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연가’의 일본 대히트로 한·일 간 문화교류의 지형도를 바꾼 ‘욘사마’ 배용준(32)이 18일 저녁 조선일보와 단독 인터뷰를 가졌다. 서울 강남구 논현동 배용준 소속사 BOF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일본에서 그처럼 인기를 얻을 거라고는 예상 못했다. 한국과 일본에서 사랑을 보내준 모두에게 감사한다”고 말했다. 6개월 넘게 외부 접촉을 끊어온 그는 이날 “너무 많은 사랑을 받아 큰 책임감을 느낀다. 사단법인 설립 등 뭔가 사회에 환원할 수 있는 길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배씨는 19일 청룡영화상 핸드프린팅 행사, 20일 사진집 ‘디 이미지(The Image) Vol.1’ 발매와 전시회 개막 행사를 잇달아 가진다.
2004년 한해, ‘욘사마’ 배용준은 현해탄을 오가며 한국과 일본 양국을 관통하는 사회현상이 됐다. 특히 일본에서 그의 위상은 ‘스타’라는 말 한 마디로는 규정이 불가능했다. 400년 전 조선통신사 이래 한반도에서 불어온 열풍으로는 최고라는 ‘한류’의 진원이 그였고, ‘겨울연가’ NHK 방영 이후, 그가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리는 한 마디, CF에서 보여주는 작은 눈짓·몸짓 하나에 사람들은 뜨겁게 반응했다. 배용준의 ‘흔적’을 찾기 위해 한국을 찾는 일본 관광객들이 빚어낸 경제효과는 수천억원에까지 이를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18일 저녁 서울 강남구 논현동, 가정집을 개조한 배용준의 BOF 사무실 앞에는 일본 여성들 서너명씩 두 팀이 안쪽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친구들끼리 왔다는 이들 30, 40대 여성들은 “20분째 기다렸다”면서도 자기들끼리 기념사진을 찍으며 즐거운 모습이다.
사무실은 젊은 직원들로 분주했다. 홍콩 서울 도쿄 로스앤젤레스에 각각 시간을 맞춘 둥근 벽시계가 걸려 있고, 초록빛 인조 대나무가 숲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는 자그만 응접 공간에 배용준은 검은 모자와 짙은 녹색 가죽코트 차림으로 나타났다. 지난 7개월 동안 매스컴에 드러나는 것을 완벽하게 차단해왔던 그지만, 막상 만난 자리에서는 편안한 느낌으로 느긋했다. 19일 청룡영화상 기념 핸드프린팅 행사 때 사람들 앞에 나설 마음의 준비를 했기 때문일까. 약속 시간을 훨씬 넘겨 긴 이야기를 나눴고, 평상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극히 꺼려온 그로서는 드물게, 편안한 옷차림 사진을 찍는 것도 OK였다.(머리 손질을 못해 모자를 벗을 수 없다고 양해를 구했다.)
20일 발간될 사진집 일로 바쁘게 사무실을 오가는 직원들은 그를 ‘용준씨’라고 부르며 스스럼없이 인사를 건넸다. 15명이 배용준 프로젝트에 밤낮없이 뛰는 현장이다.
―운동을 하는 과정에서 얼굴 살이 너무 빠졌던데 이제 회복이 되었나?
“(씩 웃으며) 지금은 괜찮지 않나? 조금씩 회복하고 있는 중이다. 몸 만들기가 끝나고 촬영을 시작하려고
단골 미용실에 갔는데 나를 못 알아보더라. 그런데 얼굴이 그렇게 쏙 빠지지 않으면 배에 임금왕(王)자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태국에서 막바지 촬영할 때, 얼굴 살이 너무 빠져서 과일을 몇 개 먹으려다 그만 망고스틴을 70개 넘게 먹은 일도 있다.”
―일본에서는 ‘욘사마’ 신드롬의 이유로 배용준씨를 통해 드러난 순애(純愛) 이미지를 꼽고 있다. 미소년의 동화 같은 사랑이 사람들을 위로했다는 것이다. 왜 근육맨으로 변신하는 힘겨운 과정을 자청했나?
“어떤 한계 상황에 대해, 또 나 자신에 대해 도전을 하는 것이 정말 필요했다.
다이어트가 정말 힘들었다. 오히려 운동을 하는 순간들이 편했던 것 같다. 지방을 걷어내고 근육을 만들기 위한 다이어트를 하다 보니 당분과 염분을 섭취하지 못해 근육경련과 수면장애에 시달렸다. 하루는 한숨도 못 자고 트레이너 임종필씨에게 ‘밤새 눈만 감고 있었다’고 얘기했더니 ‘그래도 근육은 쉬었으니 운동하러 가자’고 하더라.”
