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와 다름 없는 트리스트럼의 우중충한 날씨다. <div>인디언인지 원주민인지 모를 천쪼가리를 들여다보다가 이내 혹시 최종 보스이자 흑막은 아닐까 하는 아줌마를 찾아간다.</div> <div>이미 마법 부여는 한번 할 때마다 2백 만원을 넘어가는지라, 황실 토파즈 하나를 만드는데도 평소 부들거리는 손에 더욱 경련을 일으켜야 하는 그다.</div> <div>여전히 생명력 퍼센트와 역병 개구리 데미지 15% 증가 옵션을 잔뜩 붙인 그는 어디까지나 모양만 비취부두 흉내를 낼 뿐이다.</div> <div>심지어 비취 상의의 홈은 하나 뿐이다.</div> <div>목걸이에 붙은 독 속성 피해 15%에서 오늘에야말로 냉기 피해를 띄우고야 말겠다고 다짐한 그였지만, 어제 쿨타임 감소 6%라는 절망적인 옵션에</div> <div>아직도 좌절해있는 그는 형상 변환으로 눈길을 돌렸다.</div> <div>당최 이 원시인은 허리도 구부정한데다 배도 나와 있어서, 무엇을 입혀도 예쁘지가 않다.</div> <div>옆에 사는 마법사, 악마사냥꾼, 성전사, 심지어 수도사까지 어느정도 멋있는 복장이 트리스트럼의 좀비처럼 많지만.</div> <div>현재 부두술사는 틱장애걸린 원시인이고, 야만용사는 날빠진 몽둥이를 들고 빨래하는 아저씨일 뿐이다.</div> <div>여전히 형상변환을 둘러보다 오늘도 역시 자신이 형상변환 한 마나주마의 닭고기 사장 룩이 최고라며 자위한다.</div> <div>그래! 생긴게 별로면 어떠하랴.</div> <div>독 피해, 화염 피해를 잔뜩 올려놨으면 또 어떠하랴.</div> <div>그래도 나는 비취 6셋이고, 파티의 황제다!</div> <div>그 누구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그는 그걸로 스스로 만족감을 얻었다.</div> <div>물론, 파티에는 당연히 환영받지 못하는 그로서는 언제나 솔플 뿐이다.</div> <div>남들 다 하는 쿨감 20퍼와 혼령 그릇 패시브를 이용해 공포 - 악마의 상 룬을 계속해서 적용시켜 봐도 그의 강인함은 언제나 600만 내외.</div> <div>공포를 사용하지 않은 자신은 얼마나 종잇장인지에 대해 깊게 생각해본 적 없는 그로서는 분명 악상 룬이 적용되지 않는 것이라 생각한다.</div> <div>패시브 하나도 아깝고, 스킬 칸 하나도 아까워 빼버릴까 생각도 해보았지만, 말도 안되는 소리다.</div> <div>이 룬마저 없다면 그는 고행 6단계에서 지나가던 새끼 거미 세마리와 잠시 인사한 것만으로 천상에서 임페리우스와 쎄쎄쎄를 해야하지 않을까.</div> <div>남은 균열석은 13개.</div> <div>이제 곧 이 균열석을 모두 사용하면, 다시 큐브런을 뛰던가, 그게 귀찮다면 말도 통하지 않는 재미 없는 중국인들과 침묵의 눈치싸움을 시작해야한다.</div> <div>무언가 바쁜척 여기저기를 돌아다니거나, 혹은 맹신 투구를 쓰고 나몰라라 문을 열어줄 때까지 잠수타는 척 하다 문이 열리면 슬금슬금 뒤를 따르는 일은 아무리 염치 없는 그로서도 지치고 힘든 일임은 분명했다.</div> <div>두 번, 균열을 열고 나면 다시 균열석을 벌러 가야겠지.</div> <div>분명 균열석 두 배 이벤트를 하면서 전설 드랍 확률도 두 배로 늘었다고 하지만, 그의 손에 들린 것은 정예 피해 15%짜리 태양 수호자가 전부다.</div> <div>쿠크리, 테스커, 하다못해 역병 두꺼비가 아닌 혼령 출몰이 붙은 액막이라도 어떻게 얻어보려 발버둥 쳐봤지만, 그의 인벤토리엔 전쟁광과 멧돼지사냥꾼의 손칼이 그득했다.</div> <div>결국 전설 확률이 두배로 고정된다 해도, 오히려 그에게 기쁠 것은 없었다.</div> <div>어처피 레더가 시작되면 캐릭터를 다시 키워야할지도 모른다고, 그렇게 되면 과연 이 등 굽은 틱장애에게 정을 다시 붙일 수 있을까<span style="font-size: 9pt; line-height: 1.5">…</span><span style="font-size: 9pt; line-height: 1.5">….