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5년이 넘는 군생활이 막바지를 향해 가던 어느날...</p><p>현문 당직이 걸려 일과 시간 이후에 퇴근도 못하고 있었음.</p><p>영외거주자인데다 벌써 6년차나 되었음에도 불구하고</p><p>본인은 영내에서는 항상 해군 공식 체육복을 입고 다녔음.</p><p>그날도 해군 공식 체육복을 입고 TV도 보고 소일을 하다</p><p>한때는 그래도 열렬히 사랑했던 여자친구가 보고 싶었음.</p><p>목소리라도 들어볼까하고 1함대 7부두에 있는 공중전화부스로 나갔음.</p><p>마침 우리 배가 공중전화 부스 바로 옆에 계류해 있었음.</p><p>내가 갔을 때는 내 앞에 처음 보는 상병 한 명이 상당히 불량한 자세로 전화를 걸고 있었음.</p><p>바닥에 침을 퉤퉤 뱉으면서 통화를 하다가 하사 계급장이 달린 모자를 쓰고 있는 나를 힐끗 보고는</p><p>다시 바닥에 침을 퉤퉤 뱉고 쌍욕을 섞어 가며 열심히 전화통화를 하고 있었음.</p><p>그러거나 말거나 그 친구도 소중하게 얻은 시간일텐데 마음껏 통화하라는 의미에서</p><p>한발짝 뒤로 물러나서 태평하게 서 있었음.</p><p>10분이 지나도록 그 친구는 전화를 끊을 기미가 보이질 않았음.</p><p>오히려 더욱더 가열차게 침을 뱉고 나를 야리는 것이었음.</p><p>하지만 관대한 성격인 나는 그냥 참고 있었음.</p><p>그러기를 한참...</p><p>상대쪽에서 뒷사람 기다리지 않느냐고 물어본 것 같았음.</p><p>그러자 그 상병은</p><p><br></p><p>"뒤에 하사새끼 하나 서 있는데, 괜찮아" 라고 하면서 나를 한 번 야리더니 피식 웃는 거였음.</p><p><br></p><p>마음 같아서는 한대 쥐어박고 싶었지만</p><p>얼마 남지 않은 군생활 그냥 평화롭게 하고 싶어서 내버려뒀음.</p><p>사실 내가 좀 동안이긴 함.</p><p>지금도 적게는 5살부터 많게는 10살 차이 나는 애들이 맞먹기도 하고 그럼.</p><p>25살 때까지 나이트클럽이나 술집에 들어갈 때 신분증 검사를 당했음.</p><p><br></p><p>그놈은 "하사새끼"라고 지칭했는데도 내가 잠자코 있자 자신감이 붙었는지</p><p>이제는 아예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침을 뱉아댔음.</p><p>나는 그저 그놈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부처님의 미소를 띄고만 있었음.</p><p>그렇게 또 한참이 흘렀음.</p><p>이젠 내 뒤로도 제법 줄이 길게 늘어섰는데,</p><p>하필 뒤에 늘어선 놈들이 죄다 일병이랑 이병들 뿐임.</p><p>그 상병놈은 줄이 길게 늘어서자 눈치를 좀 보는듯 하더니</p><p>자기 뒤로 '하사새끼 하나'랑 일.이병들만 보이자 안심하고 통화를 계속했음.</p><p><br></p><p><br></p><p>그런데...</p><p>나보다 먼저 중사 진급한 후배가 공중전화 부스 앞을 지나다 나를 발견하고는</p><p>깍듯이 경례를 하면서 내게 달려 오는 거였음.</p><p>나는 손사레를 치면서 속으로 외쳤음.</p><p><br></p><p>"민망하니까 저리 꺼져 씨발놈아!!!"</p><p><br></p><p>하지만 그 후배놈은 벤 존슨 - 당시에는 벤 존슨이 최고였음 - 이라도 빙의가 됐는지</p><p>눈 깜짝할 새에 내 눈앞에 그 시커멓고 여드름이 잔뜩 난 면상을 들이밀었음.</p><p>그리고는 반갑다며 조잘조잘 떠들어대기 시작했음.</p><p>앞에서 통화를 하던 상병놈은 뒤쪽에서 자기가 통화하는데 방해가 될 만큼의 소음이 들리자</p><p>상당히 짜증스러운 얼굴로 뒤를 돌아봤음.</p><p>그런데...</p><p>거기엔 웬 늙수구레한 중사 한명이 아까 그 '하사새끼'한테 굽실거리며 조잘대는 모습이 눈에 띈 거임.</p><p>그놈의 눈빛과 표정은...</p><p><br></p><p>"좆됐다!!!!!!!!!!!!!!!!!!!!!!!!!!!!!!!!!!!!!!!!!!!!!!!!!!!!!!!!!"</p><p><br></p><p>이 한마디로 밖에 달리 표현할 말이 없음.</p><p><br></p><p>퍼뜩 정신이 들었는지 통화를 하던 상대에게 급한 일이 생겼다는 한마디만 남기고</p><p>미처 말릴 새도 없이 서둘러 전화를 끊더니 정말 큰 목소리로 '죄송합니다'를 연발하고는 <span style="font-size: 10pt; line-height: 1.8;">꽁지가 빠지게 도망을 갔음.</span></p><p>난 6년 가까운 군생활 동안 상병 입에서 그렇게 크고 기합 든 목소리가 나오는 걸 들어본 적이 없음.</p><p>알고보니 그 상병놈은 내 후배네 배에 근무하는 수병이었음.</p><p>후배가 뭔 일이냐고 다그쳐 물었지만 나는 아무 일도 아니라고만 했음.</p><p>그리고 내 뒤로 길게 늘어선 일.이병들에게 내 자리를 물려주고는</p><p>후배를 데리고 우리배로 들어가서 놀았음.</p><p><br></p><p>만약 그 상병놈을 다시 만난다면 꼭 해주고 싶은 얘기가 있음.</p><p><br></p><p>"침 좀 뱉지 마라!!! 더러워 죽을 뻔 했다!!!"</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