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다른 분들은 소설 형식으로 쓰셨던데,</div> <div>저는 그냥 담백하게 쓰겠습니다.</div> <div><br /></div>05:45 <div>총기상 15분 전 방송이 나오면 잽싸게 일어나서 선배들을 깨웁니다.</div> <div>선배들이 일어난 것을 확인하고 바로 뛰어서 육상에 집합합니다.</div> <div>보통은 5분 안에 영내에 있는 모든 인원이 집합을 완료합니다.</div> <div><br /></div> <div>05:55</div> <div>총기상 5분전 방송이 나오지만 이 때는 대부분 조별 과업 (아침 점호 및 체조, 구보 등)이 끝났거나</div> <div>한참 부두를 뛰어 다니고 있을 때가 대부분입니다.</div> <div><br /></div> <div>06:00</div> <div>15분 전과 5분 전 방송은 현문에서 하지만</div> <div>정시 방송은 함교에서 합니다.</div> <div>타군들은 이 시간에 일어나서 점호 받으러 나오겠지만</div> <div>해군들은 대부분 이 시간이면 조별 과업이 끝나고 청소를 하고 있을 시각입니다.</div> <div>초임하사들은 자기 직별 또는 부서의 수병들 -대부분 일, 이등병들 - 과 함께 각 격실(방) 청소를 합니다.</div> <div>한 직별이나 부서에서 쓰는 격실은 침실 뿐만이 아니라</div> <div>함내 곳곳에 흩어져 있기 때문에 서두르지 않으면 씻을 시간이 없습니다.</div> <div>발바닥에 땀 나도록 돌아다니면서 쓰레기 치우고 청소를 마치고 나면</div> <div>겨우 씻을 시간이 주어지지만,</div> <div>그 시각에 함 내부에 있는 화장실들은 인산인해기 때문에</div> <div>차라리 세면도구를 챙겨 들고 육상 화장실로 뛰어 가는 편이 빠릅니다.</div> <div><br /></div> <div><span style="font-size: 9pt; line-height: 1.5">07:00</span></div> <div>아침밥을 먹으러 가면 사병식당 앞에 영내하사와 수병들이 구분 없이</div> <div>일렬로 길게 줄을 서 있습니다.</div> <div>해군에는 사관실과 CPO(원,상사)실을 제외하고는 간부 식당이란 것이 없으므로</div> <div>중사부터 이병까지 모두 사병식당에서 밥을 먹습니다.</div> <div>영외 거주 하사부터는 줄을 서지 않아도 되지만</div> <div>영내 하사들과 수병들은 짤 없이 줄을 섭니다.</div> <div><br /></div> <div>07:45</div> <div>오전 일과시작 15분 전 방송이 나오고 동시에 보수과업 시작이란 방송도 나옵니다.</div> <div>그러면 영내, 영외 구분 없이 각 부서별로 맡은 구역 보수과업을 시작합니다.</div> <div>반짝반짝 광을 내야 할 부분은 광약을 발라서 광을 내고</div> <div>구리스를 발라야 할 부분엔 구리스를 바르고</div> <div>녹이 슨 곳에는 녹을 제거하고</div> <div>페인트가 묻어 있지 말아야 할 곳에 묻어 있으면 까내는 작업도 합니다.</div> <div><br /></div> <div>07:55</div> <div>오전 일과시작 5분 전 방송이 나오면서 보수과업 끝이란 방송도 나옵니다.</div> <div>그럼 하던 일을 마무리 하고 선배들이 던져주는 헝겊, 사포, 기름통 등</div> <div>보수과업에 사용했던 각종 도구들을 정리하고 방송에서 지시하는대로</div> <div>어딘가에 집합을 합니다.</div> <div><br /></div> <div>08:00</div> <div>일단 함총원이 집합해서 오늘의 전반적인 훈련이나 일과를 알려 줍니다.</div> <div>끝나고 나면 각 부서별로 집합해서 일과 정렬을 합니다.</div> <div>그게 끝나고 나면 각 직별별로 집합해서 일과 정렬을 합니다.</div> <div>이 때, 초임하사인 내가 해야 할 일도 지시를 받습니다.</div> <div>뭐, 대부분은 장비 공부와 테스트로 점철된 하루지만요.</div> <div><br /></div> <div>11:00</div> <div>지난 며칠동안 그랬던 것처럼 오전 내내 CIC에서 장비에 대해 공부만 시키던 선임하사(중사)가</div> <div>책을 덮게 하더니 눈을 감으라고 합니다.</div> <div>드디어 올 것이 왔습니다.