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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묻어가자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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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물ID : humorbest_1515102
    작성자 : 묻어가자
    추천 : 22
    조회수 : 3559
    IP : 182.221.***.190
    댓글 : 7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17/11/01 16:54:49
    원글작성시간 : 2017/10/26 12:35:40
    http://todayhumor.com/?humorbest_1515102 모바일
    [단편] 좀비와 로봇의 행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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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 아내가 목적을 상실했다.
     
     
     
     

     아내는 이곳 붉은 행성을 방황하는 수많은 좀비 떼의 일원이 된 것이다. 아내는 집을 나갔고 그것으로 끝이었다. 집에는 이제 나뿐이었다. 나는 좀비가 들어올까 봐 문을 꼭 걸어 잠갔다. 밤이 되면 좀비들의 울부짖음이 들렸다. 그들은 왜 울부짖는 것일까. 울부짖을 목적도 없으면서. 그렇게 탓하면서 나는 나직이 울부짖었다. 이건 단지 좀비 흉내를 내는 것뿐이니까... 나는 좀비가 된 듯 오싹한 기분이 들면서도 왠지 모를 안도감을 느꼈다. 
     
     100년 만에 푸른색 크리스털 비가 쏟아지던 밤이었다. 그 날 많은 좀비가 죽었다. 낮이 되니 길바닥엔 널브러진 좀비들이 즐비했다. 참혹한 악취... 목적을 상실한 이들의 결말... 나는 목적을 잃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나조차도 점점 목적을 상실해가고 있었다. 결국 언젠가는 나도 좀비가 될 것이다. 좀비가 되면 아내를 볼 수 있을까. 아니 그녀를 봐서 뭣하겠나. 미운 사람. 미운 사람.
     
     사람들은 언제부턴가 목적을 잃기 시작했다. 목적을 이루기 위해 서로 상처주는 일들이 빈번해지자 사람들은 목적을 버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 무수한 목적의 피해를 어떻게 다 열거할 수 있을까. 전쟁, 살인, 배신, 사기, 겁탈, 사랑의 파괴... 그렇게 목적에 대한 집착을 버린 이들이 생겨났다. 그러자 로봇은 그들을 노리기 시작했다. 깡통처럼 텅 빈 가슴을 지닌 채 배회하는 존재들. 로봇은 사람들의 목적을 빼앗아서 그것을 자신에게 집어넣으려는 것이다.
     
     오늘 로봇이 되는 꿈을 꾸었다. 나의 몸은 양철이었고 가슴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내 가슴의 진공이 너무나 아득하여 견딜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무엇으로 그것을 메울 수 있을까. 나는 붉은 돌멩이들을, 붉은 흙들을, 크리스털 파편들을, 널브러진 시체들을 가슴에 채워넣었다. 그러나 진공은 전혀 사라지지 않았다. 그 때 목적을 가진 사람이 보였다. 목적을 빼앗아야 돼. 견딜 수 없는 공백을 메워야 해. 나는 그에게 다가가서 머리카락보다 얇은 수많은 금속 바늘을 그의 머리에 꽂았다. 그는 자신의 목적을 지키려 하지 않았다. 나는 그의 목적을 빼앗았다. 드디어 가슴에 무언가가 채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고 나서 꿈을 깼다. 악몽이었다...
     
     꿈을 꾸고 며칠이 지났다. 처음으로 로봇이 우리집의 문을 두드렸다. 나의 냄새를 맡은 것이다. 약해지고 있는 나의 목적을 감지한 것이다. 로봇은 정해진 시간에 맞추어 며칠이고 노크를 했다. 노크 소리는 마치 나를 두드리는 망치소리 같았다. 나는 점점 약해지고 있었다. 나는 결국 포기했다. 어서 나의 목적을 가져가. 난 아무런 의미도 없어졌어. 그렇게 문을 열었다. 문앞에는 로봇이 있었다. 아름다운 여자형 로봇이었다. 나는 첫눈에 그녀에게 반하고 말았다. 로봇은 나에게서 강한 목적이 생겨남을 감지하고는 실망했다. (그래서 그녀는 나의 목적을 빼앗지 못했다) 하지만 로봇은 나를 떠나지 않았다. 언젠가 내 목적이 약해질 거라고 그녀는 믿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머리를 빗어주곤 했다. 찰랑거리는 긴 생머리였다. 그녀는 내 손에 가만히 머리를 기대기도 하였다. 내 손에 꼭 들어오는 조그마한 머리통이었다. 그녀도 날 사랑하는 걸까? 아니, 아니야. 그녀는 단지 내가 가진 목적을 빼앗을 기회만 노리고 있을 뿐이야. 하지만 난 그녀를 사랑해. 사랑하고 있어. 그녀를 사랑할수록 내 안의 목적은 점점 강해졌다. 하지만 그럴수록 그녀는 점점 실망했다. 어느 날 그녀도 아내처럼 말 없이 집을 떠나갔다.
     
     그녀가 떠나고 몇 달이 지났을까. 아니 어쩌면 몇 년. 좀비처럼 웅크려 울부짖는 흉내를 내고 있을 때였다. 똑 똑. 익숙한 노크 소리. 나는 달려가 문을 열었다. 그녀였다. 다시 내 가슴에 강렬한 목적이 생겨나고 있었다. 그녀가 환하게 웃었다. 그리고 그녀는 등 뒤에 감춘 조그마한 선물을 내밀었다. 아내의 머리였다.
     
    "아?"
     
    "아픈가요?"
     
     그녀는 나에게 상처를 주려는 것이다. 내 목적을 약화시키고 힘을 뺏으려는 것이다. 알고 있는 사실임에도 아팠다. 하지만 그렇게 아름다운 웃음을 지어서는 안 되었다. 나는 그녀에게 키스했다. 그녀는 실망하였다. 이후 아내의 머리는 창고에 처박아 두었다. 늙지도 않는 나는 그녀와 수백 년을 같이 지내고 있다. 언젠가 그녀를 사랑하지 않게 될 때, 나는 그녀에게 사랑의 선물을 주리. 어쩌면 우리는 이 붉은 행성에 남은 마지막 로봇과 인간인지도 모르겠다. 오늘 오랜만에 크리스털 비가 쏟아질 것만 같다. 
     
     
     
     
     
     
     
     
     
     
     
     
    묻어가자의 꼬릿말입니다
    우주 공포 단편 1 : 격리실의 얼굴들
    http://todayhumor.com/?humorbest_1488278
    우주 공포 단편 2 : 좀비와 로봇의 행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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