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님이 쓰신 글을 읽다보니 남 얘기 같지 않아서 몇 자 적어 봅니다.</p><p><br></p><p>전 아버지 없이 자랐습니다.</p><p>제게 아버지는 형들이었죠.</p><p><br></p><p>저희 형들... 정말 잘 났습니다.</p><p><span style=\"font-size: 10pt; line-height: 1.8;\">I.Q 145에 초등학교 때는 전교 5등 이내</span></p><p><span style=\"font-size: 10pt; line-height: 1.8;\">중학교 때는 전교 15등 이내에 들던 제게</span></p><p>늘 잘 하는게 없다는 타박을 하던 형들입니다.</p><p>악기라고는 기타 밖에 칠 줄 모르던 형들은</p><p>저의 클라리넷과 색소폰 연주에 대해서도 비난을 쏟아 부었죠.</p><p><br></p><p>저는 고입 선발고사에서 (체력장 빼고) 180점 만점에 168점을 맞고</p><p>꽤 알아주는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했습니다.</p><p>그래도 형들에게는 잘 하는 거 하나 없는 모자란 바보였죠.</p><p>음대에 가고 싶다고 했을 때 \'니 주제에 무슨 음대냐\'며 반대를 했던 형들입니다.</p><p>사실 제 실력이 뛰어나진 않았지만</p><p>고등학교 때 제 연주를 들은 경희대 작곡과 교수께서</p><p>이 상태로도 지방대 정도는 갈 수 있지만 레슨을 좀 받으면 서울도 가능하겠다며</p><p>무료로 레슨을 해 줄테니 꼭 찾아 오라고 하셨던 적이 있습니다.</p><p>제가 음대에 가기로 마음 먹고 집에다 얘기했을 때는</p><p>이미 레슨과 악기 문제까지 다 해결을 해 놓은 상태였습니다.</p><p>그런데도 저희 형들은 들어보지도 않고 반대를 하더군요.</p><p>결국 음대 못 갔습니다.</p><p>반항심에 공부도 안 해 내신은 7등급으로 떨어졌고...</p><p>- 저랑 성적이 같은 옆 학교의 누군가는 그 학교에서 1등급이더군요.</p><p><br></p><p>그래도 전반적인 성적이 아주 나쁘지는 않았고</p><p>소위 암기과목이라고 하는 과목들은 탑클래스에 들었기 때문에</p><p>후기대 원서 쓸 무렵에 담임 선생님께서 권해 주신 지방의 4년제 대학에 원서를 내고 합격을 했습니다.</p><p>근데... 공부가 돼야 말이죠.</p><p>학교는 안 가고 하루 종일 볼링만 했습니다.</p><p>방학 때 볼백을 들고 집에 왔더니 둘째 형이 또 놀리더군요.</p><p><br></p><p>\"볼은 굴릴 줄 아냐?\"</p><p>\"어. 좀...\"</p><p>\"나랑 내기 한 판 할까?\"<br></p><p>\"어... 난 내기 같은 거 잘 안 하는데...\"</p><p>\"이 새끼... 질 것 같으니까...\"</p><p>\"뭐... 그럴 수도 있고...\"</p><p>\"너 같은 애들 뻔하지. 그런 거 들고 다니면 좀 있어 보이기도 하고 여자 꼬시기도 좋으니까...\"</p><p><br></p><p>자존심이 상한 저는 내기에 응했고 모든 게임에서 처참하게 밟아줬습니다.</p><p>저 사실... 전직 국가대표에게서 체계적으로 배운 사람입니다.</p><p>그에 비해 저희 형은 술 마시고 직장 동료들이랑 \'후루꾸\'로 배웠더군요.</p><p>저랑 게임이 될 리가 없죠.</p><p>제 인생에서 형들을 이겨 본 최초의 사건이었습니다.</p><p><br></p><p>시간은 흘러 어느덧 군대에 가게 됐습니다.</p><p>해군 부사관으로 입대해 훈련을 마치고 3박 4일 간의 위로휴가를 나왔을 때,</p><p>각각 6개월, 18개월 방위 출신인 저희 형들은 해군에 대해 또 아는 척을 하더군요.</p><p>저는 이제 막 훈련을 마친 상태였기 때문에 별달리 대꾸할 상태도 아니었습니다.</p><p>근무 기간이 아무리 늘어도 휴가 때 집에 오면 늘 형들의 우김에 속수무책이었습니다</p><p>5년 6개월 만에 전역을 했지만 저희 형들의 구박은 계속됐습니다.</p><p><br></p><p>\"너는 해군 출신이면서 그런 것도 모르냐?