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현대가 2012 아시아챔피언스리그(ACL) 결승행에 성공하면서 K리그의 자존심을 세웠다. 과거 아시안 챔피언클럽 토너먼트(1967~1972),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1985~2002)의 역사를 통틀어도 4년 연속 결승행을 이뤄낸 리그는 없었다. 결과론에 기대면 K리그는 명실상부 아시아 최고 리그다.
흥미로운 것은 K리그가 꾸준히 성과를 낸 시기와 J리그의 경쟁력이 하락한 시점이 맞물리는다는 사실이다. 2007년, 2008년 연속으로 ACL 우승팀을 배출했던 J리그는 2009년 16강 토너먼트에 4개 팀을 올려놓고 4강에 진출(나고야 그램퍼스)한 것을 끝으로 아시아 무대에서의 지배력을 잃었다. 이후 ACL에서 J리그의 최고 성적은 2011년 세레소 오사카가 8강에 오른 정도다. 반면 K리그는 2009년 포항의 아시아 정복을 시작으로 4년 연속 결승 진출팀을 만들어내는 강세를 보였다. 특히 J리그와의 맞대결에서는 반드시 승리를 챙겼다. 2010년 16강전에서 성남은 감바 오사카를, 포항은 가시마 앤틀러스를 제압했다. 2011년에는 전북이 8강 상대인 세레소 오사카를 1, 2차전 합계 9-5로 크게 눌렀다. 이번 시즌에도 마찬가지. 울산이 16강전에서 만난 가시와 레이솔을 3-2로 꺾었다. J리그의 우승 꿈을 K리그가 번번이 좌절시킨 셈이다.
그렇다면 아시아 무대에서 양 리그의 전세 역전은 어떻게 이뤄진 것일까.
우선 J리그의 성공이 K리그의 각성을 끌어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2007, 2008년 J리그의 우승과 2009년 조별리그에서 느낀 격차는 K리그에 위기의식을 불러왔다. K리그를 긴장시킨 것은 단순히 경기력의 문제가 아니었다. 선수뿐 아니라 구단 프런트와 스태프, J리그 사무국까지 총동원돼 대회를 준비하는 자세였다. ACL 참가 팀과 J리그 사무국이 긴밀한 공조 체계를 형성하면서 원정 여행 관련 업무를 일원화하고 숙박, 식사, 이동 등의 노하우를 공유했다. 타 리그 상대팀에 대한 정보까지 서로 교환하며 대회를 준비했다. 이에 자극받은 K리그도 2010년부터 본격적인 공조 체계에 들어갔다. 프로연맹이 경기 일정을 짤 때 ACL 참가 팀을 배려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장거리 원정 경기가 있는 팀을 위해 K리그 경기 일정을 조정하거나 인천공항에서 가까운 수도권 팀과 맞붙는 대진으로 배치하는 식이었다.
아시아 제패에 대한 K리그 팀들의 인식도 바뀌었다. 2009년부터 확대개편된 ACL은 우승팀에게 부와 명예를 약속했다. 충분히 도전해볼 만한 가치가 생긴 것이다. 그해 우승한 포항은 우승 상금과 각종 수당, 원정보조비 등으로 25억원 가량 영업 수익을 챙겼고 클럽월드컵 참가 개런티와 승리 수당 등으로 15억원 이상 벌었다. 감독과 선수들의 주가도 상승해 일본과 중동 클럽에서의 러브콜이 쏟아졌다. 포항의 성공은 다른 팀들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리그에서 엎치락뒤치락 맞붙던 팀이 아시아를 제패했다는 사실은 다른 팀들에게도 충분히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줬다. 김호곤 울산 감독이 "2009년에는 대회를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지만 이번 시즌에는 ACL에 올인했다"고 할 정도로 극적인 변화였다. 실제 2010년 성남의 우승, 2011년 전북의 결승행에 이어 2012년 울산의 결승 진출이 증명하는 사실이다.
K리그의 전세 역전이 이뤄진 결정적인 배경으로 정신력도 빼놓을 수 없다. 일단 동기가 부여되면 특별한 정신력을 발휘하는 게 한국 축구의 특징이다. 한국인으로 J리그 사간토스의 지휘봉을 잡고 있는 윤정환 감독은 "일본 클럽은 어떤 대회든 자기들 특유의 스타일을 버리지 않고 자연스럽게 하려는 성향이 있다. 반면 한국 팀은 토너먼트에서 특별히 발휘되는 정신력 같은 것이 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결과를 내려는 결집력이 있다"고 말했다. 이번 시즌 울산과 가시와의 16강전이 그랬다. 가시와의 빠르고 세련된 패스워크가 울산을 위협했지만 결정력에서는 울산이 앞섰다. 승리는 울산의 몫이었다. 황선홍 감독도 "과거에도 경기력 자체가 일본에 뒤진 것은 아니었다. 대회의 중요성이나 인지도가 낮았기 때문에 소홀했을 수는 있다. 대회에 몰입할 수 있는 동기가 있으니 충분히 강한 정신력과 경기력이 나오는 것이다"라며 변화상을 짚었다.
J리그가 과도기를 겪고 있다는 점을 주목하는 시각도 있다. 일본에서 스포츠전문라이터로 활약하고 있는 김명욱 씨는 "J리그의 수준이나 경기력 자체가 떨어진 건 아니다. 다만 감독이 바뀌고 외국인 선수의 수준이 달라진 부분은 있다. 리그 전반적으로도 춘추제(유럽처럼 8월에 리그를 시작해 그 다음해 중반에 종료하는 제도)를 추진하다가 중단되는 등 혼선이 있었다. 시스템이나 정책에서 과도기를 겪고 있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결과론적으로 K리그의 힘이 J리그를 압도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축포를 터뜨리기에는 이르다. 아시아의 '절대강자'가 되기 위해서는 일본 너머 다른 상대들을 주시해야 한다. 환골탈태를 거듭하며 무섭게 추격해오는 중국 리그와 자금력으로 무장한 중동 클럽들의 위력은 익히 경험한 바다. 내년 ACL 참가 티켓을 확보한 포항의 황선홍 감독은 "K리그에서 4년 연속 결승 진출팀을 배출한 만큼 앞으로는 K리그에 대한 견제가 더 심해질 것"이라고 경계했다. K리그의 진짜 싸움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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