</div> <div>그리고 장비에 있는 200여 개의 버튼을 모두 빼서 자기 모자에 담고서는</div> <div><span style="font-size: 9pt; line-height: 1.5">오른쪽으로 돌리고 왼쪽으로 돌리고 양손으로도 돌리면서 수리수리 마수리를 외칩니다.</span></div> <div>주문을 모두 외운 선임하사가 앞에다 모자를 던져 주면서 버튼을 제자리에 끼우라고 합니다.</div> <div>그냥 끼우기만 하는게 아니라 해당 버튼의 기능과 눌렀을 때 어떤 현상이 생기는지까지 얘기하면서 해야 합니다.</div> <div>30개 쯤 끼우다가 버벅 거렸습니다.</div> <div>머리를 박으라고 하더니 그 상태에서 설명을 해 줍니다.</div> <div>일어나라고 하더니 다시 해보라고 합니다.</div> <div>대여섯개 하다가 또 버벅 거렸습니다.</div> <div>또 머리를 박았습니다.</div> <div>또 버벅 거렸습니다.</div> <div>또 머리를 박았습니다.</div> <div>선임하사 없을 때는 정말 잘 외워지던 것이</div> <div>선임하사 앞에만 서면 버벅 거리게 됩니다.</div> <div><br /></div> <div>11:30</div> <div>점심 배식시간이 되자 오후에 다시 테스트 해봐서</div> <div>그 때도 오전처럼 버벅거리면 지옥을 경험하게 될거라고 엄포를 놓고는</div> <div>룰루랄라 식당으로 갑니다.</div> <div>선임하사가 떠나간 뒤 남겨진 나머지 버튼들은</div> <div>책을 봐 가면서 열심히 끼워 맞춰 놓습니다.</div> <div><br /></div> <div>12:10</div> <div>어차피 일찍 식당에 가 봐야 줄만 길게 늘어설 것이 뻔하고</div> <div>선배들 눈치도 보이기 때문에 조금 늦게 식당에 갑니다.</div> <div>조리장 선배가 뭐하다 이렇게 늦게 왔냐며 이것저것 챙겨줍니다.</div> <div>열심히 밀어넣고 있는데 다른 부서 한 깃수 선배가 툭 치며 한마디 합니다.</div> <div>"엊그제 준 거 다 외웠지? 이따 보수공작실로 와. 테스트 할테니까"</div> <div>함장부터 바로 위 선배들까지 출신, 직별, 기수가 적혀 있는 쪽지입니다.</div> <div>그걸 외우지 못하면 선배들로부터 개맞듯이 맞습니다.</div> <div>무거운 마음으로 밥과 반찬을 대충 밀어넣고</div> <div>배 제일 꼭대기의 우리 장비가 있는 곳에 숨어서 담배를 한대 피웁니다.</div> <div>내가 이병인지 하사인지 분간이 안 갑니다.</div> <div>가슴팍에는 분명 하사 계급장이 달려 있는데, 생활은 이병만도 못한 것 같습니다.</div> <div><br /></div> <div>12:45</div> <div>오후일과 시작 15분 전이 나오고 또 각 부서 보수과업을 하라고 방송이 나옵니다.</div> <div>또 합니다.</div> <div>끝나면 또 정리합니다.</div> <div><br /></div> <div>13:00</div> <div>오후 일과정렬은 각 부서별로 간단하게 진행하고 바로 일과를 시작합니다.</div> <div>선임하사가 CIC로 들어옵니다.</div> <div>책을 펼쳐놓고는 있지만 불안, 초조, 긴장으로 글씨가 눈에 들어오질 않습니다.</div> <div>제자리에 끼워져 있는 버튼들을 쭈욱 둘러보더니 누가 끼웠냐고 묻습니다.</div> <div>책을 보면서 끼웠다고 했더니 별 말이 없습니다.</div> <div>선임하사가 모자를 벗으려는 찰나 우렁찬 방송이 나옵니다.</div> <div>"알림!!! 영내하사 이하 수병 총원 육상에 집합!!! 잠시 후 부식 작업이 있을 예정!!!"</div> <div>아~~~ 살았습니다.</div> <div>우리가 먹을 반찬거리가 왔으니 영내 대원들 모두 와서 한삽 거들라는 얘깁니다.</div> <div>즉, 잠시나마 여기서 해방이라는 얘깁니다.</div> <div>선임하사가 빨리 갔다 오라며 보내줍니다.</div> <div>부식 작업을 끝내고 돌아오니 이번엔 <span style="font-size: 9pt; line-height: 1.5">옆 배에서 선임하사 동기가 왔습니다.</span></div> <div>눈치를 보다가 잽싸게 뛰어가서 커피 두 잔을 뽑아다 두분께 드렸더니</div> <div>선임하사가 고맙다며 천원짜리 하나를 던져 줍니다.</div> <div>그리고는 이따 세시에 테스트를 할테니 준비하고 있으라며</div> <div>동기와 함께 어디론가 사라집니다.</div> <div><br /></div> <div>15:00</div> <div>선임하사가 또 수리수리 마수리를 외칩니다.