이 반갑게 그를 감싸 안으며 말했다.

    "도대체 어떻게 된거야?"

    "사실 저도 처음부터 이 사람들이 좀 이상하더라구요. 이 두사람 말고 또 
    한사람 있었잖아요. 감색 양복 입은 사람.... 그 사람이 줄곧 저를 감시하
    질 않겠어요? 그래서 잔뜩 몸을 사리고 있는데 윤형사님과 정PD님이 이 
    두사람과 마을을 벗어나는걸 봤는데 뭔가 낌새가 수상쩍어서 유심히 보니
    까 이 두사람한테 잡혀 가는게 아니겠어요? 그래서 저를 감시하던 사내한
    테 소변 좀 보고 온다고 하곤 줄행랑을 쳐서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었죠"

    혜경이 놀랍다는듯 박호철의 어깨를 툭툭 쳤다.

    "박순경, 항상 어린애 같기만 하더니 지금 보니까 그게 아닌데?"

    말을 마친 혜경이 허탈하게 주저앉은 두 사람을 향해 돌아섰다.

    "자, 장과장님, 이제 당신들이 누군지 한번 말을 해 보실까요? 그리고 우
    리를 어디로, 왜 데려갈 셈이었죠?"

    장수사관이 조금도 굽히는 기색없이 대답했다.

    "우린 당신들을 보호하려는 것 뿐이었소. 다소 절차상에 무리가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런 소리 말아요, 우리도 자신의 몸 하나 지킬 정도의 여력은 있으니까 
    어설프게 우릴 보호하느니 어쩌니 하는 소리는 집어 치워요. 엉뚱한 소리 
    말고 내 질문에나 대답해요"

    "그럴 필요 없어요. 그들은 K기관 정보원들이예요"

    박호철이었다. 그는 주머니에서 신분증 두개를 꺼내들곤 의기양양하게 말
    했다.

    "제가 미리 와서 그들의 차를 조사해 봤거든요"

    해일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K기관 정보원이 왜 우릴?"

    혜경이 장과장의 안주머니에서 촬영테잎을 꺼내들고 윽박질렀다.

    "이번 사건은 단순한 살인사건이 아니예요, 그렇죠? 당신들은 처음부터 
    이번 사건에 대해 뭔가 알고 있었던 거죠, 안그래요?"

    "우리도 아직 분명하게 아는건 아무것도 없소. 단지 이번 사건이 우리의 
    능력으로 통제하기 어려운 초자연적인 어떤 현상과 관련이 되어 있다는 
    것 밖엔....."

    "초자연적인 현상? 설마 당신도 우릴 습격한 그것들이 귀신이니 유령이니 
    하는 것들의 짓이라고 말하려는건 아니겠죠?"

    "물론 그건 아니오. 하지만 당신들이 당한 일이 현실에선 설명이 불가능
    한 일이며 지극히 위험한 상황이라는 것이오. 우리에게 협조하지 않으면 
    당신들은 앞으로 단 몇 일도 버티기 힘들 것이오. 그곳을 다녀온 모든 사
    람들이 이미 죽었다는 것을 당신들도 잘 알텐데?"

    그의 말에 세사람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해일이 침울하게 물었다.

    "그럼, 당신들이 뭘 할 수 있다는거죠?"

    "우선은 그 초자연적인 현상이 어떤 것인지 좀 더 명확하게 분석할 필요
    가 있어요. 그래서 앞으로 당신들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우리는 면밀하게 
    관찰해야만 합니다"

    그러자 혜경이 냉소적으로 쏘아붙였다.

    "결국 우릴 실험대상으로 쓰겠단 얘기군요?"

    "그런 뜻이 아닙니다"

    "변명하지 말아요. 그렇다고 당신들이 현재 우릴 구할 방법을 가지고 있
    는 것도 아니잖아요?"

    "현재로선 그렇지만....."

    "그렇다면 혹시.... 병원으로 간 김익재 감독이나 배영환, 강은영씨도?"

    그는 잠시 생각하는듯 하다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그렇소. 그 분들은 이미 우리의 보호하에 안전하게 있소"

    해일과 혜경의 이에서 동시에 신음이 터져 나왔다. 박호철이 끼어들었다.

    "이제부터 우린 어쩌죠? 저들의 말을 믿어야 할까요?"

    다시 장수사관의 얘기가 이어졌다.

    "현재 우리 기관에선 이번 사건을 위해 저명한 물리학 박사를 비롯, 많은 
    전문가들로 구성된 특별한 기구를 만들었소. 그들이 당신들을 위험에서 
    구할 수 있을거요. 만약 지금 당신들의 잘못된 생각으로 이 자리를 이탈
    한다면 상황은 더욱 어려워 질 것이오"

    혜경이 결심이 선 듯 두사람에게 단호하게 말했다.

    "우린 당신네들의 보호같은 건 필요없어요. 그리고 당신들은 처음부터 우
    리에게 접근하는 방법부터가 틀렸어요. 그래서 우리는 더더욱 당신들을 
    신뢰할 수가 없고..... 그리고 지금 당신들이 데리고 있는 사람들 당장 풀
    어주는게 좋을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우린 이 사실을 온세상에 떠들썩하
    게 알릴 테니까. 그렇게 되면 당신들도 여간 곤란한게 아닐껄?"

    "멍청한 짓 말아요. 그건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뿐이오. 당신들은 이번 사
    건의 핵심을 아직 파악조차 못하고 있소"

    그러자 혜경이 승용차에 올라타며 싸늘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런건 우리 관심사가 아닙니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사실은 이 
    끔찍한 악몽에서 어떻게 깨어 나느냐 하는 것이니까"

    * * *

    통제실에는 병실 마다 은밀하게 설치된 두개의 카메라를 통해 병실 내부
    의 모든 상황을 여섯개의 모니터가 낱낱이 보여주고 있었다. 배영환이 벌
    서 5분이 넘게 병실의 방문을 두들겨대며 소릴 지르고 있었다.

    "이 자식들아, 우릴 내보내 줘! 우리가 뭘 잘못 했다고 이렇게 가둬 놓은
    거야! 당장 우릴 내보내 달란 말이야!"

    그러나 번번히 되돌아 오는 것은 공허한 그의 메아리뿐이었다. 참다못한 
    김감독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만 둬! 그래봐야 소용없어!"

    "그럼, 이대로 주저앉아 있잔 말씀이세요?"

    김익재 촬영감독이 유리벽 하나를 사이에 둔 배영환에게 낮은 소리로 속
    삭였다.

    "아무래도 놈들이 우릴 관찰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어"

    "뭐라구요?" 

    배영환이 방안을 한바퀴 둘러 보았다.

    "아무리 둘러봐도 카메라 같은건 보이지 않잖아요?"

    "카메라쯤 숨기는건 일도 아니야. 중요한건 그게 아니고 대체 저들이 누
    구이며 우리를 왜 이리 데리고 왔는가 하는거야"

    "아무래도 간밤에 저희가 당한 일과 관련이 있겠죠. 전 불안해서 아주 죽
    을 지경이예요. 산넘어 산이라더니.."

    "은영씨는 어때? 아까부터 구석에 주저앉아 아무말도 없잖아. 한번 가봐"

    "여러모로 충격이 컸던 것 같아요. 개자식들 어떤 자식들이 사람을 이렇
    게 함부로 감금을 하는지.... 만약 여기서 나가기만 하면 이것들을 그냥...."

    "쓸데없는 소리말고 은영씨한테나 가봐. 과연 무사히 이곳을 나갈 수 있
    을지도 모르겠어. 내 예감에 여긴 보통 곳이 아냐"

    배영환이 자신의 우측에 있는 강은영의 방을 향해 다가갔다. 그들의 사이
    에도 투명한 벽이 가로막고 있었다. 그녀는 무릅 사이에 고개를 묻은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녀에게선 더이상 예전의 밝고 활기에 넘치던 모습을 찾아볼 순 없었다. 
    그는 주위의 눈치를 살피곤 조심스럽게 그녀를 불렀다.

    "강은영? 괜찮아?"

    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고개를 무릅 사이에 묻은채 아무 말이 없었다.

    "강은영, 이런 때일수록 기운을 내야지! 은영씨, 내 말 듣는거야?"

    그제서야 그녀가 고개를 들고 배영환을 돌아 보았다. 파리한 그녀의 얼굴
    이 그의 마음을 뭉클하고 저리게 만들었다.

    "선배, 우리가 어쩌다 이 지경이 된 거죠? 이게 뭐예요? 마치 무슨 동물
    실험실에 갇힌 것 처럼..... 우린 결국 모두 죽을 거예요. 마을 주민들도 그
    랬고, 구반장님도 그랬잖아요"

    "바보같이 우리가 죽긴 왜 죽어? 아직 시집, 장가도 못 갔는데...."

    "이 판국에 지금 그런게 다 무슨 소용이예요? 그렇게 장가가고 싶은 사람
    이 뭐 하느라 아직 노총각이예요?"

    "장가는 뭐 아무나 가나? 나같이 고리타분하고 구시대 사람을 누구 좋다
    고 하겠어? 내가 생각해도 한심한데....."

    "선배가 뭐가..... 어떻다고 그래요? 그만하면.... 인정 많고, 사람 착하고..... 
    뭐 결혼이 별건가요? 서로 마음 맞으면 대충 살면 되지"

    "정말.... 그렇게 생각해? 그럼 은영씨는 왜 아직 결혼 않했어? 이제 결혼
    할 나이 됐잖아! 주위에 남자도 많던데....."

    "저요? 후후.... 남자가 많으면 뭐해요? 다들 친구고 동료고 그런 사람들이
    지 정작 애인은 없어요. 오히려 저 같이 겉보기에 번지르한 애들이 사실
    은 실속이 없다구요"

    강은영은 짐짓 풀이 죽은 목소리로 힘없이 중얼거렸다. 그녀의 그러한 모
    습은 언제나 자신만만하고 도도해 보이던 평소 그녀에게서 한번도 본 적
    이 없는 모습이었다. 

