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8월 <div>전남함은 무더위 속에서 두 달이 넘는 지루한 항해를 이어가고 있었다.</div> <div>그러나 무더위 보다 우리를 더욱 지치게 한 것은</div> <div>시원찮은 조수기-바닷물을 민물로 바꿔 주는 장비- 성능 탓에</div> <div>그 무더위 속에서 몇날 며칠씩 제대로 씻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div> <div>카키색-짙은 베이지색- 근무복 카라는 마치 원래 그랬던 것처럼</div> <div>새카만색으로 변해 있었고, 흐르는 땀이라도 닦을라치면</div> <div>묵은 때가 주루륵 밀려 나오는 탓에 땀 한 번 닦는 것도 짜증이 나는 상황이었다.</div> <div><br></div> <div>그러던 어느날...</div> <div>무더위를 한방에 식혀줄 소나기가 한바탕 내렸다.</div> <div>우리들은 중갑판에 모인 빗물이 콸콸 쏟아지는 빗물관 아래 모여 미친듯이 몸을 씻기 시작했다.</div> <div>행여 소나기가 그칠새라 너도나도 알몸으로 뛰어나온 통에</div> <div>빗물관 아래는 그야말로 살색의 향연이었다.</div> <div>거무튀튀한 꼬추로 누구의 엉덩이를 찌르든</div> <div>찌른놈이나 찔린놈이나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div> <div>그렇게 한바탕 축제와 같은 샤워 시간이 끝나갈 무렵</div> <div>당직을 서느라 뒤늦게 합류한 나도 몇 남지 않은 살색 무리의 틈에 끼어 서둘러 샤워를 했다.</div> <div><br></div> <div>샤워를 끝낼 무렵, 억수 같이 퍼붓던 소나기는 거짓말처럼 그쳤고</div> <div>더이상 알몸으로 뛰쳐 나오는 살색 무리도 없었다.</div> <div>이제 모든 승조원들이 다 씻었을 거라고 판단한 나는</div> <div>중갑판으로 올라가 얼마 남지 않은 고인물에 열심히 빨래를 하기 시작했다.</div> <div>실로 오랜만에 샤워에 빨래까지 마친 나는 개운한 마음으로 룰루랄라 메인데크로 내려왔다.</div> <div>그리고...</div> <div>아까까지 내가 샤워하던 곳에서 열심히 이를 닦고 있는 조타 선임하사와 마주쳤다.</div> <div>아무 말도 할 수 없었던... 아니 해서는 안되기에 나는 조용히 선임하사 곁을 지나쳤다.</div> <div>조타 선임하사는 연신 개운하다는 소리를 지르며</div> <div>조금 전까지 내가 빨래했던 물로 입을 헹구고 머리를 감고 있었다.</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