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들 하신지요 .
스물 한 살의 끝에 서서 보건대, 제 스물한 살은 안녕하지 못했습니다.
이유 없는 무기력감과 우울증에 시달렸고
제가 투표를 한 건 아니지만(대선 당시 투표권이 없었습니다)
제가 지지하지 않던 후보가 부정선거로 당선이 되었습니다.
저희 학교, 제가 다니던 학부 통폐합 안이 불거지며 학교도 뒤숭숭했고
여기저기 사회적으로도 안녕하지 못했던 일들이 저를 찔러댔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우울하니까, 당장 아르바이트를 해야 학교 다닐 돈이 생기니까 하면서
나가서 생산적으로 즐겁게 놀 방법도 찾지 않았고
광장에서 제가 하고 싶던 말을 찾아 외칠 기회도 내버려뒀습니다.
귀찮으니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니까 하면서
그냥 오유 베오베 온 시게 글 몇 번 보고
학교에서 일어나는 콜로세움들을 피하지 않는 걸로 제가 할 일을 다 한 줄 알았습니다.
문득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깨달음이 하필 시험기간이어야 했던 건 안타깝지만
어쨌든 나가기로 했습니다.
원래 계획은 안녕들하십니까 페북 페이지 따라서 성토대회부터 가는 거였는데 그건 못 갔구요
4시쯤 되어 시청역에 도착했습니다.
경찰(의경?)이 참 많더라구요.
경찰대 시험 본 이후로 경찰 이렇게 많이 본 건 처음이다 싶었습니다.
연대라는 게 참 신기하다 싶었습니다.
대학교 들어가서 처음 농활을 가고, 연대에 대해 배웠을 땐 전혀 와닿지도 않더니만
지금 여기서 보니 그때 말한 연대가 뭔지 진짜로 알 것 같았습니다.
사진의 저 분은 아니고, 사회(?) 보시던 분이 금속노조 조끼 입고 계셨는데
쌍차 비정규직 해고자라고 하셨습니다.
소수자들끼리의 연대가 필요하다는 것이 이런 거구나, 새삼 요즘 깨닫습니다.
시청에서 서울역으로 이동했습니다.
걸어서 가도 될 텐데 지하철 타고 이동하더라구요... 저는 걸어가는 길을 몰라서 그냥 지하철 타고 따라갔습니다.
사실 촛불집회 가면 초는 내가 챙겨가야 하나 가서 어떻게 해야 하나 사소한 질문거리가 좀 많았습니다.
오유에 물어보긴 부끄럽고 여시 자유게시판에 슬쩍 물어봤더니 몸만 가라 하더라구요.
같은 학교 다른 학부 선배님과 같이 가서 다른 분들도 만나 같이 외치다 왔습니다.
좀 늦게 가서(시청에서 서울역 갔을 땐 5시 지나 있었음) 초는 못 받았고
어떤 분이 계속 저런 종이 나눠주십니다. ㅋㅋㅋㅋㅋㅋ
종류도 여러가지구요.
혹시나 가서 뭐 어떻게 해야 하지 하시는 분 계시면 그냥 친구 손붙잡고 가시면 됩니다.
끝나고 쓰레기 치우는데 그게 또 장관이더라구요. 알아서 다들 싹싹 치우는 게 정말 대단하다 싶었습니다.
이제는 진짜 시험공부하러 가야 하고.
다음에 또 나가봐야지요.
왠지 오늘은 오랜만에 기분이 괜찮습니다.
정말로 안녕해진 건 아닌데, 안녕해질 수 있는 답을 찾은 것 같은 기분입니다.
사족. 기념이랍시고 박근혜 하야하라 써진 종이 들고가는데
일행이 되어주신 다른 학부 선배님(제가 중학교 들어갈 때 대학교 들어가신 분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께서
그거 집에가면 버려요 ㅎㅎ
라고 하시더라구요.
하긴, 몇 번 더 나가보면 이런 종이가 신기하지도 않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