    또한 그는 예전에 그녀에게서 전혀 느끼지 못했던 쓸쓸함이나 외로움 같
    은 자신에게나 어울릴 것 같은 그런 감정들을 엿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러한 그녀의 모습은 뜻밖에 그에게 상당한 용기를 불어 넣어 주었다. 

    그는 이번이 아니면 앞으로 영원히 자신의 본래 마음을 그녀에게 털어 놓
    을 수 없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기..... 으..... 은영씨, 있잖아.... 나 어때?"

    배영환의 더듬거리는 말투에 강은영이 의아한 얼굴로 돌아 보았다.

    "뭐.... 가요?"

    "나.... 어떠냐구? 그러니깐..... 은영씨가 보기에 내가 어떠냐구. 객관적으로 
    남들에게 어떻게 보이느냐가 아니구 바로 강은영씨가 보기에 나라는 남자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는거야"

    강은영은 갑작스런 배영환의 얘기에 그 의미를 알아내느라 애쓰는 것 같
    았다. 그리고 그녀가 그의 말의 진정한 의미를 눈치채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얼굴에 나타난 그녀의 당혹스런 표정만으로도 그는 그것을 충분히 예감할 
    수 있었다. 그녀는 그녀답지 않게 몹시 덤벙대고 있었다. 그 짧은 시간이 
    배영환에겐 십년도 더 되는듯 길게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마침내 그녀가 
    입을 열었다.

    "선배 지금 저한테..... 프로포..... 즈 하는 거죠?"

    배영환이 고개를 끄덕였다.

    8. 테잎속의 비밀(3)

    "글세.....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갑자기 왜 그런 생각을 했어요? 내가 
    알기론 선배는 날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그렇지 않아, 나도 처음엔 그게 미움인줄 알았어. 근데.... 그게 아니었어. 
    나도 내 자신의 이런 감정을 알고 스스로에게 몹시 놀랐어. 은영씬 나같
    은 사람이 넘보기엔.... 뭐랄까..... 훨씬 잘 나가는 여자잖아. 그리고 은영씨
    에게 난 너무 어울리지도 않고....."

    강은영의 얼굴에 멎적은 미소가 번졌다. 

    "정말 선배가 그런 생각을 했어요? 선배같은 사람이 나한테 그런 감정을 
    가졌단 말예요?"

    강은영이 놀랍다는 표정으로 그를 빤히 쳐다볼때 배영환은 역시 그녀는 
    자신의 여자가 되기에는 너무 높은 곳에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는 이제 자신에게도 말로만 듣던 사랑의 아픔이라는 낯선 상처
    가 찾아들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녀의 다음 얘기는 전혀 그의 예
    상을 뛰어 넘는 것이었다.

    "선배는 정말 바보예요. 좋으면 좋다고 말을 하지 왜 구박을 해요? 좋다
    고 말하면 제가 딱지라도 놓을 줄 알았어요?"

    그녀의 말에 고개를 숙였던 배영환이 다시 번쩍 고개를 들었다. 

    "사실은 저도 선배한테 뭐랄까....괜...찮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
    데 맨날 구박만 하니까 선배는 저에 대해 좋지 않게 생각하는줄 알았죠"

    "저.... 정말이야? 지금 한 얘기가 정말이냐고?"

    배영환이 흥분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강은영이 기겁을 하면서 입에 손가
    락을 갖다대곤 속삭였다.

    "제발, 조용히 좀 해요. 우린 지금 갖혀 있다구요. 그리고 바로 옆방에 김
    감독님도 있는데 동네방네 소문낼 일 있어요?"

    "아무려면 어때, 차라리 이렇게 갖히게 된게 난 오히려 잘된 일 같아. 안
    그랬으면 아마 난 영원히 내 마음을 고백하지 못 했을거야. 고마워, 은영
    씨. 고마워!"

    배영환은 자신과 강은영의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유리벽이 그렇게 원망스
    러울 수 없었다. 그것만 아니었더라면 그는 필경 강은영을 있는 힘껏 껴
    안고 말았을 것이다. 

    * * *

    모니터를 지켜보던 우일만 박사가 장수사관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는 물
    리학 분야의 저명한 인물이었다.

    "그래서 테잎도 가져 오지 못했단 말이요?"

    "죄송합니다. 최대한 빠른 시일안에 그들을 찾도록 하겠습니다"

    "낭패군, 테잎이 있어야 저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좀 더 정확한 분석
    을 할 수 있을텐데.... 손박사 생각은 어떻소? 아직도 목촌리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이 무속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시오?"

    우박사가 질문을 던진 사람은 뜻밖에도 처음 해일이 테잎을 들고 찾아갔
    던 손남의 박사였다.

    "아닙니다. 저 역시 지금은 우박사님 의견에 전적으로 동감입니다. 만약 
    그렇다면 오늘밤 그들이 저 사람들을 찾아오겠군요?"

    "아마 내 추측이 맞다면....."

    "그래도 너무 잔인한 방법이 아닐까요, 이런 식으론?"

    "어차피 죽을 사람들이오. 이미 달아난 세사람도 마찬가지고. 몇 일 더 버
    틸 수 있을진 몰라도결국에는....."

    * * *

    경찰서엔 마침 그녀가 잘 알고 있는 의경 두사람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
    었다. 그녀는 급한 서류를 찾으러 왔다고 둘러대곤 구반장의 서랍을 뒤쳤
    다. 

    구반장의 말대로 그의 서랍속에서는 과연 보통 노트 두께의 서너배는 됨
    직한 두껍고 낡은 노트가 나왔다. 혜경이 그것을 가슴에 소중히 숨기고 
    막 사무실을 나오려고 할 때였다. 둘중 고참되는 김한민 수경이 그녀의 
    앞을 가로막고 나섰다.

    "윤형사님, 죄송합니다. 지금은 여길 나가실 수 없습니다"

    "김수경! 지금 무슨 소리 하는거야? 나갈 수 없다니?"

    "상부의 지시가 있었습니다. 만약 윤형사님이나 박순경님이 돌아오면 잡
    아두라는....."

    "아니, 왜 나를 잡아 두라는거지?"

    그러자 그는 잠시 망설이다가 어렵게 말했다.

    "그게....저..... 현재 윤형사님은 살인용의자로 수배중입니다"

    "뭐... 뭐라구? 살인 용의자?"

    "그렇습니다"

    이번엔 뒤에 서 있던 이영운까지 가세하며 그녀를 막아섰다. 그의 손엔 
    벌써 은빛 수갑이 들려 있었다.

    "너.... 너네들 정말 이런 식으로 나올꺼야?"

    "죄송합니다. 저희도 어쩔 수 없습니다"

    김한민이 이영운을 돌아보며 말했다.

    "수갑 채워!"

    이영운이 쭈삣거리며 막 혜경의 손목에 수갑을 채우려 할 때 혜경의 팔꿈
    치가 그의 턱을 올려쳤다. 이영운이 '욱'하는 소리와 함께 자신의 턱을 감
    싸쥐며 뒤로 물러섰다. 

    놀란 김한민이 '어....어?'하는 사이 이미 혜경의 손에는 권총이 들려 있었
    다.

    "어떤 자식들인지, 까불지들 말라 그래! 이 윤혜경이를 그렇게 호락 호락
    하게 봤다간 큰 코 다칠 줄 알라는 말도 꼭 전하라구, 알았어?"

    그녀는 하얗게 질린 김한민을 남겨둔 체 날쌔게 경찰서를 빠져 나왔다. 
    경찰서 밖 차안에는 해일과 박호철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급한 숨을 
    몰아쉬며 차안으로 뛰어든 혜경이 소리쳤다.

    "어서 출발해요!"

    그녀의 소리에 맞춰 해일이 엑셀에 힘을 주자 차는 급한 가속음을 뒤로 
    하고 쏜살같이 달아났다.

    "찾았어요?"

    해일이 뒤로 돌아보며 물었다. 

    "네! 근데 아무래도 이곳에 머무는 건 위험한 것 같아요. 이미 우리 세사
    람에 대해 전국에 수배령이 내린 모양이예요"

    박호철이 말도 안된다는듯 소리쳤다.

    "그게 무슨 소리예요? 우리가 무슨...."

    "지금 그런거 따질 때가 아냐. 서울로 가는게 낫겠어요. 이곳은 바닥이 워
    낙 좁아서 마땅히 숨을 곳도 없다구요"

    해일이 대답했다.

    "그럽시다. 테잎도 보고 하려면 나도 이곳보단 서울이 편하니깐....."

    그들이 서울에 닿은 것은 밤 9시가 넘어서 였다. 아무래도 집이나 방송국 
    쪽에는 이미 기관원들이 깔려 있을 것 같아 강남에서 프러덕션을 하는 후
    배를 찾아갔다. 

    밤 늦은 작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려던 해일의 후배 이근택은 느닷없
    이 들이닥친 해일 일행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해일형, 이 밤중에 무슨 바람이야? 바쁜 사람이 날 다 찾아 오고?"

    "여기 혹시 나 찾아온 사람 없었냐?"

    "에이... 참 형두..... 여기 형 찾아 올 사람이 누가 있다고 그래?"

    "근택아, 부탁 하나만 하자. 오늘 나 너네 편집실 좀 쓰면 안되겠냐?"

    "방송국 편집실은 어쩌구?"

    "사정이 좀 있어서 그래. 한번만 좀 봐주라!"

    "글쎄..... 좋아, 그럼. 대신 다음에 술 한잔 사야 돼! 나갈때 알지? 그냥 문 
    닫고 나가면 자동으로 문 잠기니까"

    세사람만 편집실에 남자 해일은 서둘러 테잎을 꽂았다. 먼저 볼 테잎은 
    광속에서 찍은 테잎이었다. 이정란이 굿을 하는 모습이 제일 처음이었다. 
    그리고 얼마후 그녀가 귀신을 부르겠다며 눈을 감았다. 

