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1. 전역을 앞둔 병장이 있었음.</p><p>해군은 아침에 한 번, 점심 먹고 한 번 "보수과업"이란 걸 하는데,</p><p>주로 함정에서 페인트칠을 할 수 없는 곳에 광약을 발라서 닦거나 기름칠 또는 구리스칠을 하는 거임.</p><p>그런데, 이 말년병장놈이 보수과업 때마다 우리배 명판을 엄청 열심히 닦았음.</p><p>명판이 어떻게 생긴거냐면... 대충 요런식으로 생긴 거임.</p><p><img src="http://thimg.todayhumor.co.kr/upfile/201301/5fcd5bd8c647fd9fbe30cf092ab16969.jpg" class="txc-image" style="font-size: 10pt; line-height: 1.8; clear: none; float: none;"></p><p><br></p><p></p><p>진수할 때 붙이는 건지 취역할 때 붙이는 건지 정확히는 모르겠는데</p><p>하여간 배가 살아 있는 동안은 계속 붙이고 다니게 되어 있음.</p><div><br></div><p></p><p>뭐 어쨌든...</p><p>말년은 그냥 짜지라고 하는데도 전역전까지 이정도 일은 하고 가겠다며 정말 열심히 닦았음.</p><p>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놈이 전역을 했음.</p><p>남은 우리들은 또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은 일상을 보내고 있었음.</p><p>그런데, 보수과업을 할 때마다 이상하게 뭔가가 허전한 거임.</p><p>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며칠이 지나도록 모두가 느끼는 그 허전함의 정체가 뭔지</p><p>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고 며칠이 지났음.</p><p>그러던 어느날...</p><p>드디어 그 허전함의 정체를 알고 경악을 했음.</p><p>명판이 없어진거임.</p><p>모두가 그 병장놈을 의심했지만 확인할 수는 없는 일임.</p><p>결국 우리 갑판장께서 어딘가에서 새로 제작해서 몰래 갖다 붙이고 모두 입을 닫았음.</p><p><br></p><p>2. 본인은 1994년 "한글"이 군대에서 불법소프트웨어 시절일 때부터 사용했던 사람임.</p><p>지금도 웬만하면 단축키로 다 됨.</p><p>그래서 마지막 탔던 배 행정장이 행정병 휴가를 보내기 위해 나한테 대타를 시킨 적도 많음.</p><p>1997년에 전역지원서를 내고 나니 일을 안 시킴.</p><p>전역할 때까지 1년이 넘게 남았는데 할 일도 없고 행정장 부탁도 있고 해서 더욱 가열차게 <span style="font-size: 10pt; line-height: 1.8;">행정병 일을 도와주기 시작함.</span></p><p>그러다보니 함내 행정업무의 절반은 내가 하게 됨.</p><p>나중에는 각 부서나 직별에서 자기들 행정업무를 나한테 가져와서 부탁함.</p><p>1999년 2월 전까지 함내 행정업무 외에 각 부서와 직별 행정업무의 70% 가량이 내 손에 좌지우지 되게 되었음.</p><p>문서 한 장이라도 뽑아 쓰려면 직별장(원.상사)들이 나한테 음료수 하나라도 사 와서 바쳐야 뽑아 줌.</p><p>나는 디스켓을 대량으로 구매해서<span style="font-size: 10pt; line-height: 1.8;"> 각 부서별, 직별별, 그리고 업무별, 종류별로</span></p><p><span style="font-size: 10pt; line-height: 1.8;">아주 꼼꼼하게 분류를 해놓고 있었음.</span></p><p>전역 1주일 남겨두고 <span style="font-size: 10pt; line-height: 1.8;">개인적 친분과 직별장 인간성에 따라</span></p><p>누구는 원본 디스켓을 주고 누구는 그냥 샘플 문서만 뽑아서 주고 디스켓은 내가 가지고 나옴.</p><p><span style="font-size: 10pt; line-height: 1.8;">전역 후 1주일도 되지 않아 사방에서 전화가 오고 난리가 남.</span></p><p>처음엔 사정하다가 안되니까 군사기밀 유출로 고발하겠다며 협박함.</p><p>그래봐야 내가 디스켓 폐기해버리면 그만이니까 마음대로 하라고 함.</p><p>자기들 뜻대로 안되니까 나랑 친했던 다른 사람들까지 시켜서 전화를 해댐.