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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스즈미야 하루히의 소실
예전에,
몇년 전이었던가?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의 극장판을 보러 극장에 간 적이 있었다.
당시의 나는 스즈미야 하루히 1기를 보고 흥분의 도가니에 빠져있었다.
... 그런데 어디선가 보게된 극장판의 개봉 소식! 이걸 놓칠 순 없지.
나는 넘치는 잉여스러움으로 영화 정보를 탐닉해 나갔다.
검색해보니 송파 강동구에선 천호동의 롯데시네마인가에서 상영을 하고 있었다.
휴학중이었던 관계로, 다른 사람들은 회사를 가고 학교를 간 평일의 한적한 오전 시간,
나는 영화관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표를 끊고 안으로 들어서자 영화관엔
나와 비슷한 성향을 가진 동지들이 드문드문 자리에 앉아 있었다.
아마 서울에서도 극장판을 개봉했던 극장은 별로 없었던 관계로 어쩌면 저 멀리에서 원정을 왔을지도 모를 사람들이었다.
하긴, 이 영화관 주인이 아니었으면 나 역시도 멀리까지 영화를 보러 갔어야 했겠지.
아님 그냥 영화보러 가는 것을 포기하거나.
어쨌든, 영화가 시작하자 언제나 그러하듯 오프닝 노래가 흘러나왔다.
덕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스즈미야 하루히의 주제가였다.
안타깝게도 나의 수행이 부족한 관계로 따라부르지는 못했지만 풀 서라운드 시스템으로 익숙한 노래를 들으니 감회가 골수에 사무치는 듯 했다. 그런 느낌은 나 뿐만이 아니었는지, 저 앞에 앉은 동지는 어깨를 들썩이며 감흥을 터트리고 있었다.
그런데, 내 바로 앞자리 왼쪽으로 3번째 자리에 앉은 사람이 신경쓰였다.
분명 저 사람은, 남자가 아닌 것 같은데?
펑퍼짐한 일자 청바지에, 커다란 백팩을 메고, 남방을 입었지만 머리가 길었고,
전체적으로 풍겨오는 분위기가 분명 여자 사람이 분명했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내 여동생이 이렇게 귀여울리가 없어에 나오는
빙글빙글 안경낀 여자 스타일 이었다고 해야하나?
여자 사람은 나보다 애니에 더 심취했는지 스크린을 향해 전투적으로 몸을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왠지, 저 백팩을 열면 왠지 건담 프라모델이 나올 것 같아.
알 수 없는 예감이 머리속을 쿵쿵 울렸다.
이상하게도, 묘한 동질감과 동료의식이 처음 보는 여자의 뒤통에서 느껴졌다.
그래서, 말이라도 붙여볼까 싶었지만. 나는 언제나 그렇듯이 시크한 도시남자.
그런 일이 일어날리 없었다.
그저, 어떻게 생긴 사람인가 궁금하여 그 여자가 우연이라도 뒤를 돌아보길 내심 기대했지만,
역시나 영화에 심취한 그녀에겐 뒤를 돌아볼 생각 따윈 없는 것 같았다.
그래서 영화가 끝나고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날 때 슬쩍 봐야지 했지만,
영화가 끝나고 엔딩크레딧이 다 올라갈 때 까지 그녀는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아마도 엔딩 크레딧 끝에 나오는 보너스 영상을 기다리는 모양이었다.
하긴, TV판 애니를 봐도 영상 말미에 예고편은 틀어주니까.
그래서 나도 덕분에 그냥 지나칠뻔한 보너스 영상을 잘 챙겨볼 수가 있었다.
게다가 이 업계에선 이런 엔딩 뒤 보너스가 관행인것인지 그녀 말고도 다른 사람들도 대부분 자리에 앉아 있었으니,
나 혼자 상영관을 박차고 나갔으면 졸지에 교양 없는 사람이 될 뻔했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어쨌든, 지금은 그 때 봤던 영화 내용이 뭐였는지 기억조차 나질 않지만,
그 여성의 후덕함만은 수많은 시간이 지난 어떤 겨울의 시간 속에서도 여전히 기억나는 것이다.
잘 지내시는지?
말 한번 못 붙여 봤지만. 그 때의 모습은 잘 간직하고 계신가요? 처음 뵀었지만 오래된 친구 같았던 당신이여.
(이렇게 생긴 여자라는 뜻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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