    이윽고 그녀의 이마에 번지르하게 땀이 번질 무렵 그녀의 몸이 떨리기 시
    작했고 신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세사람은 잔뜩 긴장한채 화면을 주시
    했다. 

    막 이정란의 몸이 공중으로 떠오르기 시작하자 혜경이 신음처럼 내뱉었
    다.

    "세상에! 어떻게 저런 일이....."

    해일이 소리쳤다.

    "이 다음 부분을 잘 봐요"

    해일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광의 안쪽 벽면에서부터 푸른기가 도는 
    연기 같은 것이 이정란의 몸속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이정란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지기 시작하고 오세창의 뭔가 잘못됐다
    는 외침소리가 들려왔다. 박호철이 흥분하여 말했다.

    "저게 뭐죠?"

    광안이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하고 오세창이 어서 끌어 내리라며 소리를 지
    르자 스텝들이 이정란에게 달려 들어 그녀를 끌어 내리려고 안간힘을 쓰
    는 모습이 나왔다. 해일이 설명을 덧붙였다.

    "저땐 정말 장정 네사람이 달겨 들었는데도 꼼짝도 하지 않더라구요"

    이정란의 고통스런 비명소리가 점점 더 커져 가고 스텝들의 우왕좌왕하는 
    소리도 더욱 커졌다. 

    그러다 이정란을 붙들고 있던 스텝들이 한거번에 그녀의 몸에서 떨어지고 
    찢어지는 이정란의 비명쇠와 함께 그녀의 몸이 무엇인가에 물어 뜯기듯 
    옷 밖으로 붉은 피가 흥건하게 새어나왔다. 박호철은 테잎을 보면서 연신 
    몸을 떨었다.

    "어떻게 저럴수가....."

    김혜진의 울부짖는 소리와 함께 스텝들이 광에서 뛰쳐 나가는 모습이 부
    분적으로 카메라에 잡혔고 누군가 뛰쳐 나가며 카메라를 건드렸는지 카메
    라의 앵글이 살짝 돌아가서 이정란의 모습은 카메라에서 사라졌다. 

    대신 카메라는 광의 안쪽 벽과 함께 이정란을 두려운 눈으로 바라보는 해
    일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해일은 아직도 당시의 섬뜩함이 되살
    아 나는지 목을 움츠렸다. 

    마침내 해일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쫓기듯 광에서 빠져 나오자 벽을 비
    추는 광안에는 이정란의 헐떡이는 고통스런 신음소리만이 간간히 들려오
    고 있을 뿐이었다. 

    그때 어디선가 짐승의 으르렁거림 같은 것이 들려오고 있었다. 해일이 긴
    장하여 소리쳤다.

    "바로 이겁니다!"

    세사람은 뚫어지게 화면을 쳐다 보았다. 붉은 톤이 도는 광 안쪽 벽에서 
    부터 희미한 안개가 몰려 나오기 시작했다. 혜경이 소리쳤다.

    "그 날밤에도 저런 안개가 있었어요, 그렇죠?"

    해일이 대답했다.

    "제 친구가 죽기 직전에 제게 전활해서 그랬어요. 안개가 보이면 놈들이 
    나타난 증거라고....."

    안개의 농도는 점점 더 짙어지고 있었고 뭔가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선명하진 않앗지만 세사람은 모두 그것들이 무엇인지 잘 알 수 있었다. 
    푸른 광채가 도는 눈들..... 그들은 그 끔찍한 짐승의 눈들이었다. 박호철이 
    두려운 목소리로 말했다.

    "놈들이예요. 저것들이 어떻게 나타난거죠? 어디서 나타난거죠?"

    해일이 그 부분의 테잎을 다시 되감아서 재생시켜 보았지만 놈들은 푸른
    빛 도는 안개속에서 서서히 그 모습이 드러나고 있었고 마치 광 안쪽 어
    딘가에 숨어있는 다른 세계에서 바깥 세상으로 달려 나오듯이 빠르게 다
    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뒤쪽에선 해일의 눈을 번쩍이게 하는 바로 그 살인마의 모
    습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었다. 놈의 손에는 예의 기다란 막대기가 들려 
    있었다. 

    윤곽 정도만 어렴풋이 드러나 있었지만 해일은 그가 바로 그날밤의 살인
    마라는 것을 온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테잎은 거기서 끝이 났다. 세사람 
    모두 충격에 휩싸여 말이 없었다. 한참만에 혜경이 입을 열었다. 

    "아까 낮에 장수사관이 한 말은 거짓이 아닌 것 같군요. 이번 사건이 어
    떤 초자연적인 현상과 연결되어 있다던 말 말이예요"

    해일이 그녀의 말을 받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가요. 어떻게 아무것도 없는 벽속에서 저런 
    것들이 튀어 나올 수 있는지.... 유령이 아니라면 말입니다"

    "일단 두번째 테잎도 보자구요"

    두번째 테잎이 틀어졌다. 해일로선 가능하면 보고 싶지 않은 테잎이었다. 
    테잎의 시작은 억수처럼 내리는 폭우속에 유령처럼 버티고 선 흉가의 전
    경으로 시작하고 있었다. 

    쏟아붓듯 내리는 폭우를 보자 세사람은 금방 간밤의 그 지루하고 끔찍했
    던 기억을 생생히 떠올릴 수 있었다. 해일이 빨리감기로 테잎을 뒤로 돌
    리자 테잎에는 정신없이 광에서 뛰쳐 나오는 스텝들의 모습이 나타났다. 
    해일은 거기서 다시 테잎을 재생시켰다. 


    9. 또다른 악몽(1)

    스텝들의 주위로 안개가 다가오기 시작했고 해일의 다들 이 곳을 떠나야 
    한다는 외침과 함께 스텝들은 저마다고개쪽을 향해 달아나기 시작했다. 

    카메라는 모든 스텝들이 떠나고 난 텅빈 마당 폭우속에 혼자 넋을 잃고 
    앉아있는 김혜진을 비추고 있었다. 그녀의 주위로 점차 푸른 안개가 그 
    농도를 짙게 하며 에워싸기 시작했다. 

    그녀는 광쪽으로 시선을 못 박은채 움직일줄 몰랐다. 카메라 속으로 해일
    이 다시 나타났고 혜진을 데려가려 애쓰는 그의 표정엔 공포와 조급함이 
    한데 어울려 모니터를 보는 지금 이 순간에도 그 안타까움을 더 하고 있
    었다. 

    마침내 광에서부터 푸른 섬광들이 어슬렁거리며 기어나오기 시작하고 진
    흙탕 속에서 혜진을 질질 끌다시피하며 테려가던 해일이 그녀의 손을 놓
    고 뒤돌아 뛰기 시작했다. 모니터를 바라보는 해일의 눈시울이 다시 붉게 
    젖어 들고 있었다.

    "아르바이트로 이번 촬영에 참가한 여학생입니다. 이제 갖 스물을 넘겼을 
    뿐인데....."

    화면에는 뒷모습만 보아도 확연히 그 두려움을 짐작할 수 있을만큼 김혜
    진의 몸은 심하게 떨리고 있었고 그녀의 주위를 느릿하게 잔인한 짐승들
    이 둘러싸고 있었다. 

    그 짐승들의 틈 사이로 죽창을 들고 있는 살인마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해일이 울분을 삼키며 낮게 응얼거렸다.

    "놈들이짐승들을 통제하는 것 같아요"

    살인마들은 김혜진의 앞에 다가와 그녀를 찬찬히 살펴본 다음 주위를 한
    번 크게 둘러보곤 자신들의 손에 들린 죽창을 높이 치켜 올렸다. 

    짐승들이 더욱 으르렁거렸고 그들은 지체없이 죽창을 김혜진의 가슴팍에 
    내리 꽂았다. 처참한 비명소리가 날카롭게 어둠을 갈랐고 놈들의 죽창은 
    계속해서 무차별적으로 그녀를 향해 내리 꽂혔다. 

    이윽고 그들이 다시 뒤로 물러나며 이상한 휘파람 소리 같은 것을 내자 
    짐승들이 기다렸다는듯 그녀에게 달겨 들었다. 해일은 그곳에서 발작적으
    로 테잎을 정지시켰다. 

    그의 볼은 어느새 뜨거운 눈물로 흥건하게 젖어 있었다. 해일이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여기 까집니다. 그 날 그 집에서 일어났던 일들은....."

    화면이 정지되었음에도 혜경과 박호철은 한참동안 입을 열지 않았다. 박
    호철이 중간 중간에 큰 한숨을 몇 번 내쉰게 고작이었다. 시간은 벌써 자
    정을 넘기고 있었다. 혜경이 다시 테잎을 앞으로 되감으며 말했다. 

    "짐승들이 안개와 함께 나타나던 장면을 한번 더 봤으면 좋겠어요"

    해일이 다시 테잎을 재생시켰다. 푸른빛이 도는 안개가 마당에 주저앉은 
    스텝들을 둘러싸며 다가오는 장면이었다. 혜경이 소리쳤다.

    "이걸봐요, 뭔가 좀 이상하지 않아요?"

    그녀의 말에 해일과 박호철이 눈을 크게 뜨고 화면을 들여다 봤다.

    "여길 자세히 보면 전체적인 배경이 뭔가 이중으로 층이 져 있는 것 같지 
    않냐구요?"

    박호철이 고개를 갸웃하며 중얼거렸다.

    "층이 져요? 글쎄, 저는 잘 모르겠는데....."

    그러자 해일의 눈빛이 반짝하고 빛나는가 싶더니 그다 다시 테잎을 되감
    아서 그 부분에서 재생시켰다. 그리곤 흥분하여 소리쳤다.