― ‘겨울연가’ 신드롬이 대단한데, 그 ‘순정’ 이미지에서 벗어나고 싶은 생각은 없는지.
“(양 손을 위로 번쩍 들어올리며) 내가 사랑받은 작품에서 왜 벗어나려고 하나? 그렇다고 계속 그 기억 속에 있는 것은 아니지만. 모든 역할마다 다른 기억들이 있고, 지나서 생각하면 신기하기도 하다. 영화 ‘스캔들’을 생각하면서 ‘내가 그 바람둥이 연기를 어떻게 했나?’ ‘내 내면에 그런 면이 있었나?’라고 자문하기도 한다.”
― ‘겨울연가’ 중 어느 장면을 제일 좋아하나? 촬영지인 남이섬이 대단한 문화 명소가 됐다.
“나도 다시 가보고 싶은 곳이다. 그곳에서 고교시절 준상과 유진이 눈사람 만들면서 노는 장면을 제일 좋아한다. 너무 귀엽고 순수하지 않은가.”
―일본에는 ‘겨울연가’ 무대를 본딴 마을까지 생겼는데.
“나도 조선일보에서 읽었다. 가카미가하라라는 작은 마을이라고… 참 행복하고 고마웠다.”
―‘겨울연가’에 대한 일본의 반응을 예상했나? 왜 그렇게 일본인들의 호응을 얻었다고 생각하나?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이 드라마는 한국에서도, 다른 아시아 나라에서도 인기가 있었다. 그중 일본에서 가장 선풍적으로 인기를 끈 것은 그 분들을 둘러싼 환경이 외롭고 삭막해서가 아니었을까? 옛 것에 대한 마음을 느끼고 싶어했던 것 같다. 사실 세상은 너무 외롭지 않은가?”
―올 한해, 엄청난 국제적 스타가 됐다. 엄청난 사랑도 받고, 그런데 외로운가?
“워낙 많은 사랑을 받고 있지만…(침묵), 솔직히 외롭다. 너무 많은 걸 짊어져야한다는 생각이 든다. 외로움을 즐기려고도 하고 없애려고도 하는데 그게 잘 안 된다.”
―일본 팬들의 열정은 놀라운 것 같다. 일본 팬들의 특성은 어떤가? 그들을 위한 계획은?
“그 분들은 일본말을 잘한다. 하하, 농담이다. 기본적으로 저를 아껴주는 가족들은 따뜻하고 순수하다. 나보다 나이가 훨씬 더 많은 분들이 더 순수한 모습을 보여주시는 경우가 많아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된다. 곧 일본을 방문할 예정이다. 나는 한국이나 일본이나 팬들을 이제 ‘가족’으로 생각한다. 한국과 일본, 그리고 다른 아시아 국가의 가족이 만나서 교류하고 어려움과 기쁨을 나눌 수 있는 자리를 만들려는 계획이다. 한국에 안 좋은 일이 있으면, 일본 사람이 와서 도와주고, 일본에 안 좋은 일이 있으면 한국 사람이 가서 도와주고 얼마나 좋은가?”
―구체적으로 어떤 계획인가?
“아직 밝힐 단계까지는 아닌데… 내가 너무 많은 사랑을 받아서 그걸 어떻게든 사회에 돌려줘야한다고 생각한다. 세상 경험이 많은 어른들을 모시고 사단법인 같은 것을 만들 계획이 있다. 각 지역의 어려운 분들을 돕는 일에 쓸 수 있도록 하는 계획을 검토 중이다.”
―일본에서 상당한 구애(求愛)가 있는데, 일본 드라마에는 출연할 계획이 없나?
“한국에서도 아직 많은 작품을 하지 못했다. 일본말도 좀 그렇고…. 일본 드라마에 등장하기에는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
―NHK 홍백전에 출연하지 않으려는 이유가 있는가?
“음…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 같다. 버라이어티쇼라는 것이….”(그는 여기서 말을 아꼈다. 자칫 오만한 것으로 비쳐질까 걱정하는 모습이었다.)
―운동을 좋아한다고 들었는데, 평소 어떤 운동을 하나?
“골프를 좀 친다. 80대 초반의 기록을 갖고 있다. 격투기도 했고… 운동선수가 가끔 부럽다. 자신이 쏟아부은 노력에 대한 결과가 정직하기 때문이다.”
―몸 관리에 대해 평소 갖고 있는 비결이 있나?