</div> <div>저는 또 버벅거립니다.</div> <div>또 머리를 박습니다.</div> <div>또 버벅거립니다.</div> <div>또 머리를 박습니다.</div> <div>어디서 돌대가리가 하나 들어왔다고 엄청 까입니다.</div> <div>그 상태로 책을 던져주면서 나머지 버튼들 기능들을 외우라고 합니다.</div> <div>머리를 박은 상태로 힘겹게 나머지 기능들을 찾아 외웁니다.</div> <div>다행스러운건 이제 몇개 남지 않았다는 겁니다.</div> <div>그리고, 신기하게도 그 상태에서 외우니까 더 잘 외워집니다.</div> <div>다음 테스트에서 무사히 합격을 했습니다.</div> <div>하지만 그래봐야 소용이 없습니다.</div> <div>내일은 레이더실입니다.</div> <div>레이더실에는 버튼이 더 많습니다. ㅠㅠ</div> <div><br /></div> <div>16:30</div> <div>일과가 끝날 시간이 됐으니 청소를 시작합니다.</div> <div>아침에 했던 청소를 오후에도 똑같이 합니다.</div> <div>식당에서는 이미 저녁 식사 배식을 하고 있지만</div> <div>퇴근 전에 밥을 먹고 가려는 총각 영외거주자들과</div> <div>영내 고참 선배들밖에 없습니다.</div> <div><br /></div> <div>17:00</div> <div>드디어 오늘 하루의 모든 일과가 끝나고 저녁을 먹습니다.</div> <div>저녁을 먹고 있는데, 아까 점심 때의 그 선배가 17:30까지 보수공작실로 집합하라고 합니다.</div> <div>밥이 제대로 목구멍으로 넘어가질 않습니다.</div> <div><br /></div> <div>17:30</div> <div>보수공작실은 무서운 곳입니다.</div> <div>각종 공구들을 비롯해서 공작기계들도 있는 곳입니다.</div> <div>직별장들까지는 수월하게 외웠는데,</div> <div>선임하사들로 내려오니까 깜깜해집니다.</div> <div>150명 타는 배에 장교가 열댓명에 부사관들이 80명 정도 됩니다.</div> <div>머리가 지끈거리는데 선배가 또 머리를 박으라고 시킵니다.</div> <div>그상태에서 전진, 후진을 시킵니다.</div> <div>하루종일 머리를 박아서 아픈데 전진, 후진까지 하니까 머리가 쓰라립니다.</div> <div><br /></div> <div>19:00</div> <div>겨우 보수공작실에서 풀려나서 침실로 돌아와보니</div> <div>직별 선배가 서무실로 오라고 합니다.</div> <div>서무실로 가보니 서류 뭉치들을 잔뜩 꺼내 보이면서</div> <div>앞으로 네가 맡게 될 일이니까 잘 봐두라고 합니다.</div> <div>이 선배는 서무사일을 저에게 떠넘길 요량인가 봅니다.</div> <div>한 깃수밖에 차이가 안 나는데,</div> <div>나한테 다 떠넘기면 자기는 도대체 뭘 하겠다는 건지...</div> <div><br /></div> <div>20:00</div> <div>한 시간 정도 서류를 뒤적이며 설명을 하던 선배가</div> <div>이제 가서 좀 쉬라면서 풀어줍니다.</div> <div>저녁을 먹고 세 시간 만에 담배를 하나 피워 뭅니다.</div> <div>담배를 피워 물고 달빛이 물든 바다를 바라보니</div> <div>그냥 콱 빠져 죽고 싶은 충동이 입니다.</div> <div><br /></div> <div>21:00</div> <div>점호를 받기 위해 청소를 시작합니다.</div> <div>해군에서 점호 청소는 바닥 쓸고 닦고 각 맞추는게 전부가 아닙니다.</div> <div>체스트(관물함) 안팎, 각종 배관 위, 케이블 위 등</div> <div>눈에 보이지 않는 곳까지 모두 걸레질을 하여 깨끗하게 해야 합니다.</div> <div><br /></div> <div>21:45</div> <div>점호 15분 전 방송이 나오자 바로 당직사관이 들어옵니다.</div> <div>다행히 오늘 당직사관은 청소 검사를 대충 하고 지나갔습니다.</div> <div><br /></div> <div>22:00</div> <div>당직사관이 점호를 대충 돌아준 덕에 점호가 일찍 끝났습니다.</div> <div>숨겨 두었던 빨래들을 다시 널고 잠을 청합니다.</div> <div>내일은 현문당직이 있어서 오늘보다 더 스펙타클한 하루가 될 것 같습니다.</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