    "맞아요, 층이 져 있어요. 정지화면에선 명확히 보이질 않았는데 테잎을 
    재생시키니까 훨씬 명확하게 보이는군요. 마치 두개의 서로 다른 배경이 
    겹쳐지는 것 같아요. 세상에, 이럴 수가....."

    박호철이 여전히 알 수 없다는듯 시쿤둥하게 말했다.

    "저는 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혜경이 화면을 짚어가며 그에게 설명조로 말했다.

    "박순경, 이 화면을 자세히 보라구. 안개 뒤에 뭔가 한겹 씌워져 있는 것
    처럼 뿌연 뭔가가 보이지? 그렇지, 여기 이 흉가를 보라구. 실제 흉가와 
    거의 겹쳐져 있지만 실은 조금 다른 또다른 흉가가 실제의 흉가 위에 교
    묘하게 겹쳐져 있는 듯한 흐릿한 화면을 보란 말야"

    그제야 박호철이 이제 알겠다는듯 소리쳤다.

    "어? 정말 그러네? 보여요, 보여!"

    "집뿐만이 아니야. 전체 배경이 모두 그렇다구. 흉가 옆에 숲이며 나무들
    도 자세히 보면 하나같이 이중으로 겹쳐진 것처럼 현실의 배경 너머로 또 
    다른 배경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단 말야! 그리고 그것들이 실제의 배경과 
    거의 유사하지만 조금씩 다르다구!"

    혜경은 마치 강의를 하듯 흥분된 목소리로 화면의 구석 구석을 짚어가며 
    박호철에게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먼저 이 흉가도 그래. 두개의 겹쳐진 배경이 거의 일치하지만 자세히 보
    면 다른 점이 있어. 실제 흉가가몹시 낡고 황폐한 반면 뒤쪽에 숨겨진 
    흉가는 훨씬 정돈되고 완전한 형태를 가지고 있다구. 그리고 그 주위의 
    숲과 나무들도 어떤 것은 실제 나무보다 작은 것도 있고 또 어떤 것은 실
    제 배경에는 존재하지 않는데 버젓이 존재하는 나무도 있단 말야!"

    박호철의 동공이 잔뜩 커졌다.

    "이게 대체 뭘 의미하는 거죠?"

    이번엔 해일이 나섰다.

    "확실치는 않지만 제가 보기에 이 두 개의 배경은 엄밀히 말해서 같은 배
    경입니다"

    혜경이 의미심장한 눈길로 해일을 바라보며 그의 다음 얘기를 기다렸다. 
    해일은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같은 배경이 이렇게 약간의 차이를 보이는 이유는..... 실제의 흉가 뒤에 
    숨겨져 있는 흐린 배경속의 또 다른 흉가는 실제 흉가의 과거라고 생각됩
    니다"

    박호철이 소리쳤다.

    "과..... 과거라구요?"

    "그래요, 과거! 실제의 흉가 뒤에 숨겨져 있는 또 다른 흉가가 오랜 세월
    동안 허물어지고 마모된 결과가 바로 우리가 보고 있는 바로 이 실제의 
    흉가란 말입니다. 이를테면 우린 지금 저 흉가의 현재와 과거를 동시에 
    보고 있단 말입니다"

    "저...... 전 도무지 무슨 말인지....."

    박호철이 인상을 찌푸리며 난색을 표명하는 것과는 달리 혜경은 환한 미
    소로 해일의 말에 대답했다.

    "정PD님도 저와 같은 생각을 하고 계셨군요. 제 생각에도 그런 생각이 
    들어요. 우린 지금 과거와 현재가 함께 공존하는 말도 안되는 화면을 보
    고 있는 거예요. 흉가만이 아니죠. 흉가를 중심으로 한 주위의 모든 배경
    이 현재와 과거가 함께 공존하고 있어요. 갑자기 나타난 그 이상한 안개
    와 함께.... 대체 이게 무얼 의미하는 거죠? 그리고 이것들이 갑자기 나타
    난 그 짐승들과 살인마를 설명할 수 있을까요?"

    해일과 혜경이 화면속에 빠져 심각한 고민에 휩싸여 있을때 박호철이 중
    얼거렸다.

    "정PD님, 어디 불 난거 아니예요? 어디서 연기가 이렇게 들어오지?"

    그의 말에 해일이 화면에서 시선을 떼곤 바닥을 보았다. 무심코 바닥을 
    내려보던 해일이 불에 데인 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의 돌연한 행
    동에 혜경과 박호철이 눈을 크게 떴다. 해일의 굳어진 얼굴에서 다소 떨
    리는 음성이 새어나왔다.

    "이건 연기가 아니예요. 안개예요, 푸른 안개!"

    9. 또다른 악몽(2)

    혜경과 박호철 또한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동시에 소리쳤다.

    "안개라구요?"

    과연 바닥에는 푸른 빛을 띄는 엷은 안개가 그들의 발목 언저리를 중심으
    로 조금씩 감싸오고 있었다. 해일이 혜경을 돌아보며 말했다.

    "이제야 김한수가 어떤 지경을 당했는지 알 것 같아요. 그리고 구반장님
    이 말했던 아직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다는 말의 뜻도.... 놈들이 다시 온겁
    니다. 지금 이곳에 놈들이 와 있는 것이 라구요!"

    그러자 어디선가 익숙한 짐승의 으르렁거림과 함께 기분 나쁜 휘파람 소
    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휘익! 쉭! 쉭!"

    혜경이 본능적으로 옷속에서 권총을 꺼내 들었고 박호철도 뒤쪽에서 총을 
    빼들었다. 박호철이 다시 안주머니에서 권총 한자루를 더 꺼내서 해일에
    게 건네며 말했다.

    "아까 말해준 사용 방법은 기억하고 있죠? 장수사관 총이예요!"

    해일은 그에게서 아직은 손에 낯설기만 한 차가운 권총 한자루를 건네 받
    았다. 사정이 어찌 되었든간에 그들은 지금 간밤의 악몽 속으로 다시 빠
    져 들고 있었다. 

    세사람의 호흡이 빠르게 급해지고 있었다. 해일이 주위를 두리번 거리다 
    급하게 소리쳤다.

    "저기 뒤쪽으로 후문이 있어요! 어서 뛰어요!"

    해일이 먼저 뒷문을 박차고 나오자 네온싸인이 번쩍이는 화려한 도시의 
    밤거리가 그들의 앞에 나타났다. 사람들은 태연히 휘청거리며 거리를 오
    가고 있었고 자동차들도 별 일 없이 거리를 달리고 있었다. 

    오히려 그들이 권총을 들고 갑자기 문을 박차고 나온 세사람을 수상한 눈
    으로 쳐다보는 바람에 그들은 괜히 멎적은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혜경이 
    주위를 두리번 거리며 말했다.

    "뭔가 이상해요. 저 사람들 너무나 태평하잖아요?"

    이번엔 박호철이 자신들이 뛰쳐 나온 후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지저분
    한 쓰레기가 쌓인 한켠 어둠속에 을씨년스럽게 열어 젖혀진 뒷문이 흔들
    거리고 있었다.

    "혹시 우리가 너무 신경이 예민해 진게 아닐까요?"

    해일로서도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이렇게 사람이 많은 도심의 밤거
    리에 갑자기 그 많은 짐승들이 나타났다면 온 도시가 발칵 뒤집히고도 남
    음이 있었을텐데 도시는 너무나 태연했다. 

    오히려 이상하게 보이는 것은 그들 세사람이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
    아 그들의 의심은 간단하게 풀려 버리고 말았다. 자신들이 방금 빠져 나
    온 뒷문에서 막 푸른 광채를 내뿜으며 곧바로 달려오는 짐승들을 보았기 
    때문이다. 혜경의 총구가 제일 먼저 불을 뿜었다.

    "탕, 탕, 탕!"

    갑작스런 총성에 길위에 흥청거리던 취객들의 놀란 비명소리와 다급한 외
    침이 조용한 도심을 뒤흔들었다. 박호철이 사람들을 향해 소리쳤다.

    "어서 집안으로 들어가요, 저것들은 위험한 짐승들입니다. 어서 실내로 들
    어가 문을 잠그라구요!"

    악을 쓰며 세사람은 다시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짐승들은 다른 사람
    은 전혀 거들떠 보지도 않은채 똑바로 세사람을 향해서만 달려왔다. 몇 
    마리의 짐승들이 혜경의 총에 쓰러졌지만 쓰러진 짐승들의 몇배에 해당하
    는더 많은 짐승들이 그들의 뒤를 쫓았다. 혜경이 소리쳤다.

    "건물 안으로! 안으로 들어가요!"

    해일이 얼결에 뛰어든 곳은 바로 나이트 클럽이었다. 앞에서 지키던 덩치 
    몇 명이 갑자기 뛰어든 그들의 앞을 가로막다가 그들의 손에 들린 권총을 
    보곤 뒤걸음질 쳤다. 해일이 그들에게 소리쳤다.

    "어서 안으로 들어가 문을 잠궈요, 어서!"

    해일의 소리에 그들은 우물쭈물 하다가 안으로 밀려갔다. 세사람은 그들
    의 뒤를 이어 안으로 뛰어든 다음 입구의 서텨를 급하게 내렸다. 

    나이트 클럽 안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귀가 터질듯한 음악소리에 맞춰 
    춤을 추고 있었고 그들은 낯선 이방인의 침입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눈치였다. 

    잔뜩 긴장한 세사람이 뒤로 물러서며 입구쪽을 바라 보고 있을때 가장 먼
    저 달려온 짐승 한마리가 입구에 나타났다. 그리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짐승은 셔터문을 그대로 통과하여 곧바로 일행들
    을 향해 달려왔던 것이다. 

    마치 처음부터 셔터문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듯이 아무런 저항없이 
    짐승은 셔터문을 가볍게 통과해 버렸던 것이다. 혜경의 총구가 다시 불을 
    뿜었고 난데없는 총성으로 나이트 클럽은 순간적으로 혼란에 빠져 들었
    다. 