\"</p><p>\"이 새끼는 해군 출신이면서 나보다 더 모르네\"</p><p><br></p><p>참다 못한 저는 이 상황을 정리할 필요가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p><p>그리고 딱 한마디를 했습니다.</p><p><br></p><p>\"나보다 군생활도 짧으면서...\"</p><p><br></p><p>이후로 군생활에 대해서 만큼은 형들의 구박이 없어졌습니다.</p><p><br></p><p>전역 후 학교를 그만 둔 저는 정말 밑바닥부터 시작했습니다.</p><p>술집 웨이터부터 노가다까지...</p><p>정말 \"가카\" 말씀 마따나 해보지 않은 일이 없을 정도였습니다.</p><p>돈을 많이 벌어보기도 했고 많이 까먹기도 했습니다.</p><p>하지만 제가 무슨 일을 해서 돈을 얼마나 벌든 형들에게는 관심 밖이었습니다.</p><p>다 집어치우고 은행에 취직하든가 공무원이 되라는 말 뿐이었죠.</p><p>천신만고 끝에 고졸이라는 핸디캡을 극복하고 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루고</p><p>출판사의 제의를 받아 책을 낼 정도가 됐는데도 마찬가지였습니다.</p><p><br></p><p>그런데, 엄마가 당뇨 합병증으로 여러 병원을 다니시고 <span style=\"font-size: 10pt; line-height: 1.8;\">결국 간암으로 돌아가시기까지<br>그동안 제가 밑바닥부터 다졌던 인맥의 덕을 많이 보게 됐습니다.</span></p><p>대학병원 같은데 입원하거나 진료 한 번 하려면 응급환자가 아닌 이상 예약하고 한달 정도 걸리는게 보통인데</p><p>저는 바로 다음날 입원과 진료가 가능하도록 해주니까 형들도 변하기 시작하더군요.</p><p>게다가 형제들이 어려운 일을 겪을 때 친한 변호사를 소개해주거나 법률 자문을 해주게 되면서</p><p>이제는 형이나 형수도 제게 상의하는 일이 부쩍 많아졌습니다.</p><p>특히나 저는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라도 형제들의 부탁을 거절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p><p><br></p><p>형들이 제게 왜 그랬는지는 아직도 모릅니다.</p><p>알고 싶지도 않고 물어보지도 않았습니다.</p><p>이제는 형들도 제가 실수를 하더라도 무시하지 않고 기다려주게 됐거든요.</p><p><br></p><p>아버지 때문에 슬픈 둘이라구요님의 글을 보고</p><p>제가 겪었던 일들이 생각 나 몇 자 적으려던 게 신세한탄이 돼 버렸네요^^</p><p><br></p><p>둘이라구요님...</p><p>아버지로부터 인정 받으려고 너무 노력하지 마세요.</p><p>그냥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고</p><p>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다보면</p><p>언젠가는 아버지께서도 아들을 인정하지 않고는 안되는 상황이 생길 겁니다.</p><p><br></p><p>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입문>을 꼭 읽어 보세요.</p><p>아버지로부터 상처를 받으신 둘이라구요님이라면 공감 가는 부분이 많아</p><p>아주 쉽게 잘 읽힐 겁니다.</p><p>그리고 극복하고 치유하는 방법도 배우게 될 겁니다.</p><p><br></p><p>이제 시작하는 군생활...</p><p>상처나 복수심 때문에 자신을 너무 학대하지 마세요.</p><p>오히려 구박만 하시는 아버지를 피해</p><p>남의 눈치 보지 않고 자신의 인생을 살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세요.</p><p>저는 몇달 후에 건강하게 군 생활 잘 하고 있는 둘이라구요님을 밀게에서 꼭 다시 뵐 수 있길 바랍니다^^</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