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나는 좀 전에 본 공포영화에 대해 얘기를 꺼냈다.</div> <div>"귀신이라니... 저런 게 어딨냐"</div> <div> </div> <div>"왜? 있을 수도 있지... 사람이 어떻게 세상의 모든 걸 알겠어?"</div> <div> </div> <div>"사람이 모든 걸 알 수는 없지. 그래도 귀신이 있다면 사람이 알아낼 수 있어.</div> <div>지금까지 귀신이 있다는 증거같은 건 없으니까 귀신은 없는 게 맞아."</div> <div> </div> <div>"밝혀내기 힘들 수도 있잖아. 아니면 밝혀낼 수 없는 어떤 이유가 있든가. 그리고 심령사진이나 귀신목격담 같은 건 되게 많아."</div> <div> </div> <div>"목격담은 착시현상일 확률이 높고, 심령사진은 죄다 가짜거나 사진을 현상할 때 실수가 생긴 거야. </div> <div>그리고 귀신이 있다면 밝혀낼 수 없는 이유는 도대체 뭐야? 그러니까 눈으로 볼 수도 있고, 사진으로도 찍을 수 있다면 </div> <div>어떻게 귀신의 증거가 하나도 없냐 이 말이야."</div> <div> </div> <div>"물론 말도 안 되는 증거들도 많지만 그 수많은 증거들 중에서 몇개 정도는 진짜가 섞여있는 거야. </div> <div>증거들이 너무 많아서 전문가들이 밝혀내기 힘든 것 뿐이지."</div> <div> </div> <div>"... 넌 귀신의 정의가 뭐라고 생각해?"</div> <div> </div> <div>"정의? 사람이 죽고나면 육체에 있는 영혼이 빠져나가면서 생기는 거지."</div> <div> </div> <div>"뭐 그렇지. 보통 사람들은 귀신이 어떠한 불만을 품고 그걸 해소하지 못해서 이승에 남아있다고 생각해. 근데 잘 생각해 봐.</div> <div>원한이든 뭐든간에 그건 기억을 가지고 있어야 생기는 거야. 기억이 없는데 어떻게 원한이 생겨?"</div> <div> </div> <div>"귀신도 기억이 있을 수 있지."</div> <div> </div> <div>"귀신은 기억이 없어."</div> <div> </div> <div>"왜?"</div> <div> </div> <div>"뇌가 없잖아."</div> <div> </div> <div>"뇌가 없어도 기억이 있을 수 있지."</div> <div> </div> <div>"넌 기억이 5분마다 사라져버리는 사람 이야기도 몰라? 사고로 뇌를 다친 남자 이야기 말이야. 기억은 뇌 속에 있는 거야. </div> <div>공기를 떠다니는 영혼에 있는 게 아니라..."</div> <div> </div> <div>"그건 너무 인간중심적인 생각이다. 뇌에 있는 기억이 다른 차원으로 옮겨갈 수도 있잖아. 문턱을 넘듯이 기억이 다른 차원으로 이동하는 거야.</div> <div>그리고 다른 차원에 본체가 있으면서 우리 현실세계에 나타난다든가 할 수도 있지."</div> <div> </div> <div>"기억이 다른 차원으로 옮겨간다고? 그럼 뇌 속에 있던 건 뭐야? 뇌에 문제가 있는 남자 이야기로 뇌 속에 기억이 있는 건 증명됐잖아. </div> <div>너는 기억이 다른차원으로 넘어갈 수 있다고 했지? 그렇다면 뇌에도 기억이 있게 되는 거고, 다른 차원에도 기억이 있게 되는 거야."</div> <div> </div> <div>"뇌가 죽으면 기억이 다른 차원으로 옮겨가는 거야."</div> <div> </div> <div>"아니야. 기억은 뇌 속에 존재하는 거야. 뇌가 죽어서 가동을 멈췄다고 해서 기억이 알코올처럼 증발하는 건 아니라고. </div> <div>만약 기술이 엄청 발달해서 죽은 사람을 깨울 수 있다면 기억이 그대로인 채로 일어날 거야.</div> <div>너가 말에 따르면 죽은 사람이 부활할 때 기억이 하나도 없단 이야기잖아. 기억이 다른 차원으로 넘어가기 때문에."</div> <div> </div> <div>"맞아. 죽은 사람을 깨우면 기억이 아예 없을 수도 있어. 그리고 기억이 온전히 다 있다고 하더라도, 다른 차원에 있는 기억이</div> <div>다시 뇌 속으로 들어갔기 때문이야. 몸이 살아난 걸 감지한 거지."</div> <div> </div> <div>"... 후자에 대해 얘기해보자. 그럼 죽었다 살아난 사람이 기억이 있다면 말이야, 다른 차원에서 생활한 시간이 있을 건데</div> <div>왜 다른 차원의 기억은 없지? 가끔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잖아."</div> <div> </div> <div>"그런 사람들은 빛 같은 걸 봤다고 주장하던데?"</div> <div> </div> <div>"그건 기억이라기엔 너무 추상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기억이란 건 더 구체적이어야 해."