    이어서 두번째, 세번째.... 짐승들이 계속해서 셔터문을 통과하여 일행들을 
    향해 달려왔다. 박호철이 권총의 방아쇠를 당기며 소리쳤다.

    "다들 엎드려! 엎드리라구!"

    그런데 그런 박호철의 외침과 달리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잠시 고개를 
    숙였던 사람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주위를 두리번 거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한 사내의 앞으로 짐승이 달려오고 있는데도 사내는 짐승을 보지 
    못하는 것처럼 엉뚱한 곳을 두리번 거렸다. 박호철이 짐승에게 총을 겨누
    며 비명처럼 소리쳤다.

    "위험해! 저리 비켜!"

    그러나 사내는 박호철의 얘기를 전혀 듣지 못하는양, 그리고 짐승 따위
    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다는 표정으로 의아하게 두리번거릴 뿐이었다. 막 
    짐승이 사내를 덮친다고 생각하는 찰나 짐승은 셔터문을 통과할때와 마찬
    가지로 사내를 통과하여 곧바로 박호철에게 달겨들었다. 

    그것은 너무나 순간적인 일이었고 꿈에서나 가능할 법한 불가능한 일이었
    다. 당황한 박호철이 미처 총을 쏠 틈도 없이 짐승은 곧장 그를 덮쳤다. 
    박호철이 비명을 지르며 짐승과 한데 뒤엉켜 바닥을 뒹굴었다. 

    "아악! 윤형사님, 사.... 살려줘요, 윤형사님!"

    그러나 그러한 아수라장 가운데서도 다른 사람들은 언제 그랬냐는듯 다시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들에게 짐승이나 총소리, 외침소리 
    따위들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들에겐 그 시간이 보통때와 조금도 다를바 없는 그런 시간인 것 처럼 
    보였다. 해일은 계속해서 달려오는 짐승들을 향해 총을 쏘아댔고 혜경은 
    호철에게 들겨든 짐승에게 함께 달겨들어 놈의 머리에 총을 쏘았다. 

    비틀거리며 일어난 창백한 박호철의 얼굴은 짐승의 미지근한 피로 범벅이 
    되었다. 박호철이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듯 주위를 둘러보며 히스테리컬
    하게 악을 썼다. 

    "이건 악몽이야, 말도 안되는 악몽이라구!"

    혜경이 그런 박호철을 떠다 밀다시피 하며 악전고투 하는 해일을 돌아보
    며 소리쳤다.

    "도저히 안되겠어요, 안쪽으로 달아나요, 어서요!"

    세사람은 다시 실내의 더욱 안쪽으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공통적
    으로 그들은 도저히 불가능한 일을 함께 경험하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
    의 앞에서 춤을 추며 몸을 흔들어 대는 사람들을 그대로 통과하고 있었던 
    것이다. 

    얼마전 짐승들이 그랬던 것 처럼 마치 유령들의 사이를 지나가듯 아무런 
    저항도 부딪힘도 없이. 

    "다들 미쳤어! 모두들 미쳐 가고 있는거야, 미쳐가고 있다구!"

    짐승에게 물린 팔뚝에서 검붉은 피가 뚝뚝 떨어지면서도 박호철은 미친듯
    이 악을 쓰고 있었다. 모든 것들이 그가 받아 들이기엔 너무나 엄청난 충
    격임에 틀림없었다. 

    발버둥치는 그를 혜경과 해일이 붙잡지 않았다면 그는 곧장 짐승들을 향
    해 달려 갔을지도 몰랐다. 여전히 춤을 추는 사람들은 세사람을 보지 못
    하는 것 같았다. 

    그들중 어느 누구도 세사람을 눈여겨 보는 사람은 없었다. 요란한 총소리
    와 짐승들의 으르렁거림 같은 것을 그들은 전혀 듣지도 보지도 못하는 것 
    같았다. 그뿐이 아니었다. 

    얼마후부턴 아예 사람들의 모습이 점점 희미하게 변하더니 급기야는 투명
    하게 사라지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사라지는 것은 사람들뿐만이 아니었다. 
    그들의 앞을 가로막고 있던 벽이며 테이블이며 하는 것들도 함께 사라지
    고 있었다. 

    그들과 짐승들을 제외하곤 세상 모든 것이 사라지고 있었다. 대신 그들의 
    앞에는 어디선가 본 듯한 익숙한 풍경이 서서히 나타나고 있었다. 

    그것들은 점점 그 형체가 분명해지고 마침내는 완전히 다른 공간속에 그
    들이 달리고 있는 결과를 만들어 놓고 말았다. 정신없이 달리던 혜경이 
    두려움에 휩싸여 소리쳤다.

    "맙소사, 이곳은.... 이곳은 바로 목촌리예요, 우린 지금 다시 목촌리에서 
    놈들에게 쫓기고 있다구요!"


    9. 또다른 악몽(3)

    갇혀 있다는 것을 제외하면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었다. 편안한 침대며 
    쾌적한 공기, 그리고 맛있는 식사까지도.... 불과 하루만에 김감독을 비롯
    한 세사람은 이 낯선 공간의 생활에 익숙해져 가고 있었다. 

    그들은 식사를 가져다 줄때를 제외하곤 일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비
    록 세사람의 고함과 항의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지만 그들은 몹시 예
    의 바르고 정중하게 행동했다. 

    그러한 그들의 친절이 김감독에겐 웬지 더욱 불안하게만 여겨졌다. 배영
    환이 침대에 몸을 누인채 김감독을 건너다 보며 말했다.

    "김감독님, 흔히 돼지는 잡아 먹기 직전에 배불리 먹인다 잖아요? 그리고 
    사형수들도 사형 집행을 하기전엔 최대한 인간적인 대접을 해주고.... 전 
    어째 저들이 우리한테 이렇게 잘 대해 주는게 그런 이유때문이 아닌가 하
    는 생각이 자꾸 드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글쎄, 주는대로 넙죽 넙죽 잘 받아 먹긴 했지만 나 역시 영 뒷맛이 개운
    칠 않아. 아까 식사를 가져다 주던 식기에 보니까 M정신 요양원이라고 
    라벨이 붙어 있던데 정신 요양원치곤 너무 호화판이란 말야"

    "지금쯤 정PD님과 윤형사, 박순경은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요? 그들도 
    이 곳 어디에서 우리하고 같은 신세로 갇혀 있는건 아닐까요?"

    "모르긴 몰라도 결코 아무일 없이 발 뻗고 자고 있지 않으리란건 확실하
    겠지! 근데 여긴 밤에 잘 때 불도 안 끄나?"

    "그러게요? 벌써 자정이 다 됐는데..... 처음엔 벽이 투명하게 되어 있어서 
    기분이 몹시 이상하더니 지금은 그런대로 괜찮은 것도 같아요. 훨씬 넓어 
    보이고 갇혀 있다는 느낌도 덜 들고...." 

    김감독이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벽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좀전과는 달
    리 낮은 소리로 속삭였다.

    "내 생각엔 분명 저들이 어딘가에서 우릴 감시하고 있어. 불을 끄지 않는 
    것도 다 그런 이유 때문일거야"

    "그럼, 그들이 대체 뭘 관찰하려고 하는 걸까요? 설마 우리가 간밤에 당
    한 일이 하두 황당하니까 정말 정신병자가 아닌가 하고 이렇게 가두어 놓
    은게 아닐까요?"

    "그건 아닐껄? 그나저나 자네 강은영이 정말 좋아해?"

    갑자기 김감독이 화제를 바꾸어 물어오는 바람에 배영환의 얼굴이 금방 
    벌겋게 상기 되었다. 당황하는 배영환을 아랑곳하지 않고 김감독은 그의 
    어깨 너머로 강은영의 방을 흘끗 거리며 훔쳐 보았다. 

    그녀는 죽은 사람처럼 자신의 침대에 반듯이누워 벌써 세시간째 잠만 자
    고 있었다. 그녀는 이 곳에 들어올때부터 몹시 탈진한 상태였었기 때문에 
    식사 시간에 식사 대신 그녀는 링겔을 맞아야만 했었다. 김감독이 다시 
    재촉했다.

    "왜 대답이 없어? 강은영이 정말 좋아하느냐고 묻잖아?"

    그러자 배영환이 애써 얼굴을 붉히며 핀잔주듯 말했다.

    "이런 상황에 꼭 그런걸 물으셔야 겠어요?"

    "이거 왜 이래? 둘이 바짝 붙어서 아주 열이 오를대로 올랐던걸? 후후...
    둘 사이에 벽 하나 있길 다행이지..... 이런 상황에 남 생각 않하고 그런 
    짓 하는건 괜찮고 내가 그깟거 하나 물어본건 그렇게 흉이 되나?"

    "그거야 은영이가 워낙 힘들어 하니까 위로 좀 해주려고 그런거죠"

    "이거 왜 이래? 난 진작부터 자네가 강은영이한테 마음이 있다는거 눈치
    채고 있었는데...."

    "에이, 그 얘긴 그만 두자구요, 쑥스럽게.... 이 사람들 정말 불은 안 꺼줄 
    모양인데요? 불 꺼 달라고 소릴 한번 질러 볼까요?"

    "소용없어, 우리 소리에 어디 한번이라도 대답 하는 것 봤어? 그나저나 
    나도 어젯밤부터 잠 한숨 못 자고 그 난리를 쳤더니 몹시 피곤한데? 까짓
    거 죽을 때 죽더라도 잠이나 푹 자 두자구!"