“
운동은 기본적으로 해야하는 것이고 사실은 어떻게 먹느냐가 더 중요하다. 사진집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닭가슴살을 많이 먹었는데, 계속 질긴 음식을 씹다보니까 턱 주변에 근육이 생겼다. 그래서 깜짝 놀랐다. ‘근육이 잡혀 얼굴형이 변하면 어떻게 하나?’ 걱정됐던 것이다. 그래서 이후에는 아예 닭가슴살과 야채를 믹서에 갈아서 먹었다.”
(그는 20일 발매될 사진집 ‘디 이미지(The Image) Vol.1’을 세상에 내놓기까지 가혹하리만치 자신을 단련해온 과정을 솔직하게 드러냈다.
근육을 만드느라 탄수화물을 극도로 제한하는 다이어트를 하면서 배 고팠던 이야기를 할 때는 하하 웃으면서도 상당히 쑥스러워했다.)
―배용준에 대해 사람들이 가장 오해하고 있는 게 무엇인가?
“얼마 전 새로 만나게 된 사람이 있었는데, ‘너무 깐깐하고 차갑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하더라. 사실 내가 처음 본 사람에게 살갑게 못하는 측면이 있다. 또 인상 자체가 웃지 않으면 날카롭고 차가우며 너무 이성적이다. 그런데 지금 그 사람은 나만 보면 ‘너무 웃긴다’고 말한다.”(실제로 그는 “인터뷰가 재미있다”며 줄곧 웃으며 답했다. “나에 대해 더 물어볼 게 없냐”고도 했다.)
―작품을 할 때마다 본인의 기준이 매우 높은 배우로 소문이 나 있던데.
“옛날에는 그랬다. 나 자신에 대해 항상 부족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고 선뜻 누구에게 나 자신을 보여주는 게 두려웠다. 자꾸 더 집어넣고 만들어서 새로운 것을 보여주려고 했었다. 하지만 지금 심정은 이렇다. ‘가진 게 이것밖에 없으니까 1%, 2% 달라지는 걸 조금씩 보여주자’ 그런 식으로 생각하니 조금 느긋해지는 것 같다.”
―배용준 개인의 목표는 일본을 넘어 더 큰 무대를 겨냥하고 있지는 않은가?
“일본을 목표로 정해 활동해본 적도 없다. 다른 나라에서 활동을 하려면 그 나라의 언어와 문화를 체득해야한다. 그 과정을 통해 자연스러운 연기를 보여주려면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다만 좋은 작품을 통해 아시아 지역뿐 아니라 더 많은 지역에서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마음은 있다.”
―영상학 전공자로서 동아시아 지역을 강타하는 ‘한류’ 열풍에 대한 생각도 남다를 것 같다.
“나 자신이나 몇몇 스타가 한류 열풍의 중심에 있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한국의 문화콘텐츠가 한류열풍을 이어나가야한다. 아시아 문화는 서로 큰 이질감이 없는 듯 하다. 마치 제조업에서도 제품력이 뛰어나면 시장에서 오래가는 것처럼 문화콘텐츠도 작품력으로 승부를 걸어야한다.”
―허진호 감독의 ‘외출’이 차기작이다. 국제적 스타가 된 만큼 작품 선정에 부담이 컸을 텐데 어떤 기준으로 택했나?
“감독에 대한 믿음이 크게 작용했다. 배우와 감독의 호흡, 교감이 중요하다는 측면에서 허진호 감독님과 같이 작품을 해보고 싶었다. 특유의 정서적인 코드와 감수성 어린 영상을 알고 있는 만큼, 가슴에 와닿는 영화를 찍고 싶었다. 이 영화를 통해 오랫동안 여운을 남기는 연기를 해보고 싶다. 국제적 인기는 고려하지 않았다. 연기인생 과정에서 지금 적절한 선택이라고 믿는다.”
―21세기의 ‘스타’는 도대체 무엇인가?
“디지털 시대라고 하지만, 오히려 감성이 갈수록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결국 산업을 움직이는 것도 이미지나 감성이 아닌가? 미디어라는 것이 이미지를 만드는 역할도 하지만, 진실된 마음이 동반돼야 그 효과가 더 큰 것 같다. 엔터테인먼트의 규모가 커지고 첨단화되지만 이런 메커니즘에 기대는 스타이기보다는 본인의 능력과 자질을 계속 계발하는 자세를 유지하겠다. 진심으로 팬을 대하는 것이 정말 중요한 것 같다.”
―다른 배우들과는 좀 다른 경력을 가졌다. 영화사에서 스태프로 일하는 것으로 시작했는데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만한 다른 포부는 없는가?
“연기를 계속할 것이다. 영화 연출도 해보고 싶다.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만한 그런 큰 일은 아니더라도 하고 싶은 일은 정말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