</span></div> <div>그렇게 생각하며 그는 오레크와의 짧은 인사를 마치고 균열을 열며 입장했다.</div> <div>입장 하는 로딩은 조금 긴 편인데, 그 동안 그는 항상 기도를 한다.</div> <div>제발 혼란마가 나오지 않게 해주세요.</div> <div>암살자가 다가오자마자 사라지게 해주세요.</div> <div>허나 그렇게 눈을 꼭 감고 빌어도 오레크의 목소리가 들려온 뒤 조금만 앞을 나가보면 아니나 다를까.</div> <div>혼란마가 어서 오라는 듯 여덟개는 되보이는 팔을 꼼지락거리고 있었다.</div> <div>괜히 크게 욕했다가 피시방에서 싸움이라도 붙을세라, 그는 화를 삭히며 어쩔 수 없는 돌격을 감행한다.</div> <div>물론 결과는 참담하다.</div> <div>아무리 도망쳐도 암살자는 우습다는듯 그의 바로 뒤에서 여지없이 공격해오고, 조금 숨을 돌리는가 싶으면 혼란마가 그의 몸을 밀어내며 바닥에 붉은 길을 낸다.</div> <div>일곱 번이 넘는 흑백 화면.</div> <div>이미 제자리에서 부활 버튼은 회색으로 굳게 닫혀 눌리지 않았고, 결국 균열 입구도 몹들이 진을 치고 있는 것을 보고 마을로의 귀환을 선택했다.</div> <div>난이도를 낮출까 하고 0.5초정도 생각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div> <div>비취 부두로서 고행 6단 솔플은 그의 자존심이다.</div> <div>차라리 친구의 파밍을 도와준다는 목적으로 단계를 낮춰 2인 팟을 짜볼 생각도 했으나, 정작 중요한 친구창의 접속한 친구는 그의 인벤에서 전설을 찾아 보는것 만큼이나 힘들다.</div> <div>결국 그는 굳게 다짐하고, 다시금 균열로 발을 내딛었으나<span style="font-size: 9pt; line-height: 1.5">…</span><span style="font-size: 9pt; line-height: 1.5">….</span></div> <div>끝내 돌아오는건 회색 화면과, 애꿏게 날아가 나무에  잘 널려진 빨래처럼 걸려 있는 자신의 캐릭터 뿐이다.</div> <div>어떻게 하면 혼란마와 암살자를 만났다고 캐릭터가 나무에 걸리게 되는걸까.</div> <div>이정도 되면 디아블로 3의 물리 엔진이 원망스럽기만 하다.</div> <div>분명 비취 6셋, 마지막 부위를 카달라에게 통사정해 얻어냈을 때만 해도 날아갈 듯 기뻤다.</div> <div>모든 파티가 자신을 환영해 줄 것 같았고, 모든 커뮤니티에 비취 6셋이라고 글을 쓰면 칭송하고 찬양할 줄 알았다.</div> <div>허나 마부에 수십번 실패하고 갈 곳을 잃어 솔플만을 전전하다 파티 하는 방법조차 잃어버린 그로서는, 이제 자신이 균열을 돌 때 자신의 주 딜링 스킬이 혼령 출몰인지, 메뚜기 떼인지, 그도 아니라면 추종자가 착용한 불카토스의 결혼 반지인지 이제와서 그는 애매할 따름이었다.</div> <div><br /></div> <div>평소와 다름없는 트리스트럼의 우중충한 날씨다.</div> <div>허나 그는 아직도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div> <div>멍청한지, 그도 아니면 미련한지, 끈기가 있는건지.</div> <div>그는 오늘도 여전히.</div> <div>몇번이고 죽을 것을 알면서도 노오란 균열 속으로 몸을 담가 나아간다.</div> <div>잠깐 나타났다 사라진 그의 장비 창에서, 유일하게 옵션이 좋게 나왔다며 쾌재를 부르며 항상 착용하고 있는 [비취 수확자의 지혜]가 평소보다 반짝이는 듯 했다.</div> <div><br /></div> <div><br /></div> <div>-End</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