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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신선, 사람이 사람에게
2월의 덕소 근처에서
보았다 기슭으로 숨은 얼음과
햇볕들이 고픈 배를 마주 껴안고
보는 이 없다고
녹여주며 같이 녹으며
얼다가
하나로 누런 잔등 하나로 잠기어
가라앉은 걸
입 닥치고 강 가운에서 빠져
죽는 걸
외돌토리 나뉘인 갈대들이
언저리를 둘러쳐서
그걸
외면하고 막아주는
한가운데서
보았다
강물이 묵묵히 넓어지는 걸
사람이 사람에게 위안인 걸
유하, 사랑의 지옥
정신없이 호박꽃 속으로 들어간 꿀벌 한 마리
나는 짖궂게 호박꽃을 오므려 입구를 닫아 버린다
꿀의 주막이 금세 환멸의 지옥으로 뒤바뀌었는가
노란 꽃잎의 진동이 그 잉잉거림이
내 손끝을 타고 올라와 가슴을 친다
그대여, 내 사랑이란 그런 것이다
나가지도 더는 들어가지도 못하는 사랑
이 지독한 마음의 잉잉거림
난 지금 그대 황홀한 캄캄한 감옥에 갇혀 운다
기욤 아폴리네르, 미라보 다리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강은 흐르고
우리의 사랑도 흐른다
마음속 깊이깊이 아로새길까
기쁨 앞엔 언제나 괴로움이 있음을
밤이여 오너라, 종아 울려라
세월은 가고 나만 머문다
손에 손을 잡고 얼굴 마주하며
우리의 팔 밑 다리 아래로
영원의 눈길 지친 물살이
천천히 하염없이 흐른다
밤이여 오너라, 종아 울려라
세월은 가고 나만 머문다
사랑이 흘러 세느 강물처럼
우리네 사랑도 흘러만 간다
어찌 삶이란 이다지도 지루하더냐
희망이란 또 왜 격렬하더냐
밤이여 오너라, 종아 울려라
세월은 가고 나만 머문다
햇빛도 흐르고 달빛도 흐르고
오는 세월도 흘러만 가니
우리의 사랑도 가서는 오지 않고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강만 흐른다
밤이여 오너라, 종아 울려라
세월은 가고 나만 머문다
박노해, 가만히 돌아가기
자연을 거스르면
몸이 운다
몸이 울면
마음도 아프다
아플 땐 멈추고
자연으로 돌아가기
거스르고 무리한 것들
내려놓고 비우기
힘들고 아플 땐
기본으로 돌아가기
새 힘이 차오르도록
그저 비워두고 기다리기
이종문, 어처구니
온통
난장판인
어처구니 없는 세상
제일로 그 중에도 어처구니 없는 것은
지천명, 이 나이토록
어처구닐 모른
그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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