    "예, 저두 그만 자야 겠어요. 몸이 여기저기 쑤시는게 쓰러지기 직전이예
    요. 그럼, 밤새 무사히 주무세요"

    * * *

    두사람이 침대에 누워 눈을 감는 모습을 보고 우일만 박사는 다시 한번 
    시간을 들여다 보았다. 막 자정을 넘기고 있었다. 그의 얼굴엔 초조한 긴
    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그의 곁에는 손남의 박사와 장수사관, 그리고 기관원 두명이 역시 긴장된 
    모습으로 모니터를 지켜 보고 있었고 그들의 뒤쪽으로는 거대한 몸체를 
    가진 컴퓨터들과 십여명의 연구원들, 그리고 이름을 알 길이 없는 첨단장
    비들이 넓은 공간에 빽빽히 들어 차 있었다. 

    그것은 웬만한 연구소 하나를 통째 옮겨다 놓은 모습이었다. 손박사가 말
    했다.

    "우박사님, 시간이 거의 된 것 같은데 정말 박사님이 말한 그런 일이 벌
    어질까요?"

    "아직은 나 역시 막연한 추측 정도를 가지고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그동
    안 조사한 결과로는 상당히 신빙성이 있어요. 나는 지난 10여년간 비밀리
    에 목촌리 주변 지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불가사의한 일들에 대한 연구를 
    해 왔어요.그리고 목촌리 흉가 주변에 설치된 컴퓨터의 분석에 의하면 일
    정한 때에 일정한 조건이 맞으면 목촌리에선 현대의 과학으로는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엄청난 양의 에너지를 한순간에 쏟아내곤 했습니다. 
    그리고 그때마다 번번히 이상한 살인사건이 일어났고 그 살인사건은 묘하
    게도 목촌리에서 내뿜는 거대한 에너지의 발생주기와 일치한다는 것을 알
    아냈어요"

    "전 도무지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최근 과학계에선 초공간이라는 이론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어요. 즉 이전 과학계에서 정설처럼 여겨왔던 3차원 공간이론이 무너지
    고 있는 거죠. 3차원에 시간이라는 새로운 공간개념이 도입되어 우주를 4
    차원으로보기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4차원보다 훨씬 고차원인 5차
    원, 10차원의 공간까지도 존재할 수 있다고 보는 겁니다"

    "그런 공간이 어디에 존재한다는 거죠? 길이만 존재하는 1차원이라던가 
    넓이를 가진 2차원, 높이를 가진 3차원등은 모두가 우리가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공간들이 잖습니까? 그런데 그 이상의 차원이 존재한다면 왜 우
    리에겐 보이지 않는지....."

    "그건 우리의 모든 감각과 사고가 3차원이라는 공간에 익숙해지고 적응해 
    버려 그 이상의 차원을 보지 못하는 것 뿐입니다. 손박사도 2차원 나라에 
    사는 사람들의 얘기를 다룬 공상과학 소설을 읽은 적이 있다고 했었죠? 
    그들은 이미 2차원 공간에만 익숙해져 자연 그 이상의 차원을 보지 못할 
    뿐 3차원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순 없는거죠"

    우박사는 마치 학생에게 강의하듯 차근차근 손박사에게 설명을 했지만 여
    전히 손박사는 명확한 개념을 잡기 어렵다는 표정이었다. 

    그도 그럴것이 그의 전공 분야는 민속학일뿐만 아니라 물리학에 대한 그
    의 약간의 지식조차도 민속학을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보조 도구로서 흥
    미를 가졌던 것 뿐이었던 것이다. 

    "그건 그렇다 치고 그 초공간 이론이라는 것과 목촌리에서 벌어지는 그 
    이상한 일들이 서로 어떻게 관련되어 있다는 거죠?"

    "난 분명 관련이 있다고 확신합니다. 이렇게 생각해 봅시다. 만약 우리의 
    과거와 미래와 현재의 시간들이 각각 다른 차원, 다른 공간에서 별도로 
    동시에 존재한다면..... 어떨까요? 그리고 그 차원과 공간들이 서로 밀접하
    게 연결되어 있다면..... 만약 우리가 다른 차원과 공간으로 이동할 수 있
    다면 우리는 우리의 과거와 미래로의 시간적, 공간적 여행도 가능해 진다
    는 것입니다. 그러한 차원간 이동을 가능하게 해주는 루트를 흔히 웜홀, 
    즉 벌레구멍이라 부르는 것인데 그 벌레구멍이 열리려먼 현대 과학으로 
    한 순간, 한 장소에서 발생시킬 수 있는 에너지 양의 수 천, 아니 수 조 
    제곱에 해당하는 거대한 에너지를 필요로 합니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그
    러한 엄청난 에너지가 한순간에 분출된다면 차원간의 통로가 열리는 것이
    고..... 목촌리에선 바로 그러한 강력한 에너지가 한순간에 분출되었어요. 
    즉 차원간의 이동이 가능한 벌레구멍이 열린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
    가 모니터로 들여 다 보고 있는 바로 저 사람들은 그 차원이동의 한가운
    데서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이고..... 다시 말해 저들은 일정한 시간과 조건
    이 형성되면 우리는 볼 수 없는 다른 차원과 공간에 속하게 되는 겁니다" 

    손박사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다소 회의적인 어조로 말했다.

    "정말 믿기 어려운 얘기군요"

    "저도 처음엔 확신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바로 손박사가 제게 가져다 
    준 테잎을 보고서야 어느 정도의 확신을 가질 수 있었어요"

    "제가 정PD에게 받아서 보여 드린 테잎 말입니까?"

    "그래요, 그 테잎을 자세히 분석해 보고나서 그 테잎안에 과거와 현재가 
    동시에 공존하고 있음을 알았죠"

    "과거와 현재가 동시에 공존한다구요?"

    손박사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우박사를 쳐다 보았다. 우박사는 손박
    사를 쳐다 보지도 않은채 눈을 감고 잠을 청하는 모니터 속의 세사람을 
    가리키며 계속 말을 이었다.

    "그래요, 지금 저 사람들은 과거의 시간적, 공간적 조건과 현재의 시간적, 
    공간적 조건에 동시에 속해 있습니다. 오늘밤 다시 웜홀이 열린다면 분명 
    저들에게 예측조차 불가능한 엄청난 일이 다시 일어날 것이고 우린 그 초
    자연적 현상을 화면으로 지켜볼 수 있는 기가 막힌 행운을 가지는 겁니
    다. 그들이 목촌리에서 겪었다는 그 말도 안되는 일들이 다시 일어날 겁
    니다"

    손박사는 웬지 온 몸이 오싹해지는 기분때문에 그저 묵묵히 모니터만 지
    켜보는 일이 전부였지만 결코 지루한줄 몰랐다. 

    그때 목촌리에서 송신해 오는 각종 정보와 자료들을 검토하던 한 연구원
    이 잔뜩 긴장한 목소리로 우박사를 불렀다.

    "박사님! 다시 웜홀이 열리는 것 같습니다"

    9. 또다른 악몽(4)

    침대에서 아무리 잠을 청해도 김감독은 쉽게 잠이 들 수 없었다. 그의 본
    능은 이미 알 수 없는 불안과 위협을 느낀듯 파르르 떨고 있었기 때문이
    다. 그가 다시 몇 번 더 자리를 뒤척이며 돌아 누웠을 때였다. 

    어디선가 낯선 소리가 들려오고 있엇다. 처음 그는 그 소리를 자신이 잘
    못 들은 환청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소리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으며 처음엔 거의 
    들릴락 말락하던 그 작은 소리는 이젠 분명한 형태를 가지고 빠르게 커져 
    가고 있었다. 

    이제 김감독은 그 소리가 무슨 소리인지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머리끝
    이 쭈삣하며 온몸의 세포가 한꺼번에 일어서는 전율이 느껴졌다. 그는 자
    리에서 벌떡 일어나 주위를 둘러 보았다. 

    특별히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여전히 그는 튼튼한 유리벽 속에 갇
    혀 있었고 옆방의 배영환이나 강은영 또한 아무일 없다는듯 깊은 잠에 빠
    져 있는 듯 했다. 

    그는 침대에서 내려서서 방안을 왔다 갔다 하며 서성이기 시작했다. 그러
    나 그의 귀에는 보이지도 않는 짐승의 으르렁거림이 점점 더 극성을 부리
    고 있었다. 

    무심코 바닥을 내려다 보던 김감독이 끙하는 신음과 함께 낮은 음성을 토
    해냈다.

    "안개....."

    그는 어쩔줄 몰라하며 불안하게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배영환의 방 유리를 
    힘껏 두들기기 시작했다.

    "배영환! 일어나, 어서!"

    김감독의 외침에 막 잠이 들엇던 배영환이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며 어리
    둥절한 표정으로 김감독을 바라보았다. 김감독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말
    까지 더듬으며 소리쳤다.

    "어.... 어서 강은영이도 깨워, 어서!"

    "감독님, 무슨 일인데..... 갑자기....."

    "저 소리..... 저 짐승들의 소리가 안들려?"

    짐승 소리라는 김감독의 말에 배영환은 잠이 화들짝 달아나는 기분이었
    다. 귀를 기울이자 과연 김감독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이번엔 배영환이 
    강은영의 방벽을 온 힘을 다해 두들겼다.

    "은영아, 일어나! 이 근처에 지.... 짐승들이 있어! 은영아!"

    강은영마저 잠에서 깨어났을때 이미 짐승들의 소리는 굳이 귀를 기울이지 
    않아도 커다랗게 들릴만큼 가까워져 있었다. 강은영이 비명처럼 소릴 지
    르며 병실 문으로 달려가 마구 두드려 댔다. 

    김감독과 배영환도 강은영과 마찬가지로 병실 문을 있는 힘껏 두들기며 
    악을 쓰기 시작했다.

    "사람 살려요! 이봐, 여기 아무도 없어!"

    "문 열어! 문 열란 말이야! 이 새끼들아 문 열라구!"

