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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구, 부지깽이
시골집 나뭇간엔
작대기감도 말뚝감도 안 되어
그냥 노는 막대기가 많은데
어느 날 부지깽이가 되면
부뚜막에 오른 개
엉덩이도 때려 주지만
불을 때며 아궁이를 들락거리며
불땀 없는 땔감을 괄게 태우고
잉걸불 끌어내어 화로에 담으면서
제 몸을 태우고 또 태우고 해
하루가 다르게 짧아지다가
드디어 아궁이에 던져져서
불덩이가 되곤 했지
정현종, 슬픔
세상을 돌아다니기도 하였다
사람을 만나기도 하였다
영원한 건 슬픔뿐이다
덤덤하거나 짜릿한 표정들을 보았고
막히거나 뚫린 몸짓들을 보았으며
탕진만이 쉬게 할 욕망들도 보았다
영원한 건 슬픔뿐이다
Emilly Dickinson, 내가 만약
내가 만약
누군가의 마음의 상처를 막을 수 있다면
내 헛되이 사는 것 아니리
내가 만약
한 생명의 고통을 덜고
괴로움 달래줄 수 있다면
기진맥진 지친 울새 한 마리
둥지에 다시 넣어줄 수 있다면
내 헛되이 사는 것 아니리
신현수, 술값
말 많이 하고 술값 낸 날은
잘난 척한 날이고
말도 안하고 술값도 안낸 날은
비참한 날이고
말 많이 하고 술값 낸 날은
그중 견딜만한 날이지만
오늘, 말을 많이 하고 술값 안낸 날은
엘리베이터 거울을
그만 깨뜨려버리고 싶은 날이다
이해인, 왜 그럴까, 우리는
자기의 아픈 이야기
슬픈 이야기는
그리도 길게 늘어놓으면서
다른 사람들의 아픈 이야기
슬픈 이야기에는
전혀 귀기울이지 않네
아니, 처음부터 아예
듣기를 싫어하네
해야 할 일 뒤로 미루고
하고 싶은 것만 골라 하고
기분에 따라
우선 순위를 잘도 바꾸면서
늘 시간이 없다고 성화이네
저 세상으로 떠나기 전
한 조각의 미소를 그리워하며
외롭게 괴롭게 누워 있는 이들에게도
시간 내어주기를 아까워하는
건강하지만 인색한 사람들
늘 말로만 그럴듯하게 살아 있는
자비심 없는 사람들 모습 속엔
분명 내 모습도
들어 있는 걸
나는 알고 있지
정말 왜 그럴까
왜 조금 더
자신을 내어놓지 못하고
그토록 이기적일까, 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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