</p><p><span style="font-size: 10pt; line-height: 1.8;">제발 한 번만 만나 달라고 해서 만나 줌.</span></p><p><span style="font-size: 10pt; line-height: 1.8;">원.상사들이 우르르 몰려 나왔는데 몇몇 나오지 않은 사람들도 있었음.</span></p><p>나한테 술까지 사줘가면서 도대체 이유가 뭐냐고 물어 봄.</p><p>어차피 이 상황에서는 내가 갑이고 전역도 한 마당에 거칠 것이 없었음.</p><p>그냥 서운했던 거, 엿 같았던 거 있는대로 다 얘기하고 그렇게 살지 말라고 훈계도 함.</p><p>그리고 원본 디스켓 나눠 줌.</p><p>내 손을 붙잡고 미안했다고, 고맙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음.</p><p>그러나 그자리에 나오지 않은 사람들 건 다들 보는 앞에서 바로 불태워 버렸음.</p><p>함장이 바뀌면 얼마 되지 않아 행정점검을 비롯해서 각종 점검을 하는데,</p><p>원본 디스켓을 받지 못한 직별들은 완전 개박살 났다는 소문을 들었음.</p><p><br></p><p>3. 그 일이 있고 넉달인가 있다가 배에서 또 한 번 전화가 옴.</p><p><span style="font-size: 10pt; line-height: 1.8;">전임함장님 지시로 우리배에 취미활동반이 만들어졌는데,</span></p><p>수요일에 하는 전투체육활동을 할 수 없는 출동 중에 주로 활동함.</p><p>대학 다닐 때 사물놀이를 좀 했던 관계로 사물놀이를 맡았었는데, 그게 국방일보에도 실리고 완전 센세이션을 일으킴.</p><p>국방부장관이 국방일보를 보고 전군에 지시해서 강제로 사물놀이팀을 만들기도 했음.</p><p>그 때 전화가 온 이유는 지상파 방송3사와 YTN을 비롯해 언론사에서 취재를 오게 되었음.</p><p>하지만 사물놀이를 지휘할 사람이 없음.</p><p>부대 근처 대학교 사물놀이 동아리랑 자매결연도 내가 추진했던 거기 때문에</p><p>나 아니면 그쪽에서 협조를 해주지 않겠다고 했다 함.</p><p>그런데 하필 전화한 사람이 디스켓 나눠 줄 때 끝까지 나오지 않은 사람임.</p><p>쿨~~~하게 쌩깠음.</p><p>작전관(대위)이 전화 왔음.</p><p>이 사람... 내가 전역하기 1주일 전에 함장 바뀌면서 같이 부임 온 사람임.</p><p>우리 부서장도 아닌 사람이 나를 불러다 놓고 전역한다고 설치고 다니지 말고 조용히 있다 전역하라고 했던 사람임.</p><p>그런 사람이 나한테 깍듯하게 존댓말을 해가며 도와 달라고 함.</p><p>쿨~~~하게 쌩깠음.</p><p>함장이 전화 옴.</p><p>내가 모시던 함장도 아니고 도와 줄 이유가 별로 없음.</p><p>게다가 이양반도 취임하던 날 날 불러서 전역하기 전까지 사고 치면 죽여버리겠다고 했던 사람임.</p><p>그리고 전임함장이 했던 취미활동반도 없앴던 사람임.</p><p>쿨~~~하게 쌩깠음.</p><p>나랑 친하게 지내던 선배가 술 한 잔 하자고 전화 옴.</p><p>기쁜 마음으로 나갔음.</p><p>함장, 부장, 기관장, 작전관, 포술장, 주임원사, 사통장... 다 나왔음.</p><p>그때 보험회사에 다니고 있었는데, 우리배 부사관 이상 전부 보험 하나씩 들어 주겠다며 꼬심.</p><p>그래서 못 이기는 척하고 가서 도와 줌.</p><p>결국 일 끝나고 나니까 언제 그랬냐는 듯이 쌩깜.</p><p>자매결연 맺었던 대학생들한테도 뭐 해주기로 해놓고 쌩깜.</p><p>결국 내가 학생들한테 술 사주고 마무리 함.</p><p>그리고 몇달 더 있다가 또 전화 옴.</p><p>이번엔 참모총장 앞에서 시연을 해야 한다고 함.</p><p>함장한테 욕 한바가지 해주고 쌩깠음.</p><p>자매결연 맺었던 대학생들한테도 절대 도와주지 말라고 해놓음.</p><p>결국 그 함장은 참모총장한테 찍혀서 대령 진급도 못하고 한직으로 밀려 났다는 소문을 들었음.</p><p><br></p><p><span style="font-size: 10pt; line-height: 1.8;">그 때 나랑 같이 배 탔던 사람들은 사물놀이 얘기만 들어도 내가 누군지 알 거임.</span></p><p>그럴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혹시나 그 때 그사람들 중 누군가가 이 글을 본다면</p><p>조씨 성을 가진 그 함장님과 1999년 당시 작전관...</p><p>지금도 그 분들과 연락이 된다면, 인생 그렇게 사는 거 아니라고 좀 전해주기 바람.</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