</div> <div> </div> <div>"그 사람들은 완벽하게 죽은 게 아니잖아. 기껏해야 몇 분 정도 죽어있던 것 뿐이라고. 다른 차원으로 옮기는 데 시간이 좀 걸리겠지 아마."</div> <div> </div> <div>"어쨌든 귀신이 기억을 가지고 있다는 건 말이 안 돼."</div> <div> </div> <div>"넌 귀신의 존재를 안 믿는구나? 사후 세계를 말이야."</div> <div> </div> <div>"... 그건 나도 잘 모르겠어."</div> <div> </div> <div>"흠? 지금까지 귀신에 대해 부정적으로 말하지 않았어?"</div> <div> </div> <div>"난 단지 귀신은 기억이 없을 거라고 말한 것 뿐이야. 아마 귀신... 그러니까 영혼은 기억이 없는 채로 떠돌다가 육체에 들어갈 것 같아.</div> <div>만약에 영혼이란 게 있다면 말야."</div> <div> </div> <div>"그리고 죽으면 영혼이 빠져나오고?"</div> <div> </div> <div>"그렇지. 죽으면 새로운 육체를 찾아서 들어가는 거지. 자신의 전생의 기억 같은 건 전혀 알 수가 없어. 기억은 예전의 몸에 전부 남아있으니까."</div> <div> </div> <div>"음... 근데 너가 말하는 영혼은 어쩌면 무의미한 것 같은데."</div> <div> </div> <div>"어째서?"</div> <div> </div> <div>"그러니까 영혼의 역할이 너무 작다는 거야. 영혼이 다른 몸으로 들어가면 기억이든 성격이든 재능이든 뭐든간에 </div> <div>전부 몸이 가진 유전자가 결정하는 거잖아. 영혼이 없다고 해도 별 차이가 없는 정도잖아."</div> <div> </div> <div>"그렇긴 하지. 그래도 영혼은 '감각의 주체'라는 기능이 있어."</div> <div> </div> <div>"주체??"</div> <div> </div> <div>"그래. 기쁨이나 슬픔 등의 감정을 그 즉시 느끼는 역할을 하는 거지. 어쩌면 생각의 주체가 될 수도 있고 말이야. </div> <div>단지 생각의 수준은 뇌의 지식에 따라 결정되겠지만."</div> <div> </div> <div>"재미있는 이론이긴 하네."</div> <div> </div> <div>"내 생각엔 사람들이 귀신이니 원혼이니 떠드는 이야기들은 흥미위주의 허구야. 증거도 없고 말이야. </div> <div>오히려 내 이야기가 훨씬 그럴듯해. 왜냐하면 내 이야기가 맞다면 증거 자체를 찾을 수 없거든. </div> <div>그래서 아무도 영혼이 있다는 그럴듯한 증거를 못찾은 거지."</div> <div> </div> <div>"흠... 그런가?"</div> <div> </div> <div>"'자아'라는 거 말이야. 이게 과학적으로 쉽게 밝혀질까? '나는 존재한다'는 생각을 하는 그 주체가 어디에 있는지</div> <div>과학이 쉽게 밝힐 수 있을까? 뇌 어딘가에 존재하겠지만, 어쩌면 자아야 말로 다른 차원으로 이동할 수 있는 가장 가능성이 높은 녀석이야."</div> <div> </div> <div>"그런 거 같기도 하다."</div> <div> </div> <div>"어쩌면 사람이 죽고나서 영혼이 빠져나가는 게 아니라 살아있는 중에도 영혼이 계속 바뀌는지도 몰라."</div> <div> </div> <div>"그거 되게 괴상하네."</div> <div> </div> <div>"너랑 내 영혼이 바뀌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우리는 인식하지 못하는 거야. 몸이 가진 기억과 능력은 그대로니까. </div> <div>감각의 주체는 바뀌었지만 우리의 몸은 전혀 느끼지 못하는 거야."</div> <div> </div> <div>"영혼의 역할이 너무 작은 거 아냐? 난 지금의 내 몸과 내 기억이 좋은데. </div> <div>그렇다면 내가 더 좋아하는 건 자신의 영혼이 아니라 자신의 기억이잖아. </div> <div>너 말이 맞다면 내 영혼이 하루에도 수십번 바뀐다고 해도 난 알아차리지 조차 못해.</div> <div>하지만 내 기억을 잃으면 사랑하는 모든 걸 잃게 되는 거지."</div> <div> </div> <div>"맞아. 하지만 잘 생각해 봐. 너가 1년에 한 번씩 영혼이 바뀐다고 가정하자. </div> <div>너가 1년 후에 기억을 잃어서 괴롭게 된다면 괴로움을 겪는 영혼은 너가 아냐. 너를 대신해서 너의 몸에 들어온 다른 영혼이지."</div> <div> </div> <div>"음...그런가? 되게 혼란스럽네. 그래도 내가 1년 후까지 살아있다면 어차피 난 고통을 경험하는 거잖아?"</div> <div> </div> <div>"그래. 너가 아니라 다른 영혼이 경험하겠지."