    그러나 아무리 악을 써도 문은 꼼짝도 하지 않았고 사람의 그림자조차 나
    타나지 않았다. 마침내 짐승들의 소리가 바로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고 어
    디서 나타날지 모르는 짐승의 공격에 대한 극도의 공포로 세사람은 병실 
    안쪽으로 최대한 몸을 붙였다. 

    그리고 얼마후 강은영이 날카로운 비명을 질렀다. 김감독과 배영환이 동
    시에 그녀쪽으로 시선을 돌렸을때 그녀의 앞에는 푸른 안개 속에서 탐욕
    스런 이빨을 드러내고 헐떡이는 짐승 한마리가 그녀를 노려보고 있었다. 

    강은영은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한채 얼음처럼 굳어 있었다. 그녀의 입에
    서 거의 알아 들을 수 없을 정도의 신음이 흘러 나왔다.

    "사.... 살려줘! 제.... 발..... 서..... 선배..... 살려줘!"

    배영환이 불에 데인 것처럼 그녀의 방벽으로 달려갔다.

    "그녀는 안돼! 이 더러운 짐승 새끼야! 은영아, 최대한 벽쪽으로 붙어, 그
    리고 움직이지마! 놈한테서 눈을 떼지 말고..... 겁 먹지 마, 놈한테 겁 먹
    은 표정을 보여선 안돼!"

    그때 그의 등뒤에서 김감독의 떨리는 음성이 들려왔다.

    "그.... 그 쪽 신경 쓸때가 아니야, 여기도 나타났으니까!"

    김감독의 말에 배영환이 고개를 돌리자 바로 그의 코 앞에 짐승의 푸른 
    광채가 도는 두 눈이 무표정하게 올려다 보고 있었다. 놈은 마치 그를 탐
    색하듯 예리한 눈길로 그의 빈 틈을 엿보고 있었다. 

    아무리 주위를 둘러봐도 무기가 될 만한 것은 눈에 띄지 않았다. 마침내 
    놈이 으르렁거리며 그 잔혹성을 드러낸다고 느끼는 순간 놈의 날카로운 
    이빨이 재빠르게 배영환을 향해 달겨 들었다.

    "악!"

    단발마의 비명소리가 배영환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짐승의 이빨이 그의 
    팔뚝을 물었던 것이다. 날카로운 통증으로 축축한 놈의 검은 털을 움켜쥐
    는 사이 놀라운일이 벌어졌다. 

    그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던 병실의 벽들이 거짓말처럼 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김감독과 강은영의 방도 마찬가지였다. 막 짐승들이 달겨 들려던 
    찰나에 병실 안쪽 벽에 기댄채 최대한 몸을 도사리고 있던 김감독은 사라
    진 벽면의 덕택으로 뒤쪽에 생겨난 새로운 공간으로 나자빠지고 말았다. 

    그리고 비명을 지를 틈도 없이 넘어진 그를 향해 달겨드는 짐승의 차가운 
    눈빛을 절망적으로 바라보는 순간 가까운 곳에서 고막을 찢을듯이 총성이 
    울려 퍼졌다.

    "탕! 탕! 탕!"

    * * *

    모니터를 지켜보던 장수사관이 두려운 목소리로 소리쳤다.

    "사... 사라졌어요! 그들이 사라졌다구요!"

    그의 말대로 모니터에선 세사람의 모습이 깨끗이 사라지고 없었다. 방금 
    전만 해도 허공에 대고 악을 쓰며 비명을 질러대던 세사람이 갑자기 흔적
    조차 없이 사라진 것이다. 

    손박사가 우박사를 바라보며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말했다.

    "박사님, 이게 어떻게 된 일이죠? 불과 몇 초전만 해도 갑자기 짐승들이 
    나타났다며 미쳐 날뛰던 사람들이 모두 어디로 사라진거죠?"

    그러나 우일만 박사는 이미 예상했다는 듯 깊은 생각에 잠겨 있다가 무겁
    게 입을 열었다. 

    "벌레구멍이 열린게 틀림없어요. 그들은 과거의 또다른 시간과 공간의 차
    원 속으로 사라진 겁니다"

    "그... 그게 무슨 소리죠?"

    "우리의 눈에는 보이질 않았지만 그들에게는 분명 그들이 말하던 짐승들
    이 나타났을 겁니다. 그리고 그 짐승들은 벌레구멍을 통해 다른 차원에서 
    온 것들일 겁니다. 만약 별다른 이변이 없다면 이제 날이 밝으면 짐승들
    에게 참혹하게 뜯어 먹힌 그들의 시체만을 볼 수 있을겁니다. 무서운 일
    이지요"

    "그.... 그게....."

    손박사는 뭐라고 말하려다 다시 입을 다물었다. 텅 비어 있는 그 공간에 
    방금 그 끔찍한 짐승들이 나타나 한바탕 휘저었다는 우박사의 말이 좀체
    로 믿어지지 않앗던 것이다. 

    사람들이 사라진 빈 공간을 바라보는 우박사의 눈빛은 가늠하기 어려운 
    경이로움과 흥분으로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10. 불타는 세상(1)

    총소리와 함께 배영환의 팔뚝을 물어 뜯던 짐승이 '캑' 소리를 내며 힘없
    이 늘어졌다. 그리고 나머지 두 사람을 향해 달겨들던 짐승들도 이어진 
    총성과 함께 동시에 힘없이 쓰러졌다. 

    그들이 공포에 사로잡혀 주위를 둘러 보았다. 병실은 온데 간데 없고 놀
    랍게도 그들은 깊은 어둠에 잠긴 울창한 숲의 한가운데 쓰러져 있었다. 
    그리고 그 낯선 어둠 저편에서 누군가 다가오는 사람이 있었다.

    "김감독님!"

    자신을 부르는 낯 익은 목소리에 김감독은 지금 자신이 끔찍한 악몽을 꾸
    는게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었다. 그의 이름을 부르며 불쑥 어둠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사람은 정해일PD 였다. 

    해일은 아직도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넋이 나간듯 자신을 올려다 보는 
    김감독의 손을 덥석 잡았다.

    "역시 김감독님이 맞으셨군요. 이렇게 다시 만날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또 그는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비틀거리는 강은영과 배영환을 바
    라보며 들뜬 목소리로 외쳤다.

    "다들 살아 있었군, 다행이야, 다행!"

    해일의 뒤를 이어 낯 익은 또 다른 인물들이 나타났다. 혜경과 박호철이
    었다. 혜경을 보자 김감독이 더듬거렸다.

    "이뿐이형사님, 내가 정말 꿈을 꾸고 있는건 아니겠지?"

    혜경이 그녀 특유의 단호하고 차분한 음성으로 말했다.

    "불행하게도.... 이건 현실입니다. 한치의 오차도 없는 현실!"

    배영환이 자신의 팔뚝을 움켜쥐며 다시 그 자리에 주저 앉았다. 강은영이 
    황급히 그의 팔을 부축했지만 어느새 그의 팔뚝은 검붉은 피로 흥건하게 
    젖어 있었다. 

    해일이 그에게로 달려 갔을때 그의 얼굴은 참혹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그
    는 가까스로 고통을 참으며 힘들게 입을 열었다.

    "이게 정말 한치의 오차도 없는 현실이란 말이죠? 또다시 그 끔찍한 악몽
    이 시작된거구? 젠장,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그리 많이 지었기에 이런 
    생지옥을 헤매는지 모르겠군"

    통증이 심한지 가까스로 울음을 삼키며 고개를 돌렸지만 그의 말끝은 다
    소 울먹이는듯 했다. 강은영이 보다못해 훌쩍거리며 그의 어깨를 감싸 안
    았다.

    "배선배 힘내요. 다 잘 될거예요. 설마 이대로 죽기야 하겠어요?" 

    배영환을 힘겹게 부축해 일으키며 그녀가 돌아보며 물었다.

    "이제 어떻하면 되죠?"

    그러나 어느 누구도 그녀의 질문에 대한 대답을 가진 사람은 없었다. 마
    침내 혜경이 모두를 둘러보며 말했다.

    "여러분, 우선은 몸을 숨길 곳을 좀 찾아 봅시다. 놈들이 다시 우리를 찾
    아 내기 전에.... 다른 곳은 몰라도 저번에 주민들이 숨어 있던 그 창고안
    은 어쩐지 안전할거란 생각이 듭니다. 다들 그리로 옮기는게 좋을 것 같
    아요"

    그녀의 말에 이견이 있을리 없었다. 창고까지 가는 얼마 안되는 거리가 
    그들에겐 너무나 아득하게만 느껴졌다. 한걸음 한걸음 옮길때마다 어둠속
    에서 그들을 노려보고 있는 짐승들의 눈빛이 온몸 구석구석을 파고들었
    다. 

    약간의 변화가 있다면 그들이 웬일인지 무턱대고 달겨들지는 않는다는 것
    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훨씬 안전해 졌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
    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었다. 

    이제 놈들은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자신들의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마지막 
    일격을 가하려는 기회를 엿보고 잇을 뿐인 것이다. 창고는 을씨년 스럽기 
    그지없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마을 주민이 집단으로 자살했다는 사실이 그들의 마음을 
    더욱 움츠리게 만들었다. 창고는 이미 이런 사태를 예견하고 지어진 듯 
    매우 단단하고 견고해 보였다. 

    바닥에는 짚을 깔아서 냉기를 막아 주었고 안쪽에 등잔이 매달려 있었는
    데 기름이 가득 차 있어서 불을 붙이자 환하게 실내가 밝아졌다. 

    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여섯명의 사람이 그 안에 둘러 앉자 제법 아늑한 
    느낌까지 들었다. 역시 먼저 입을 연 것은 혜경이었다.

    "이곳이라고 놈들에게서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모두 알겁니다. 하지만 일
    전에 주민들이 이곳에 피신한 모양새를 봐서 그전에도 자주 이곳으로 피
    신을 했었던 것 같아요. 좋게 생각해서 놈들한테서 그나마 안전하게 피할 
    수 있는 곳은 이곳뿐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른 의견이 없다면 오늘밤 
    우리 모두의 운명은 이제 이곳에 맡기기로 하죠. 어차피 총알도 거의 없
    으니까....."

