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여고괴담에서는 귀신이 산 사람과 어울리며, 그 존재를 어느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다. <br><br>학교에서만 나타나니 지박령이라고 할 수 있으나 귀신의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일반 사람의 모습으로 감쪽같이 나타나니 여기에는 기존의 귀신 분류와는 좀 다른 뭔가가 필요할 듯하다. <br><br>그러나 심령학 분야에서도 아직 이런 분류는 없기에 편의상 실화령(實化靈)과 몽화령(夢化靈)으로 이름붙여 분류하겠다. <br><br> [실화령(實化靈)] <br> 실제 인간의 모습으로 변한 귀신. <br>대화도 나누고 만져지기도 하는 등 산 사람과 차이가 거의 없어서 누구나 눈치채지 못하는 혼령 <br>[몽화령(夢化靈)] <br>인간의 모습이긴 하나 누구나 봐도 귀신인걸 아는 상태의 혼령. 실화령처럼 인간과 직접적인 접촉과 대화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br><br>꿈인지 생시인지 구분이 안가는 경우가 많음 역사적으로 볼 때 실화령은 몽화령보다 그 출몰 빈도가 현저히 적다. <br><br>아마도 사람들이 귀신인지 아닌지 구별을 못했기 때문에 그냥 모르고 지나친 경우가 많았을것이다. <br>이런 심증을 굳히게 하는 재미있는 설화가 중국에 전해져 내려오는데, 전설에 따르면 매운 음식으로 유명한 사천성의 성도 부근에는 일명 귀향이라고 불리우는 저잣거리가 있다고 한다. <br><br>이곳은 원칙적으로 낮에는 인간이 물건을 사고 팔고, 유령은 밤에만 드나들기로 했는데 일부 귀신들은 인간 속에 섞여서 낮에도 물건을 사러 오곤 했다. <br><br>인간과 직접 접촉을 하는 실화령들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귀신이 준 돈은 다음날 나뭇잎 같은 것으로 변한다는 것이었다. <br><br>이런 일이 점점 심해지자 장사꾼들은 어느 도력 높은 수행자에게서 한가지 묘책을 받게 되는데, 그것은 미리 물이 담긴 통을 준비해서 건네 받은 돈을 그 속에 넣는 것이었다. <br><br>그렇게 하면 인간의 돈은 가라앉지만, 귀신의 돈은 물위에 뜬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해서 귀신인지 사람인지를 가려냈다고 한다. <br><br> 중국의 고문헌 수신기에 보면 삼국지에서 유비의 최측근으로 나오는 미축도 젊은 시절 실화령을 만난적이 있다고 적혀 있다. <br><br>볼일을 보고 수레를 타고 가던 미축은 길가에서 아름다운 여인을 태우게 되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옥황상제의 명을 받들고 미축의 집을 불태우러가는 불의 정령이었다고 한다. <br><br>하지만 미축이 친절한 사람이란 것을 안 그 정령은 미축보고 먼저 가서 식구와 재산을 밖으로 대피하라 이른 후 나중에 도착하여 집만 불살랐다고 한다. <br><br> 우리나라에도 실화령에 대한 얘기는 간간히 전해지고 있는데, 조선시대 때 세조의 총애를 듬뿍 받던 신숙주는 평생 동안 청의동자라는 실화령이 졸졸 따라 다니면서 길흉을 판단해 주었다고 하는데, 훗날 임종 때 자신이 죽으면 본인의 제사만 지내지 말고 청의동자의 제사도 함께 지내라는 유언을 남기기도 했다. <br><br> 성종 때 대제학과 호조판서를 지낸 문신 홍귀달이 연산군에게 바른 말을 간하다가 귀양을 가서 억울하게 세상을 뜬 후, 그의 친구인 송일에게 실화령으로 나타나 추워 죽겠다"며 술을 얻어 마신 일화도 전해진다. <br><br>그 일이 있은 후 송일은 영의정의 반열에까지 오르게 됐다고 한다. 실화령 얘기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아마도 수양대군 세조에 의해 죽임을 당한 단종이 아닐까 한다.<br><br> 단종이 영월로 유배됐을 당시 세종 때 한성부윤을 지낸 추익한 역시 모든 관직을 버리고 따라나섰다고 한다. <br>그런데 하루는 단종이 좋아하는 머루와 다래를 딴 후 돌아오는데, 말을 타고 오는 단종을 발견하고는 넙죽 업드려 절을 했더니 "머리가 복잡하여 잠시 금강산(또는 태백산)에 좀 다녀오겠다"는 말을 남기고는 유유히 사라졌다고 한다. <br><br>나중에 알고 보니 그때는 이미 단종이 승하한 후였다는 것이다. 강원도 영월의 매봉산에 가보면 단종을 기리는 영모전이라는 사당이 하나 있는데, 지금 얘기한 이 내용을 주제로 운보 김기창 화백의 그림이 걸려 있다. <br><br> 전해져 내려오는 설화 외에도 우리 주변에는 사람인지 귀신인지 구별이 안되서 나중에 놀랐다는 얘기들이 꽤 전해져 온다. <br><br>대학생들이 섬에 MT를 갔다가 다시 돌아와서 인원수를 체크하니 한명이 모자랐는데 단체 사진에 처음 보는 여자의 얼굴이 찍혔다느니 하는 것들이 그런 현상이다. <br><br>이런 실화령 현상들은 학교나 군대, 여행 등에서 자주 목격되는데 영화 <알 포인트>나 <남극일기> 역시 이와 비슷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br><br> 세계적인 문호 모파상도 어느 모임에 갔다가 들은 얘기를 <유령>이라는 단편 소설로 만들었는데, 친구의 집에 서류를 가지러 간 군인이 죽은 친구 부인을 만나 얘기를 나누고 머리를 빗겨 줬다는 묘사를 세밀히 하고 있다. 나중에 집에 돌아왔더니 자신의 단추에 여인의 머리카락이 엉켜 있었다는 끔찍한 내용의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