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p>육사 2기는 사실 존재하지 않는 기수입니다.</p><p>적어도 1996년까지는 그랬습니다.</p><p><br></p><p>1950년 6월 1일, 333명이 육군 사관학교에 입교합니다.</p><p>1950년 6월 25일, 전쟁이 일어납니다. </p><p>입교한지 불과 20여일만에 일어난 일이므로 아직 군번도 없고, 계급도 없습니다.</p><p>이 상태로 많은 전사자가 발생합니다. </p><p>생존자는 8월 15일에 육군종합학교로 편제되어 10월 23일에 소위로 임관된 후, 다시 전장에 투입됩니다.</p><p><br></p><p>육군사관학교는 다음해인 1951년 10월 31일에 최후방 진해에서 신입생도를 받아들입니다. 이들이 11기입니다.</p><p>전체 입교생의 절반이 전사한 육사 2기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졸업전에 전장에 투입시키지 않는다는 원칙도 세웁니다.</p><p>이 원칙과 선배들의 희생으로 육사 11기는 전원 무사히 졸업합니다.</p><p><br></p><p>대한민국 건국후, 첫 육사 생도가 된 1기생은 2년제였지만, 전쟁으로 인해 1년만에 졸업을 하고 전쟁에 투입됐습니다.</p><p>2기생은 졸업도 못하고 전쟁에 투입되었습니다.</p><p>1기생은 졸업을 했기에 정식 육사 10기생이라는 명칭을 받았지만, 2기생은 그렇지 못했습니다.</p><p>그리고</p><p>육사 11기생은 그런 선배들을 1년짜리 졸업생이라고, 혹은 정식 졸업장을 받지 못했다고 무시하고 괄시했습니다.</p><p>특히나 2기생은 육사출신으로 인정도 하지 않았습니다.</p><p>그런 그들은 훗날 하극상으로 불리우는 12.12쿠테타를 일으키고 2명의 대통령을 배출했습니다.</p><p><br></p><p>대통령이라는 직위는 분명 대단한 자리입니다.</p><p>하지만</p><p>전체 생도의 절반이 민주주의와 국민을 위해 복숨을 바친 2기생의 명예보다는 아래에 있다고 생각합니다.</p><p>이제라도 그들이 명예 졸업생이 된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p><p><br></p><p>대한민국을 위해 희생한 육사 2기생과 모든 장병들을 추모합니다.</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