    담담한그녀의 목소리에 실내는 침통한 분위기마저 감돌았다. 특히 박호
    철의 상태는 상당히 심각해 보였다. 

    그는 여전히 충격에서 헤어나질 못한채 구석에서 몸을 최대한 구부리고 
    촛점없는 눈동자를 좌우로 굴리며 불안하게 떨고 있었다. 배영환은 팔뚝
    의 상처가 심해서 가까스로 고통을 참고 있었다. 

    응급처지를 하긴 했지만 출혈이 심해서 이 상태로 얼마간 더 시간이 지속
    되면 오히려 박호철보다 더 위험한 상황에 처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강
    은영은 배영환의 곁에 꼭 붙어서 계속 흐느끼고 있었다. 

    김감독은 언제 쳐들어올지 모르는 짐승들이 신경 쓰이는지 자주 창고문을 
    흘끗 흘끗 건너다 보며 얼굴에 긴장감을 풀지 못했다. 해일이 어렵게 입
    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몹시 힘겨운 듯 지쳐 보였다.

    "우린 지난 몇시간 동안 지금까지 우리가 평생을 겪어온 일들보다 더 많
    은 일들을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그 많은 일들중 어느 하나도 우리의 사
    고와 지식으로 이해할 수 있는 일들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갑자기 벽속에
    서 짐승과 살인마가 튀어 나오고, 사람들은 유령이 되어 버리고, 나이트 
    클럽의 벽이 사라지고 마침내는 결코 꿈에조차 오고 싶지 않았던 바로 이 
    목촌리에 또다시 이렇게 모였습니다. 결국 우린 모두 다른 사람들이 그랫
    던 것 처럼 죽을 수 밖에 없을지도 모릅니다"

    해일의 말에 모두들 고개를 번쩍 들고 뚫어지게 그를 바라보았다. 입밖으
    로 내지만 않았을뿐 어느 순간부터 모두가 해일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
    는 것을 그들은 서로의 눈빛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해일이 가슴속에서 낡은 노트 한권을 꺼내 들었다. 모든 사람의 시선이 
    그 낡은 노트 한권에 집중되었다. 해일은 그 낡은 노트를 소중하게 손으
    로 만지작거리며 담담하게 말했다.

    "돌아가신 구반장님의 노트입니다. 진작부터 읽어 보고 싶었지만 저는 의
    식적으로 이 노트를 읽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윤형사님과 박호철 순경 또
    한 저의 이런 마음과 같은 심정이었다고 저는 감히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녀나 그 또한 제가 구반장님의 노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
    서 한번도 그 노트를 읽어 보자는 소릴 하지 않았으니까요. 다들 암묵적
    인 묵시하에 차일 피일 미루고 있었던 거죠. 왜 그랬을까요? 이 노트안에
    는 구반장님과 목촌리 마을 주민들, 그리고 제 친구 김한수 기자등 목촌
    리와 관련되어 죽은 모든 사람들의 운명이 적혀 있습니다. 노트를 펼치는 
    순간 우리 또한 그 안에서 앞서 간 그들과 마찬가지로 결코 거역할 수 없
    는 우리의 정해진 운명을 보게 되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제 우리 모두 좀 더 솔직해져야 할 때가 온 것 같습니다. 돌아가신 구
    반장님은 이 일기장 안에 우리가 궁금해 하는 대부분이 적혀 있다고 했습
    니다. 또한 그는 결국 우리 모두는 죽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노트
    를 보고 나면 우린 더이상 삶의 의지를 포기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저
    는 이제 우리가 이 노트를 열어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합니다. 제 얘기에 
    이의가 있으신 분은 말씀해 주십시요"

    해일이 모두를 천천히 둘러보았지만 어느 누구도 입을 여는 사람은 없었
    다. 강은영은 더욱 서럽게 흐느껴 울었고 김감독은 빨간 불똥이 극에 달
    할때까지 깊이 담배를 빨아 들이고 있었다. 

    해일은 크게 쉼호흡을 한번 한 뒤 노트를 펼쳤다. 노트에는 깨알같은 글
    씨들이 빽빽하게 들어 차 있었다. 해일은 다시 한번 사람들을 둘러보고 
    자못 엄숙한 느낌마저 드는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소리내어 읽도록 하겠습니다"

    해일이 노트에 적힌 기록들을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실내에는 해일의 
    목소리를 제외하곤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 이 얘기는 나의 부모님과 마을 어른들로부터 전해들은 것들과 이후 나
    를 비롯한 목촌리의 모든 주민들이 겪은 불가사의하고도 끔찍한 비극적 
    운명에 대한 기록들이다. 

    전쟁이 끝나자 목촌리에는 전쟁보다 더 가혹한 시련이 찾아왔다. 전쟁중 
    인민군들에게 가족들을 처형당한 소위 구국 결사대라는 사람들은 목촌리 
    주민 모두에게 전쟁중 빨갱이들의 앞잡이가 되었다는 구실로 사람들을 잡
    아가 잔혹한 고문과 폭행을 일삼았다. 

    심지어는 겁에 질려 달아나는 주민들을 공비로 몰아세워 무자비하게 처형
    하기를 서슴치 않았다. 그들은 전쟁중 인민군들이 그들의 가족에게 했던 
    것처럼 도망친 주민들을 죽창으로 찔러 죽이는가 하면 훈련된 들개들을 
    풀어 사람들을 해치기도 하였다. 

    주민들은 공포에 떨었고 당시의 혼란한 시기를 감안한다 하더라도 정부나 
    경찰들은 오히려 그들의 활동을 호의적으로 여기는 눈치였다. 잠을 자고
    나면 거의 매일 마을 사람들중 누군가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곤 했다. 

    주민들을 비롯한 온 마을은 공포에 휩싸였다. 그들은 구국결사대의 허가
    를 받지 않으면 마을을 벗어날 수 조차 없었다. 지금의 흉가가 있는 자리
    가 당시에는 공개처형이 벌어졌던 마을 회관이 있던 자리였다. 

    찌는 듯 한 어느 여름날, 이글거리는 태양의 열기는 온 대지를 녹여 버릴 
    듯 그 기세를 더하고 있었다. 마을회관에서는 사상범으로 낙인 찍힌 또 
    한명의 마을 청년이 끔찍한 고문을 당하고 있었다. 

    실내에는 구국결사대 수십명과 이젠 그들의 상징처럼 되어버린 수십마리
    의 두려운 들개들이 광기에 번뜩이며 가엾은 마을 청년의 자백을 강요하
    고 있었다. 

    갑자기 마을회관 주위로 불길이 치솟은 것은 고문에 못 이긴 청년이 거의 
    모든마을 사람들이 인민군에 협조했다는 자백을 막 끝냈을 때였다. 불길
    은 100여평 남짓한 마을회관을 에워싸고 삽시간에 치솟아 올랐다. 

    이글거리는 태양열보다 더한 열기가 주위를 뜨겁게 달구었다. 건물안에서
    는 차마 듣기에도 참혹한 비명소리와 고함소리, 애원소리가 뒤섞여 이곳
    이 지옥이 아닌가 하는 착각을 일으킬 정도였다. 

    불길을 바라보며 불을 지른 마을 이장과 몇몇 청년들은 이 일로 인해 그
    들에게 가혹한 형벌이 내려진다 하더라도 그것이 자신의 가족과 마을 전
    체를 구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음을 알고 있었다. 

    불길이 최고조에 달했다고 생각될 즈음 갑자기 어디선가 찢어지는듯한 굉
    음이 온 마을과 사람들의 가슴을 뒤흔들고 지나갔다. 그것은 마치 천지가 
    둘로 갈라지는 것 같은 엄청난 소리였다. 

    그리고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불길이 갑자기 안으로 오그라들기 시작한 
    것이었다. 

    사방의 불길은 그 중심부로 여겨지는 어느 곳인가에 구멍이라도 생긴듯 
    급속하게 빨려들기 시작했고 불길의 중심부에서부터 생겨난듯한 투명한 
    공기의 파동, 그렇게 밖에 표현할 수 없는 낯선 현상이 물결처럼 주변으
    로 번져 나오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공포는 극에 달했고 거의 3시간은 족히 타오르던 불길은 차츰 
    기세를 꺽으며 사그러들기 시작했다. 불길이 모든 것을 휩쓸고 간 잿더미 
    위에는 쾌쾌한 유황냄새가 진동을 했고 작은 물건 하나까지도 제대로 성
    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정작 놀라운 일은 그 잿더미 속에서 한명의 구국결사대나 한마리
    의 들개 시체조차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수사기관에서는 마을회관
    의 불을 우연한 화재로 결론지었고 증발한 구국결사대에 대한 수사도 이
    듬해쯤 되자 차츰 수그러 들기 시작했다. 

    마을엔 참으로 오랜만에 평화가 찾아 들었고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악몽들
    은 조금씩 잊혀지고 있었다. -

    해일이 거기까지 읽었을때 예기치 못한 서너발의 총성이 창고안에서 울렸
    다. 해일이 읽기를 멈추고 놀라서 고개를 들었다. 나머지 사람들도 모두 
    두려운 눈으로 혜경을 바라보았다. 

    혜경은 창고안을 돌며 나무로 짜여진 벽에다 연거푸 총을 쏘아대고 있었
    다. 짐승들이 창고 주위를 둘러싼 것은 이미 오래전의 일이었다. 그들은 
    창고안으로 들어오기 위해 날카로운 발톱으로 흙을 파내기 시작했던 것이
    다. 

    혜경이 총을 쏠때마다 밖에선 광폭한 짐승들의 울음이 들려왔고 창고안에
    는 매케한 화약 냄새가 진동을 했다. 



    5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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