</div> <div> </div> <div>"그럼 내 영혼은?"</div> <div> </div> <div>"다른 몸 속으로 들어갔겠지."</div> <div> </div> <div>"그리고 그걸 인지조차 못한다는 말이지?"</div> <div> </div> <div>"맞아. 그래서 이 세상에는 영혼에 대한 증거가 없는 거야."</div> <div> </div> <div>"그거 좀 치사한데? 아. 초끈이론이었나? 그것도 증명할 수 없다던데. 되게 비슷하게 치사한 걸."</div> <div> </div> <div>"증명이 불가능하다라... 그런가? 하하. 그래도 혹시 모르지. 자, 상상해봐. 누군가 꿈을 꾸면서 신의 목소리를 듣는 거야.</div> <div>그래서 신이 영혼의 모든 비밀을 말해준 거야. </div> <div>'이 피조물 녀석아. 너는 지금의 몸뚱아리가 너라고 생각하지? 그건 내가 만든 훼이크야. 너의 진짜는 너의 영혼이라고.</div> <div>그리고 영혼이란 놈은 일 년마다 다른 몸으로 옮기는데 피조물 놈들은 그것도 모르고 서로를 헐뜯지. 결국 자기가 자기를 물어뜯는 꼴인데 말야.'</div> <div>이런 식으로 신이 말해주는 거야. 그러면 영혼의 비밀에 대해 알 수 있지."</div> <div> </div> <div>"그러면 초끈이론도 그렇게 증명하면 되겠다. 대신에 그걸 논문으로 제출하면 정신병원에 수감될 걸?"</div> <div> </div> <div>"뭐,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div> <div> </div> <div>"너도 아네?"</div> <div> </div> <div>"나 혼자만의 영혼의 개념에 대해 떠들긴 했지만 난 이것조차 안 믿어. 인간의 자아도 뇌 속에 있는 거야. 이게 어떻게 다른 곳으로 옮겨가겠냐."</div> <div> </div> <div>"나는 너가 사이비종교 같은 거에 빠진 게 아닌가 무서웠었다. 그런 거에 빠지면 너가 모은 재산 다 날라가. 이 부자 자식아."</div> <div> </div> <div>"하하. 사이비종교라니. 그냥 내가 상상해낸 이야기일 뿐이야. 내가 신의 목소리를 듣기 전까지는 그렇게 생각했지."</div> <div> </div> <div>"응?"</div> <div> </div> <div>"신의 목소리말야."</div> <div> </div> <div>"신의 목소리를 들었다고?"</div> <div> </div> <div>"응."</div> <div> </div> <div>"... 아하! 너가 그렇게 말하는 순간 내 표정이 되게 재밌었겠네. 장난이 아주 고차원적이셔."</div> <div> </div> <div>"이거 받아."</div> <div> </div> <div>"응? 이게 무슨 종이야?"</div> <div> </div> <div>"내 재산을 모두 너에게 넘긴다는 서류야."</div> <div> </div> <div>"뭐? 무슨 말이야 그게?"</div> <div> </div> <div>"신기하게도 내 영혼의 다음 육체가 너더라. 한 달 후면 너의 육체로 내가 가게 될 거야. 아마 많이 교류하는 몸으로 영혼이 옮겨가는 방식이려나."</div> <div> </div> <div>"... 뭐 돈이 넘쳐서 나한테 돈을 주고 싶다면 그냥 솔직하게 말하면 돼. 이런 이상한 방법은 안 써도 된다고."</div> <div> </div> <div>"그런 거 아냐. 다 진짜야."</div> <div> </div> <div>"그러니까, 한국 1000대 기업 중 하나의 오너인 너의 모든 재산을 나에게 주겠다고? 수천억원에 달하는 그 모든 재산을?"</div> <div> </div> <div>"나도 한 달은 살아야 하니까 한 1~2억은 남겨두고 나머지는 전부 다 줄게."</div> <div> </div> <div>"...참나. 지랄하지 마라. 진짜 돈 갖고 사람마음 장난치는 거 아니다."</div> <div> </div> <div>"야 그냥 속는셈치고 싸인이나 해. 이 서류가 그렇게 복잡한 건 아니잖아. '내 모든 재산을 너에게 준다.' 글자 안 보이냐?"</div> <div> </div> <div>"하. 참나. 자 자!! 여기 싸인했다. 됐냐? 진짜 이딴 장난 칠 거면 앞으로 부르지도 마라. 너가 아무리 부자라고 해도 </div> <div>소시민인 나를 이렇게 무시할 권리는 없는 거야 알어? 그 동안 친구라고 생각 한 내가 바보였다. 난 간다."</div> <div> </div> <div>나는 울분을 삭히며 집에 돌아왔다. </div> <div>다음 날 내 통장에는 수백억원의 돈이 들어와 있었고, 그의 모든 주식을 내가 소유하게 되었다는 자산관리사의 말을 들을 수 있었다.</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