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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물ID : humorbest_1360287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21
    조회수 : 1082
    IP : 221.155.***.186
    댓글 : 0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17/01/01 19:08:06
    원글작성시간 : 2016/12/30 23:19:00
    http://todayhumor.com/?humorbest_1360287 모바일
    [BGM] 달려가고 있다, 너에게


    1.jpg

    곽효환, 그 날




    그날, 텔레비전 앞에서 늦은 저녁을 먹다가

    울컥 울음이 터졌다

    멈출 수 없어 그냥 두었다

    오랫동안 오늘 이전과 이후만 있을 것 같아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 밤, 다시 견디는 힘을 배우기로 했다







    2.jpg

    이경교, 꽃노을




    가슴 언저리가 화끈거려 짚어보니

    진달래 염통 부위가 아직도 따스하다

    꽃도 무엇에 가슴이 데었는지 달뜬 얼굴이다

     저 고칠 수 없는 질병을 우리는 사랑이라 부른다


    나무가 어둑어둑 제 몸 안에 나이테를 긋는다

    내 관자놀이 욱신거릴 때마다 내 안에도 빗금이 새겨진다

    얇은 잎새 위에 노을이 묻어 벌겋다

    그걸 꽃인 줄 잘못 알았다







    3.jpg

    황경신, 언제 와




    당신이 내내 오는 시간이

    내게는 내내 오지 않는 시간입니다

    그러니 말해주세요, 사랑

    언제 쯤이면 내게 올 것인지


    내가 알지 못하는 당신과

    내가 기다리는 당신이

    같은 당신인지

    말해주세요, 사랑

    언제쯤이면 할 수 있는 것인지


    당신이 존재하지 않는 세계의

    차고 단단한 벽들 사이에서

    장님처럼 갇힌 마음을 알고 있다면

    말해주세요, 사랑

    언제쯤이면 이름을 불러줄 것인지


    당신이 내내 망설이는 시간이

    내게는 내내 서성이는 시간입니다

    그러니 말해주세요, 사랑

    언제쯤이면 폭풍으로 내게 닥쳐와

    나를 집어삼키고 무너뜨릴 것인지







    4.jpg

    김이강, 마르고 파란




    아무튼 간에 너의 목소리가 나직나직하게 귀에 걸려 있다

    우동 먹다 말았어


    자동차도 고치고 담배도 피우고 그러던

    마르고 파란 셔츠를 입은 사람이라니

    이런 묘사는 너무 외로워


    처음엔 모든 게 크고 멋진 일이지만

    나중엔 그런 것들도 그저 무심하게 흘러가는 거라고

    쓸쓸히 말하던 사람이 있었지

    그러니, 부디 잘 살아달라고 당부하던

    마르고 파란 셔츠를 입은 사람을 묘사하는 너에게

    그 말을 전해야겠다고 생각했어

    헤어진 애인처럼 전활 받지 않는 너에게


    우리 사이에 남겨진 말들이 지나치게 문학적이라고 생각해

    쓰지 않는 그것들을 살아가는 것으로 대신할 줄 아는 너를


    너를

    당장에 찾아가려 했어

    그렇지만 잠깐 멈춰서

    조금 마음을 가다듬고

    달려가고 있다, 너에게


    자동차도 고치고

    담배도 피우고 그러던

    마르고 파란 셔츠를 입은 사람을 알고 있는

    어떤 당신들에게







    5.jpg

    이현호, 13월의 예감




    나는 조용히 미쳐가고 있었다

    물컵 안에 뿌리내리는 양파처럼 골방에 누워

    내 숨소리 듣는다, 식어가는

    유성의 궤적을 닮아가는 산[生] 짐승의 리듬이

    빈방으로 잘못 든 저녁을 잠재우고 있다.

     

    물질의 세계로 수렴하는 존재가 아니다. 나는

    붕대 같은 어둠이 있어 너에게 사행(蛇行)하는 길 썩 아프지 않았다

    잠시 네가 아니라 끈적끈적한 입술을 섞던, 어느 고깃집의 청춘을 떠올린 것만이 미안했다

    담배 연기에 둘러싸인 너의 형이하학과

    당신 배꼽 안에서 하룻밤 머물면 좋겠다던, 철없는 연애의 선언만을 되새겼다

     

    이토록 평화로운 지옥에서 한 무명 시인이 왕이었던 시절

    세상은 한 권의 책이고 그 책엔 네 이름만이 적혀 있었을 때

    나는 온누리를 사랑할 수 있었지

    데워지지 않는 슬픔이 통째 구워진 생선같이

    구부러진 젓가락 아래 삼켜지길 기다리고 있다 해도

     

    한 장의 밤을 지우개의 맘으로 밀며 가는 내가 있다

    너의 비문들을 나에게 다오

    네게 꼭 맞는 수식을 붙이기 위해 괄호의 공장을 불태웠지만

    어디에도 살아서는 깃들 수 없는 마음

    네 앞에서 내가 선해지는 이유

    애무만으로 치유되지 않는 아픔이 산다는 게

    싫지 않았다, 나를 스친 바람들에게 일일이 이름표를 달아주었지

     

    너에게 골몰하는 병(病)으로 혀끝이 화하다

    조용히 미쳐가고 있다, 나는







    통통볼의 꼬릿말입니다
    kYOH2dJ.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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